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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가 제일 쉬웠어요!

선거 당일날은 일 하느라 개표 방송을 못 보고 (인터넷에서 최종 득표율만 확인) 어제는 하루 종일 바깥에 나다니느라 뉴스를 못 봤다. 오늘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진짜... 배꼽 잡고 쓰러졌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63 뉴스엔조이 2008.4.3 - 한나라 비례대표 1번 강명순 목사 인터뷰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묻자, 강 목사는 "아이들을 위해서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강 목사는 "정치에 대해서는 묻지 마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대운하고 뭐고,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든, 한나라당의 정책이 뭔지 난 전혀 몰라요. 정치에 대한 질문은 무조건 노코멘트에요"라고 일축했다. 정치에 대한 얘기만 꺼내면 몇 번을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대선 때는 어떤 후보를 뽑았냐, 평소 한나라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는 질문에도 "몰라요"로 답했다. 강 목사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몇 번에 걸쳐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화여대를 통해 제의가 들어왔는데 거절했어요. 몇 주 지나서 또 제의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는 한나라당에서 누가 직접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이 강 목사님을 찾아가랬어요. 목사님이 십자가를 지시죠'라고 말하며 입당을 권유하더군요." "비례대표가 뭔지 이번에 알았습니다"라며 말하는 강 목사는 공천제의를 놓고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과에 따라 순종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당에서 제의는 없었냐고 묻자 "그 어떤 당에서도 제안을 하지 않았어요. 한나라당에서만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오피스텔 선물, 땅사랑, 귀신 토지거래 사건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초절정 내공... "개그가 제일 쉬웠어요."


3% 안 넘어서 해산되는 줄 알았는데, 기준선이 2%란다. 기뻤다. 아마 이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분들 꽤 있을 거다. 당이 완전 해체되지 않고, 노/심 중심의 패권주의를 그대로 가져갈까봐... ㅡ.ㅡ 우쨌든 나는 기쁘다. 그리고, 믿고 지지해주신 지인들께 감사드린다. 비바람 뚫고 힘겹게 투표하고 왔는데, 자신이 겨우 대한민국 3% 소수자였다는 걸 알고 나름 충격 받으신 지인들... 너무 놀라지 마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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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선거 후기

선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후기를 적다니 ... (야간 강의 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일단, 여한은 없다 ㅎㅎ 급하게 총선에 참여하는게 과연 올바른 길일까 고민하기도 했으나, 만일 안 그랬다면 이 시기에 뭘 했을까 싶다. 물론 아쉬움과 부끄러움이야 왜 없겠나? 정책은 이야기도 않은 채 무작정 지지를 호소한 경우도 많았고 (일명 묻지마 투표 ㅡ.ㅡ), 스스로의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무작정 변호를 한 경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주변 사람들과 모처럼 진득한 이야기를 나누고 지지자를 조직하는 일이 과연 선거 아니면 또 언제 가능하랴 싶다. 당원 게시판의 분위기는 2004년 총선 전야와 비슷하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활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서도, 어쨌든....다들... 여한은 없을 것이다. 백만년 만에 문자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팅이라는 답문자를 보내준 선후배, 친구들을 비롯하여,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신 선생님들 (심지어 결과가 나빠도 실망하지 말라는 덕담까지), 적지 않은 후원금을 턱 하니 내놓으신 지인들... 모두 고맙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매우 무겁다. 이 분들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참 미스테리로구나... 내 주변에 이렇게 지지자가 많은디, 지지율은 어째 2%... 내 주변에는 기인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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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감상문 두 편

내 평생, 영화 하나 보고 감상문 두 개 쓰긴 첨일세... ㅡ.ㅡ 미디어 충청 원고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거짓말처럼 보건의료단체연합의 P 부장님이 전화를 하셔서리... 이미 쓰고 있는 중이라는데도 무조건 또 쓰라니... 그 놈의 대의명분이 뭔지 참... ㅜ.ㅜ 두 개를 다 읽어본 독자라면, 내가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라도 앓고 있는 줄 알게야... 뭐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영화를 보고, 공감을 해 준다면 그냥 감내해야지...ㅡ.ㅡ 0. "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프레시안 2008. 4. 7) 앞선 필자들의 ‘식코’ 감상문들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야 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한편 90년대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전쟁 후 본격적인 ‘영리산업’이 되어버린 보건의료 체계 속에서 고뇌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닥터 솔로몬(Solomon)의 딜레마』(미국 PBS 제작, 2000년)에 잘 그려져 있다. 보스턴의 토박이 솔로몬은 나비넥타이와 깨끗한 흰 가운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이다. 환자들의 평판도 좋아 지역 100대 명의(名醫) 목록에도 빠지지 않는 그였지만, ‘케어그룹(CareGroup)’에 속하고 나서 곤혹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부인과 암이 발견되어 상급 병원으로 의뢰가 필요했던 그의 환자는 ‘케어그룹’에 속하지 않은 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다. 안 될 일이다. 보험회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병원은 안 된다고 솔로몬이 이야기하자, 환자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돈 때문에 저를 그리로 보낼 수 없다는 거죠?” 솔로몬은 “네, 그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14년 된 단골 환자와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렸다. 또 다른 의사, 케어그룹의 진료부장인 닥터 사알(Saal)은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의사가 직접 경영진이 되니 든든하다고 좋아하던 동료 의사들이, 이제는 자기를 예전의 보험회사 직원 보듯이 하며 “도대체 그 일을 왜 하고 있냐?”며 비아냥댄다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픈 이들과 그들 가족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만 밝히던 보험회사의 행태를 스스로 반복하고 싶은 의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캐나다 혹은 쿠바 사람들에 비해 원래 ‘못된’ 사람들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착한 아들딸이고 존경받는 부모이며 따뜻한 이웃이자 동료인 이들이 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자, 이제 오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이웃 환자가 어느 날 병원비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이 있는가? 눈물로 애원하는 환자 가족들에게, 약관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릴 자신이 있는가? 단골 환자의 눈을 마주하면서, 계약 조건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내 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료 의사에게 돈! 돈! 돈! 채근할 자신이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나 체계가,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혹은 천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나 체계를 선택하고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이었던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그런 괴물은 되지 말자. 무엇을 위해 우리가 그렇게 변해야 하는가?


수다스러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가 드디어 개봉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미국의 황당한 의료보험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국만의 비극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경험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병원비를 이유로 환자를 내다 버리고, 일하다 잘린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여야 할지 가격표에 따라 골라야 한다니 말이다. 나 또한 감독 특유의 선정적인 연출 때문에 ‘허걱!’ 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미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엄연한 사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국, 캐나다, 프랑스,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를 지상천국처럼 그린 것은 매우 못마땅하다. 캐나다의 기나긴 대기자 명단 문제는 캐나다 좌파들도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이며, 외국인들이 쿠바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한다. 더구나 미국의 오래된 봉쇄정책 때문에 건물과 장비는 낡았고 의약품은 풍족하지 못하다. 지구 상 어디에도 완벽한 보건의료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마다 나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미국의 문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 몇 가지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자. 가난한 쿠바와 비교당하는 것에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 소위 선진국이라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려 한다. 미국이 연간 보건의료비에 쓰는 돈은 약 1조 7천억 달러, 국민 1인당 평균 6,037 달러 (약 600만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2%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OECD 29개국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평균 2,515 달러에 불과하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7% 밖에 안 된다 (2004년 기준).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데 과연 그 성적은 어떨까?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은 약 4천 6백만 명(전체 국민의 약 16%)으로 대한민국 총 인구와 비슷하다 (미국 보건부 2005). 국가 간 건강 수준 비교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 중 하나인 영아 사망률 (출생아 1천 명 중 만 1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영아의 수)을 살펴보면, OECD 평균이 6.1명인데 비해 미국은 7.0명으로 30개국 중 25등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뒤에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멕시코, 터키가 있다 (2002년 기준, OECD Health Data 2007).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물론 건강 수준이 보건의료체계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이 이 지경에 된 데에는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소리다. 오히려 참신함과 기발함에서라면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본받아 보건의료 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우리네 ‘참여’ 정부와 그 뒤를 이은 ‘섬기는’ 정부가 단연 앞선다. 그나마 취약한 건강보험 제도를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더욱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어차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기 힘드니 사보험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그 깜찍한 발상 말이다. 그 분들은 미국의 모습이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표준이라는 신심(信心)을 갖고 계신 게 틀림없다.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시장과 미국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신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나 되는데도 의료보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나, 보험료 부담 때문에 국제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불만, 그 보수적이라는 미국 의사들조차 과반 수 이상이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지한다는 소식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얼마 전에 개봉했던 또 다른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추억의 바가지 머리를 한 살인마가 등장한다. 희생자들은 이유 없는 자신들의 죽음 앞에서 살인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You don't have to do this!)” 영화 『식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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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단상...

선관위에서 보낸 공보물을 보다가 허거덕.... 0. 정당기호 8번 기독사랑 실천당.... 이 분들의 정강 정책 6번이, '비성경적인 동성연애법, 체세포복제법 반대'란다. 나도 모르는 새, 한국에 '동성연애법'이 생겼단 말인가? 동성애도 아니고, 동성'연애'를 적극 장려하기라도 한다는 말쌈? 아마도 차별 금지법을 지칭하는 듯한데... 참으로 해도 너무 하시는 분들이로구나! 기독당 국회의원 후보의 특징은 1. 신앙심이 투철한 하나님의 사람 2.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능력있는 사람 3. 투철한 국가관을 갖춘 애국하는 사람 이란다. 1번이야 그렇다 치고, 도대체 2번 3번은 성경 어디 쯤 나와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도다. 거기다가, 모르고 있었는데 '평화통일 가정당'은 통일교 관련 정당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해주고 있다.


0.정당기호 14번 평화통일 가정당 이 분들도 기이하기는 마찬가지. '초종교, 초국가, 초이념, 초인종 평화센터 건립'을 추진한다며 '민족사관 숙지'니 '대한민국이 세계중심국으로 부상하도록...' 운운은 도대체 뭣이다냐??? 괴이하다 괴이해... 0.정당기호 15번 한국 사회당 이 분들.... 당 내 상황이 복잡하다는 뉴스는 보았으나, 기왕 선거에 개입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당 홍보물이라도 만들어주셨어야 하는거 아닌가? ㅜ.ㅜ 웬지 안타깝다... 더구나, 우리 지역구에 원래 출마하려 했던 후보마저 당내 사정으로 좌절되었다니 씁쓸하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던 시절에도, 우리 후보가 없다보니 이 양반한테라도 표를 주려고 투표하러 가곤 했는데 말이지... 선거 후에는 같이 할 수 있을까? 0. 정당기호 13번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이만한 절대 악이 없다. 한나라당 '이중대'에, '고작' 개량 사민주의 세력일 뿐 아니라, 기껏 연예인들이나 동원하고 명망가 위주의 정치를 펼치는 포퓰리스트 정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원이며 지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사민주의건 삼민주의건 관계없이 당의 지향점이 보편적 기본권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께서 비판하시는 유럽의 사민주의는 알다시피 궁극적 지향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물이었다 (Esping-Anderson 이나 Korpi의 논문 한편쯤은 교양으로 읽어두자!) 사회변혁 운동은 다양한 스펙트럼과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기본 믿음. 일부는 제도권에서, 일부는 비제도권에서, 또 누군가는 좀더 온건한 방법으로, 또 다른 누구는 아주 단호하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어느 하나가 모든 것은 대표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어느 한 가지가 그 나머지보다 우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따로, 또 함께 궁극의 지향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 민주주의 아녀? 핀란드나 스웨덴의 사민주의가 개량이라고 '에이~' 손사래를 치는 건 한국 현실에서 너무한 처사... 또다른 지지의 이유는,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보건의료 부문에 참여하고 있는 샘들이나 활동가들이 매우 훌륭하신지라 이 분들만 봐도 지지할 수 있다는 헛된(^^) 신념이 샘솟는다는... ㅎㅎㅎ 그리고 이전 민주노동당에서와 달리, 좀더 체계적으로 당의 정책과 의제를 만들어나가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 반미와 통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이전 지도부에 대해 우리가 경험했던 좌절과 무기력을 이제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란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다를 수 있다. 어차피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것도 정치활동의 결과물이라 전문가 몇 명이 이야기한다고 뚝딱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도 안 되고), 최소한 논의구조를 만들고 조직화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까, 지인들에게 열라 문자를 보냈는디, 반응이 나름 괜찮다.... 이렇게 다들 지지한다는데 2%도 안 되는 지지율은 뭐여.... ㅜ.ㅜ * 뱀발 당내 자유게시판을 보면, 전문 키보드 워리어들의 그 부지런함에 깜딱 놀라곤 한다. 그 분들... 진보누리 시절부터 시작하여 민주노동당, 민지네, 레디앙 게시판 등등에서 꾸준히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던 분들이다. 심지어 민지네 '사과나무'님이 그토록 싫어하던 (문장에 쉼표 없다고 ^^) &&타이거까지 출몰한 거 보고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더랬다. 원래 뭐하는 분들일까??? 이 열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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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의 전쟁!

마치 터미네이터 3 의 부제를 연상시키는 비장함이 묻어나는 포스팅 제목이지만,

현실은 엄청 비루하다...

 

 

1. 어제 밤에 세탁기가 한창 돌아가던 중 죽어버렸다.

나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고객 서비스 페이지에 들어가 에러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전원코드를 뽑고 기사에게 연락'이라고 나온다... 허거덕...

 

얼릉 빨래 뭉치 꺼내서 한 시간 동안 손빨래했다. ㅜ.ㅜ

 

청바지....  가히 죽음이었다.

 

 

2. 오늘은 예전에 쓰던 노트북을 들고와서 엄마한테 셋팅해드렸다.

내 개인 데이터 지우고 엄마 자료 다 옮기고....

 

문제는 Targus port replicator 에 연결한 키보드가 작동을 안 하더라는....

ps/2 커넥터가 불량인지, 정이네 키보드 빌려다 임시로 연결해보니 멀쩡히 되더라구...

울 엄마는 컴이 안 될까봐 노심초사.... 내일 내려가기 전까지 어데서 키보드 구해다 해결해야 할텐데... ㅡ.ㅡ 이 동네 어디서???

 

 

3. 며칠 전, 그 전날까지 멀쩡하던 한 S/W가 요상한 에러메시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구글 사마에게 여쭈어본 결과, 예전 버전에서 발견된 버그로 제작사에서 핫픽스를 제공할 뿐더러 내가 지금 사용하는 버전에서는 이미 수정되어서 배포되었다는....

근데 왜 안돼?

다른 유저들도 나와 같은 증상으로 아우성인데 아직 hot fix 나 patch 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혹시나 해서, 서비스팩 설치 --  삭제 후 재 설치까지 했으나 해결 안 됨...

도대체 어쩌라구... ㅜ.ㅜ 

 

 

바쁜데, 왜 기계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나를 괴롭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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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생

사람의 앞길이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지금 생각하면 좀 (많이) 웃긴데... 대학 1, 2 학년 때 나의 꿈은 전위정당 (소위 VPa - Vanguard Party)의 보건의료 부문 담당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공도 이 길로 ㅎㅎㅎ 그런데 지금 모하나??? (몇 해 전 내과의사인 친구가, 우리 인생이 이리도 평범할 줄 그 시절 미처 예상치 못했노라 고백했더랬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도 아주 쪼금, 먼지만큼 미세하게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줄까?) 최근 몇 년 간, 비교적 예측가능한 생활 속에서 가장 뜻밖의 사건은 성수노동자 건강센터 설립에 관여하게 된게 아닐까 싶다. '난데없이' 프로젝트에 연루되고 얼떨결에 책임을 맡고, 그런데 알고보니 이게 엄청난 일이었더라는... ㅜ.ㅜ 정말... 알 수 없는 인생이로다!!! 노신 선생님이 그랬다며... 길이 원래 있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나면 길이 된다고...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는 나는, 그냥 동지들 믿고 간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위장한 J 같은 이들말이지... ㅎㅎㅎ) 그래그래...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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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 양치질?

행인님 블로그에 들렀다가 퍼왔다. 촌스러우면서 귀여운디... 근데 재밌기보다,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ㅡ.ㅡ 그래도, 브라질 PT 보다는 낫다. 그 양반들 당 번호가 13번인데, 여기는 만들어지면 고유번호를 부여받도록 되어 있어 앞으로도 대대 손손 13번이다. 국민 대다수 카톨릭인 국가에서 ....ㅡ.ㅡ 2004년도에 분당한 PSOL 은 무려 당 번호 50번.......... 여기 블로그에 들르시는 지인들... 하루 세 번 양치질할 때마다 13번 기억해주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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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

지난 토욜 오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의 키워드는 불안과 공포, 고착화, 분리,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월소득 5백만원에 자산이 10억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명백히 '부유층'에, 그것도 상위 몇 %에 들어갈 부유층이다. 사회학 전공 교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한 이 통큰 답변의 근원은, 불안과 공포라 할 수 있다. 아무런 보호 수단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를 보여준다. 거꾸로 보자면, 이 정도가 안 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삶은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지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금욜 저녁 자리에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긴 네이버에 올라온 글 중에는 대운하 건설과 건강보험 민영화 중 그래도 뭘 고를래? 하는 질문이 있단다 (ㅡ.ㅡ).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혜택도 적은 의료보험 차라리 없애고 민영으로 하지... 이랬던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절대로 이런 소리 안 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또한, 삶의 일상적 공포 때문 아닌가 싶다. 최근 읽은 책들과 영화 또한 이런 진실을 무지막지하게(ㅜ.ㅜ) 상기시킨다.


0.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경제학 분야에서 코호트분석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도 상당히 대중적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삶에 대한 연민의 한숨과, 다행히도(!) 나는 비껴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외/학원과 교복 없는 중고시절을 보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나기는 했지만 최소한 본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여지는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중학생인 정이나 담이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다른 이의 비극적 미래를 엿보는 예언자가 슬픈 것처럼 말이다. 이 속 깊은 장난꾸러기 여자애들은 결코 사회가 미리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울타리는, 부모의 가방끈 길이와 지갑의 두께로 넘는 것이지, 아이들의 품성이나 재능,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비문이 넘쳐났고 중언부언인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ㅜ.ㅜ) 저자들의 빛나는 문제의식 덕에 그냥 덮어주기로 했다. 0. 강수돌 저, [일중독 벗어나기] 메이데이 2007 어째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ㅜ.ㅜ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그대로 제본해서 책으로 낸 것 같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편집자의 문제 아닐까 싶네... 이 책은, 일중독에 대한 임상적/사회학적 진단에서부터 원인,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방면에 걸쳐 제시하고 있으나 다소 미시적인 접근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들의 변화가 모여서 큰 흐름을 일구어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엔돌핀 때문에 일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일을 '부여잡는' 것이라면, 그래도 과연 여기 제시된 처방이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결과'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우석훈의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개미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조금 늦게 떨어지기 위해 일 벌레가 되는 수밖에... 0.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There will be blood] 2008 공포영화가 따로 없더라.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현신. 그 자신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와 눈물이 넘쳐나는구나. 황량한 사막, 그 사막의 가시나무 같은 주인공, 황혼이 지나버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유정.... 뭐 하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게 없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0. Neil Gaiman [American Gods] William Morrow 2001 있는 그대로 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old gods 들이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발악하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옛것에 대한 고답적 향수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들조차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오늘날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읽힐 수도 있겠다. 아무도 숭배해주는 이 없는 Jinn 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 우는 장면은 정말 대책 없다... 이 사회,전통적인 신들은 더이상 필요 없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 이제 TV의 신, net의 신, mobile 의 신 등이 예전의 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old gods vs. new gods 사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 (물론 그 뒤에는 또다른 음모가 있긴 했지만...) 참으로 슬프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없다. 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 등의 신화적 아이콘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물론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배경 지식이 충분했더라면 백배는 더 즐겼을 것 같다. --------------------------------------------- 토욜 저녁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당분간 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무언가를 보고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메말라 버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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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지난 1년여 간, 여러 샘들과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선생님께서 추천사도 써주셨어요 .

뿌듯합니다 (^^)

 

근데 책 값이 좀 비쌉니다.

제발 소프트커버로 해서 책 가격을 낮춰달라는 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려 22000원의 양장본으로 제작한 출판사의 소신... ㅜ.ㅜ

대학 구내 서점에서는 16000원의 '학생판'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 아닌 사람은 어쩌라구... )

 

옮긴이의 말과 목차는 아래에 소개합니다. 

많이들 읽고 '공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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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
(부제) 생산의 지점 (원제: The Point of Production )

*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 김명희·김용규·김인아·김현주·이화평·임준·정최경희·주영수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008-03-15 발행 / 신국판 / 양장 / 272면 / 22,000원
* ISBN 978-89-460-5018-1 93510
* 분야 : 경제학, 사회복지학, 보건의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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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자들은 2006년 말부터 ‘취약 노동자를 위한 건강증진사업 개발’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왔다. 연구사업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오늘날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거시적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국내외 서적은 매우 드물었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0년 전, 미국에서였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그에 대한 논의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유효했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한편으로 신기해했고, 한편으로 절망했다. 일부 내용들은 ‘미국’이라고 쓰인 주어나 목적어를 ‘한국’으로 바꾼다 해도 한국 독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지적(知的) 경험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우리가 발 딛은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출판된 소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전문서적은 특정한 유해물질이나 유해환경, 이에 대한 의학적·공학적·행정적 해결방안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명료하고 구체적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살과 피를 가진, 노동의 피로와 보람에 울고 웃는 ‘인간’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을 생겨나게 만든, 혹은 그러한 유해요인의 예방과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현재의 안전보건, 산재보상 제도가 진화하는 데 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 전문가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다룬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레벤스타인, 우딩 교수의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정리해낼 만큼 학문적 내공을 아직 쌓지 못했다면, 번역 작업이 우리에게나 독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지만, 번역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 사회적 맥락에 대해 지식이 충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용어와 개념이 가진 정치성·역사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인 ‘occupational health’조차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다루는 이 학문 분야는 ‘산업의학’ 혹은 ‘산업보건’이라 불려왔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학 전문의’ 등의 명칭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일군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그동안 의식적으로 ‘산업’보건 대신 ‘노동’보건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고, 노동자건강 문제를 ‘산업’에 부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쓸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산업보건’과 전복적 의의를 가진 ‘노동보건’……. 논란 끝에 우리는 싱겁게도(!) 원문 표현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그대로 ‘직업안전보건’이라고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산업’도 ‘노동’도 아닌 중립적인 이 용어조차 ‘산업보건/의학’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는 낯설다. 직업안전보건법, 직업안전공단……. 우리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한국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얼마나 자본 편향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용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산재보험’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원문은 ‘worker’s compensation’, 직역하자면 ‘노동자 보상’이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노동자 보상’이적절한 표현이지만 이 용어를 썼을 때 이를 기존의 ‘산재보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우려되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소한 표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개념의 혼란을 피하고자 할 수 없이 기존의 ‘산재보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채택했다. 근로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되찾아온 것처럼, 이들 용어 또한 현실의 투쟁 속에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840년대에 출판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그려진 영국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전태일 평전" 속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다시 2000년대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여공’들의 외침이,1990년대 전화교환원, 그리고 2007년 대형할인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유해요인의 종류와 숫자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하고(그것이 물건이든, 서비스이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기술의 도입과 활용, 산재보상제도의 탄생과 발전, 규제와 규제 기구의 진화, 이 모든 것은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수반하는) 정치적 과정이고,이는 작업장 유해인자의 분포, 그것들의 관리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장의 개별 위험요인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요인의 분포와 관리방식을 결정하는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주체·권력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다.


우리는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별 사업장으로 국한되거나 기술자·전문가들에 의해 전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기업의 책임성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기업(집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법과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동자 건강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듯,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과 너무비슷해서 놀랍고 우울하다고 썼다. 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도 생명은 지속되는 법이다. 자본이 세계화된다면 노동도 세계화되고, 착취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투쟁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의 역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 또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이 책이 깊은 통찰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역자들 스스로 내공 부족을 탓하며 대안으로서 번역을 선택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유사하다 해도, 한국 사회 고유의 맥락과 역사성에서 유래한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각 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한국적 정황이나 사례를 옮긴이의 보론으로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실천적인 논쟁과 모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자들이 노동자 건강 문제의 역사성·정치성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미시적 해결책들과 결합할 수 있는 거시적 이론·정책을 논의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이 번역서는 나무들의 희생을 넘어서는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오역과 비문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역자들의 책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2008. 2. 옮긴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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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서론

1. 생산의 지점|2. 노동환경의 정치경제|3. 결론

 

제2장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1. 노동환경의 이론|2. 질환과 손상의 생산|3. 직업성 질환의 인식|4. 질환과 손상의 관리|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사회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제3장 기술과 노동환경

1. 기술이란 무엇인가|2. 관점 1: 기술 결정론|3. 관점 2: 정치성과 권력으로서의 기술|4. 기술적 선택|5. 기술과 노동자|6. 세계 경제시대의 노동과 기술|7. 적은 시간, 많은 일|8. 결론|옮긴이 보론_기술과 노동환경: 한국의 현실

 

제4장 노동환경의 사회적·정치적 맥락

1. 이념|2. 경영이론과 작업 구조|3. 권력의 분포|4. 인종주의의 영향|5. 성차별주의의 영향|6. 직업보건의 미시 맥락: 노동자-경영진의 관계|7. 조직된 노동|8. 결론|옮긴이 보론_21세기 한국의 작업장

 

제5장 규제의 정치성

1. 노동환경과 규제의 정치성|2. 1980년대의 사회적 규제: 직업안전보건청의 붕괴|3. 1990년대의 직업안전보건청|4. 정치적 함의|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의 규제완화

 

제6장 산재보상의 정치성

1. 산재보상제도|2. 역사적 동맹: 꾀병 환자, 악덕 변호사, 돌팔이 의사|3. 희생자의 조직화|4.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산재보험의 현황과 과제

 

제7장 직업보건과학의 정치성

1. 직업보건 전문가의 사회적 위치|2. 전문주의의 정치성과 국가|3. 구좌파와 신좌파|4. 새로운 전문가|5. 학술 연구와 사기업 부문|6. 연구 계약|7. 학술 자문위원회|8. 직업보건 연구에서 노동자 권리 |옮긴이 보론_한국 노동안전보건에서 전문가의 역할

 

제8장 노동,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

1. 자본주의의 승리|2. 기본으로 돌아가자: 생산과 고통|3. 민주주의가 답인가?|4.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적 건강을 위한 운동의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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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원고

드디어 오늘은 쫑 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어 수가 너무 많아서 브레이크... 상한선이 8천 단어라 별 신경 안 쓰고 썼는데, 체크해보니 1만 단어를 가뿐히 넘겨주셨구나. 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썼냐.. 남의 글 같으면 싹둑싹둑 잘라서 편집하겠건만, 내 글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구나... 아우... 정말 지겹다. 이 논문이 제발 내일 아침에는 내 손을 떠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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