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하루 세 번 양치질?

행인님 블로그에 들렀다가 퍼왔다. 촌스러우면서 귀여운디... 근데 재밌기보다,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ㅡ.ㅡ 그래도, 브라질 PT 보다는 낫다. 그 양반들 당 번호가 13번인데, 여기는 만들어지면 고유번호를 부여받도록 되어 있어 앞으로도 대대 손손 13번이다. 국민 대다수 카톨릭인 국가에서 ....ㅡ.ㅡ 2004년도에 분당한 PSOL 은 무려 당 번호 50번.......... 여기 블로그에 들르시는 지인들... 하루 세 번 양치질할 때마다 13번 기억해주13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자본주의 키워드 - 공포

지난 토욜 오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의 키워드는 불안과 공포, 고착화, 분리,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월소득 5백만원에 자산이 10억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명백히 '부유층'에, 그것도 상위 몇 %에 들어갈 부유층이다. 사회학 전공 교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한 이 통큰 답변의 근원은, 불안과 공포라 할 수 있다. 아무런 보호 수단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이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를 보여준다. 거꾸로 보자면, 이 정도가 안 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삶은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지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금욜 저녁 자리에서, 건강보험의 공공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하긴 네이버에 올라온 글 중에는 대운하 건설과 건강보험 민영화 중 그래도 뭘 고를래? 하는 질문이 있단다 (ㅡ.ㅡ).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혜택도 적은 의료보험 차라리 없애고 민영으로 하지... 이랬던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절대로 이런 소리 안 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것 또한, 삶의 일상적 공포 때문 아닌가 싶다. 최근 읽은 책들과 영화 또한 이런 진실을 무지막지하게(ㅜ.ㅜ) 상기시킨다.


0. 우석훈, 박권일 지음.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경제학 분야에서 코호트분석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도 상당히 대중적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의 암울한 삶에 대한 연민의 한숨과, 다행히도(!) 나는 비껴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외/학원과 교복 없는 중고시절을 보냈고, 연합고사, 학력고사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나기는 했지만 최소한 본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여지는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중학생인 정이나 담이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다른 이의 비극적 미래를 엿보는 예언자가 슬픈 것처럼 말이다. 이 속 깊은 장난꾸러기 여자애들은 결코 사회가 미리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울타리는, 부모의 가방끈 길이와 지갑의 두께로 넘는 것이지, 아이들의 품성이나 재능,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다. 책은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비문이 넘쳐났고 중언부언인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적 비약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나(ㅜ.ㅜ) 저자들의 빛나는 문제의식 덕에 그냥 덮어주기로 했다. 0. 강수돌 저, [일중독 벗어나기] 메이데이 2007 어째 이렇게 재미없게 썼는지... ㅜ.ㅜ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그대로 제본해서 책으로 낸 것 같다. 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편집자의 문제 아닐까 싶네... 이 책은, 일중독에 대한 임상적/사회학적 진단에서부터 원인,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까지 다방면에 걸쳐 제시하고 있으나 다소 미시적인 접근에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들의 변화가 모여서 큰 흐름을 일구어내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엔돌핀 때문에 일 중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일을 '부여잡는' 것이라면, 그래도 과연 여기 제시된 처방이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기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결과'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우석훈의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개미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개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조금 늦게 떨어지기 위해 일 벌레가 되는 수밖에... 0.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There will be blood] 2008 공포영화가 따로 없더라.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현신. 그 자신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피와 눈물이 넘쳐나는구나. 황량한 사막, 그 사막의 가시나무 같은 주인공, 황혼이 지나버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유정.... 뭐 하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게 없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0. Neil Gaiman [American Gods] William Morrow 2001 있는 그대로 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old gods 들이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발악하는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옛것에 대한 고답적 향수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들조차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오늘날 자본주의 물신사회의 거대한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읽힐 수도 있겠다. 아무도 숭배해주는 이 없는 Jinn 이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 우는 장면은 정말 대책 없다... 이 사회,전통적인 신들은 더이상 필요 없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 이제 TV의 신, net의 신, mobile 의 신 등이 예전의 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old gods vs. new gods 사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 (물론 그 뒤에는 또다른 음모가 있긴 했지만...) 참으로 슬프고도 발칙한 상상력이 아닐 수없다. 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랍 등의 신화적 아이콘이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물론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배경 지식이 충분했더라면 백배는 더 즐겼을 것 같다. --------------------------------------------- 토욜 저녁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당분간 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무언가를 보고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메말라 버린 거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책 소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지난 1년여 간, 여러 샘들과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선생님께서 추천사도 써주셨어요 .

뿌듯합니다 (^^)

 

근데 책 값이 좀 비쌉니다.

제발 소프트커버로 해서 책 가격을 낮춰달라는 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무려 22000원의 양장본으로 제작한 출판사의 소신... ㅜ.ㅜ

대학 구내 서점에서는 16000원의 '학생판'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 아닌 사람은 어쩌라구... )

 

옮긴이의 말과 목차는 아래에 소개합니다. 

많이들 읽고 '공부'해 주세요...

 

--------------------------------------------------------------------------

 

[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
(부제) 생산의 지점 (원제: The Point of Production )

*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 김명희·김용규·김인아·김현주·이화평·임준·정최경희·주영수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008-03-15 발행 / 신국판 / 양장 / 272면 / 22,000원
* ISBN 978-89-460-5018-1 93510
* 분야 : 경제학, 사회복지학, 보건의료학

 

---------------------------------------------------------------------------

 


 
 

 



우리 역자들은 2006년 말부터 ‘취약 노동자를 위한 건강증진사업 개발’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왔다. 연구사업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오늘날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거시적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함께 읽고 토론할 만한 국내외 서적은 매우 드물었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0년 전, 미국에서였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그에 대한 논의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유효했다.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한편으로 신기해했고, 한편으로 절망했다. 일부 내용들은 ‘미국’이라고 쓰인 주어나 목적어를 ‘한국’으로 바꾼다 해도 한국 독자들이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지적(知的) 경험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우리가 발 딛은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출판된 소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전문서적은 특정한 유해물질이나 유해환경, 이에 대한 의학적·공학적·행정적 해결방안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명료하고 구체적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살과 피를 가진, 노동의 피로와 보람에 울고 웃는 ‘인간’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을 생겨나게 만든, 혹은 그러한 유해요인의 예방과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현재의 안전보건, 산재보상 제도가 진화하는 데 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 전문가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다룬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레벤스타인, 우딩 교수의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정리해낼 만큼 학문적 내공을 아직 쌓지 못했다면, 번역 작업이 우리에게나 독자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지만, 번역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 사회적 맥락에 대해 지식이 충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용어와 개념이 가진 정치성·역사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인 ‘occupational health’조차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다루는 이 학문 분야는 ‘산업의학’ 혹은 ‘산업보건’이라 불려왔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학 전문의’ 등의 명칭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일군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그동안 의식적으로 ‘산업’보건 대신 ‘노동’보건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고, 노동자건강 문제를 ‘산업’에 부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쓸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산업보건’과 전복적 의의를 가진 ‘노동보건’……. 논란 끝에 우리는 싱겁게도(!) 원문 표현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그대로 ‘직업안전보건’이라고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산업’도 ‘노동’도 아닌 중립적인 이 용어조차 ‘산업보건/의학’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는 낯설다. 직업안전보건법, 직업안전공단……. 우리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한국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얼마나 자본 편향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용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산재보험’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영어원문은 ‘worker’s compensation’, 직역하자면 ‘노동자 보상’이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노동자 보상’이적절한 표현이지만 이 용어를 썼을 때 이를 기존의 ‘산재보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우려되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소한 표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개념의 혼란을 피하고자 할 수 없이 기존의 ‘산재보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채택했다. 근로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되찾아온 것처럼, 이들 용어 또한 현실의 투쟁 속에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840년대에 출판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그려진 영국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전태일 평전" 속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다시 2000년대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여공’들의 외침이,1990년대 전화교환원, 그리고 2007년 대형할인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르고 유해요인의 종류와 숫자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하고(그것이 물건이든, 서비스이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기술의 도입과 활용, 산재보상제도의 탄생과 발전, 규제와 규제 기구의 진화, 이 모든 것은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수반하는) 정치적 과정이고,이는 작업장 유해인자의 분포, 그것들의 관리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작업장의 개별 위험요인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요인의 분포와 관리방식을 결정하는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주체·권력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다.


우리는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개별 사업장으로 국한되거나 기술자·전문가들에 의해 전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기업의 책임성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기업(집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법과 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동자 건강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듯,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과 너무비슷해서 놀랍고 우울하다고 썼다. 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도 생명은 지속되는 법이다. 자본이 세계화된다면 노동도 세계화되고, 착취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투쟁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의 역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 또한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이 책이 깊은 통찰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역자들 스스로 내공 부족을 탓하며 대안으로서 번역을 선택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유사하다 해도, 한국 사회 고유의 맥락과 역사성에서 유래한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각 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한국적 정황이나 사례를 옮긴이의 보론으로 간략하게 덧붙였다. 이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실천적인 논쟁과 모색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자들이 노동자 건강 문제의 역사성·정치성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미시적 해결책들과 결합할 수 있는 거시적 이론·정책을 논의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이 번역서는 나무들의 희생을 넘어서는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오역과 비문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역자들의 책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2008. 2. 옮긴이 일동

 

 

--------------------------------------------------------------------

 

차례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서론

1. 생산의 지점|2. 노동환경의 정치경제|3. 결론

 

제2장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1. 노동환경의 이론|2. 질환과 손상의 생산|3. 직업성 질환의 인식|4. 질환과 손상의 관리|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사회 노동환경의 정치경제

 

제3장 기술과 노동환경

1. 기술이란 무엇인가|2. 관점 1: 기술 결정론|3. 관점 2: 정치성과 권력으로서의 기술|4. 기술적 선택|5. 기술과 노동자|6. 세계 경제시대의 노동과 기술|7. 적은 시간, 많은 일|8. 결론|옮긴이 보론_기술과 노동환경: 한국의 현실

 

제4장 노동환경의 사회적·정치적 맥락

1. 이념|2. 경영이론과 작업 구조|3. 권력의 분포|4. 인종주의의 영향|5. 성차별주의의 영향|6. 직업보건의 미시 맥락: 노동자-경영진의 관계|7. 조직된 노동|8. 결론|옮긴이 보론_21세기 한국의 작업장

 

제5장 규제의 정치성

1. 노동환경과 규제의 정치성|2. 1980년대의 사회적 규제: 직업안전보건청의 붕괴|3. 1990년대의 직업안전보건청|4. 정치적 함의|5.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의 규제완화

 

제6장 산재보상의 정치성

1. 산재보상제도|2. 역사적 동맹: 꾀병 환자, 악덕 변호사, 돌팔이 의사|3. 희생자의 조직화|4. 결론|옮긴이 보론_한국 산재보험의 현황과 과제

 

제7장 직업보건과학의 정치성

1. 직업보건 전문가의 사회적 위치|2. 전문주의의 정치성과 국가|3. 구좌파와 신좌파|4. 새로운 전문가|5. 학술 연구와 사기업 부문|6. 연구 계약|7. 학술 자문위원회|8. 직업보건 연구에서 노동자 권리 |옮긴이 보론_한국 노동안전보건에서 전문가의 역할

 

제8장 노동,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

1. 자본주의의 승리|2. 기본으로 돌아가자: 생산과 고통|3. 민주주의가 답인가?|4.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적 건강을 위한 운동의 촉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끝나지 않는 원고

드디어 오늘은 쫑 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어 수가 너무 많아서 브레이크... 상한선이 8천 단어라 별 신경 안 쓰고 썼는데, 체크해보니 1만 단어를 가뿐히 넘겨주셨구나. 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썼냐.. 남의 글 같으면 싹둑싹둑 잘라서 편집하겠건만, 내 글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구나... 아우... 정말 지겹다. 이 논문이 제발 내일 아침에는 내 손을 떠날 수 있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진보신당] 단상

드디어, 오늘 창당대회가 있었다. 지난 주 내내 출장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아 가볼 수가 없었다. 중간에 잠깐 인터넷 생중계를 틀었더니 마침 변영주 감독이 홍보대사라며 김부선, 진중권씨를 소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안티가 젤 많은 사람들이라고 ㅎㅎㅎ 지난 몇 달 - 특히 대선 이후 두 달 동안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고 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바빠서 두 가지만 적는다. 0. 운동과 진보는 소위'운동권'의 훈장 혹은 전유물인가? 인터넷 공간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하는 소리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지만, 진보신당의 전략 비례대표 명부에 대한 일부(?)의 악성댓글은 참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특정 후보를 호불호할 수는 있다. (명망가 중심, 당 외부인사에 치중되었다는 비판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소위 운동권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자들의 어줍잖은 '운동경력' 비판이다. 특히 홍보대사로 위촉된 영화배우 김부선 씨나 비례후보로 추천된 피우진 중령에 대한 비판이 그렇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진보/정치에 대해 이들이 뭘 알겠냐는 식의 댓글들 말이다. 운동이 뭐고 진보가 뭔가? 내가 팔로군 사령관 주덕을 존경하게 된 것은, 그가 혁명의식이 투철하거나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바) 서민적인 풍모 때문이 아니다. 30대 중반까지 그저 그런, 그 시대의 또다른 군벌세력의 한 명이었다가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긴 정말 힘들다. 그것도 사회에서 개인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개인에서 사회로 나아가기란.... 그런데, (스스로 운동권임을 강하게 어필하는) 이 키보드 워리어들은 자신의 사적 경험으로부터 사회에 눈을 뜨고 뒤늦게 사회를 바꾸는 대열에 참여하겠다는 이 훌륭한 사람들에게 왜 그리 족보를, 사상검증을 요구하는가?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정파도, 잘난 운동 경력도 없는 이 분들이 당 활동에서 소외되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2004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투표에서 나는 단병호, 심상정에게 표를 던졌다. 안정된 공직을 벗어버리고 양심선언을 했던, 그리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이문옥 선생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었다. 순진하게도, 남들이 찍을 줄 알았었다. 허나 개표 결과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당시 이문옥 후보는 이주희 후보의 다음인 10번을 배정받았던 것이다. 총선이 있던 날, 일부 언론들은 드디어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하느냐 마느냐 하며 이주희의 당선 가능성을 선정적으로 보도했지만, 나는 8번 노회찬후보에서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고 염불(ㅜ.ㅜ)을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소수 키보드 워리어들 뿐 아니라, 이 바닥에는 전력/경력에 대한 숭배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듯 싶다. 하긴, 학생운동 2-3년 한 거 가지고, 2-30년씩 우려먹는 사람들도 널렸는데, 꾸준히 운동을 해온게 왜 존경할만하고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겠나!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은 다양하고, 운동의 방식도 다양하다.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어 광장으로 뛰어나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족보 확인과 사상검증이 아니라 따뜻한 동지애와 격려, 가슴으로 하는 연대가 아닌가 싶다.


0. 긴 호흡, 장기적 낙관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좌파들, 특히 초기 신당파들에게는 진보신당의 모습이 매우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다. 물론 나도 탈당하고 얼마동안 신당 가입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는 했다.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민주노동당에서 문제되었던 패권주의와 평당원 민주주의의 실종이 여기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인거 같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당이 명망가 중심의 선거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도 높은 비중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저기 안 갈래', 혹은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 안쓰겠다', 심지어 '실망해서 탈당하겠다'는 때이른 결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정당에 필요한 것은 더많은 비판과 동반된 더많은 참여가 아닐까 싶다. 팔장 끼고 관전하면서, '어디 잘 하나 보자, 잘 하면 내가 들어가주마'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당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건 분명하다. 또한 현실 속에서 (주변과 동떨어진) 이상향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또한 관념론적 편향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레빈스 교수가 했던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며, 우리 삶을 이에 따라 미리 형상화하려고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으로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공산당 활동을 하는 건 좋은데 ‘공산당’과 ‘공산주의 사회’를 절대 혼동하지 마라. 만일 당이 공산주의적 삶을 보장해준다면, 굳이 혁명이 필요 없을 거다. 이미 자본주의 안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니겠냐! " (실망스럽거나 혹은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고, 우리 운동의 수준인 걸 어쩌겠나? 민주주의가, 정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닐진데, 우리가 죽는 날까지 남한사회의 문제점을 모조리 극복한 완벽한 정당 혹은 정치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무조건 악화일로만 걷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도 조금씩 세상은 나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50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얻기도 하고 (이게 뭐 진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좌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이슈로 분화되기도 하고, 또 성소수자가 백주대낮(^^)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기도 하고... 좀 천천히,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근거없는 장기적 낙관주의자라고 비판하더라만... ㅡ.ㅡ)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저께, 대전에서 곧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바다소녀의 경고에 서둘러 심야영화를 보았음. 야간 대학원 강의하고 오밤중에 영화보는 건 쉬운 일이 아녀... ㅜ.ㅜ 코앤 형제... 역시 역시 역시.... 관객들이 (아니면 내가) 그닥 주인공스럽지도 않은 르웰린에게 이입하는 이유는, 그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고, 그래서 결국 이 모든 사단이 벌어졌기 때문... 간절히 물을 원하던, 사막 한 가운데 총상을 입은 멕시코 마약 딜러... 어찌 보면 아무 상관 없는 그의 모습 때문에 잠을 뒤척이다 결국 그 곳으로 물 한 통 받아들고 돌아갔다는 사실... 그 한 조각, 겨우 한 조각 양심이 저런 파국을 초래하는구나.... FBI 도 울고갈 과학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냉혹한 킬러 안톤쉬거의 모습보다 무서웠던 것은, 르웰린과 쉬거가 총상을 가리기 위해 셔츠를 사들였던 아이들의 대화... 아이들... 정말 피도 눈물도... 톰으로 분한 토미 리 존스는 세상이 너무나 변했음을, 너무도 삭막하게 변했음을 한탄하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지만, 이렇게 변한 사회가 노인에게만 힘든 건 아니다. 적막하고 황량한, 막 나가는 그 텍사스 사막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펼쳐져 있다. 안톤 쉬거의 엽기적 행각은 일가족 몰살이나 어린이 토막살해를 자행하는 한국사회보다 특별히 더 잔인하거나 황당하지 않다.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학생을 보지 못했다는 당국자의 말은 과연 쉬거의 행동보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보고 나오는데 정말 무서워 죽겠더라. 이 세상이... * IMDB 에서 배우 프로필 찾아보고 깜놀! 안톤 쉬거 역의 배우... 너무 멀쩡하게 생긴 거야... 그 단발머리, 그 기묘한 표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더라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배고파 졸려...

저녁에 회의 끝나고 샤브샤브 칼국수(?) 먹었는데... 먹을 때는 맛났으나, 아까 컨퍼런스 콜 하면서 무진장 떠들어댔더니 배 다 꺼졌다. 풀을 많이 먹었더니 그런가... ㅡ.ㅡ 지금, 딱히 먹을 게 없어서 맥주를 마셨더니 (배고파서 맥주 먹는다!!!) 졸려 죽겠다. 지금 자면 안 돼. 내일 오전까지 진도보고서 보내야돼... 포스팅해도 잠은 달아나지 않는구나... 저깟 맥주 한 캔에 왜 이리 잠이 오는거냐... 무엇보다... 배는 여전히 고파... 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시승기

이 나이가 되도록 운전면허가 없으면 특별한 신념 때문에 (이를테면 생태주의) 그리 된 줄 짐작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무면허 성인들은 '그냥' 면허를 못 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간에는 운전이라는 피로까지 감당하기 싫어서 일부러 취득을 안 하는 분도 있다만, 이런 분들은 주변에 항시 기사노릇할 누군가가 있다는 점에서 전자와는 좀 다르다 할 수 있다. 드디어, 장양이 면허를 취득하고 지지난 주 떡하니 새 차를 끌고 나타나셨다. 크고 선명한 화면과 아름답고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네비게이터는 기사님의 관심을 조금도 얻지 못했다. 그분은 아주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운전을 수행하셨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비가 3백미터 전방 우회전이라고 열번을 이야기하고, 화면에 대문짝만한 화살표가 나타나도 승객들이 화들짝 놀라 '아냐... 여기서 우회전!!!'이라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기사님은 항상 곧은 마음으로 직진만 하시고는 했다. 그럴 거면 저 비싼거 뭐하러 붙여놨냐는 나의 힐난에 그분은 대답하셨다. "속도 위반 하게 될까봐, 그거 들으려구" (ㅡ.ㅡ) 속도 위반 좀 해봤으면 좋겠구나 친구야.... 더구나, 우리 승객들에게 부당한 칭찬을 너무 강요했다. "생각보다 잘 하지 않냐? 잘한다고 칭찬 좀 해봐" 그래서, 그 때부터 제대로 할 때마다 '참 잘했어요' 별을 한개씩 주었다. 좌회전 한 번 하면, 참 잘했어요. 유턴하면 참 잘했어요. 차선 바꾸면 참 잘했어요......... 별 열개 모으면 선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강릉 테라로사 까페 데려가서 커피 한 잔 ㅎㅎ), 자칫하다가는 클나겠다 싶어서, 승객들끼리 잠시 대책회의를 했다. 그래서 원칙을 좀 바꿨다. 별 열개 모으면 '큰 별' 한개, 큰 별 열개 모아야 선물~~ 음하하.... 기사님은 승객들의 발표에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발광 했지만.. 어쩌랴... 핸들에서 손가락 하나 뗄 수도, 고개를 잠시 옆으로 돌릴 수도 없는 "생"초보인 것을 ㅎㅎ 그래도 밥 먹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엄마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거에 '큰별 두개'를 주겠다고 했더니만 좋아라 한다... 운전에 너무 집중해서 뇌의 일부가 비어버렸나봐 ㅎㅎ 헤어지고 나서 승객 장양이 전화했다. "너 큰 별 너무 남발했어. 어쩌려구 그래?" 나는 답했다 "아냐, 이제 당분간 안 만나면 돼. 다 까먹을 거야 걱정마" 우리는 이 애틋한 우정을 저 멀리 금문교 너머에 살고 계신 주먹도끼에게 전달해주기로 했다. 도끼야... 잘 읽었냐? 상황파악 다 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지난 주 한겨레 21기사들

지난 주 한겨레 21 (제 700호)에 실린 글들 중 눈길이 가는 부분... 0. 연재 [소설 읽는 여자] 중... " 오늘은 누군가의 험담을 푸짐하게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번역으로만 먹고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기 때문에 번역가 중에는 투잡족이 꽤 많은데, 이들 중에서 편집자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이들은 ‘일부’ 대학교수다. 사실 이분들은 번역을 본업으로 여기는 분들이 아니며, 세간의 짐작과 달리 번역의 성실성이 가장 떨어진다. 제자들에게 번역을 찢어 맡기거나, 문장 토씨 하나도 손대지 못하게 하거나, 일정을 몇 년씩 미루는 일이 보통이다. 프로필을 으리으리하게 꾸미는 데 치중하며, 편집자를 조교처럼 부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몇 년 간 번역을 안 주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연구실적에 보태야 한다며 한 달 만에 책을 내달라고 주문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날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게 특징인 이런 ‘교수 번역 프로젝트’들 중에서 위의 특징을 한두 가지쯤 안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책을 담당하게 된 편집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


0. 시평에 해당하는 [노땡큐] 중 (이번 주는 홍기빈 선생이 썼다) "... 이 ‘떴다방 내각’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세인의 질타가 높다. 응당한 일이다. 하지만 모럴리스트가 아닌 필자는 좀 다른 각도에서 걱정이 된다. 첫째, 앞으로 국정 전반을 책임질 이 ‘떴다방’ 출신 인사들의 고민과 실력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5년간 부동산 시장이 큰 널뛰기를 겪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와중에 이렇게 성공적인 자산 보유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정보 수집과 몸소 발품 파는 현지답사가 필수였을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 이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한 고민과 연구와 조사를 과연 얼마나 축적했을까. 실제로 이들의 경력과 업적을 둘러보면 혁신적 내용을 담은 이론 및 실천의 흔적은 고사하고 그 흔한 ‘전문성’조차 의심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사퇴한 남주홍 교수의 경우 지난 10년간 학술진흥재단 등재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었다고 한다. 둘째, 이들이 청문회 과정에서 줄줄이 뱉어놓은 엽기적 발언들로 볼 때 ‘사회적 백치’임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원래 ‘백치’(idiot)란 지능지수를 문제 삼는 용어가 아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안에서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고통과 고민이 무엇인지라는 공적인 고민을 일체 끊어버리고 자기 이익만을 좇아서 사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아예 소통이 되지 않고 사오정 노릇이나 하게 되는 이들을 일컫는 고대 그리스 말에서 온 용어이다. ‘자연을 사랑하여 땅을 샀다’든가 ‘친환경적 주거를 찾아 여의도를 버리고 송파구의 아파트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든가 하는 파격적인 발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체의 관심과 토론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스스로를 오로지 자기 이익이라는 토굴 속에 가둬 용맹정진했던 이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법문인 것이다. 이러한 절정의 선승(禪僧)들이 신개발 지역의 부동산이 아닌 민주 정부의 각료 자리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어질거린다. ..." 0. [카스트로 물러난 쿠바를 가다] - 하영식 전문위원 (http://h21.hani.co.kr/section-021005000/2008/03/021005000200803060700049.html) 접근이 피상적이라 다소 실망한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코난, 비폭력대화, 오락(?) 영화

흥미롭게 빠져들었던 책인데, 기록 안 해두면 또 까먹는다.

 

0. 강양구 저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프레시안 2007

 

 

예전에 강릉 출장 다녀오던 날, 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리고 커피가 맛나던 그 다방에 앉아 다 읽어치운 책. 고종석 류의 감칠맛 나는 문장이야 없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정확하고 쉬운 표현으로 전달해낸 점을 높이 평가.

 

목가적 낭만주의로 경도되지 않으면서, 문제 혹은 해결책이 가진 맥락과 그로부터 비롯된 가능성들을 꼼꼼하게 짚어주었다고 생각됨. 이를테면 바이오 연료 문제 - 브라질 출장 갔을 때 매연 하나 없는 에탄올 차량과 사탕수수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 사탕수수 밭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가리고 온 도시에 화산재처럼 내리던) 시커먼 연기와 잿가루, 그리고 식량 문제.. 설명하기 쉽지 않았던 이 복잡성을 쉽고도 조리있게 풀어내고 있음. 

 

무엇보다 장점은 책이 가볍고 한 손에 꼭 들어온다는 점 (저자가 들으면 기분나쁘겠다 ㅡ.ㅡ  이걸 칭찬이라고....)

놀라웠던 점은, 이제 중 3에 올라가는 연정이가 이 제목을 보고 '코난? 명탐정 코난?' 하길래, 내가 '아니, 미래소년 코난!' 했더니 못 알아듣더라는... ㅡ.ㅡ

어떻게 우리의 미래소년 코난을 모를 수 있어? 왕 섭섭했음.

 



0. 마셜 로젠버그 저,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 대화] 바오 2003

 

 

"장난하나? 좀 재수로세!"로 시작했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호기심과 반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작은 열망을 느낄 수 있었음.

 

물론 비폭력 대화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 

현실의 인식과 소통 방법을 바꾸는 것이 현실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닌 바, 개인들 사이의 깊은 연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는 있겠으나 자칫 '일체 유심조요~'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 + 비폭력대화를 지속하려는 노력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  또다른 '감정노동'의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

 

우쨌든, 나처럼 문제해결 지향적 대화가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이들은 깊이 되새겨볼만한 책이로다. 안부 전화한 이들한테 '근데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어?"라고 묻는 건 이제 좀 그만 하자... ㅡ.ㅡ 

 

0.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2007

 

 

제목을 어째 저렇게.. 그냥 '고아원'하면 될 것을... ㅜ.ㅜ

아 씨,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지지난 주에 연정이 데리고 갔다가 둘이 후덜덜...

뻔히 짐작가는 내용인데 왜 그리 오싹오싹하던지...

어쨌든 상당히 짜임새도 있고, 나름 울컥하는 감동도 있음.

가족과 함께(?) 볼만한 영화.... 참, 영화 보는 내내 만화 [몬스터]가 떠올랐음.

 

0. 덕 라이먼 감독 [점퍼] 2008

 

 

지난 일욜에 건물 공사 때문에 정전된다고 해서 나갔다가 본 영화.

이 영화 보면서 진짜 심각하게 '자원의 낭비적 활용'에 대해 고민했음.

하다못해 권선징악의 수사학이나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로지 개인의 욕구만을 위해 초능력이 쓰이고 (어쩌면 현실적!) 그걸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물량을 동원한 세계 곳곳에서의 촬영....

주인공 애들 즐기는 통에, 무고한 시민들 죽고 자동차 뻥뻥 날아다니고 문화재는 막 파괴되고....  아무리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라는 것이 즐기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렇게 아무런 이유없이 돈 쓰는 영화는 보다보다 첨 봤음. ㅡ.ㅡ 

그래서 더욱 헷갈림.  먼지만큼의 감동이라도 주고,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이라도 이야기했다면 마음이 덜 불편했을까???  우쨌든 영화를 보고 '죄책감'이 드는 건 예상치 못했었음. 

 

참,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그나마 스타워즈 때보다 연기력이 아주 쪼금 나아졌더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