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가을 산행

무슨 근거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전 인근의 '대둔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 중 무려 6위에 랭크되어 있는 나름 유명한 산이다. 경관이 수려함은 물론이거니와 고공철교와 아찔한 철계단이 짜릿함을 자아낸다고 하여 꼭 한번 가봐야지 했던 산이다. 그런데,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일단 대전동부터미널에서 하루에 버스가 무려 단 한 번!!! 이게 말이 되나 모르겠다 ㅡ.ㅡ 서부 터미널도 하루에 달랑 세 번... 도대체 맞출 수가 없다 어제, 동부터미널 갔다가 미어터지는 버스에 경악하여 포기했다. 이미 좌석이 만원인 상태에서, 엠티가는 대학생 한팀이 꾸역꾸역... 기사 아저씨 내공이 대단하셨음... 기네스북 인간 많이 태우기 부문 출전자 아닐까 싶었더랬다. 그 버스 타고 차마 한 시간 못 가겠더라 ㅜ.ㅜ 그리하여, 코스 급변경... 터미널에서 젤 가까운 계족산에 갔다. 국립공원은 커녕, 도립공원, 시립공원도 아니고, 대덕구에서 관리하는 뒷산이다 ㅎㅎ 그냥 조금 긴 약수터 코스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무려(?) 해발 420미터에 이르는 '계족산성'에 오르고 나니, 저 멀리 햇빛 속으로 금강이 아스라이 사라져가고, 아기자기한 단풍들이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동네 약수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운동기구 (^^)와 벤치들이 쪼금 웃기기는 했지만, 저수지(?) 잉어들과 수면으로 쏟아지는 단풍의 눈보라가 나름 운치... 저 험한 고비를 꼭 넘어야겠다, 늦기 전에 어서 내려가야겠다, 이런 부담 없이 슬슬 돌아다니니까 참 좋기는 하더라... ㅎㅎ 밀린 일들이 산더미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그만큼은 항상 밀려있으니, 그거 다 마치고 어딘가 길을 떠난다는 것은 영영 떠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 이런 작은 행복을 유예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시간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두고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남의 나라 대선

rabbit님의 [] 에 관련된 글.

부시가 두번째로 당선될 때, 이 인간들 머리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나 싶었다. 또라이 집단 아닌가 싶기도 했다. 최소한 이제 그런 비난은 못하게 되었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미국 정치에서 '개혁적으로 보이는' 대통령 1인이 무언가 큰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에 대한 적극적 제스쳐로 보아 기존의 팔레스타인 정책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어제의 선거결과를 폄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즘 잠들기 전 Du Bois 의 평전을 한 쪽씩 읽고 있다. 첫 장에, 1963년, 워싱턴 광장에 집결한 끝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위 군중들 앞에서, 행사 진행자가 Du Bois 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때, 그 광장에 모였던 이들, 아직 살아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다. * 사족 다른 국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자국의 배타적 이익 추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대다수 자국민의 삶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느 나라의 경우에 비하면 그것마저도 부러울 지경이다. 스스로 오바마와 닮았다니, 도대체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발가락이 닮았다???) 미국인들 또라이라고 흉보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일석사조!

오늘 볼일이 있어 모처럼 모교에 들렀다. 업무를 보고, 내친 김에 2년 반을 꾸준히도 미뤄오던 이비인후과 방문을 했다. 원래는 중이염 수술 후, 6개월 쯤 있다가 검진을 한 번 했어야 하는데 미국에 있느라 그것도 못하고 다녀와서도 어영부영.... 이비인후과 전임의를 하고 있는 서클 후배 L이 성심성의껏 귀를 파줬다. 귓밥이 한무더기 ㅎㅎㅎㅎㅎㅎㅎ 내가 면봉으로는 감히 꺼낼 수도 없었던 3년 묵은 딱지들도 깔끔히 처리해줬다. 선배가 자원방래했다고 다른 아이(?)들한테도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중간에 다른 후배한테 확인 전화가 왔는데... 이 인간이 대답하길, "야, 나 ### 누나 귀 파는 중이야. 응.. 그리로 와" 마치 금광을 캐듯 어찌나 열심히 파는지, 조금 아프긴 했지만 참아줬다. 그는 내가 궁금해할까봐 내 귓속에 있던 존재들을 모아 보여주기까지 했다 ㅎㅎ 덕분에 귀가 뻥 뚤린 느낌이다. 뭐 이명은 여전하다만... 다행이 수술 후 상태는 아주 좋은 편이란다... 3년 묵은 걱정 해결!!! 로비의 찻집에서 오랜만에 동기, 후배들과 쥬스 한 잔씩 했다. 두런두런 사람들 안부를 나누다가,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성수노동자 건강센터 월세 후원금을 걷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MS 약정서 한장씩 나눠주니 다들 순순히 쓴다 ㅎㅎㅎ 거의 오토매틱.... (어제 대전 출장왔던 K 도 약정서 하나 쓰고 올라갔다.) 어쨌든, 다들 전임의 신분이라 월급이 많지 않아 소액 후원을 하기로 했다. 벌이가 나아지면 증액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볼 일이다! 상담 프로그램에도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후원이나 무료 검진 지원 부탁할 때마다 발벗고 도와주는 이 '평범한' 의사들을 보면, 사람들이 이런 최소한의 배려와 성의만 가지고 살아도 세상이 참 좋아질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업무도 처리하고, 숙원사업인 귀파기도 해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도 본데다 심지어 돈까지 걷어왔으니, 정말 알찬 하루가 아닌가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끝나지 않은 가을

이라고 제목은 썼으나 웬지 훌쩍 끝나버린 이 느낌은 뭐냐??? 모름지기, 단풍과, 책과, 따뜻한 차가 함께 해야 할 계절이나 그렇게 하지 못한채,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가고 있다. 요즘 포스팅이 뜸한지라 통 근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몇몇 지인의 컴플레인을 접수하여 오랜만에 몇 자 적는다. 빅 브라더 빅 시스터들 ㅡ.ㅡ 포스팅이 뜸했던 건,바쁘기도 했지만, 국제정세부터 시작하여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말문이 턱 막힐만한일들이 끊이지 않아,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문을 닫고 살다보니,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ventilation 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블로그라는 반쯤 공개된 공간에 뭔가를 풀어놓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심오한 메타포를 통해 역경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으면야 좋겠으나, 그건 뭐 미션 임파서블.... 서론이 길었다. 책 이야기다. #0.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 2008

 

 

우선 저자의 놀랄만한 성실함과 열정에 일단 대찬사 한번 보내드리고...짝짝짝!!! 예전에 프레시안에 기사 연재할 때도 흥미롭게 읽었더랬다. 책은 다소 딱딱했던 신문기사에 비해 훨씬 재미있고 쉽게 쓰여있었다. 나는 부동산 4계급이다. 조금만 마련하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ㅎㅎㅎ 대안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대한민국 국민 치고 부동산, 교육 문제에 한 마디 거들지 못할 사람 없겠으나 (실제로는 줄기세포에서 세계 경제위기까지 ㅡ.ㅡ) 불평하고 '싹 다 갈아엎어야 돼' 하기는 쉬어도 이렇게 세심하게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 대안 자체도 래디컬하다고 비판받을 소지는 차고 넘친다. 점진적 토지 국유화라니...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가정해보자. 손낙구 씨가 한반도를 쩍 갈라 물길을 파자고 이야기하고, 리만브라더스가 토지 국유화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다시, 전자는 허무맹랑한 뻥이 되고, 후자는 화들짝 놀랍긴 하지만 임박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현실성"이란 그런 것이다. 아, 이제 답은 알겠는데..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팀이 준비하고 있는 의료사유화 관련 책 준비에 참고하라며 후마니타스 대표님이 친히 하사하신 은전이다. 주신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직 우리 원고 마감을 못 시켜, 책상 위의 이 책을 볼 때마다 심한 죄책감... ㅡ.ㅡ)


#0.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해냄 2007

전편 [눈먼 자들의 도시]가 좋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은디, 나는 눈뜬 자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전작에서, 모두가 눈먼 그 시간과 그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 인간에 대한 공포 등이 매우 흥미롭기는 했으나, 주인공(?)인 의사 부인의 영웅적 풍모, 혹은 성녀의 이미지가 좀 '전형적'인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훨씬 경쾌하고 훨씬 풍자적이다. 그리고 대놓고 정치적이다. 옮긴 이는 이 소설의 결말이 상당히 비극적인 것처럼 평가했는데, 글쎄올시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이토록 발랄하고 완강한 저항이 있으니, 몇몇 등장인물이 비극적 말로를 상황 전체에 대한 비관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할배 어쩜 이리 젊은 감각을... 하면서 놀라고는 했다. 중간에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었다. "...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몇 달 전에 세미나했던 책 (Cultures consequences)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기에는 급진적이었던 학자들이 나이가 들면, 보수로 회귀하고 마치 그것을 당연한 사회화/성숙 과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건 Power Distance 가 높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권력에 닿기를 애타게 소망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지, 당연하거나 보편적 현상은 아니라는... 그런 면에서, 나이 90을 바라보는 할배의 이런 날카로운 지적은 멋지삼!!! #0.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2

허접한 감성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J 샘의 추천으로 읽게 된 [Status Anxiety]를 통해 작가의 마력(?)을 뒤늦게 깨닫고 읽게 된 책이다. ".. 또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정말, 이렇게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몇달 몇 년을 꿈꾸다 실행에 옮기는 여행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가판대에서 집어올린 잡지의 표지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자신도 예상치 못한 거대스케일의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는... 나 같은 경우는, 일명 앙코르와트 사건과 울릉도 사건이 대표주자 되시겠다 ㅎㅎ "...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이백 퍼센트 동감...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연연해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 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차와 승객 드문 시외버스를 선호... ".. 훔볼트의 흥분은 세상을 향해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해준다.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파리를 보았을 때 약이 올라 파리채를 휘두를 수도 있고 산을 달려 내려가 [식물지리론]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 ㅎㅎㅎ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게 바로 내가 늘상 목말라하는 호연지기... 문제는 약효 지속기간이 너무 짧다는... 알랭의 눈을 통해 보들레르를 다르게 보게 되었고 (예전에는 자기애 환자 취급 ㅎㅎ), 에드워드 호퍼의 강박과 플로베르의 세상에 대한 '짜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 첫 장에,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을 보고 얼마나 세상에 시달렸으면..하고 연민을 가졌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했던 듯... 그리고 러스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똑같은 이유로, 러스킨은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들어있지만 끄집어내어 표현하지 못했던 조각들을 이렇게 쏙쏙 와닿는 말글로 대신 적어주다니... 이래서 작가가 필요하다... #0. 스타니스와프 렘[솔라리스] 오멜라스 2008

영화가 원작 소설을 그대로 그려내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영화가 쫌 심하게 왜곡.... 소더버그 영화야 워낙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영미 작가들과는 또다른 기묘한 분위기, 의식과 인식에 대한 도저한 질문들이 정말 읽는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책이다.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자꾸 몰아넣어 마치 스스로 켈빈이 되어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은 동화 현상....ㅡ.ㅡ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보면, 2차원의 인식틀이 3차원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점이 XY 평면 떠나 Z축으로 이동하는 순간, 2차원자의 눈에서, 인식 세계에서 그 점은 '사라지는' 것이다. 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고, 우리에게 관찰되는 현상은 '사라짐'인 것이다. 전혀 다른 인식의 틀과 방법을 가진 존재들이 조우했을 때, 과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해는 고사하고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비단, 이는 외계행성 솔라리스와 지구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지구별 (별? 은 아니지) 작은 한국사회에서도 도대체 불가해한 이 상황들을 보면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생활 예술?

며칠 전에 미국에 계신 '나무와 숲'님한테 내년도 달력을 선물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구입한 거라고 친히(!) 소포로 보내주셨다. 아마도 우편요금이 달력값 두 배는 들었을 것으로 짐작... 샘.. 쌩유 ~~~ ------------------------------------------------------------------- 고마운 맘을 전달하고자 아직 3달 (겨우 세달 남았다!!!) 남은 달력을 미리 걸고 설정 삼아 사진을 한장 찍어보았다. 그리고, 찍는 김에... 사망을 목전에 둔 내 디카로 집안에 있는 다른 작품(?)들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생각이 들어, 나름 이것저것 찍어보았다. 조명도 그렇고 배치도 그렇고... 별다른 설정 없이 그냥 대충 찍었다. 귀/찮/아/서/ * 먼저 방문에 걸어본 프리다 칼로 달력이다. 보풀이 신년 연하장과 함께 보내주었던 프리다 칼로 마우스패드까지... 어쩌다보니 한 셋트가 되었다 ㅎㅎㅎ 프리다의 포스가 하도 엄청나서 눈마주치면 깜딱 놀랄 지경...


* 왼쪽의 '생각하는 고양이'는 아바나의 골목 갤러리에서 사온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사진상 잘 안보이지만) 모래를 뿌려 만든 멕시코 전통 문양으로 내평생 본 박물관 중 쵝/오/라 할 수 있었던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서 구입한 것이다. 액자는 동네 마트에서 5천원 주고 산 것. 배경에 좀더 질감 있는 종이를 깔았으면 좋았을 걸, 우글쭈글하다... ㅎㅎ * 집들이 때 선물받은 스탠드와 벽시계... 마티스 그림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데다, 바늘도 아주 유려하게 움직이는 첨단 멋쟁이 시계...조명도 의자 색깔이랑 어울려 은근 멋지다... (저 아래 지저분한 식탁 풍경이 안 나와 정말 다행) * 작년엔가... 서울 역사 박물관 앞에서 친구들 만났다가 충동적으로 (?) 관람하고 구내매점에서 구입한 엽서. 춤추는 모습과 색감이 진정 예술이다!! 근데 옆에 굴러다니는 CD case 의 노라 존스 모습은 어째 호러...ㅡ.ㅡ * 역시 집들이 때 선물받은 앤틱 스타일의 하얀색 협탁과, 검은 색/노란 조명이 인상적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6월에 시카고 학회 갔다가 아트 인스티튜트 들러 구입한 미니도판... 의자와 액자, 은근 부조화 속에서 공허함이 극대화된다고나 할까... 후진 후방 조명 때문에 사진찍는 모습이 그대로 다 비쳤다... 저건 뭐냐.... * 작년 브라질 출장 갔을 때 시장에서 구입한 목각 패널, 오스트리아 벨데베레 미술관에서 샀던 에곤 쉴러의 '소녀와 죽음' 엽서.. 그 옆에는 역시 집들이 선물로 받은 지구본이다. 어두워지면 야광으로 별자리가 나타난다. 울 엄마는 저 목각의 할매/할배가 왜 담배를 꼬나물고 있냐고 싫어하신다 ㅎㅎ * 나름 탄생 별자리인 '게자리'를 형상화한 퍼즐이다. 울 오빠가 '저 여자는 왜 먹을 거 위에 올라앉아 있냐?"고 해서 모든 이들을 홀딱 깨게 만들었던 문제작... 아름다운 꿈을 꾸겠노라 침대 발치에 걸어두었지만, 여전히 갈락틱 스페타클 어드벤처... * 쿠바에서 친구가 된 오리엘비스가 한국에 오면서 선물로 가져온 영화 포스터.. Julia 의 설명에 의하면 저 영화 '저개발의 추억'이 엄청난 수작이란다... 꼭 봐야 한다는데 아직 기회가 없네... 그나저나 이 양반들한테 연락한다는게 벌써 몇 달이 지났네... * 집들이 선물로 JK가 건내준 선물이다.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사온 것이라는데, 평소 그녀의 귀차니스트 행보를 볼 때, 저걸 들고 대전까지 왔다는 것은 가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화장실 맞은 편 벽에 걸어두었는데, 볼일 보고 나올 때마다 깜딱깜딱 놀란다... ㅎㅎ * 액자는 많은데, 전세 집 벽에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딱히 장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저 멋진 그리스 조각 엽서는 세탁기 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나란히 놓인 세제들의 모습이 참... 남자 머리채를 잡고 있는 여신의 모습과 세탁기가 어째 묘하게 어울린다는??? * 시계 선물에 딸려온 부록이다. 곧, 저런 황량한 날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음은 저렇다... 배경으로 꽂혀 있는 Du Bois 의 평전... 결심한지 2년이 넘도록 표지 한 장 넘겨보지 못했구나..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걸까? * 미국을 떠날 대 SY 와 JY 이 선물해준 것이다. 셔틀버스에 내려 걷곤 했던, John's gate 모습이다. 과연 저 시절이 내 인생에 존재했기나 한 건지 요즘 의심스럽다... 어쨌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 포르투갈의 세라믹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올해 초 리스본에 출장갔을 때 샀는데, 행운을 상징하는 수탉이 아침마다 나의 상쾌한 하루를 열어주길 바라며 방문에 걸었으나 효과는 없다. 나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건지, 자도자도 졸립기만... 원... 하나하나 돌아보니 이런저런 사연들과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동안 잃어버린 많은 엽서와 그림과 포스터들... 그들과 함께 내 삶의 일부도 사라진 것이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안개

무언가와 마주치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자동재생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용하게 비내리는 오후에는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가 자동재생되고 '별'을 보면 한 때 남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단체가 자동연상되는 등...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기형도의 '안개'가 떠오른다. 양념처럼 무진기행도 ... 아침 알람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항상 밤에 숨겨두고 잔다 ㅎㅎㅎㅎ) 문득 밖을 내다보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그 황망한 와중에 기형도의 시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알람을 찾아 품에 안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 눈 뜨니 해가 쨍쨍..... ㅡ.ㅡ -------------------------------------------------------------- 안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그 분이 부르신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오고야 말았다. 무려 새벽 여섯 시에 전화를 해서 multinomial regression을 물어보는 기인 덕분에, 모처럼 여유있게(?) 아침을 시작한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저 하늘 색, 저 구름, 그리고 약간은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바람.... 바야흐로... 그 계절이 된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wandering spirit, 바로 그 분 말이다... 꼭 바쁜 시절에 맞춰 강림하신다는 그 분... 허나.. 감히 거역할 수 있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스코틀랜드 방문기

학회 전에 사흘 동안은 에딘버러와 인버네스-하이랜드 구경을 했다. 여름 휴가를 이걸로 보낸 셈이다... 생전에 두 번 다시 못 갈 것 같은 곳을 의외로 두 번 이상 가고 있다. ㅡ.ㅡ 쿠바도 그렇게 브라질도 그렇고... 2002년도인가... 영국 에섹스에서 열렸던 통계워크샵 기간 중 주말에 잠깐 에딘버러 구경간 적이 있었다. 한창 에딘버러 축제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는데, 아.. 축제기간에 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했더랬다. 이번에... 바로 그 축제기간이었다 ㅎㅎ 에딘버러 성 쪽으로 가는 길 맥주 양조장의 대형 광고판... 처음에는 Assembly 라고 되어 있어서 시의회인 줄 착각했음 ㅎㅎ 에딘버러 성에서 바라본 Calton Hill의 모습... Hill 에 직접 올라가서 바라본 모습...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 축제 중이라 여기저기 작은 공연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찌그러진 솥뚜껑으로 리듬이 아닌, 멜로디를 연주하는게 진짜 신기했는데 차마 나서기 어려운 몸매로 Scotland 민속의상인 Kilt 입어주신 관람객의 센스와 용기(!)에 우리 깜놀! 꼬불꼬불 골목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기차타고 하이랜드로 올라가는 길... 날씨가 정말 예술이었음... 푸른 초원과 양떼, 소떼... 광우병 사태 터지고 나서 이렇게 예전 방식의 방목으로 돌아온 거란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British Beef'라고 자랑스럽게 써 있다. 월래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얼굴 까만 양들 원없이 봤다. 인버네스 기차역... Ness River 가 흐르는 숙소 앞길.... 그 한적함이라니... 세번째 사진은 밤의 모습... 예전에 에딘버러 구경갔을 때 소원 중 하나가 Loch Ness에 가보는 거였는데, 이번에 다녀왔다. 인버네스에서 버스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경치가 정말 예술인데다, 크기도 장난이 아니라서 정말 괴물 나온다 해도 믿겠더라 ㅎㅎ 근데 카메라 앵글에 도저히 담아지지가 않음. 이건 파노라마 샷으로 찍어야 하는디... 방문자 센터 선물가게에서 파는 '네스호의 괴물' 모형... 나름 귀여워서 작은 사이즈로 하나 샀다. 여행의 대미는 Skye 섬이었다. 인버네스에서도 기차타고 두어시간, 거기다 버스까지 더 타야 했다. 사진은 섬 입구 터미널에 있는 '역전 식당' ㅎㅎㅎ 말하자면 시골밥상이 나왔는데 아주 푸짐하게 맛나게 먹었더랬다. 섬을 찾아가는 여정과 섬의 경관은 말 그대로 beyond description!!! 그 황량함과 고적함은 가히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 한 달만 살면, 문학작품이 절로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호연지기 60갑자 상승, 아니면 치명적 우울증... 그런데... 역시, 미천한 디카로는 그 아우라의 흔저조차 담기가 어렵구나... 그냥 허접한 산골마을 풍경처럼 나왔다... ㅜ.ㅜ 벌써 이 곳에 다녀온 것이 백만년 전 일인 것 같지만, TV 위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Ness 호의 괴물과 지금 옆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따뜻한 British Tea를 보니, 현실감이 급습...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학회 참가 후기

지난 8월 말에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럽 자살 및 자살행동학회'에 다녀왔다. 자살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햇수로 이제 만 3년째... 혼자 자료 분석만 하다보니, 도대체 전체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더랬다. (소위 mega theory 추종자로서, 전모를 파악해야 속이 시원 ㅡ.ㅡ;;) 학회 프로그램이 다소 미심쩍은데다 (지나치게 임상심리학적 접근처럼 보였음), 지난 6월에도 북미 역학회에 다녀왔고 산적한 일 만빵에... 갈까말까 잠시 고민도 했으나 첫 해외학회 갈생각에 한껏 들떠있는 연구원 샘을 보니 차마 포기하겠다는 말이 안 나왔음 ㅡ.ㅡ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매우 유익한 학회였다고 생각... 역학적 연구설계 부분은 다소 취약해보였지만 생물학적 요인부터 문화적 요인, 임상심리학적 접근과 자살 수단 차단, 자월활동 조직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폭넓게 들을 수 있었음. 참고할만한 문헌들도 많이 파악하고.... 근데 학회가 참 훈훈하더라... 뭐랄까... 엄청난 시련과 자기결정의 시험대 앞에 섰던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들을 떠나보내거나 혹은 붙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포스랄까? 역학회와는 다르게,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 심포지엄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학회원 - 임상의사이자 시인 겸 가수로, 연구자로 엄청 열성적인 활동을 벌여왔고 이번 학회에도 초록을 8개나 냈다던데 -을 위한 추도행사를 하는 거 보고 쫌 놀랐다. 그리고 발표 연제들도, 양적/질적 연구 결과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경험이나 앞으로의 실천 계획 등도 상당히 발표되었다. 그 중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웹 기반 상담프로그램 사례 발표도 있었는데, 이는 글래스고 지역의 위기센터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가 함께 작업해온 것이었다. 발표도, 개발자, 청각 장애인 활동가, 전체 프로그램 매니저가 함께 나와서 했다. 수화통역자도 세 명이 분주하게 그 장애인 활동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또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청각 장애인들이 적막감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하소연할 곳 없음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짠했다. (내 개인적 경험과도 닿아 있기 때문... 오른쪽 귀의 병변이 그리 심하게 진행된 줄 모르고 있던 어느날, 왼쪽 귀를 베개에 대고 누웠는데 갑자기 세상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정말...소스라치게 놀랐었다. 그 적막과 고립이란...) 사진의 발표자는 청각장애인 활동가, 청중석의 첫번째 등 보이는 여인네가 수화통역자 우리 포스터 - 글씨가 너무 많아서 걱정했는데 우리보다 심한 것도 꽤 있더라 ㅎㅎ 중간 비는 세션에 잠깐 구경나간 시내에 있는 최고/최대 헌책방 Caledonian... 구석구석 넓은 데다 헌책방'답게' 꼬불꼬불 2층과 지하실까지, 아주 그윽했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끼리 창문 아래 한줌 해나는 곳에 피어오르는 먼지와 함께 수다떨고 계심.. 거의 영화세트장 같은 분위기였음. 여기서 Joe Haldeman 의 forever 연작(?) 마지막인 forever freedom 샀음. 기대해도 될까? 학회가 토요일 오후에야 끝났고 우리는 시내 관광 차 Necropolis 를 방문했다. 자살 학회 끝에 네크로폴리스라니.... ㅡ.ㅡ 마음이 완전 신산.... 생전의 지위를 나타내는 저 높다랗고 화려한 비석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엊그제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새삼 또 관심이 집중되는 데다, 사실은 어제가 WHO 가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기도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살은 이렇다. 사람이 마음대로 세상에 태어날 자유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상을 떠날 자유는 있다. 그래서 자살이 부도덕하다거나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이러한 존재론적 자기 결정이 그 무엇에 의해 떠밀려진 것이라면, 그것이 스스로의 결정인 것 같지만 그저 사회적 힘의 발현일 뿐이라면, 그래서 사회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자기결정의 시험대가 주어진다면 그러한 죽음과 그것을 가져온 질서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것이 지독한 외로움, 혹은 거절당한 손길을 감당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 자기 포기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든 결과의 비가역성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없는 충동의 결과라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개인들의 자기 결정은 존중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의 급속한 자살률 증가로 나타날 때, 사회는, 혹은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복잡하게 얽힌, 그리고 근원이 불분명한 매듭을 잘 보이게 드러내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거 같다. 연구자로서, 고르디우스처럼 단칼에 쳐서 매듭을 풀어버릴 수야 없지 않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진보신당 보건의료 당원(우) 모임 후기

지난 주말에 부산에 다녀왔다. 역사적인(?) 진보신당 보건의료 당원(우)워크샵 참석차... 민주노동당을 포함 지난 10년 동안 많이 바뀌기는 한 것 같다. 처음, 국민승리 21이라는 형태로 시작했을 때 보건 분야 공약은 진짜 극소수가 모여서 뚝딱(!)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2002년 대선 때는 그보다 쪼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서 역시 뚝딱 ㅎㅎㅎ 2004년 원내 진출 이후에는 나름 공식적인 전문가 '모임'이 결성되었고 (진보정치 연구소가 승인해준 적은 없지만 자칭 산하라고 표명했던 연구회 성격의 유령단체 ㅎㅎ) 당에는 정책 역량들이 늘어나면서 무상의료 로드맵 등을 비롯하여 의제들이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연구회'는 당이 가져가야 할 보건의료 체계의 장기적인 의제들을 고민하기도 했고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조정의 역할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연구회'는 이름 그대로 연구 모임이었고, 대학에 적을 둔 전문가 중심의 정책 공급자 모형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이번 모임은 진일보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전공을 가진 30여명 이상의 보건의료인이 진보정당에서의 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모인 것은 아마도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사람들의 문제 의식은 깊고 넓었다. 그간의 활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있었고, 향후 다양한 활동 '방식'과 '내용'에 대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시민단체'가 아닌 '정당' 활동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들이 오갔고, '보건의료인'이 아닌 당원/활동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반성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세월이 허투루만 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서로에게 조금은 감동한 듯 싶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니... 마음이 쪼금 든든해졌다.


심대표 강의 중 Y 샘의 모습을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어찌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의 표정으로 듣는지... 구한말에 고종이 전화하면 신하들이 전화기에 대고 절했다던 이야기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 뿐이랴. 심대표 강의 끝나고 질문 없냐는 말에 P 샘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일순 긴장했다. 앗, 저 까칠한 양반이 과연? 비행기 시간 늦는다고 보좌관이 안절부절하던데, 또 한판 논쟁이 벌어지겠군.... 근데... '심대표님, 이야기 정말 잘 들었고 제 생각과 너무 비슷하네요.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는게 아닌가... 질문도 아니고, 저런 찬사를 보내려고 손까지 들었단 말야??? 이후 휴식 시간에 P 샘은 온갖 비난과 야유를 들어야만 했다. 당신이 그런 모습 보일 줄은 몰랐다고 ㅎㅎㅎ 내 발표가 늦어지는 바람에 심대표가 문밖에서 한참이나 기다렸다던데,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ㅎㅎ 참, 부산 당원들이 뽀너스로 제공해주신 회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전어는 가히 예술...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산역까지 오는 길에 아주 진기한 이야기들도 들었다. 같은 학번, 같은 나이를 가진 두 여인네가 남들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든 화재'들'과 수재'들'의 경험담을 아주 구수하게 풀어놓더라는 ㅡ.ㅡ 듣는 사람들 다 쓰러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