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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Sometimes, I wonder if I suffer from dissociative disorder. It's not a surprising experience for me to watch myself from somewhere outside, as if I look at someone else. Rationality seems to over-grow within me, but frequently fails to work 'appropriately' for the given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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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_03

* 박물관 단상 추가... 처음 대영박물관에 갔을 때, 그 엄청난 전시물에 허거덕했더랬다. 도대체 저렇게 다 뜯어오고 나면 원래 장소에는 뭐가 남아있기나 한 걸까 걱정이 마구 들었던 것이다. 이런 황당함과 걱정은 나중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베를린의 페라가몬을 방문했을 때도 반복되었다. 징하게도 뜯어왔구나.... ㅜ.ㅜ 하지만, 몇 년 전 멕시코시티의 고고학 박물관에 가보고 '오리지널'의 힘을 실감했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전시물들, 그리고 박물관의 엄청난 규모와 세심한 고려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런데... 여기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보고 나서는, 위험하게도... 이럴 거면 차라리...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워낙 지금의 공간이 협소하여 조만간 새 박물관을 지어 옮길 예정이라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 소중한 자산이 자기네들 것만은 아닐진데 어쩜 그리도 허술하게 관리하는데다 설명은 그리도 부실한지... 조상 덕에 날로 먹으면서 이 인간들 너무한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깃발 든 단체 관광객은 한/중/일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유럽 관광객들이 깃발 아래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도 좀 신기하기는 했다. 어쨌든, 각국에서 온 깃발 관광단에 떠밀려 다니느라 우리같은 독립여행자들은 많이 힘들었다. ㅜ.ㅜ #4. 기자의 피라미드 피라미드 하면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세계 7대 불가사의와 고대문명 신비론 ㅎㅎㅎ

한 때 내가 열광했던 그레이엄 핸콕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인류 문명이 기원전 3천년 전이 아닌, 1만 2천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읽다보면 외계인 문명 전파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야기는 자가증식하여 마침내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라는 상상도 못할 조합의 영화가 나타나기도 했으니, 고대 문명의 신비에 호기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기는 한 것 같다. (영화가 아주 후지지는 않았다. 프레데터 은근 멋지게 나옴 ㅎㅎ)

서론이 길었다....


최수철은 그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도 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동하는 길에 기자의 피라미드를 지나쳐 본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가슴아프게 써놓았다. 작가의 감수성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우리도 조금 놀라기는 했다. 첫날 숙소 가는 길에 택시 바깔은 내다보니 떡하니 마을 뒤로 피라미드가 보이는게 아닌가.... 저게 진짜 그 피라미드??? 싱겁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ㅎㅎㅎ 어쨌든 카이로의 세 번째 날, 우리는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기자로 향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보려면 선착순 150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단체 관광객들이 표를 싹쓸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을 서야 한단다. 아침 일찍 떠나기 괴로워하는 Hamja 를 쪼아대서 일찌감치 피라미드에 도착하니 이제 겨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택시로 지나가며 볼 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니 실로 피라미드는 장대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하도 거대하고, 사막의 먼지가 자욱하여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사진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ㅡ.ㅡ 예전에는 피라미드 외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었다는데 요즘에는 금지하고 있고, 내부 공개도 훼손 방지를 위해 인원제한에 사진 촬영도 막고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것이며, 그 배열은 북극성을 향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셋 중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큰데, 내부를 둘러보려면 100 이집트 파운드, 우리돈으로 약 2만 5천원을 내야 한다. 기껏해야 1백미터 남짓이니 어렵지는 않았으나, 좁고 가파르고, 덥기까지 해서 폐소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할만 했다. 막상 그렇게 둘러본 내실에는 덩그마니 석관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각 방의 용도와 통로 설계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른단다. 좁은 통로를 지나 열린 그 높은 천장의 방, 어두운 석실의 정체는 과연 무엇??? 피라미드를 지나 정문쪽으로 다가오면 그 유명한 스핑크스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수천년 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다 발견되기를 반복했던,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오히려 직접 보니까 더 실감이 안 나더라 ㅎㅎㅎ 우리는 스핑크스 주변에 눌러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남쪽 멤피스로 이동하기 위해 Hamja 를 만나러 갔다. 약속장소인 KFC 에는, 피라미드 관광지답게, 할아버지 대신 옛 복장의 고대인이 지키고 있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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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과 우울

오후 늦게 보건의료학생캠프에 강의하러 다녀왔다. 백 명 넘게 꽉 차 있던데, 도대체 그들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엄혹한 시절이라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공포가 두렵기는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란 것은 반작용이라는 엄청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강의를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깜딱깜딱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낙관을 남에게 주입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다 ㅜ.ㅜ 단기전망과 개인사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인데 (심지어 염세적이기까지... 물론 사람들은 나의 이런 속성을 믿지 않겠지만), 이건 뭐 가식도 아니고 잘 설명이 안 되는... 그저께 노건연 운영위 끝나고 지하철 타러가는 길에 K 샘이, 자기같은 비관주의자가 이 대책없는 낙관주의자들과 함께 하려니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낙관은 전염력이 있는 것 같다. 다들, 어찌 잘 되겠거니... 덜컥 일부터 저지르고... ㅎㅎ 그에 비하면, 어제 노동패널의 관심세션들은 우울과 비관의 향연이었다. 연구결과들이 다 슬퍼... ㅜ.ㅜ 분석하고 탐구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결과 자체는 매우 비관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대로 지속할 수 없다는 반작용, 더디지만 변화해나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활동의 영역에서는 낙관이 건재할수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 정말 피곤하다. 개인사에 대해서 낙관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는 구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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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_02

정말 기나긴 이틀이었다.... 진이 다 빠져버렸네.... 너무 피곤하니까 잠이 안 온다... 원고는 도저히 못 쓰겠고, 여행기나 틈틈이... #3. 카이로 - 혼돈과 먼지의 기억 아침을 호텔에서 해결하고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싸들고, 시내로 나갔다. 어제 저녁 호텔 안내에 물어보니 지하철 타고 도저히 못 간다고 해서 택시를 불렀는데, 막상 가보니까 그닥 못갈만한 상황도 아니더만... ㅡ.ㅡ 지하철은 러프가이드가 칭찬한 대로, 꽤 괜찮았다. 물론 차 안에 그려진 노선, 바깥 안내도가 가끔 일치하지 않는다는 소소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 가격도 엄청 저렴해서 카이로 시내에서 이동할 때에는 강추할만하다. 아래 사진은 지하철 승강장 모습...


카이로 시내의 인상은 그야말로 혼돈과 먼지로 요약될 수 있다. 예전에 라틴 아메리카 공해 3종세트 (멕시코시티, 상파울루, 아바나)와 멕시코시티의 무법천지 자동차행렬에 깜딱 놀란 적이 있었지만, 카이로 앞에서는 한낱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생산연도가 궁금한 푸조 택시에서부터, 최신형 렉서스에 이르기까지 차들이 완전 다양했는데 특히나 택시들은, 과감한 깻잎 운전을 위해 사이드미러를 아예 뜯어버린 차들이 적지 않았다. (차간 간격이 깻잎이라는 건 절대 과장 아님 ㅜ.ㅜ) 항상 뿌연 공기는 그러지 않아도 항상 더러운 내 안경의 성능을 자꾸만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안 써본 황사마스크를 그리워했더랬다. 실제로, 이집트에 머무는 내내 쿠피에 (아랍식 두건? 스카프)를 뒤집어 쓰고 다닌 건, 우리의 미모(!)를 치한들로부터 감추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바로 이 먼지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물론, 아침저녁 찬바람을 막을 수 있다는 엄청난 기능도 가지고 있다 ㅎㅎ) 우리는 시내 거리를 살짝 돌아본 후 서둘러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후에 모든 관광지에서 절감한 것이지만, 이 나라는 '안내판'에 참으로 인색하다. 사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할 때에도, 도대체 입국심사를 어디서 하는지, 작성할 서류가 있는지 없는지 가르쳐주질 않아 대강 눈치로 해결했는데, 가장 크다는 박물관에도 역시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다. 실컷 줄 서서 표사고, 또 줄서서 검색대 통과해 들어가려니 카메라 바깥에 맡기고 오란다. 그럼 전시물에는 뭐가 잘 표시되어 있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대개는 아무 것도(!) 안 써 있다. 제목만 달랑 써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중에 피라미드에서는 입구 표시도 안 되어 있었음 ㅎㅎㅎ) 물론, 오디오가이드가 있기는 한데, 번호와 내용의 불일치가 있다는 러프가이드의 정보에 따라 우리는 그냥 러프가이드를 들고 다니며 구경했다. 미이라며 석관이며 하도 많으니까 이건 뭐 좀 널부러져 있다는 느낌.... ㅎㅎ 투탕카멘의 관이랑 가면도 직접 보고 그 유명한 서기상이며 온갖 기이한 것들은 다 봤는데, 어찌나 사람도 많고 전시장 환경이 열악한지 (천장 유리가 다 깨졌 있음 ㅡ.ㅡ) 감상이고 뭐고 얼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보고 나와서 박물관 마당에서 도시락 까먹고 있는데, 학교에서 단체로 왔는지 초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여학생들이 떼로 몰려 다니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신기한지, 우리가 쪼그리고 앉아 빵 부스러기 주워먹는 모습을 막 사진을 찍고... ㅜ.ㅜ 얘네들 도망다니느라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는 지하철 타고 Khan el-Khalili 시장에 갔다. 나중에 다른 도시까지 전부 둘러보고 실감한 건데, 이 시장이 말하자면 한국의 남대문 같은... 가장 싸고 규모도 크면서 중앙 역할을 하는 그런 곳이었다. 가는 길은 물론 쉽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 30분을 걸어야 했는데... 관광객은 하나도 안 보이고 현지 주민들이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이는 데다, 길은 너무 좁았다. 이슬람 지구 중심과 연결되다보니, 카이로 시내와 다르게 '부르카'를 쓴 여자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다행히 지하철에서 친절한 아자씨를 만나 시장을 찾는 데는 성공했다. 시장은 하도 북새통에, 호객행위가 엄청나서 사진이고 뭐고 찍을 겨를이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 파피루스를 몇 장 사기는 했다. 나름 질도 괜찮은 듯... 아래 사진은 시장 출입구에서 바라본 이슬람 사원.... 카이로에 머무는 동안 한번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상 그리 못했다. 좀 아쉬움... 아마도 최근의 트렌드인것 같은데, 한국사회에서 교회 십자가에 빨간 네온을 다는 것처럼, 모스크에 형형색색의 네온 사인 장식이 넘쳐나고 있었다. 어째 영 안 어울리더라는... ㅡ.ㅡ 오후 늦게, 택시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올드 카이로 구역의 'coptic museum'에 들렀다. 최수철의 책과 러프가이드가 강추한 곳이다. 참, 가는 길에 또 귀인을 만난 것이... J가 지하철 티켓을 잃어버렸는데, 웬 현지 아자씨 한 분이 자기 걸로 체크해줘서 내릴 수 있었다 ㅎㅎ 우리는 친절을 부르는 얼굴을 가졌더란 말인가!!! 아님 동정심 유발 외모??? 러프 가이드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모두 사막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자연의 시련과 인간의 왜소함... 절대자의 권능에 기댈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곧 종교의 탄생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흔히 이슬람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집트는 콥트 기독교가 꽤나 번성한 곳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박물관 전시물은 꽤나 충실했고, 또 무엇보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무척 맘에 들었다. 섬이랄까??? 바깥은 난리가 났는데, 그 안에서는 완전한 평화... 건물 자체가 전시물을 위해 설계된 듯했고, 첨에는 작은 듯 보였지만 규모 자체도 상당했다. 당최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내부 사진은 하나도 없고, 바깥에 성벽 유적과 박물관 모습 일부.... 정말 긴 하루를 마치고, 박물관 앞에서 간단한 저녁과 차를 마신 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드디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기자의 피라미드와 사카라, 멤피스를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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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묵은 독서일기에 이집트 여행기 포스팅까지... 이렇게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그야말로 몸부림이다... 내일 회의가 세 건에 (준비........ ㅜ.ㅜ) 모레 노동패널 학술대회 발표 (발표 자료...... ㅜ.ㅜ) 그 담날 보건의료학생캠프, 그리고 주말에 예방의학회/지역사회간호학회 발표용 원고 두 개 + CBPR 영어 원고 한 개 마감... 그 다음 주에는 업무, 발표, 활동 등등 서울 상경이 세 번... 밀린 자살 관련 논문과 사유화 책 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다. 사막의 지평선에서 건져올린 호연지기 따위는 평행우주로 실종되어 버렸어... Por favor, Ayud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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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_01

2007년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2008년의 일출을 이집트에서 맞겠다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나름 시련에 해당하는) 여러 건들의 사건이 있어서 유야무야되었더랬다. 2008년에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웠다. 2009년의 일출은 반드시... 역시 2008년 막바지에도 그 전해와 상당히 유사한 조건에 처해졌으나, 어쨌든 떠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를 걸고, 이 여행을 또다시 유예하지 않았던 것은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 0. 왜 떠나는가 알 수 없다. 한 때는 7대 불가사의 이런 거에 심취하여 그래이험 핸콕의 [신의 지문] 같은 책도 열심히 읽었다. 물론 그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이집트에 갈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람세스 2세 류의 소설도 강원도 파견 근무 중에 재밌게는 읽었지만 본디 왕족, 궁중다툼, 정복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는지라 이것이 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사막에 대한 로망의 기원은 짐작조차 안 간다... 어쩌면 생택쥐베리의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때문???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짐작키 어려운 로망도, 자가증식하면서 필생의 꿈이 되어가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리라... 어쨌든,이번에 확인해보니 1996년(!)에 발행된 최수철의 [사막에 묻힌 태양] 앞쪽에 나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후기가 몇 자 적혀 있었다. 디테일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여행기는 우울의 정조로 점철되어 있었다. 책을 읽고나면 여행에서 돌아온 듯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몰려온달까...



하지만, 여행은 의외로 밝고 즐거웠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 작가는 왜 이렇게 멜랑콜리했을까 의문이 들만큼 '재미'가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런 일거리도 없이, 이방인이 되어 친구랑 맘대로 돌아다니고, 밤이면 쓰러져 죽은듯이 자고... 이런 생활 자체가 해방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초강력 안내자 Rough Guide가 있었다. 이것과 함께라면 진정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긋나는 일정, 돌발상황, 껄떡대는 이집트 남자들... 이런 것쯤이야 우리에게 가소로운 문제 ㅎㅎㅎ

# 1. 카이로 도착 도하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카이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와 흥정하는 것부터가 적지 않은 부담이긴 했다. 하도 어렵다고들 하니... 그래도 어설프게 배워간 '슈크란' (감사합니다) 한 마디와 막장 영어 대화(친구 JK는 아랍식 현지 영어에 유달리 강했다!!!) 로 흥정은 어찌 해결했는데, 택시가.... 시동이 안 걸린다. 다른 택시 기사 몇 명이 와서 밀고 나서야 겨우 택시는 출발했다. 가다 서버리지 않을까 의심도 들었으나, 그건 기우였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90도 정좌 자세로 문고리에 매달려있어야만 했다. 안전벨트 따위는 있지도 않았고 총알같은 속도와 깻잎 차간 간격은 어지간한 총알택시에 단련된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숙소는.... 뜻하지 아니하게 호화로운 복층형 룸이었다. 적응이 안 된 우리는 물건 찾으러, 화장실 다니러 쉴새없이 아래위를 오르락거리며 스스로 진을 다 빼버렸다. 저녁은 레바논 스타일 정식... 다음 날 시내까지 오가는 택시를 예약해두고 이른 잠을 청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니... 라고 흥분하기에는 택시에서 시달린 고통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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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들

서로 어울리지는 않으나 흥미로운 책 몇 권의 기록을 남긴다. #1.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지식하우스 2007

키득거리면서 읽되 쌉싸름한 각성을 주는 책... 이런 거 보면 진중권의 글솜씨란 참... 가볍건, 무겁건,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를 낯설게 보기로 객관화시켜 현재의 질서와 습속이 얼마나 괴이하고 폭력적인가를 드러내는 글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물론 읽는 사람이 많아야... ㅡ.ㅡ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표현들 남겨둔다 *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앨버트 허슈만은 (정념을) '이해관계'라고 답한다. 이해관계란 궁정에서는 정치적 이익을, 시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가리킨다. 여기서 모든 정념의 즉발적 표출을 단 하나의 정념, 즉 물질적 소유욕으로 억누르는 근대인의 전형이 탄생한다. 중세인이 질주하는 야생마라면, 근대인은 소유욕이라는 엔진에 계산능력이라는 핸들을 단 자동차다. 이렇게 미래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 그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부른다. * 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나, 수치심은 그것이 드러나는 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말도 못하는 아기들에게 원어민 선생 데려다가 영어를 가르치고, 이제 겨우 두세살 먹은 아기들에게 철학 수업을 받게 하는 '광기'는 공포에서 나온다. 공포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부리를 잘라내는 '잔혹극'도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techne)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메트릭(metrik)이다.


#2. Joe Haldeman [Forever Free] Millenium 1999

말하자면 Forever 시리즈 삼부작의 최종편이자, 직접적으로는 Forever War 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더만 할배께서는 이 글을 안 쓰셨어야 했다 ㅜ.ㅜ SF 소설에게 '안드로메다'로 간다는게 욕은 아닐진데, 마지막 장은 정말 이 소설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하고 있구나 하며 한숨만 푹푹 쉴 밖에... 주제 자체는 심오하다. 심지어 창조주로부터도 독립한 'forever free'라니... 하지만 이건 아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쓰지는 못하겠으나 (누가 읽기는 하려나) 그 어처구니없음이라니... 할배... 너무 섭섭하고 속상해요.... ㅜ.ㅜ #3. 스타니스와프 램 [사이버리아드] 오멜라스 2008

[솔라리스]에 완전 반했던지라, 오멜라스의 램 시리즈 1편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완전 만족!!! 일리아스의 로봇판 버전인 사이버리아드 - 호쾌한 범 우주적 스캔달과 해괴한 만담, 엽기적 행각...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인간 사회, 지식인, 지배계급에 대한 비틀리고비틀린 풍자... 엄청난 신조어와 패러디 용어가 많아서 번역이 정말 어려웠을텐데, 문맥도 살리고 글맛도 살리고, 번역자 송경아의 능력에도 새삼 감탄했다. 조카 다람쥐가 딱 좋아할만한 스토리인데, 아직 초딩 3학년이 보기에는 불가능하다는게 아쉬울 뿐... 램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는걸!!! 이 분은 어쩜 이렇게 박학다식한걸까??? #4.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술자리에서나 논하던 이야기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식인, 특히 대학생태계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가장 '핵심적' 질문을 책의 앞부분 고병권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는 (1980년대 지칭) '어느 계급 편에 설 것인가'를 물었지만, 지금은 '어느 계급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있고,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회적 상징자본을 넘어서 구체적일 물질적 부와 정치적/사회적 권력까지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직업이 교수 말고 어디 흔하겠나? 이제 그러한 물질적 토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을 결정하고 있으니, 본능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겠다. 이 책이나, 최근 읽은 다른 사회학 논문은 한결같이 대학사회의 미국 편향을 비판하고 있다. 논문은 교수사회의 내면화된 국가주의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별도의 현상이 아니며, 성찰없는 학문적 자세가 그 본질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다 친미적/시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리영희 교수도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최장집, 신광영 교수도 소위 미 주류 대학 출신이다. 문제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느냐 하는 능력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국가주의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음을 꾸준히 내면화한 범생이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미국의 과학자들, 특히 NAS에 속한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기독교 신자인 경우가 드문 것에 비해 한국의 과학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결국, 기존의 것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의심 없는, 즉 성찰없는 모범적(!) 학습행위가 이러한 문제의 근간이 아닐까? 소위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들의 문제를 달랑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단정해버리기는 뭐하지만, 달리 다른 답도 잘 모르겠다. 근데 좀 슬프지 않나? 가장 자유롭고 회의적인 이성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니... 아참, 한국 사회 지식인의 이념적 지도를 그리면서 리영희 교수를 언급한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했다'고 되뇌고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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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진보신당] 건강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건강위원회 준비 모임 교육/정책팀에서 매주 돌아가며 [주간 진보신당]에 건강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벌써 내 차례가 돌아와서 깜딱 놀랐다. 총성은 '일단' 멈췄다고 썼는데 원고 보내고 나서 이스라엘 십장생들이 또 포격하는 바람에 식겁했다. ㅜ.ㅜ http://weeklynpp.tistory.com/category/건강컬럼 이전 칼럼들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2009/01/18 제26호(090116) - 사회불평등과 건강 * 2009/01/11 제25호(090111) - 영리법인병원 도입 저지, 지역 역량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 2008/12/27 제24호(081226) - 건강보장제도와 연대적 가치 * 2008/12/21 제23호(081219) - 비정규직 차별과 건강할 권리의 박탈 --------------------------------------------------------- 제27호(090130) - 건강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건강위원회 준비 당원 모임, 노동건강연대) ‘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명성에 걸맞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믿기 어려운 소식들은 조금이라도 진정의 기미가 보이거나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묵은 과제들을 뉴스에서 쓸어버리기 십상이다.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일까?’라는 철학적 고민마저 던져주었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도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졌으니, 잠깐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도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주간의 일방적 학살이 남겨놓은 현장은 과연 우리가 지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되는 건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3주 동안 1,400여 명이 가자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5천 명이 넘는 부상자 중 약 14%가 평생 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환자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1천 8백여 명은 어린이들이다.(1) 공 습 피해 환자들 중 다수에서, 백린탄 (white phosphorus bomb)과 고밀도 비활성 금속탄 (DIME, Dense Inert Metal Explosive) 사용을 의심케 하는 특이한 화상과 사지절단 소견들이 보고되고 있다. 예컨 대, 지난 15년간 알-시파 병원의 화상센터 책임자를 맡아온 의사 아부 사반은 예전 같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작은 화상인데도 환자들이 자꾸 죽는다며 의문을 표했다. “처음에는 작은 화상처럼 보였는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화상 부위가 점점 넓고 깊어지더니, 일부 환자들이 손써볼 겨를도 없이 악화되고 말았어요.” 이 병원에서는 수술 도중 환자의 화상 부위에서 튄 잔해에 마취과 의사가 경미한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머리를 다친 세 살짜리 어린이의 또 다른 사례는 그 자체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다. “병원에 도착한지 2시간 만에 상처부위를 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기가 나더군요. 집게로 ‘촘촘한 솜’같은 물질을 끄집어내자 그것이 타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사라져버릴 때까지 계속이요.” 백린탄은 155mm 포탄에 116개의 백린 쐐기가 들어 있어, 터지면 수백 제곱미터 이상을 퍼져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공기와 닿으면 발화되어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타버린다. 피부에 닿으면 뼈까지 깊숙이 타들어갈 수 있다.(2)


한 편 알-시파 병원의 의사 소비 스카이크는 팔 다리가 절단되어 실려 온 환자들의 상처 부위에서 파편이 발견되지 않고 상처 부위가 마치 칼로 베어낸 듯 예리하다며 DIME의 피해를 강력하게 의심했다. DIME에는 텅스텐 분말이 채워져 있으며 거의 지면 - 무릎 높이에서 폭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순식간에 발생하는 강력한 폭발력 때문에 환자는 자신의 사지가 절단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절단 부위에는 엄청난 열기가 남는다. 또한 어떤 환자들은 외견 상 파편의 상흔이 보이지 않는데도 심각한 내장 파열로 출혈성 쇼크에 빠지기도 한다. 출혈의 원인을 찾아 온 뱃속을 뒤져 보면, 작은 검은색 반점들이 내장에 무수히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 미세한 텅스텐 성분은 상처부위에서 찾아내 제거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력한 발암 물질이기도 하다.(3) 신 체적 장애 뿐 아니라 정신 건강,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우려도 매우 심각하다.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어린 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정신 차려 보니 자신의 두 다리가 없어져 있는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사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파편이 경추에 박혀 평생을 사지마비로 살아야 하는 청년이 ‘그래도 저는 이스라엘을 용서할래요’라며 밝게 웃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만큼이나 평생 지속될 것이다. 다행히 폭격을 피해 살아남은 이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5천 채가 넘는 집이 파괴되었다. 가스도, 전기도, 수돗물도 없고, 하수 시설과 화장실은 난장판이며,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사체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폭격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수많은 환자로 병원이 난리통이라, 어린이들은 예방접종 기회를 놓치고 있다. 유니세프가 우려를 표하고, 세계보건기구가 ‘공중보건 위기’를 경고한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4) 하 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근의 이 ‘공공연한’ 학살 이전에도, 150만 명의 건강을 위협하는 은밀하고 치밀한 작전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인디펜던트’가 입수한 2008년 11월의 국제적십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로 만성 영양실조가 꾸준히 증가했고, 필수적인 미량 영양소 결핍증이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하마스가 정권을 잡은 2007년 6월 이래 봉쇄가 강화되면서 생활 물가는 최소 40% 이상 올랐고, 10만 6천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인구의 40%가 ‘극빈층’이 되었다. 사람들은 뭐든지 내다 팔고, 아이들의 교육비를 줄이며, 먹을거리 장만에 들어가는 돈마저 줄였다. 이미 공습 전에도 가자 지구 주민의 70%가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이나 신선한 야채, 과일 대신 값싸고 열량만 높은 곡물, 설탕, 기름으로 하루 에너지를 채우다보니, 미량이지만 필수적인 영양소, 이를테면 철분, 비타민 A와 D 결핍이 심각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5) 더 멀리, 하마스 집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5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특별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읽는 이의 눈을 의심케 만든다. 2003년 8월, 산모인 룰라 아쉬티야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나블루스 병원으로 가는 길을 막는 바람에 서안 지구 베이트 푸릭 검문소 옆, 더러운 길바닥에서 아기를 낳았다. “남들 눈에 안 띄려고 콘크리트 벽 뒤로 검문소까지 기어가,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 짐승처럼 아이를 낳았어요. 딸아이를 안아들기는 했는데,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금방 제 품에서 죽고 말았어요.” 이스라엘 병사들이 구급차를 지체시키는 바람에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바이얀 후세인 알 리의 사례는 뉴스거리도 아니었다.(6) 이스라엘이 저지른 최근의 악행은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난 전쟁 범죄일 뿐, 2007년부터의 살인적 봉쇄, 아니 1967년부터 시작된 점령 그 자체가 팔레스타인 이웃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어 왔다. 가 자 지구 알-나세르 병원의 자원활동 의사 ‘카림 호스니’는 이야기한다. “가끔씩, 내 환자들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처가 너무나 끔찍해서, 그들이 앞으로 얼마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하는지 제가 알거든요.”(7) 암도, 중풍도, 심장병도, 단 3주 만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더구나 어린이들을 죽이지는 못한다. 수 천 명을 평생 불구로 만들지도 못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거대한 감옥에 구금되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구급차가 가로막혀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현실 또한 어떠한 보건학 교과서도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건강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어 가고 있다. 이 후유증이 몇 세대에 걸쳐 상흔을 남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야기했단다. “결국 기억될 것은, 적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들의 침묵”이라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향한 진보신당 당원들의 관심과 연대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주) 1) 'I will never walk again' The Palestine Chronicle 2009.1.23 2) 'Gaza doctors struggle to treat deadly burns consistent with white phosphorus' Guardian 2009.1.20 3) 'Alarm Spreads Over Use of Lethal New Weapons' Inter Press Service 2009.1.22 4) 'Displaced families in Gaza face public health crisis' UNICEF press release 2009.1.23 5) 'Chronic malnutrition in Gaza blamed on blamed on Israel' The Independent 2008.11.15 6) Israel/Occupied Territories: Conflict, occupation and patriarchy: Women carry the burden (MDE 15/016/2005) 7) 'I will never walk again' The Palestine Chronicle 200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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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가.....

주말까지 써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 너무너무 진도가 안 나간다. 영어 때문인가 의심도 살짝 했지만, 영어고 한국어고 그냥 생각의 흐름 자체가 막힌 듯... '당신은 아티스트' 운운하며 원고부스러기를 무책임하게 떠넘긴 J가 막 미워지려고 함.... ㅡ.ㅡ 미쳐버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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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유사가족..

이번 연휴는 정말 모범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1. 가족...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이란 참으로 불가해한 존재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정말 남부럽지 않게 쿨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의 경우, 나한테 시집가라고 쪼아댄적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고, 최소한 나의 이성적 자각력이 생겨난 이래 젠더 편향적인 발언을 하신 적도 없을 뿐 아니라,진학이나 취업 등 인생사의 주요 길목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신 적이 없다. 또한 며느리에 대해서도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할 줄 아시는 편이다. 이를테면, 새언니가 친정에서 설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집이 신정에 차례지내는 것은 정말 전국에 자랑할만한 일이다. ㅎㅎ 물론, 가끔씩 자식들한테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적이 있기는 하다. 엄마가 새언니한테만 성당에 같이 가자고 쪼아대거나, 같이 앉아서 밥먹다가 아빠가 새언니를 콕 집어 국을 더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 경우, 빛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나의 반격에 대개 꼬리를 내리시곤 한다. 오빠도 마찬가지다. 여동생에게 가부장적 권력, 혹은 온정주의적 보호자를 자임하는 오빠들은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나보고 기가 세다는 평가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으나, 최소한 오빠와의 관계에서 나의 포스가 우위에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ㅡ.ㅡ) 하지만, 이런 쿨한 관계 속에서도 다같이 모여앉으면, 무언가 미묘한 갈등? 긴장? 이런게 느껴진다. 그건 주로 엄마와 아빠의 냉랭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정폭력 같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아빠가 유독 엄마를 너무 하녀처럼 대해왔고 (하녀가 아니라 엄마로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이제 그 세월이 겹겹으로 쌓이고 나니 엄마가 아빠를 대놓고 구박하는 거다. 물론 아빠가 구박받을만한 눈치 없는 일을 많이 하기는 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 때문에 오빠랑 나랑 화도 많이 냈었고, 엄마는 아빠를 두둔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게 싹 사라져버린거다. 뭐 엄마도 할만큼 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이나 손님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눈치없이 구는 아빠와 그걸 대놓고 맘에 안 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게 영 거시기하다. 예전에는 엄마만 일방적으로 불쌍했는데, 아빠가 새삼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도 아빠의 응석(?)을 받아줄 맘은 없다... ㅡ.ㅡ 오히려 전에 없이 오빠가 잘 받아주는 편... 엄마 생신이라고 오빠네, 연정이네랑 같이 비싼 식당 가서 밥 먹었는데, 그 살얼음판 긴장에 밥이 콧구멍으로 넘어갔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 해결책은 아빠가 철이 드는 것인데, 그게 영 요원해보이니 큰일이다.


2. 토끼와 다람쥐 며칠 전에 조카 토끼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었다. 설날에 같이 놀 수 있게 나보구 미리 잠 좀 많이 자두라는 거다. ㅎㅎㅎ 내가 맨날 퍼질러 자니까 미리 수를 쓴 거다. 어제 오늘, 이 에너지 넘치는 두 초딩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죽는 줄 알았다. 최소한 잠이라도 따로 자면 좋았을텐데, 꼭 고모와 잔다고 해서 나는 밤새 이들의 구타에 시달려야만 했다 ㅜ.ㅜ 받아쓰기 잼병에다 아직 시계볼줄도 모르는 3학년 진급생 다람쥐가, 나한테 귓속말로 물어본다. "고모는 왜 결혼 안해?" "왜 물어보는데? 고모가 결혼하면 좋겠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고모가 결혼하면 바빠서(???) 너랑 못 놀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아니야... 아니야... 결혼하지 마!!!" ㅎㅎㅎ 웃겨 죽는 줄 알았다. 3. 유사가족 지난 금욜에는 유사가족 의보사 사람들과 신년회(?)를 했다. 짧은 시간, 또 엄청나게 술들을 퍼마셨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개로 변한다는 것처럼, 이들은 함께 모이기만 하면 화학적 상승작용으로 다들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미친 듯이 술을 마신다 ㅡ.ㅡ 동생도 없고, 그닥 친척 형제도 많지 않은 나에게 이들은 유사가족!!! 그 자리에 없었던 나후가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 것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실습시험에서 '진상'을 보인 것에 대해 본교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한 걱정을 늘어놓았는데, 후배 S가 갑자기 나더라 '누나가 걔를 너무 싸고 돌아서 그래요' 이야기하는 거다. 다들 웃느라 뒤집어졌다. 내 평생 누구를 '싸고 돈다'는 이야기 첨 들어본다 ㅎㅎㅎ (정작 당사자 나후는 나를 지칭하여 '누나가 저를 자꾸 이용해먹어요'라고 발언해서 나의 분노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 S야말로, 내가 생명의 은인이다. 술먹고 방방뛰다가 속초 해안경비대에게 사격위협받으면서 쫓기던 걸 구해준게 누군데 ㅎㅎㅎ 쫌 있다가는, 우리 엄마한테 (그 옛날처럼) 새배 오겠단다. 자기 애들 데리고... "어머니, 제가 그 때 밤 열두시에 새배왔던 후배예요. 우리 애들 새뱃돈 좀 주세요!"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노총각 히스테리로 비혼의 여자 후배들에게 비호감 일순위였던 H 형은, 결혼해서 아이 둘 생기더니 완전 사람이 변했다. 심지어 선거 때 전화하면, '니가 지금 이런 선거운동하는 거보다 시집가는게 나라에 더 큰 도움'이라며 갈궈대던 양반이 풀죽은 목소리로, '**야, 결혼할 필요 없다. 그냥 연애나 하고 재밌게 살아" 하는 거다. 아이구, 쓴맛을 보셨군요... 꼬소해라 ㅎㅎㅎ 군대 갈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했음 ㅡ.ㅡ) 후배 D 는 고혈압 약을 세 가지나 복용하는데다, 자기 환자 중에 불륜이 얼마나 많은지 (산부인과 의사임) 어이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엠티가서 서로 괴롭힌 이야기, 황당 무용담에, 술먹고 죽을 뻔한 이야기... 정말 끝도 없는 추억거리와 은원관계를 파헤치느라 이들과의 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진다. 열두시를 넘겨, 집에 가자며 억지로 끌고 나오는디, 그 와중에 내 장갑을 가지고 도망치며 나잡아봐요 하는 인간이 있지 않나, 집에 가서 먹으라고 계산대 옆 사탕을 내 가방에 한 뭉치 넣는 인간이 있질 않나... 이건 뭐 귀엽다고도 할 수없고, 주책이라 할 수도 없고 ..... 만나면 항상 반갑고,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운 그들... 모여서 술만 좀 덜 먹으면 참 좋겠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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