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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묵은 독서일기에 이집트 여행기 포스팅까지... 이렇게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그야말로 몸부림이다... 내일 회의가 세 건에 (준비........ ㅜ.ㅜ) 모레 노동패널 학술대회 발표 (발표 자료...... ㅜ.ㅜ) 그 담날 보건의료학생캠프, 그리고 주말에 예방의학회/지역사회간호학회 발표용 원고 두 개 + CBPR 영어 원고 한 개 마감... 그 다음 주에는 업무, 발표, 활동 등등 서울 상경이 세 번... 밀린 자살 관련 논문과 사유화 책 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다. 사막의 지평선에서 건져올린 호연지기 따위는 평행우주로 실종되어 버렸어... Por favor, Ayud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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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_01

2007년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2008년의 일출을 이집트에서 맞겠다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나름 시련에 해당하는) 여러 건들의 사건이 있어서 유야무야되었더랬다. 2008년에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웠다. 2009년의 일출은 반드시... 역시 2008년 막바지에도 그 전해와 상당히 유사한 조건에 처해졌으나, 어쨌든 떠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를 걸고, 이 여행을 또다시 유예하지 않았던 것은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 0. 왜 떠나는가 알 수 없다. 한 때는 7대 불가사의 이런 거에 심취하여 그래이험 핸콕의 [신의 지문] 같은 책도 열심히 읽었다. 물론 그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이집트에 갈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람세스 2세 류의 소설도 강원도 파견 근무 중에 재밌게는 읽었지만 본디 왕족, 궁중다툼, 정복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는지라 이것이 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사막에 대한 로망의 기원은 짐작조차 안 간다... 어쩌면 생택쥐베리의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때문???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짐작키 어려운 로망도, 자가증식하면서 필생의 꿈이 되어가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리라... 어쨌든,이번에 확인해보니 1996년(!)에 발행된 최수철의 [사막에 묻힌 태양] 앞쪽에 나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후기가 몇 자 적혀 있었다. 디테일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여행기는 우울의 정조로 점철되어 있었다. 책을 읽고나면 여행에서 돌아온 듯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몰려온달까...



하지만, 여행은 의외로 밝고 즐거웠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 작가는 왜 이렇게 멜랑콜리했을까 의문이 들만큼 '재미'가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런 일거리도 없이, 이방인이 되어 친구랑 맘대로 돌아다니고, 밤이면 쓰러져 죽은듯이 자고... 이런 생활 자체가 해방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초강력 안내자 Rough Guide가 있었다. 이것과 함께라면 진정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긋나는 일정, 돌발상황, 껄떡대는 이집트 남자들... 이런 것쯤이야 우리에게 가소로운 문제 ㅎㅎㅎ

# 1. 카이로 도착 도하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카이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와 흥정하는 것부터가 적지 않은 부담이긴 했다. 하도 어렵다고들 하니... 그래도 어설프게 배워간 '슈크란' (감사합니다) 한 마디와 막장 영어 대화(친구 JK는 아랍식 현지 영어에 유달리 강했다!!!) 로 흥정은 어찌 해결했는데, 택시가.... 시동이 안 걸린다. 다른 택시 기사 몇 명이 와서 밀고 나서야 겨우 택시는 출발했다. 가다 서버리지 않을까 의심도 들었으나, 그건 기우였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90도 정좌 자세로 문고리에 매달려있어야만 했다. 안전벨트 따위는 있지도 않았고 총알같은 속도와 깻잎 차간 간격은 어지간한 총알택시에 단련된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숙소는.... 뜻하지 아니하게 호화로운 복층형 룸이었다. 적응이 안 된 우리는 물건 찾으러, 화장실 다니러 쉴새없이 아래위를 오르락거리며 스스로 진을 다 빼버렸다. 저녁은 레바논 스타일 정식... 다음 날 시내까지 오가는 택시를 예약해두고 이른 잠을 청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니... 라고 흥분하기에는 택시에서 시달린 고통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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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들

서로 어울리지는 않으나 흥미로운 책 몇 권의 기록을 남긴다. #1.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지식하우스 2007

키득거리면서 읽되 쌉싸름한 각성을 주는 책... 이런 거 보면 진중권의 글솜씨란 참... 가볍건, 무겁건,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를 낯설게 보기로 객관화시켜 현재의 질서와 습속이 얼마나 괴이하고 폭력적인가를 드러내는 글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물론 읽는 사람이 많아야... ㅡ.ㅡ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표현들 남겨둔다 *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앨버트 허슈만은 (정념을) '이해관계'라고 답한다. 이해관계란 궁정에서는 정치적 이익을, 시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가리킨다. 여기서 모든 정념의 즉발적 표출을 단 하나의 정념, 즉 물질적 소유욕으로 억누르는 근대인의 전형이 탄생한다. 중세인이 질주하는 야생마라면, 근대인은 소유욕이라는 엔진에 계산능력이라는 핸들을 단 자동차다. 이렇게 미래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 그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부른다. * 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나, 수치심은 그것이 드러나는 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말도 못하는 아기들에게 원어민 선생 데려다가 영어를 가르치고, 이제 겨우 두세살 먹은 아기들에게 철학 수업을 받게 하는 '광기'는 공포에서 나온다. 공포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부리를 잘라내는 '잔혹극'도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techne)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메트릭(metrik)이다.


#2. Joe Haldeman [Forever Free] Millenium 1999

말하자면 Forever 시리즈 삼부작의 최종편이자, 직접적으로는 Forever War 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더만 할배께서는 이 글을 안 쓰셨어야 했다 ㅜ.ㅜ SF 소설에게 '안드로메다'로 간다는게 욕은 아닐진데, 마지막 장은 정말 이 소설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하고 있구나 하며 한숨만 푹푹 쉴 밖에... 주제 자체는 심오하다. 심지어 창조주로부터도 독립한 'forever free'라니... 하지만 이건 아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쓰지는 못하겠으나 (누가 읽기는 하려나) 그 어처구니없음이라니... 할배... 너무 섭섭하고 속상해요.... ㅜ.ㅜ #3. 스타니스와프 램 [사이버리아드] 오멜라스 2008

[솔라리스]에 완전 반했던지라, 오멜라스의 램 시리즈 1편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완전 만족!!! 일리아스의 로봇판 버전인 사이버리아드 - 호쾌한 범 우주적 스캔달과 해괴한 만담, 엽기적 행각...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인간 사회, 지식인, 지배계급에 대한 비틀리고비틀린 풍자... 엄청난 신조어와 패러디 용어가 많아서 번역이 정말 어려웠을텐데, 문맥도 살리고 글맛도 살리고, 번역자 송경아의 능력에도 새삼 감탄했다. 조카 다람쥐가 딱 좋아할만한 스토리인데, 아직 초딩 3학년이 보기에는 불가능하다는게 아쉬울 뿐... 램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는걸!!! 이 분은 어쩜 이렇게 박학다식한걸까??? #4.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술자리에서나 논하던 이야기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식인, 특히 대학생태계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가장 '핵심적' 질문을 책의 앞부분 고병권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는 (1980년대 지칭) '어느 계급 편에 설 것인가'를 물었지만, 지금은 '어느 계급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있고,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회적 상징자본을 넘어서 구체적일 물질적 부와 정치적/사회적 권력까지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직업이 교수 말고 어디 흔하겠나? 이제 그러한 물질적 토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을 결정하고 있으니, 본능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겠다. 이 책이나, 최근 읽은 다른 사회학 논문은 한결같이 대학사회의 미국 편향을 비판하고 있다. 논문은 교수사회의 내면화된 국가주의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별도의 현상이 아니며, 성찰없는 학문적 자세가 그 본질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다 친미적/시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리영희 교수도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최장집, 신광영 교수도 소위 미 주류 대학 출신이다. 문제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느냐 하는 능력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국가주의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음을 꾸준히 내면화한 범생이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미국의 과학자들, 특히 NAS에 속한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기독교 신자인 경우가 드문 것에 비해 한국의 과학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결국, 기존의 것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의심 없는, 즉 성찰없는 모범적(!) 학습행위가 이러한 문제의 근간이 아닐까? 소위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들의 문제를 달랑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단정해버리기는 뭐하지만, 달리 다른 답도 잘 모르겠다. 근데 좀 슬프지 않나? 가장 자유롭고 회의적인 이성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니... 아참, 한국 사회 지식인의 이념적 지도를 그리면서 리영희 교수를 언급한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했다'고 되뇌고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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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진보신당] 건강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건강위원회 준비 모임 교육/정책팀에서 매주 돌아가며 [주간 진보신당]에 건강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벌써 내 차례가 돌아와서 깜딱 놀랐다. 총성은 '일단' 멈췄다고 썼는데 원고 보내고 나서 이스라엘 십장생들이 또 포격하는 바람에 식겁했다. ㅜ.ㅜ http://weeklynpp.tistory.com/category/건강컬럼 이전 칼럼들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2009/01/18 제26호(090116) - 사회불평등과 건강 * 2009/01/11 제25호(090111) - 영리법인병원 도입 저지, 지역 역량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 2008/12/27 제24호(081226) - 건강보장제도와 연대적 가치 * 2008/12/21 제23호(081219) - 비정규직 차별과 건강할 권리의 박탈 --------------------------------------------------------- 제27호(090130) - 건강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건강위원회 준비 당원 모임, 노동건강연대) ‘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명성에 걸맞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믿기 어려운 소식들은 조금이라도 진정의 기미가 보이거나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묵은 과제들을 뉴스에서 쓸어버리기 십상이다.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일까?’라는 철학적 고민마저 던져주었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도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졌으니, 잠깐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도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주간의 일방적 학살이 남겨놓은 현장은 과연 우리가 지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되는 건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3주 동안 1,400여 명이 가자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5천 명이 넘는 부상자 중 약 14%가 평생 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환자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1천 8백여 명은 어린이들이다.(1) 공 습 피해 환자들 중 다수에서, 백린탄 (white phosphorus bomb)과 고밀도 비활성 금속탄 (DIME, Dense Inert Metal Explosive) 사용을 의심케 하는 특이한 화상과 사지절단 소견들이 보고되고 있다. 예컨 대, 지난 15년간 알-시파 병원의 화상센터 책임자를 맡아온 의사 아부 사반은 예전 같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작은 화상인데도 환자들이 자꾸 죽는다며 의문을 표했다. “처음에는 작은 화상처럼 보였는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화상 부위가 점점 넓고 깊어지더니, 일부 환자들이 손써볼 겨를도 없이 악화되고 말았어요.” 이 병원에서는 수술 도중 환자의 화상 부위에서 튄 잔해에 마취과 의사가 경미한 화상을 입은 적도 있다. 머리를 다친 세 살짜리 어린이의 또 다른 사례는 그 자체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다. “병원에 도착한지 2시간 만에 상처부위를 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기가 나더군요. 집게로 ‘촘촘한 솜’같은 물질을 끄집어내자 그것이 타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사라져버릴 때까지 계속이요.” 백린탄은 155mm 포탄에 116개의 백린 쐐기가 들어 있어, 터지면 수백 제곱미터 이상을 퍼져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공기와 닿으면 발화되어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타버린다. 피부에 닿으면 뼈까지 깊숙이 타들어갈 수 있다.(2)


한 편 알-시파 병원의 의사 소비 스카이크는 팔 다리가 절단되어 실려 온 환자들의 상처 부위에서 파편이 발견되지 않고 상처 부위가 마치 칼로 베어낸 듯 예리하다며 DIME의 피해를 강력하게 의심했다. DIME에는 텅스텐 분말이 채워져 있으며 거의 지면 - 무릎 높이에서 폭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순식간에 발생하는 강력한 폭발력 때문에 환자는 자신의 사지가 절단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절단 부위에는 엄청난 열기가 남는다. 또한 어떤 환자들은 외견 상 파편의 상흔이 보이지 않는데도 심각한 내장 파열로 출혈성 쇼크에 빠지기도 한다. 출혈의 원인을 찾아 온 뱃속을 뒤져 보면, 작은 검은색 반점들이 내장에 무수히 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 미세한 텅스텐 성분은 상처부위에서 찾아내 제거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력한 발암 물질이기도 하다.(3) 신 체적 장애 뿐 아니라 정신 건강,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우려도 매우 심각하다.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어린 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정신 차려 보니 자신의 두 다리가 없어져 있는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사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파편이 경추에 박혀 평생을 사지마비로 살아야 하는 청년이 ‘그래도 저는 이스라엘을 용서할래요’라며 밝게 웃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만큼이나 평생 지속될 것이다. 다행히 폭격을 피해 살아남은 이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5천 채가 넘는 집이 파괴되었다. 가스도, 전기도, 수돗물도 없고, 하수 시설과 화장실은 난장판이며,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사체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폭격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수많은 환자로 병원이 난리통이라, 어린이들은 예방접종 기회를 놓치고 있다. 유니세프가 우려를 표하고, 세계보건기구가 ‘공중보건 위기’를 경고한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4) 하 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근의 이 ‘공공연한’ 학살 이전에도, 150만 명의 건강을 위협하는 은밀하고 치밀한 작전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인디펜던트’가 입수한 2008년 11월의 국제적십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로 만성 영양실조가 꾸준히 증가했고, 필수적인 미량 영양소 결핍증이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하마스가 정권을 잡은 2007년 6월 이래 봉쇄가 강화되면서 생활 물가는 최소 40% 이상 올랐고, 10만 6천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인구의 40%가 ‘극빈층’이 되었다. 사람들은 뭐든지 내다 팔고, 아이들의 교육비를 줄이며, 먹을거리 장만에 들어가는 돈마저 줄였다. 이미 공습 전에도 가자 지구 주민의 70%가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이나 신선한 야채, 과일 대신 값싸고 열량만 높은 곡물, 설탕, 기름으로 하루 에너지를 채우다보니, 미량이지만 필수적인 영양소, 이를테면 철분, 비타민 A와 D 결핍이 심각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5) 더 멀리, 하마스 집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5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특별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읽는 이의 눈을 의심케 만든다. 2003년 8월, 산모인 룰라 아쉬티야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나블루스 병원으로 가는 길을 막는 바람에 서안 지구 베이트 푸릭 검문소 옆, 더러운 길바닥에서 아기를 낳았다. “남들 눈에 안 띄려고 콘크리트 벽 뒤로 검문소까지 기어가,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 짐승처럼 아이를 낳았어요. 딸아이를 안아들기는 했는데,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금방 제 품에서 죽고 말았어요.” 이스라엘 병사들이 구급차를 지체시키는 바람에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바이얀 후세인 알 리의 사례는 뉴스거리도 아니었다.(6) 이스라엘이 저지른 최근의 악행은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난 전쟁 범죄일 뿐, 2007년부터의 살인적 봉쇄, 아니 1967년부터 시작된 점령 그 자체가 팔레스타인 이웃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어 왔다. 가 자 지구 알-나세르 병원의 자원활동 의사 ‘카림 호스니’는 이야기한다. “가끔씩, 내 환자들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처가 너무나 끔찍해서, 그들이 앞으로 얼마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하는지 제가 알거든요.”(7) 암도, 중풍도, 심장병도, 단 3주 만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더구나 어린이들을 죽이지는 못한다. 수 천 명을 평생 불구로 만들지도 못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거대한 감옥에 구금되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구급차가 가로막혀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현실 또한 어떠한 보건학 교과서도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건강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어 가고 있다. 이 후유증이 몇 세대에 걸쳐 상흔을 남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야기했단다. “결국 기억될 것은, 적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들의 침묵”이라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향한 진보신당 당원들의 관심과 연대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주) 1) 'I will never walk again' The Palestine Chronicle 2009.1.23 2) 'Gaza doctors struggle to treat deadly burns consistent with white phosphorus' Guardian 2009.1.20 3) 'Alarm Spreads Over Use of Lethal New Weapons' Inter Press Service 2009.1.22 4) 'Displaced families in Gaza face public health crisis' UNICEF press release 2009.1.23 5) 'Chronic malnutrition in Gaza blamed on blamed on Israel' The Independent 2008.11.15 6) Israel/Occupied Territories: Conflict, occupation and patriarchy: Women carry the burden (MDE 15/016/2005) 7) 'I will never walk again' The Palestine Chronicle 200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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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가.....

주말까지 써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 너무너무 진도가 안 나간다. 영어 때문인가 의심도 살짝 했지만, 영어고 한국어고 그냥 생각의 흐름 자체가 막힌 듯... '당신은 아티스트' 운운하며 원고부스러기를 무책임하게 떠넘긴 J가 막 미워지려고 함.... ㅡ.ㅡ 미쳐버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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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유사가족..

이번 연휴는 정말 모범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1. 가족...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이란 참으로 불가해한 존재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정말 남부럽지 않게 쿨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의 경우, 나한테 시집가라고 쪼아댄적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고, 최소한 나의 이성적 자각력이 생겨난 이래 젠더 편향적인 발언을 하신 적도 없을 뿐 아니라,진학이나 취업 등 인생사의 주요 길목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신 적이 없다. 또한 며느리에 대해서도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할 줄 아시는 편이다. 이를테면, 새언니가 친정에서 설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집이 신정에 차례지내는 것은 정말 전국에 자랑할만한 일이다. ㅎㅎ 물론, 가끔씩 자식들한테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적이 있기는 하다. 엄마가 새언니한테만 성당에 같이 가자고 쪼아대거나, 같이 앉아서 밥먹다가 아빠가 새언니를 콕 집어 국을 더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이 경우, 빛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나의 반격에 대개 꼬리를 내리시곤 한다. 오빠도 마찬가지다. 여동생에게 가부장적 권력, 혹은 온정주의적 보호자를 자임하는 오빠들은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 나보고 기가 세다는 평가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으나, 최소한 오빠와의 관계에서 나의 포스가 우위에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ㅡ.ㅡ) 하지만, 이런 쿨한 관계 속에서도 다같이 모여앉으면, 무언가 미묘한 갈등? 긴장? 이런게 느껴진다. 그건 주로 엄마와 아빠의 냉랭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정폭력 같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아빠가 유독 엄마를 너무 하녀처럼 대해왔고 (하녀가 아니라 엄마로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이제 그 세월이 겹겹으로 쌓이고 나니 엄마가 아빠를 대놓고 구박하는 거다. 물론 아빠가 구박받을만한 눈치 없는 일을 많이 하기는 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 때문에 오빠랑 나랑 화도 많이 냈었고, 엄마는 아빠를 두둔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게 싹 사라져버린거다. 뭐 엄마도 할만큼 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이나 손님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눈치없이 구는 아빠와 그걸 대놓고 맘에 안 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게 영 거시기하다. 예전에는 엄마만 일방적으로 불쌍했는데, 아빠가 새삼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도 아빠의 응석(?)을 받아줄 맘은 없다... ㅡ.ㅡ 오히려 전에 없이 오빠가 잘 받아주는 편... 엄마 생신이라고 오빠네, 연정이네랑 같이 비싼 식당 가서 밥 먹었는데, 그 살얼음판 긴장에 밥이 콧구멍으로 넘어갔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 해결책은 아빠가 철이 드는 것인데, 그게 영 요원해보이니 큰일이다.


2. 토끼와 다람쥐 며칠 전에 조카 토끼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었다. 설날에 같이 놀 수 있게 나보구 미리 잠 좀 많이 자두라는 거다. ㅎㅎㅎ 내가 맨날 퍼질러 자니까 미리 수를 쓴 거다. 어제 오늘, 이 에너지 넘치는 두 초딩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죽는 줄 알았다. 최소한 잠이라도 따로 자면 좋았을텐데, 꼭 고모와 잔다고 해서 나는 밤새 이들의 구타에 시달려야만 했다 ㅜ.ㅜ 받아쓰기 잼병에다 아직 시계볼줄도 모르는 3학년 진급생 다람쥐가, 나한테 귓속말로 물어본다. "고모는 왜 결혼 안해?" "왜 물어보는데? 고모가 결혼하면 좋겠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고모가 결혼하면 바빠서(???) 너랑 못 놀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아니야... 아니야... 결혼하지 마!!!" ㅎㅎㅎ 웃겨 죽는 줄 알았다. 3. 유사가족 지난 금욜에는 유사가족 의보사 사람들과 신년회(?)를 했다. 짧은 시간, 또 엄청나게 술들을 퍼마셨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개로 변한다는 것처럼, 이들은 함께 모이기만 하면 화학적 상승작용으로 다들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미친 듯이 술을 마신다 ㅡ.ㅡ 동생도 없고, 그닥 친척 형제도 많지 않은 나에게 이들은 유사가족!!! 그 자리에 없었던 나후가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 것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실습시험에서 '진상'을 보인 것에 대해 본교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한 걱정을 늘어놓았는데, 후배 S가 갑자기 나더라 '누나가 걔를 너무 싸고 돌아서 그래요' 이야기하는 거다. 다들 웃느라 뒤집어졌다. 내 평생 누구를 '싸고 돈다'는 이야기 첨 들어본다 ㅎㅎㅎ (정작 당사자 나후는 나를 지칭하여 '누나가 저를 자꾸 이용해먹어요'라고 발언해서 나의 분노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 S야말로, 내가 생명의 은인이다. 술먹고 방방뛰다가 속초 해안경비대에게 사격위협받으면서 쫓기던 걸 구해준게 누군데 ㅎㅎㅎ 쫌 있다가는, 우리 엄마한테 (그 옛날처럼) 새배 오겠단다. 자기 애들 데리고... "어머니, 제가 그 때 밤 열두시에 새배왔던 후배예요. 우리 애들 새뱃돈 좀 주세요!"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노총각 히스테리로 비혼의 여자 후배들에게 비호감 일순위였던 H 형은, 결혼해서 아이 둘 생기더니 완전 사람이 변했다. 심지어 선거 때 전화하면, '니가 지금 이런 선거운동하는 거보다 시집가는게 나라에 더 큰 도움'이라며 갈궈대던 양반이 풀죽은 목소리로, '**야, 결혼할 필요 없다. 그냥 연애나 하고 재밌게 살아" 하는 거다. 아이구, 쓴맛을 보셨군요... 꼬소해라 ㅎㅎㅎ 군대 갈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했음 ㅡ.ㅡ) 후배 D 는 고혈압 약을 세 가지나 복용하는데다, 자기 환자 중에 불륜이 얼마나 많은지 (산부인과 의사임) 어이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엠티가서 서로 괴롭힌 이야기, 황당 무용담에, 술먹고 죽을 뻔한 이야기... 정말 끝도 없는 추억거리와 은원관계를 파헤치느라 이들과의 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진다. 열두시를 넘겨, 집에 가자며 억지로 끌고 나오는디, 그 와중에 내 장갑을 가지고 도망치며 나잡아봐요 하는 인간이 있지 않나, 집에 가서 먹으라고 계산대 옆 사탕을 내 가방에 한 뭉치 넣는 인간이 있질 않나... 이건 뭐 귀엽다고도 할 수없고, 주책이라 할 수도 없고 ..... 만나면 항상 반갑고,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운 그들... 모여서 술만 좀 덜 먹으면 참 좋겠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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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편

이번 설 연휴에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올라왔다. 논문과 칼럼을 비롯한 각종 원고들!!! 노트북에 책이랑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옷보따리만 안들었지, 영락없는 상경처녀... ㅡ.ㅡ 그러면서도, 밀린 영화를 꼭 보고야말겠다는 야심찬 결의를 했더랬다. 그리하여, 어제 그제 낮에 계속 영화를 보러나갔다. #1.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2008년 작

그저께, 모처럼 4인방이 모여 감상. 언론과 각종 개인 블로그들에서의 평은 더할나위없는 상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찜찜한은 도대체 무엇? 한마디로, 영화가 지나치게 매끈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도시 생활의 피로를 절감하면서 부쩍 증폭된 향수를 가진 이들, 딱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공사판 장양은 저 9남매를 위한 영화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ㅡ.ㅡ 농약치고 트랙터로 모심는 옆논의 모습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할아버지네 농사모습, 할배할매는 물론, 마을주민과 자식들가지 모두 만날 때마다 소이야기만 하는 모습, 우시장의 부감슛까지... 원래 나는 이 영화가 그냥 '다큐'인 줄 알았었다. 물론 다큐라고 연출이 없지야 않겠으나, 이런 인간극장 식의 감정고양 매끈 연출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더구나 엔딩 크레딧은 이땅의 모든 아버지들과 소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하니, 도대체 그 뒷바라지 한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죄다 어디로 가신게냐??? 물론, 이 모든걸 덮어줄만한 진실의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화된 관절로 한발한발 걸음을 옮기는 소의 애달픈 모습,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기어다니면서도' 소를 챙겨주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 둘을 향한 궁시렁쟁이 할머니의 애틋함 - 그래도 삶은 지속되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그 서럽고도 애잔한 진실을 내 어찌 폄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죽어라 40년 동안 일만 하다가 스러져간 소는, 할배 할매의 사랑으로 행복했을까?


#2.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타셈 싱 감독, 2006년 작

결국 못 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보게 되어 어찌나 다행인지... 아마도, 내 평생 본 판타지 영화 중에 최고??? 우선, 그 초현실적인 영상 - 매 장면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뛰어넘고 있었다. 사실, 오프닝 씬에서부터 나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음악은 또 어떻고?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거니, 꼬마 알렉산드리아의 감정 연기는 정말... 꼬마아이는 실제로 영화를 찍으며 영어도 배우고, 빠진 앞니도 새로 나고, 그리고 성장했단다. 꼬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해... 현실과 허구를 연결하는 빼어난 내러티브와 세상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은근히 귀여운 유머들... 이 감독은 전세계축구 스타들이 공차기로 연결되었던 그 유명한 펩시 광고를 찍은 양반이다. 그렇게 수 년 동안 돈모으고 개인재산 팔아서 이 영화를 찍었단다. DVD가 출시되면 꼭! 장만해두어야겠다... 안 보신 이들.... 어여 보세요. 정말 강추예염... #3. [렛미인] 토마슨 알프레드슨 감독, 2008년작

사실, 친구 M과 함께 이 영화를 본 건 작년 말이다. 여행 떠나는 날 오전에 잠깐... 이것도 금방 극장에서 내릴 줄 알고 서둘러봤는데, 의외로 여태 상영 중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은 좀 복잡미묘하다. 인간세계, 혹은 학교라는 정글로부터 외면받은 소년소녀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에 빠져가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눈과 피, 푸른 어둠... 이 서늘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도 잊혀지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좋은 걸까? 주인공 하나 살리기 위해 전 부대가 몰살당하는 헐리우드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이 영화의 플롯은 뭐가 다른 걸까? 본인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 딸 이엘리를 위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얼굴에 염산을 붓고,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 후 빌딩에서 떨어지는 이엘리 아빠의 모습이나, 뱀파이어로 변한 자신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마을 여인의 모습이 그리 쉽사리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건말건, 둘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더래요... 이건 아니잖아??? 우쨌든, 누군가 초대해주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뱀파이어의 모습 ('나를 들어가게 해줘: let me in')은 비단 그 세계뿐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누군가 마음을 열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억지로 혹은 강제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ㅡ.ㅡ 이거 같이 보러갔던 친구랑 '바시르와 왈츠를'도 함께 보자고 했었는데 어찌나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지... 영화 내려버릴까봐 걱정일세!!! 혼자 가서 몰래 보면 배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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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활동?

홍실이님의 [] 에 관련된 글.

그래도 비교적 잘 하는 것 중 하나는, 주제파악이다. 그래서, 내가 잘 못하는 거, 할 수없는 것을 부탁받으면 '진심을 담아' 거절하는 게 보통이다. 대의명분 때문에 어쩔 수없이 뭔가를 떠맡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결과는 안 좋다. 이름만 걸어놓고 활동 안 하는 걸 엄청 싫어하는데, 가끔씩 자신의 그런 모습과 마주치면 미쳐버릴 것 같다 ㅡ.ㅡ (이를테면, 의료생협 동네 대의원을 억지로 맡았는데 지난 1년동안 한 번도 회의에 못 나갔고, 시당정책위 세미나에도 매번 결석했다. 제대로 못할 것이 뻔히 예상되었는데, 왜 한다고 해서...) 내가 잘 하는 것은 이런 거다. 데이터 분석하고 해석하기 (꼭 학술연구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큰 그림잡아 맥락으로 이해하기, 실무기획, 맨정신에 완전 진지한 대화 이끌어내기, 갖가지 고충 상담 (가끔은 다른 이들의 비밀과 내밀한 고민들을 너무 많이 알아 괴롭기도 ㅜ.ㅜ), 조근조근 일대일 꼬드기기, 마감 쪼아대기(???)... (잘하는게 너무 많구나 ㅎㅎㅎ) 못하는 거? 나서는 거 잘 못한다. 그니까 일대일 공략은 잘 하지만, 리더쉽있게 뭔가를 지도하고 조직하는 거에는 젬병... 더구나 싫어하는 사람과 말을 섞고 합의 도출하기, 이런거는 완전 쥐약이다. 즉, 정치력이 바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정책 역량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건 원래 없는지, 트레이닝이 안 되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못한다 (ㅡ.ㅡ). 특히나 국내 보건의료/복지와 관련해서는 구체적 정책/사업을 모니터링해온게 아닌지라, 원론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은 잘 모른다. 전공과 좀 동떨어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사람들은 보건학 분야에 종사하면 이런거 속속들이 다 알고, 잘 하는 줄 안다. 모른다고 하면 심지어 '겸양'이라고 생각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는 그거 잘 몰라요, 잘 못해요' 하면서 계속 미루는게 적절한 태도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엊그제 ** 활동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좀 고민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자꾸만 생활과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지는 자신을 담금질한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지금도 헥헥거리며 여기저기 펑크를 내고 있는데... 제대로 못할거면 처음부터 맡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움은 커녕 걸림돌이 될 수는 없지 않나... 뭐 인생을 걸고 하는 것도 아닌디, 너무 오바해서 거창하게 고민하는 거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ㅜ.ㅜ 장고 끝에 악수 난다고 했는디, 과연 새해 계획에 중요한 한 줄을 추가하게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오라클의 신탁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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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공포 정치

어제 출근하려고 TV를 끄다가 마주친 '5명 사망' 속보는, 너무나 그로테스크해서 차마 믿기지가 않았다. 책에서나 읽었던 불도저 시장 김현욱 시절의 이주민 폭동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어쩌다 이런 일이!'보다 '드디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 할머니 제사라 서울 부모님 댁에 갔었다. 아침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내년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이제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부모님이 사시는 곳도, 서울 강북의 여느 지역들처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집주인이나 세입자들이나 비슷비슷하게 형편이 어려운지라, 재개발 반대의 목소리가 엄청 큰 곳이다. 재개발 되었을 때 원 주민이 돌아와 정착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상식이다. 바로 앞동네 생뚱맞게 들어선 래미안 아파트는 생생한 증거... (심지어 원주민들 차량 못 다니게 아파트 진입 골목에 바리케이드 설치하고, 원주민 아이들을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못 놀게 하는 따위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유치한 작태!) 그래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굳이 정든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아 부모님은 꿈쩍도 안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어제 뉴스가 너무도 무서우셨단다. 우리 동네라고 저런 일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거다. 이런게 바로 생활 속의 공포 정치다. 밥먹으면서 뉴스에서 눈을 못 떼는 나한테 엄마가 묻는다. "저게 드라마보다 뭐 좀 낫다고 그렇게 열심히 보는거냐?" 촛불 정국 때 광고불매 운동했던 시민들에게 징역이 구형되었다는 보도였다. 그러게요... 막장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막장일세... 대답 않고 열심히 밥만 먹었다... 자본주의가 세련화될수록 통치 기제도 세련되고 정당성과 합법성을 무기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가파식 공포 정치의 힘은 여전히 강력한 것 같다. 평범한 많은 이들의 일상에, 아주 날것의 힘, 정치의 힘을 보여주니 말이다. * 어제 돌아가신 이들, 결국 우리 할머니와 같은 제삿날을 갖게 되신 이들의 명복을 빈다. 그 분들의 자리가 우리 동네 이웃들, 우리 부모님의 자리일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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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써보는...

확신에 차 있는 것같고, 단호한 결단력과 용기가 있는 것 같고, 항상 포스가 함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도 내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며, 하찮아 보이는 소소한 일상에 괴로워하지 않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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