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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Misfortunes never come singly!" 과연 그것이 불'운' (mis'fortune') 인지는 모르겠다만.... 부동의 평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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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ertainty avoidance

독일의 사회학자(경영학자?) Hofstedt 는 국가간 비교연구를 통해 사회문화적 속성을 특징짓는 네 가지 구성개념을 도출한 바 있다. Power distance, Uncertainty Avoidance, Indivisualism (vs. collectivism), Masculinity가 그것이다. 이것이 개인의 성격을 유형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뭐 그닥 개인의 성향을 가져다붙여도 어색함은 없다. 이 중 불확실성 회피 성향은 맥락 요인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불확실성이 만연한 사회, 하지만 그 혼란과 예측불가능함으로 인해 피를 많이 본 사회의 경우 극도의 불확실성 회피 성향을 보인다. 다른 한편 흔히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 같은 (불확실성의 요소가 가장 적을 것 같은) 사회 (북구유럽이 대표적)일수록 오히려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불확실한 미래라고 해봤자, 그닥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이유가 없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개인적 측면을 볼 때, 나의 불확실성 회피 성향은 가히 엄청난 수준이다. 이것은, 여행을 하다가 마주치는 뜻하지 아니한 생황을 즐긴다거나, 계획없이 주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충분히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non-random" event 로서의 불확실성은 정말 못 견디겠다. 역치가 낮은 것일까? 예의없이 생활에 불쑥 끼어들어 행로를 급변경하게 만드는 그런 불확실성....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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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탈취에 의한 축적

#.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신자유주의 - 간략한 역사] 한울 2008

0. 개념의 인플레 현상 덕분에,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정색하고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정리된 모범답안? [Commanding Height]와 쌍을 이루어 읽는다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칠레, 영국,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둘러싼 이 상반된 두 가지 해석이라니!!! 예전에 [commanding height]를 보면서, 이건 아니잖아... 라고 땅을 치면서도 막상 나의 목소리로 정확하게 비판할 수 없었던 것들을 콕콕 찝어주니 앗싸... 1. 해미와 함께 이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디, 둘다 뜨끔했던 것은 '우리'의 리버럴한 성향에 대한 하비의 통렬한 지적... "사회정의의 추구는 사회적 연대와 더불어, 사회적 평등이나 환경정의를 위한 좀더 일반적인 투쟁과정에서 개인적 욕구, 필요, 욕망을 유예할 수 있는 자발성을 전제로 삼는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욕구와 필요, 욕망을 유예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지만, 소위 리버럴좌파 (혹자는 날나리 좌파라고...)들의 건전한 의도와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적' 태도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적극적으로 포섭당하고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ㅡ.ㅡ 2. 저자는 그냥 자유 일반이 아니라 '어떤' 자유인가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시민권/자유권 중심의 인권 개념을 비판한 것도 좋은디, 사회권에 대한 관심이 이미 진보진영 내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음은 아직 잘 모르시는 건지... 혼자 너무 답답해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 3. 결국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탈취에 의한 축적',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계급권력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로 요약될 수 있으며,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전지구적 피라미드 혹은 돌려막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결코 약속한 대로의 성장을 가져오지도 못했고, 다시금 또다른 위기를 노정시키고 있다. 4. 밀턴 프리드만의 [capitalism and freedom] 을 읽으면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상적인 최소 국가의 가능성을 하비는 쎄게 비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실제'라는 별도의 챕터로.... 전반적으로, 이 책은 수식 현란한 본격적 경제학 서적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철학 혹은 역사서도 아니면서, 딱 내 수준의 궁금증을 가진 이들에게 신자유주의와 관련한 폭넓은 이슈들을 잘 개괄해주는 '개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국가에 대한 논의도 그래서 이해하기 쉬웠다. 5. 남한사회에 대한 평가는 다소 혼란스럽다. 신자유주의적 의제가 다소 완화되어 적용된 것으로 평가하는데, 여기에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발전주의적 전략과 노동계급의 저항(?)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어찌 보면 장하준 교수의 국가/재벌 주도 경제발전 옹호와 맞닿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노동운동의 조직력을 감안할 때 그 힘이 과도하게 평가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해외의 좌파들은 한국의 노동, 사회운동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혹은 인색하게 한국의 운동을 평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에 비해 과도하게 포장되어 알려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6. 예언 혹은 예측 신자유주의가 내적 위기로부터 도출된 대안들 - 이를테면 신보수주의, 질서와 도덕의 강조, 국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법'의 전면화 -을 읽고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면, '아, 이거 딱이잖아, 쪽집게네' 하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그니까, 어쩌면 현재 한국사회의 퇴행은 우연한 돌발이라기보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는 말씀... IMF 구제금융 이후에 [세계화의 덫]을 읽고 '아니,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이 외환 위기가 올 것을 다 알고 있었구나. 이럴수가!' 했었는데,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마찬가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적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가 그토록 강조해마지않던 '시민적 자유'의 공공연한 퇴조를 지적하는 글을 보고 있자니, 이거 원... 7. 대안 진단과 분석과정은 장구했지만, 예상대로,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안을 주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그 대답이야 독자들, 그리고 역시 운동의 몫이 아닐까 싶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거세다 했어도 그 양상은 국가, 그리고 내부의 계급구조, 투쟁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발전도, 위기도 불균등하더라는... 그래서 영국, 미국, 멕시코, 한국, 스웨덴에서 공통점도 있지만 중대한 차이점도 존재할 수 있었다. 결국은 저항과 운동... 그로부터 또다른 '동의의 구축'! * 포스팅 내용과는 관계없는 사족이긴 한데... 맨날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쓰니까, 제가 요즘 몹시 한가하거나 행복에 겨운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으신듯해요... 아.니.랍.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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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 책...

병든 사자가 풀을 뜯어먹듯 마음이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 했거늘... #1.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멸종] 오멜라스 2009

시간이동, 바이러스, 공룡 멸종, 외계생명체... 소위 SF의 핫 아이템들이 모두 들어있는 소설이다. 공룡멸종의 놀라운 비밀(?)을 주제로 담고 있다. 예전에 재미나게 보았던 일본만화책 [괴수대백과 사전]이 고질라의 존재불가능성을 논증했던 것과 같은 논리를 가져왔다 ㅎㅎㅎ 원저의 제목 [End of an Era]를 잘 살렸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딱히 중요한 대목은 아니었으나 기억해둘만한 문장이라면, 13세기 이탈리아 시인이 이야기했다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는 도덕적으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을 때 중립을 지킨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2.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청미래 2002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건 비단 남녀간의 사랑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다른 이의 미덕보다는 악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라, 차라리 서로를 잘 모르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물론, 오랜 기간에 걸쳐 삶을 공유한 후에 배신과 상처가 아닌, 믿음을 얻었다면야 모를까... 이전에 읽었던 보통의 책들에 비해, 좀 공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보통이 이 책을 썼을 때 약관 20대였다. 그 나이를 생각한다면 놀라운 통찰력이기는 하다. 너무도 가깝기 때문에 차분하게 관찰하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이렇게 한발 떨어져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말이다. 허나, 그닥 추천할만큼 좋은 작품이 아닌것만은 분명.... #3.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행복의 지도] 웅진 지식하우스 2008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매일 우울하고 불행한 소식만을 전하던 기자가, 행복의 비밀을 찾아나선 엉뚱한 여행담... 이 썰렁하고 해학적인 글들 곳곳에는 저자가 발견한(?) 행복비법들이 숨겨져 있다. 저자는, 이토록 불행으로 가득찬 것같은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기자와 철학자 탓으로 돌렸다. 특히 철학자 ㅎㅎㅎ "... 그러나 진정한 악당은 바로 철학자다. 유럽 출신의 음침한 백인 남자들. 그들은 온통 검은 옷을 차려입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고,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카페에서 혼자 놀며 우주를 생각하다가 '짠!'하고 결론을 내린다. 우주는 불행한 곳이라고. 우주가 불행한 건 당연하다. 다시 말해서, 외롭고 음침하고 피부색이 창백한 백인 남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18세기 하이델베르크의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에 먼훗날 세상에 태어나 불루밍턴에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철학개론 수업을 들어야하는 녀석을 괴롭힐 요량으로 길고 산만한 독설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행복을 성취하고 싶어하지, 그냥 행복을 경험하기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심지어 불행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불행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행복을 진심으로 음미하기 위해서" "... 행복도 마찬가지다. 유전적 요인이니 공동체적 유대감이니 상대적 소득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빼버리면, 행복도 선택이 된다. 쉬운 선택도 아니고 항상바람직한 선택도 아니지만 선택인 건 맞다. 잔혹한 기후와 철저한 고립 앞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절망 때문에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쉽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가 돌아본 나라들에서 얻은 교훈들은 기존의 행복 (happiness), 주관적 안녕 (subjective well-being), 삶의 만족도 (life satisfaction) 에 관한 계량적 연구에서 얻은 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관용, 신뢰 (가족같은 배타적 혈연 뿐 아니라 얼굴 모르는 이웃들과의 연대감, 타인의 삶에 대한 공동 책임감), 관계와 초월, 실패의 인정 (이건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정신줄 놓기 (이건 좀 아니야!), 우울과 염세를 인정하고 즐기기 쯤? 허나, 그렇게 모두들 아는 것 같아도,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진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저자의 껄렁한(^^) 해석을 읽다보면, 내가 요즘 진행중인 계량적 분석이 얼마나 제한적일수밖에 없는지..... ㅡ.ㅡ 아참,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면.... "나는 다음 생에 부탄의 개로 태어나고 싶다." 나도 ㅎㅎㅎㅎㅎ 오늘 어린이날! 주먹도끼는 삼계탕을, 노가다 장은 맛난 커피를 사주었다. 행복했다 ㅎㅎ 그리고 츄파춥스는 '웃는 빵'을 선물로 주었다. 빵은 행복해보였다... 씨익 웃고 있다... 나도 행복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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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물들여보아요 ㅜ.ㅜ

외모를 가꾸는데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나, 가끔 그래도 신경 썼던 것이 머리 염색이다. 꽤나 어린 시절부터 새치가 창궐하여, 상대적으로 어려보이는 얼굴과 함께 기묘한 부조화를 야기하는지라, 주변으로부터 뜻밖의 관심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키가 작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내려다보는 (ㅜ.ㅜ) 일이 많아 더더욱... 더구나 나의 새치들은 어찌나 건강한지, 두껍고 뻣뻣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더욱 눈에 띈다!!! 한번은 사장님(?)과 같은 엘리베이터 탔다가 '어머, 얘 웬일이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ㅡ.ㅡ rawfish는 이런 나의 처지를 궁휼히 여겨, 가끔 새치들을 솎아주고는 했으나, 이제는 그런 수공업적 방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도 웬만큼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는 정말 주변의 압박이 장난 아니었다. 지난 주말 조교샘 결혼식장에서, (전혀 남의 외모에 신경 안쓰시는) 이웃께서 내 뒤통수에 대고 "웬만하면 염색 좀 하세요" 절규했다. 금요일에는 오랜만에 만난 또다른 샘 한 분이, "아니... 염색 좀... 어쩌다 이렇게..." 그 분은 말을 못이루셨다 ㅡ.ㅡ 심지어, 그날 오후에 있었던 학회 운영위, 점잖으신 C 샘이 결정타를 날려주셨다.내 옆자리에 앉아 씨익 웃으시더니만, "쫌, 뽑아도 될까요?" 이런 젠장... 안 되겠다 하고 있는데, 오늘 점심 때 만난 노가다 장과 주먹도끼마저 잊지 않고 한마디씩 날려주셨더랬다. 대전 내려오자마자, 얼릉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했다. 맨날 머리 잘라주시는 분께서, 마치 돌아온 탕아를 맞이하듯, 기뻐하셨다. 지난 몇 달 동안 머리 자르러 갈 때마다 제발 염색 좀 하라고 얼마나 애원했던가... 장대리의 말대로, 이건 이제 새치가 아니라 그냥 흰머리다. 예전에도, 보고서 한 번 쓰고 나면 흰머리가 화~악 늘고는 했는데, 지난 몇 달간 신경 쓰는 일들이 많다보니 이런 대 참사가 벌어진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거울도 잘 안 봐서 (우리집엔 화장대도 없다 ㅡ.ㅡ)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 사람들 서비스 차원에서 염색한거라고 생각한다. 확, 블리치도 넣고 쎄게 해볼까 하다가 역시 주변인들의 시각적 건강을 고려하여 얌전하게 했다... 나는야 진정한 이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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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스트의 식탐...

접미사처럼 항상 입에 붙어있는 말 중에 하나가 '어이구,귀찮아!' 울 오마니가 가끔 물어보신다. "숨쉬는 건 안 귀찮냐?" 그럼 대답한다. "숨도 엄마가 쉬어주면 좋겠네!" ㅎㅎㅎ 이런 귀차니스트가 꼬박꼬박 밥을 해먹으며 (심지어 가끔 도시락까지 싸간다!)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게으름을 이겨내는 놀라운 식탐의 힘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귀차니즘의 파워도 결코 만만치는 않은지라, 나의 살림살이는 뜻하지 아니한 과학과 효율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리 시작 전에 치밀한 동선 구상, 잠시의 자투리 시간도 용납치 않는 입체적 시간 관리... 그래서 가끔씩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뭔가를 떡하니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는 한다. 정이는 나의 요리에 대해 가끔씩 의구심을 표명했다. "언니가 한 건, 맛은 괜찮은데 너무 정성이 안 들어간거 같애. 뭐 이렇게 후딱 하는 거야?" 이런 나의 요리 철학에 비추어볼 때, 오랜 시간 국물을 우린다거나, 사전 다듬기 작업으로 시간을 많이 요하는 품목은 진정 레어아이템이다. 그동안 보스턴이나 대전에서 튀김(복잡한 전처리 과정과 두번 튀겨내야 하는 과중한 업무 부담), 짬뽕 (복잡한 전치과정 더하기 국수삶고, 오랜 시간 육수 만들고... ㅜ.ㅜ 진정 필생의 역작!), 오뎅탕 (오랜 시간 국물 우려내기 ㅜ.ㅜ), 월남쌈 (채썰기 죽음 ㅜ.ㅜ), 멜론 (엄청난 해체작업!) 등등을 드신 분들은 스스로를 스페셜 게스트라 여기며 어디 가서 자랑하실만 하다! 최근 나의 요리철학을 배신한 소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주에, 갑자기 상큼한 부추김치가 먹고 싶어서 생협에 부추 한 단을 주문해버렸다. (이미 이 단계에서 정신줄이 살짝 놓였음) 받아본 물품상자에 곱게 놓은 부추를 보고 순간 흠칫했으나, 되돌릴 수 없는지라 월욜 밤에 요리작업 시작... 일단, 부추를 씻는게 영~ 번거로웠다. 나의 평소 전처리과정 철학 (물에 담가두었다가 대충 헹군다)에 부합하지 않는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식물이었다. 겨우겨우 씻어 3등분으로 잘라놓고 나물이 홈페이지를 들어갔다가 나는 기절할 뻔했다! '밀가루풀'이 필요하단다. 이런 경천동지할... 밀가루풀이라니??? 풀칠하는게 싫어서 항상 스카치테이프 쓰는 사람에게 심지어 풀을 쒀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닌가!!!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찬장을 뒤져보니, 아뿔싸... 밀가루는 없고 튀김가루 한 봉지와 녹말가루 약간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rawfish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 중 뭐를 써야겠냐고. 천하의 장금이도 대답을 못하며 망설이더라 ㅡ.ㅡ 그래도 끈적거림의 강도가 튀김가루가 덜할것 같아, 일단 튀김가루로 풀을 쑤었다. 들어나봤나? 튀김가루 풀... 이걸 또 식히고, 마늘 다지고, 기타 양념 추가하여 버무리고 나니까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지나가버렸다. 정말... 슬펐다. ㅜ.ㅜ 허나 놀라운 것은, 하루를 상온에서 익힌 후 다음날 냉장고에 두었다가 맛을 봤는데, 맛이 썩 괜찮지뭔가! 난 정말 요리 영재인가봐??? 하지만 다시는 이런 뻘짓은 안 하리라 결심했다. 양념이 배어 숨이 죽고 나니까 부추 한 단이 작은 밀폐용기 하나도 가득 채우지 못하더라는... 효율이 너무 낮아 ㅡ.ㅡ 끼니 때마다 몇 올씩, 엄청 아껴먹고 있다. 회한의 부추김치!!! * 뱀발... 어제는 비장의 요리 캐슈넛호두멸치볶음 만든다고 간장양념 만드는데, 맛술 대신 식초를 부어 대박날 뻔 했다. 다행이 아직 멸치에 붓기 전에 사태 파악... 정신줄 놓고 사는게 여기저기서 뽀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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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중간중간 극장에서, 혹은 DVD 로 보았던 영화들에 대한 단상 #1. 스티븐 달드리 감독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8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영화라서, 풍부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영화라서 좋았다. [타이타닉]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저 예쁜 배우인줄 알았던 케이트윈슬렛은 해가 거듭될수록 진짜 배우임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것 같다. 그녀가 있었기에 한나 슈미트에게서 그토록 복잡한 이성과 감정의 딜레마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있는동안 [뉘렌베르크 트라이얼]을 보았더랬다. 그 때도 집단 속의 개인, 자유의지, 인간의 본성 이런 것들에 대해 열띤 토론과 고민들이 오고갔었다 (대화가 영어로 오갔다는 나름 어려운 점이 있었다 ㅜ.ㅜ). 이 영화를 보고나서도 함께 본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선/악에 대해 분명한 혹은 단호한 판단을 내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움... 홀로코스트의 '성실한' 공무원(반인륜적 범죄마저도 성심성의껏 집행한!)이었던 그녀가 20년 동안 수감 생활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었냐는 마이클의 질문에 '읽기'라고 답할 때는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20년만에 얼굴을 맞대자마자 과거를 생각해본적 있냐는 마이클의 질문은, 꼭 저 순간에 저걸 물어봐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 우리가 바로 그 질문을 회피했기 때문에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녀의 자살이 온전히 사적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영화평을 보니 원작에서 그녀는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비롯하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회고록 등을 읽었단다. 죽음의 의미는 한결 복잡해진다 ㅡ.ㅡ 진지한 영화 속에서 한 가지 옥의 티라면... 독일어 교재라면서 왜 책들이 다 영어로 쓰여 있는지... ㅜ.ㅜ


#2.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그랜 토리노]

영화가 어찌나 훈훈하던지!!! 어찌보면 미국판 [워낭소리]로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조금 더 '냉정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어쩜 미국이라는 문화적 거리 때문에 내가 좀더 거리를 두고 영화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감정은 정말 특별할 것이다. 그랜 토리노로 상징되는 백인 노동자 계급의 자부심, 집안 가득한 공구 꾸러미, 크지는 않지만 항상 깔끔하게 정돈된 화단과 집안 구석구석, 맥주와 총... 그리고 전쟁영웅... 눈엣가시 같은 다종다양한(!) 이민자들, 부모의 재산만 탐내는 자식들 (거기다 자동차는 일제!), 장례식장에서 휴대전화질에 빠진 개념상실 손주들이라니... 못마땅한 꼴을 마주할 때마다 눈쌀을 찌푸리며 그르렁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은, 참 그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그만의 모습이다. 느끼한 서부의 총잡이가 저리 변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그의 나레이션과 함께 울려퍼지는 노래 '그랜 토리노'는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희망없는 송가처럼 들렸다. #3. 미셸 공드리 감독 [이터널 선샤인] 2004년

은근 호화캐스팅... 짐캐리에 케이트 윈슬렛... 거기에 커스틴 던스트와 엘리야 우드가 조연으로... 참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그러면서도 작은 애틋함들이 살아있는 괜찮은 SF 로맨스 영화였다. 이별 후에 그리움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기억을 지웠는데도,다시금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더구나 상대방은 기억이 온전한 상태에서)이건 좀 많이 비극이다. 영화의 주제는, 결국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고 사랑에 빠질 사람은 다시 빠지고야 만다는 숙명론??? 무너지는 기억들 (무너지는 건물로 형상화된) 속에서 소중한 기억을 지키고자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짐캐리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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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와 컨텍스트 - 기형도

기형도 시인의 20주기가 되었노라고, 백수 (!) 친구를 꼬드겨 책 선물을 받았다. 완전히 자발적인(!!!) 선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ㅎㅎㅎ # 박해현, 성석제, 이광호 엮음 [정거장에서의 충고] 문학과 지성사 2009

사실, 나는 기형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줄 몰랐었다. 그의 인기가 이렇게 드높은 줄 안 것은 최근 몇 년... 몇몇이서만 은밀하게 몰두하는 그런 아티스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이돌이었어... 이런 약간의 배신감도 없지않아 들었더랬다 ㅎㅎ 심지어 얼마 전에 들렀던 대학가 앞 서점, 내 앞에 선 대학생이 계산대에 올려놓은 책은 [기형도 전집]이었다. 저 또래의 학생들과 20년이 넘은 시들이 어떤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붙잡고 물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 세대로서의 공감 책 앞부분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시인들의 대담이 실려있다. 어떻게 그를 만나게 되었고, 무엇에 공명했으며, 자신들의 삶에서 혹은 시에서 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세대론에 그닥 공감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또 비슷한 것에 감흥했던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좀 애틋하게 느껴졌다. 시인의 죽음이 가져온 신비화와 극적 효과를 떨쳐버리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 - 내가 괜히 유행에 편승하는게 아닌가, 죽음으로 인해 그의 시들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외부를 향한 의심!!! - 들에는 참으로 공감이 갔다. 우리는 이미 '요절하기에도 늦은 나이'라는 한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과 '지금 죽으면 그냥 사망'이라는 시시껄렁한 농담마저도 ㅎㅎ 한편으로, 요절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망 시점의 나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정성이 사라진 이 시대, 지금은 어느 나이에 죽어도 요절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참... 80년대 학번들이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낮에는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밤이면 그들이 허용해준 동시상영관에서 에로영화를 즐기는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학교에서는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를 읽고 (또 대자보에 베껴쓰고), 밤이면 기형도의 시를 홀로 읽으며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는 증언...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과 한편으로 (기이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을 얻는 이들이 지닌 윤리적 감수성이 머무는 지점에 바로 기형도 시인이 위치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 어쨌든,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분리될 수 없고, 그것이 부당한 혹은 과도한 아우라를 낳던 그렇지 않던 간에,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시, 또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시를 분리하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것 같다.


# 시인과 시 기형도의 시는 (몹시도) 어두워보인다. 혹자는 그의 시가 죽음을 예감했다고 사후 논평을 하기도 했고, 누구는 또 그 어두움의 기원을 찾으려 애쓰기도 했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 하지만 그의 절친했던 동료들이 이야기하는 그의 삶은 그렇게 멜랑콜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가 어둡다고 시인이 어두운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그 시가 글쓴이와는 아주 무관한 그저 허구의 말장난 인것도 분명 아니리라. 50대 아저씨가 10대 소녀의 아바타로 위장하고 사이버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와 시인의 관계는 약간, 서로 독립적인 것 같다. 이미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 치기어린(?) 단정어를 구사하고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들이 감정의 과잉이나 작렬하는 자기애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일상의 유쾌함과 꼼꼼한 성정 탓이 아닌가 싶다. 예의 그 껄렁한 문장으로 그려진 성석제의 회고는 우리가 대학시절 친구를 추억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 저녁이 되면 시장 안의 술집으로 가곤 했다. 기형도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다보니 알코올의 도움이 없이도 웬만한 술꾼 정도의 주정을 부릴 줄 알게 되었다. 그 재간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았다." ㅎㅎㅎ # 자기 통제와 죽음 기형도는 무척이나 꼼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짧은 여행의 기록] 앞부분에 보면 그의 누이가, 동생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그의 글을 세상에 내보여도 되는 것인지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의 유고시집과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더랬다. 어쩜 이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들을 세상에 알려준 누이와 친구들에게 독자로서의 고마움과, 자기통제를 열렬히 지지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살짝의 원망... 이 양가감정은 뭐다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느날 준비되지 못한 죽음을 맞는다면 과연 나의 생을 온전히 '파악'하고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확신컨데,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ㅎㅎㅎ 특별히 사생활(?)이 복잡하고 비밀이 많은 건 아닌데??? 혹시 다중인격??? 그래서, 통장번호나 연루된 인간관계 종류와 특성, 명단 같은 거를 일목요연하게 만들어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갑자기 포스팅이 삼천포로 흐르고 있다.ㅡ.ㅡ #. 김훈의 글 그에 대한 송가 중 애절하기로는 전연욱의 [안개]가 으뜸인 것 같고, 산문으로는 김훈의 것이 아마도... "... 형도야, 네가 나보다 먼저 가서 내 선배가 되었구나. 하기야 먼저 가고 나중 가는 것이 무슨 큰 대수랴. 기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뒤돌아 보지 말고 가거라. 너의 관을 붙들고 '이놈아 거긴 왜 들어가 있니. 빨리 나오라니깐' 하고 울부짖던 너의 모친의 울음도, 그리고 너의 빈소에서 집단 최면 식의 쌈움판을 벌인 너의 동료 시쟁이들의 슬픔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空)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시인이 살아있었더라면 향년 50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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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의 세월

요새 왜 이리 정신줄을 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출근해서 무슨 일인가를 미친 듯이 해나가는 와중에 (그 중 태반은 잡일이다 ㅜ.ㅜ) 나의 이성적 정신줄과 더불어 영혼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문득문득 든다. 바깥 날씨는 청명하고도 포근하건만, 그토록 갈구하던 호연지기의 약발은 형편없고, 각종 일과 논문은 하염없이 늘어지고... 어데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불안감..... ㅡ.ㅡ 도대체 바쁜 와중에 봄 나들이는 왜 다녀온 건지 모르겠다. 효과가 이틀도 안 가...ㅜ.ㅜ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옮겨본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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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이집트 여행기 나머지 반은 기약없이 멀어져가고... ㅡ.ㅡ 심지어 사진 정리도 안 했는디... 그래도 좀 쉬운 최근 기록부터 남겨본다 # 다시 찾은 백양사... 아마도 3주전쯤 (?)으로 기억되는데,그냥 별 계획없이 훌쩍 백양사에 다녀왔다. 그 유명하다는 벚꽃은 아직 실마리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나, 하늘은 더할나위없이 푸르고, 나무에는 막 물이 오르며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백양사를 찾을 때마다 항상 그랬듯, 들어가는 길과 절집 마당은 고즈넉하기 그지 없었고 뒷산에서는 신비로운 포스가 ㅎㅎ 대웅전 뒷마당 탑 앞에 자그맣게 놓인 동자상... 돌받침 위에 나뭇잎 한장 놓아준 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 좋다는 단풍철과 벚꽃철을 피해가는 것이 쪼금 아쉽기는 해도, 창문넓은 무궁화호 덜컹거리는 객차, 그 한가로운 절집 정경과, 역시 또 한가로운 백양사 역, 장성호를 끼고 도는 그 한적한 버스길... 이 모든 것이 주는 위안은 쫌 많이 소중하다 ... 마음을 어루만져준다고나 할까... 이번 여행에서 추가로 알게 된 것은, 백양사 앞 '사거리'가 네 거리이기도 하지만 행정구역 이름도 사거리라는 사실 ㅎㅎㅎ


# 통영 국제 음악제 출석 점검? 아마도 음악제는 세번째, 출장 겸 나들이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다섯번째쯤 되는 것 같다. 이제 나름 익숙한 곳들도 생겨서, 같이 간 동행인들이 나에게 현지인을 사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괴한 비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ㅎㅎㅎ 지난 번 음악제 때는 엄청 난해한 현대음악을 듣다가 잠시 정신줄을 놓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으나, 이번에는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로비 라카토시 [집시 바이올린]이라는 공연... 장대리께서 현지에서 표를 구하느라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성공하여 공연도 따로 또 같이 즐기고, 주먹도끼를 꼬셔 음반까지 장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ㅎㅎ 리더 아자씨와 바이올린 이주자 빼놓고는 모두 20대의 젊은 피 프로젝트팀이라는데, 20년 연주했다는 늙수그레 아자씨와 20대 주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그 외모란 ㅎㅎㅎ 유쾌함과 애잔함이 공존하는 집시 음악에 완전 매혹되었다. 그 현란한 손놀림들!!! 도대체 얼마나 연습들을 한 거야.... 난 항상 연주자들에게 경의를!!!

달아공원은 마지막 갔을 때와 달리 완전 '정비'를 하고, 휴게소도 커다랗게 짓고 있었는데 예전같은 고독한 맛은 좀 줄어들은 것 같아 아쉬웠다. 정자에 앉아 충무김밥 게걸스럽게 뜯어먹던 여인들에게, '고독'이란 안 어울리는 단어이기는 하다만... 다음 주 (즉 이번주!)에 벚꽃 축제가 열린다했으니, 당시에는 막 꽃들이 기지개를 켜던 시점..... 음악회 끝나고 시민문화회관 언덕에서 몇 장... 꽃들 너머로 보이는 통영항의 모습은, 나에게 있지도 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참...이번에는 충무김밥, 도다리 탕수와 짬뽕, 굴국밥 - 이렇게 3종의 맛난 끼니를 즐겼다. 일정이 충분치 못해 도다리 쑥국, 장어, 꿀빵 등은 아쉽게도....ㅡ.ㅡ * 뱀발.... 이런 거 블로그에 자꾸 올리니까 사람들이 나를 한량으로 아는 경향이 있다. 백퍼센트 틀리다고는 못하겠으나, 그런말 들으면 살짝 억울한 감정이 드는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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