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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병리학]

Paul Farmer < Pathologies of power - health, human right, and the new war on the poor> California University Press 2005 (김주연, 리병도 옮김. [권력의 병리학] 후마니타스 2009)

 

 

 

올해 번역서가 출간되기는 했지만, 미국에 머물던 당시 사놓았던 책이 있어서 그걸 읽었다.

한글판도 있는데 굳이 영문판 읽는다고, 잘난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 비싼 돈 주고 산 책을 냅두고 또 새책을 사란 말이냐... ㅡ.ㅡ

 

약간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외면하거나 혹은 냉소해버릴 수 없는 엄청난 경험과 슬픈 진실,  그리고 저자의 감성적/이성적 분노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천상 임상의사인 그의 직접 서비스 제공 (이걸 pragmatic solidarity 라고 칭했다)  고집 원칙이 가끔 아쉬움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건 사실 당연한거다. 앞에서 당장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원칙이나 법개정이니, 근본적 대책이 어떻고 하는 건 한가하게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이 함께 이루어져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의 강점은, 대부분의 인도주의적 구호/원조활동이 그리는  '따뜻한 마음'과 '불쌍한 사람들' 이면의 구조적 폭력 (structural violence)과 권력의 병리학 (pathologies of power)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른손으로는 자선 활동을, 왼손으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는 신자유주의/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은 매섭다. 한국에서 최근 몇 년 간 한비야 씨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참여를 통해 국제 구호활동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금기....  비록 시간과 공간, 드러나는 현상은 다르지만, Haiti와 Chiapas 의 가난한 이들, 러시아 구금 시설의 청년 수감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은 모두 같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자체의 착취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닥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국제 금융기구의 활동이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어떠한 동력에서 비롯되었는지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음. 하지만 이 책의 초점이 그건 아니잖아?)

 

파머는 국제사회 혹은 학계, 인권운동의 통상적 접근법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원조가 어떻게 독재정권 (Haiti와 Chiapas 에서)의 권력을 영속화시키고 민중들을 고통에 빠뜨렸는지, 인권의 협소한 법률적 해석과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치중한 인권운동이 어떻게 실질적인 사회권 침해로 이어졌는지, 비용효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거부된 결핵 프로그램 때문에 어떻게 러시아 구금시설의 청년들이 약제 내성 결핵으로 죽어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연구자들 혹은 국제사회, 관료들의 이중적 잣대와 위선을 맹 비난하신다 (사실, 미국에 있을 때 이 분 본 적 있는데, 엄청 까칠해보임 ㅜ.ㅜ 훌륭하신데, 같이 일하기는 무서울 것 같음.......내공이나 경험이나....그 무시무시한 포스....) 

특히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피억압 민중과 가해자들의 주장, 그 어디 사이엔가 진실이 있는 것처럼 호도해버리는 가장된 당파성, Haiti 의 가난한 민중들이나 Russia 구금 시설의 수감인들이 결핵 내성을 갖게 된 것은 미신에 쉽게 빠져 근대적 의학치료를 거부하거나 생활태도가 불량하여 약을 잘 안 먹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는 선진국 연구자들의 편견, 비용효과 분석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선진국 국민과 후진국 국민의 목숨값이 다르게 계산되기 때문에 최선의 치료가 후진국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1차 약제를 계속 퍼붓는 비효율적인(!) 원조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와 '전문가들'.... 또한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의학윤리' 분야가 의학 신기술의 적용과 개별 진료행위에는 그토록 뜨거운 논쟁을 벌이면서도 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값싼 약제조차 복용하지 못해 죽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모르쇠하는 것, 축제나 기이한 문화체험에만 초점을 둔 인류학 연구들에 대해서도 막 야단을 치신다... (ㅡ.ㅡ)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인종적 혹은 문화적 특수성에 천착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나 '정체성의 정치학 (identity politics)'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쪽 문화의 고유한 전통이니 우리는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거다. 또한 대개 인종, 젠더, 종교/문화 등에 근거한 정체성의 기저에 도도하게 흐르는 사회경제적 힘을 고려하지 않는 '인정 투쟁'은 충분치 않다는 거다.

 

(참, 본문에 보면, 임상 의사들이 개별 환자 보는데만 매몰되어서 보건의료 체계나 사회적 건강, 공중보건의 문제는 역학자들에게 미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그것도 오해다. 대부분의 역학자들도 이런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  )

 

그래서, 결국 저자의 결론은 무엇인가...

실천적인 방향으로 연구의 의제를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연구'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But remember that none of the victims of these events or processes are asking us to conduct research").

또한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해방신학에서 이야기하는 'preferential otpion for the poor'의 원칙을 수용하고, 건강권을 인권 문제의 중심에 혹은 유용한 잣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실제로, 건강을 매개로 접근하는 것은, 보편적인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또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당장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이를 토대로 지평을 넓혀 나가기에 유리하다.

그리고, 사회권 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연대활동에서 국가나 관료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좋은 뜻이 항상 좋게만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더구나 인권 유린이 일어나는 경우 대부분 국가가 가해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나...........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알리는 것은 배운 자들이 가진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지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싶다. 

관찰과 분석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참여 없이는 진정한 관찰과 분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이나 보건학 분야의 학생과 연구자들.... 그리고 국제연대 혹은 심지어 '봉사활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정도의 경험과, 그 엄청난 경험을 이렇듯 정제된 언어로 정리해낼 수 있는 이는 지금 이 지구촌에 몇 명 없을 듯....

 

* 인용된 Edurardo Galeano 와 Paulo Freiri의 글은 기억해둘만하다.

"   The technocrats claim the privilege of irresponsibility: "We're neutral", they say.  "

"  True generosity consists precisely in fighting to destroy the causes which nourish false 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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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배틀

아까 집에 들어오는 길에 늦어서 택시 탔는데,

기사분이 틀어놓은 DMB 공중파 3사에서 모두 같은 걸 방영하고 있었다.

 

저렇게 몸소 나서서 다 웃겨버리시고 나면,

개그맨들은 뭐 먹고 사나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찮은이 형 갈은 양반이 여드름 터뜨리고 무릎 까져가며 리얼버라이어티를 찍을 수밖에 없는 게다.

 

무차별 자전거 사은품 공세 때문에 거대 신문사와 자전거 소매상이 대립했던 기괴한 과거가 떠오른다.

이제 생계와 안전한 일자리를 두고, 개그맨들과 그 분이 대립하게 생겼다... ㅡ.ㅡ

 

근데, 거기 패널로 출연한 이들의 정체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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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지난 주부터 시작하여 다음 주까지, 정말 일정이 폭주하고 있다. 

 

각기 다른 시점과 배경에서, 또 차마 거절하거나 모른척하기 어려운 정황에서 하나씩 오케이를 한 것인데, 그게 다 비슷비슷한 시기에 몰려 있었던 것... ㅡ.ㅡ

 

금욜 오후/저녁에 강의 두 개 있어서 오늘 미친 듯이 강의자료 만드는데

다다음주 복지부 심포 자료 원고 달라고 담당자가 전화로 애원을 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일은 못 줘요 생떼를 써서 금욜까지 겨우 미루었다.

사실, 다음 주에 있는 역학회 30주년 발표원고도 보내야 한다... 아마 내일쯤 독촉전화가 올 것이다...

건강위원회 워크샵 토론자료도 준비해야 되고....

심지어 남아 있는 수업도 많아...  

 

유기된 논문 두 편이 수정해달라며 책상 한 구석에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건만,

미안하다.... 얘들아....

다른 논문 하나는 책임저자 샘이 주말에 쪼아대는 전화를 하심....ㅡ.ㅡ

 

어쩌지???

왜 이렇게 되었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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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당

토욜 아침에 진보신당 건강위원회 운영위원회가 여의도 당사에서 있었다.

 

보통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환승센터가 크게 들어서면서 막 바뀌고... 예전 버스를 못 찾아서리... ㅜ.ㅜ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진보신당이라 그러면 택시 기사 분들이 대개 모르시기 때문에 

'여의도 딴나라당 당사요" 라고 설명을 하는데..

거긴 도대체 왜 가냐고 물으신다. 

뭐 그냥 대충 얼버무리며, 그 근처에 가는 거라고만 설명드렸는데..

 

도착할 무렵, 한참이나 떨어진 블럭에서 내리란다.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했더니만,

대답하시길, "아, 그 당 꼴보기 싫어서 가급적 가까이 안 가려고 그러지..."

"아.. 네... 뭐 특별히 선호하시는 당이라도?"

 

 

"거긴 빨리 두 나라당이 되어야지.

 

우리 박근혜 씨는 왜 빨리 갈라서지 않나 모르겠네...

저 꼴보기 싫은 인간들... 에휴...."

 

 

아... 네.......................................... ㅡ.ㅡ;;;

그런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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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과의 조우

지난 주말에,

아빠 퇴원하시고 나서 첨으로 온 가족들이 모여 외식이란 걸 했다.

머나먼 일산까지 가서.... ㅡ.ㅡ

추석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조카들과도 반가운 조우...

 

#.

밥 먹다가 5학년인 토끼가 유치원 시절에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이야기하길래,

"너는 그 때가 생각이 나냐?" 했더니만

토끼가 "그럼~ " 하면서 그윽한 눈으로 먼산을 쳐다본다. "그 때가 인생의 황금기였지...."

그 진심과 회한이 담긴 한 마디에 나는 입안에 있던 불고기를 뿜을 뻔했다.

 

생각해보면, 현재 5학년이지만 유치원 3년 포함, 벌써 학교생활 8년째다.

거기다 각종 학교 외 공부들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내가 고등학생 때나 느꼈을법한 '회한'을 이 또래들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긴 했지만, 슬프기도 해... ㅡ.ㅡ

 

#.

등산장비와 관련해서 오빠한테 물어볼게 있어 토끼한테 심부름을 시켰다.

"토끼야, 방에 가서 김씨 좀 오라고 할래?."

"응, 근데 큰거 작은거?"

거실에서 과일 드시던 나머지 식구들 다 쓰러짐....ㅎㅎㅎ

나는 상세 지침을 전달했다. "어, 큰거 오라고 해"

 

#.

언니 친구네 아이가 지난 여름 물에 빠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겼단다.

맨날 백점맞던 아이가 지난 시험에 40점을 받았다고...  참 안된 일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다람쥐가 옆에서 또 마구 장난을 치길래 내가 "우리 집에는 물에 안 빠져도 40점 받는 사람 있는데..." 했건만, 자기 이야기인줄도 모르다가 한참 있다 눈치를 챘나보다.

자기가 요즘 얼마나 수학을 잘하는지 마구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구구단을 13단도 외운단다.

"근데 13단 외워서 뭐하냐? 그거 어따 써?" 그랬더니 발끈 하면서...

"고모는 외울 줄 알아? 그럼 어디 백단 외워봐!" 그런다.

백단이라고? 아이구야...얼마든지올시다! ㅎㅎㅎ

"백일은 백, 백이는 이백, 백삼은 삼백... 더해볼까? 천단, 만단은 어때?"

다람쥐는 약올라 죽으려고 발버둥침 ㅎㅎㅎ

 

#.

3학년인 다람쥐는 공룡의 신비와 진화론을 신봉하는 자칭 무신론자이다.

근데 요즘 성당에 엄청 열심히 다닌다.

좋아하는 여자아이 때문이라고 ㅡ.ㅡ

그거라도 어디냐며 엄마아빠는 칭찬하고,

나는 만날 때마다 악마의 속삭임으로 아이들에게 무신론을 부추긴다. ㅎㅎ (그래서 엄마가 나 미워함)

한창 필이 꽂혀 미친듯이 성당을 다니던 토끼도 (토끼의 엄마는 그걸 '후까시'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진짜 이상한 집안 ㅎㅎ) 요즘은 시들한 상태...

뭐 굳이 말리거나 부추길 필요는 없을 듯...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선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좋다면야 뭐 말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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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상...

 

#1. 웃음을 준 이메일

 

"    선생님, 잘 지내고 계셔요?

     갑자기 말을 걸고 싶어서 그냥 드리는 말씀이에요ㅡ.ㅡ
     선생님은 항상 잘 지내시는 거 같아 부러워요....   "

 

메일 읽고 실소와 박장대소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마구 웃어버렸다. 

뭐 본인이 져야하는 삶의 무게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남에게 이리 보인다니 살짝 어이가 없기도 했으나, 행복해보여서 나쁠 건 없다.

정신줄 놓고 헤~ 이렇게 사는 걸로 보이나???

 

#2. 남자들의 입

 

흔히, 한국 남자들이 과묵하다고 알려져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출장온 서클 후배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기저기서 전화질들.... ㅡ.ㅡ

아빠가 입원하신 것도 우연히 병원에서 마주친 후배 하나랑 이야기했을 뿐인데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니...

 

어찌나 다정다감하고 수다스러우신지.... ㅜ.ㅜ

 

#3. 연속과 단절

 

종의 진화에서 미세한 변화의 꾸준한 축적이 아닌, 단계를 뛰어넘는 급진적 변화가 중요하듯,  

한 개인의 삶에서도 가끔은 급진적 변화나 단절이 필요한 것 같다.

쉼 없는 꾸준한 (?) 인생은 어째 영....

한동안 숨죽였던 wandering spirit 이 다시 깨어나고...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건, 바야흐로 때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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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집단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함수

이번 달 건강정책포럼 웹진에 쓴 칼럼이다.  차례 돌아오는 게 순식간이다... ㅡ.ㅡ

 

인구집단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함수

 

얼마 전,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여론이 들끓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범행의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던 데 비해, 가해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이 참작되어 형량이 예상 밖으로 낮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통해 다시는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화학적 거세에 전자발찌, 신상의 완전 공개 등 사회적 분노의 수준에 걸맞는 강력한 처벌들이 제안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나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강력한 징벌과 재발방지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일련의 사회적 반응 앞에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선구적인 역학자 제프리 로즈 (Geoffrey Rose, 1926-1993)는 유작이 되어버린 [예방의학의 전략 (The Strategy of Preventive Medicine, Oxford University Press 1992)]에서 ‘인구집단의 평균이 일탈의 발생에 미치는 효과’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 인구집단 안에서 개인들 간 변이의 범위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힘과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 사이의 균형에 의해 통제되며, 그 결과, 인구집단 평균의 변화는 전체적인 분포의 이동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52개 국가/사회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인터솔트 연구 (Intersalt Study) 결과를 살펴보면, 인구집단의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상관성은 매우 높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집단의 평균 혈압 수준이 매우 낮은데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경우란 거의 없고, 마찬가지로 집단의 체질량지수 평균이 높아질수록 비만의 유병률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일탈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혈압 같은 신체 건강이든, 인지 기능 같은 정신 건강의 문제이든, 혹은 살인률 같은 사회적 일탈이든 그 양상은 비슷합니다. 보건학적, 사회학적 문제의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극소수의 일탈자들’에게만 국한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분포’라는 연속선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젠더 불평등, 여성의 성적 대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평균’ 수준을 생각해봅니다.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던 정치인이나, 여성 기자를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서 실수를’ 저지른 국회의원,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라며 손님 접대의 소홀함을 부끄러워했던 도지사, 여자 대학생에게 ‘감칠 맛’을 운운하던 교육자께서는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저녁 무렵이면 ‘미녀 ○○명 항시 대기’를 알리는 매우 ‘단란한’ 주점의 전단이 주택가에 뿌려지고, 손가락으로 리모콘만 누르면 작동 가능한 노래방에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계십니다. 대중매체들은 (대중이 원한다는 명목 하에) 10대 소녀 연예인들의 성적 매력을 탐구하느라 여념이 없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 어린이들이 쇼프로에 등장해 선보이는 정체불명의 ‘섹시 댄스’ 앞에서 어른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민관 합동의 파상공세라 할 만 합니다. 한국사회가 가진 의식의 ‘분포 (distribution)’가 어디 쯤 위치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발생률이 낮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몇 년 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이 성별에 따라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남성들은 심리묘사니 미장센, 음악을 칭찬하느라 바빴지만, 여성들은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상황 - 어두운 밤길에 홀로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의 공포- 의 100% 현실성에 공감하며  ‘너무 실감나고 무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인구집단 전체의 분포가 변화하지 않으면서 일탈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분포의 꼬리를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분포 자체의 이동이 없는 한 누군가는 또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잘 알려진 고위험 접근법 (high risk strategy)의 단점입니다. 성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 없이, 극단적 사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만연한 성폭력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프리 로즈의 계산에 의하면, 인구집단의 평균 혈압이 단지 3%만 낮아져도 고혈압과 관련된 임상적 문제의 규모를 25%나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인구집단 전략 (population strategy)의 이 엄청난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의식 분포를 조금 왼쪽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왼쪽’이라는 말에 언짢아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프의 X축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값이 커지도록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분포의 ‘평균’ 수준을 낮추려면 안타깝게도 (!) 왼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악무도한 성(性) 범죄자 대(對) 나머지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이분형 분포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포함된) 현실의 연속형 분포를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집단 관점의 공중보건 전략은 사회적 건강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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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두 분을 추모하며...

 

올해 학술운동(?)의 목표 중 하나가, 건강생활최저소득 (Minimum income for Healthy living) 관련 예비연구를 진행해보는 것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꾸준하게 모임이 지속되었고,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몇 주 후면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6개월 남짓 함께 공부를 하는 동안 당혹스러운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세미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불평등 연구업계에는 Townsend index 로 널리 알려져있으면서, 복지업계에서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개념의 선구자로 명망이 높으신 Peter Townsend 교수가  돌아가신 것이다. 향년 81세.... 부고 기사를 읽어보니,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분..... (부고 기사는 여기)

안타까운 마음에, 부고 소식을 연구자 회람도 하고, 학회 소식지에도 실었는데...

 

엊그저께 또 하나의 부고...

건강불평등 연구업계의 전기를 마련한 블랙리포트의 공저자이자, 우리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건강생활최저소득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신 분인 Jerry Morris 교수가 28일에 돌아가셨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자그마치 1910년 생이시다... 향년 99세..............ㅡ.ㅡ

그럼 2000년도에 MIHL 논문을 제 1저자로 게재하셨을 때, 이미(!!!) 90세였다는 거다......

심지어 2005년 런던스쿨에서 노인을 위한 건강생활최저소득 프로젝트 보고서의 책임자를 맡았을 때는 95세.....  도대체 뭐 드시고 이렇게 총기를 잃지 않으셨다냐?  살아계실 때 그 비법을 캤어야 했다!!!!  나는 지금도 총명탕이 절대 필요한 상황인디?

 

언젠가 친구가,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다 일찍 죽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김현식, 김광석, 들국화의 허성욱, 나는 별로 관심없었지만 듀스의 김성재....

Townsend 나 Morris 교수들이야, 절명하신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한참 그분들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돌아가시다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기는 하지만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건강하게 더 오래 사셨으면, 아마 더 많은 일을 하셨을 분들이다. 여기 젊은이들은 오늘도 스스로의 '연로함'을 탓하며 퍼져있는데..... 부끄러운 일이야!!!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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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과 맥락

살다보면, '실상'을 잘 알지 못한 채 '에이~ 그까이꺼' 하면서 폄훼하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다.

 

마르크스의 적자임을 강조하며 그 분의 뜻을 헤아리는데 공을 들이는 좌파 훈고학계에서 어쩌면 가장 입에 담지 못할 단어는 '사민주의'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훈고학적 지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나같은 변방의 서생조차  '그까이꺼 사민주의'는 (반동보다 더 질이 나쁜) 변절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으니.... 

 

박근갑의 저서 [복지국가 만들기 - 독일 사민주의의 기원] (문학과 지성사 2009) 을 읽으면서, 과연 이 당시 독일 노동자들과 사회민주당의 전략/전술이 정말 최선의, 바람직한 것이었는가 하는 논의를 떠나, 어떠한 고민에서 이런 행보를 걷게 되었는지 (물론 완전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나는 역사적 맥락과 내적 동력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사민주의란 근본적 변혁을 가로막는 개량주의', '조합주의, 도대체 왜 저런 비효율적 제도를?' 이 정도의 단순화 논리만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이 책은, 1848-1914년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 독일의 복지국가 프로젝트가 태동하고 자리를 잡던 그 시기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복지정치'를 둘러싸고 사민주의 세력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해갔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책 한권을 통해 그 복잡했던 시기를 다 이해하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더구나 사람 이름 외우는 데 천부적 무능력을 타고난 나에게, 역사책은 역시.... ㅡ.ㅡ 비스마르크, 라살, 로만, 베른슈타인, 그리고 엥겔스 (!) 말고는 다 그 사람이 그 사람... 헷갈려 죽는 줄 알았음.... ㅎㅎ

 

어쨌든 이 책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사회보장과 (아직 스스로 정의조차 하지 못하는) '공공적' 서비스의 확충을 이야기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백년 전 독일 사민주의자의 문제의식과 딜레마가 오늘날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ㅡ.ㅡ

 

문제의식과 더 공부해봐야 할 것들...

 

* '사회보장'의 근본목적은 무엇인가?

보장 혹은 서비스의 내용을 보자면 사실 비스마르크가 생각했던 '독일 제국의 복지'와 좌파가 꿈꾸는 복지에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좌파 - 당시 사민주의 초기 운동은 비스마르크의 안과 이어진 수정안들에도 격렬히 반대했었다. 이는 '의미론' 투쟁이라 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의 지점이다.

이를테면, 선거전날이 되면 보수우익 정당이나 비교적 급진적인 진보정당이나 사회복지 관련 정책에 그닥 차이가 없어진다. 보수적 온정주의 - 포퓰리즘 - 경제개발의 토대 (인적 투자) -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 사회권 보장 등 목적과 철학적 배경에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과연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이 가진 본질적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 민주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

독일은 왜 북구유럽 같이 조세에 기반한 국가건강보장제도를 취하지 않고, 사회보험 방식의, 그것도 비효율적으로 찢어져있는 '조합주의적' 방식을 택한 것일까? 기존 조합들의 소위 '조합주의적' 활동 지향 때문?

하지만, 보험조합이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시기에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훈련'하는 정치학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자치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공공병원 확충에 대한 고민 속에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모범적인 공공병원 사례들을 돌아보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회민주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백년 전 독일 노동자들의 고민에 비추어본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각종 사회보장 제도/프로그램의 확충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고민은 '어떻게, 누가'라는 부분에 상대적으로 소흘한게 아닐까? 한편으로 국가의 계급적 속성을 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만이 이를 보장하고 운영할 수있는 유일하고 효율적인 주체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한국의 건강보험 통합논쟁에서도 형평성과 효율에 대한 담론은 활발했지만, 민주주의와 참여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가물가물 기억이... ㅡ.ㅡ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남???)  이름은 비슷한 통합/조합 논쟁이지만 당시 독일에서의 논쟁과는 초점 자체가 다른....

 한국사회에서, 각종 국가제도, 혹은 위원회에 공익위원이나 노동계 대표 몇 명 포함시키느냐를 넘어서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뭔가 새로운 논의들이 시작되어야 할 듯 싶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결코 순차적이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최장집 교수의 이야기는 여기에 닿아있다. (공공복지 논의와는 또 별도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통제 문제까지!)

 

* 상호부조, 연대의 원리와 책임성

노동자 계급 내부의 연대, 노동자 개인들 사이의 상호부조라는 원칙과 참여민주주의/자치행정의 운영방식이 긍정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이를 위해 국가와 자본의 기여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사실, 문제의 발생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특히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은, 기업이 부담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사민주의자들이 우려했던 것은, 그로부터 비롯되는 독립성의 훼손.... 말하자면, 물질적인 실리보다는 '원칙' 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현실에서, 성수동 노동자건강센터의 건립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라면 어차피 공적 기금을 제도적으로 지원받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만일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러한 지원을 받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고민하는 대상의 규모는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고 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러한 조직이 목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성수동 센터는 제도로부터 독립된 자치기구를 지향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지난 3년간 고민의 나름 결론.... 과연 적절한 것이여???

 

* 프레임의 인정? 전술과 전략?

독일의 노동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이 복지국가 전망과 의회주의 전술을 채택한 것은 결국 체제 혹은 지배집단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현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급진적 변혁 전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을 얻기 위해 싸울 것인가?

 물론 역사적 경험을 보자면야 전자를 위해 죽기살기 싸워야 후자라도 얻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사후 평론이고, 막상 해당 시기에 어디까지를 전략적, 전술적 목표로 두고 싸워야 할지 판단하기란 참 쉽지 않다. 무조건 최대치를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알아서 깎아주며 싸우다간 그나마도 못 얻기 십상이고.....  물론 팔짱끼고 서서 관전평만 한다면야 가급적 급진적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뽀대가 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무언가 구체적인 답을, 더구나 작은 가시적인 성과들이 모여 큰 흐름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판단을 하기가 참참참 어렵다... ㅜ.ㅜ 백년 전 독일 사민주의자들이 갈팡질팡 했던 것도 참 공감이 되더라니... ㅡ.ㅡ

 

* 사족이지만, 그 시기 독일에서 의회주의와 제도화 전술을 두고 벌어졌던 좌파 진영의 논쟁이 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재현되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참 뜬금없다. 지금은 제목조차 가물가물한 마르크스의 고타강령 비판을 들먹이며, 합법정당과 개량주의 운동을 비판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들을 하고 계실까???

  

* 역시 사족인데,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니고 국내 연구자의 저서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도 고마운 마음... 나도 이런저런 번역 작업을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지식 수입과 중개 노릇은 이제 슬슬 접어야겠다는 반성을 부쩍 하고 있다. 학문적 지평의 확대에서 번역 작업의 소중함을 폄훼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구자로서,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본인의 학문적 성과물을 성찰하고 정리해내지 못하는 미숙함에 대한 자기반성....

 

 

독일 사민주의 이야기하다, 엉뚱한 길로....

저자가 특강 같은 거 한 번 해주심 참 좋을 거 같은디.. 질문할 것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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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정말 기나긴 2박 3일이었다.

대전-보령-춘천-서울-화성-대전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멍 ~~      +.+

 

빨래 돌아갈 동안 맥주 한 잔 하며, 책상위에 쌓여있는 책들이나 치워볼까 했는데 기력이 딸려서 원....

책들을 옮기던 중 책읽는 부흐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꿈꾸는 책들의 도시] 들녘 2005

 

 

 

어쩜 이렇게 깜찍하고 발랄한 소설이 있는지...

책을 둘러싼 레전드급 스펙타클의 진지 버전이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이라면,

이 책은 아기자기 버전의 한 극단....

 

부모님 병세 때문에 병원에 드나들고 정신이 피폐해진 그 시기에,

잠시나마 현실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책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맛깔나게 그려지지만,

그래도, 책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부흐링들의 귀엽고 기괴한 모습은 단연 최고...

마지막에 이들이 등장하던 장면에서는 하마터면 '감동'할 뻔했다. ㅡ.ㅡ

 

책을 읽으며, 부흐링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나만은 아닐 듯...

 

뫼르스의 다른 책들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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