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풍경관람기 - 2004/09/20 00:06

결국 조직의 결의(?)에 따라 14일 여성차별철폐의 날에 참석했다.

(사실 게을러서 집회나 행진 정말 싫어한다...-_-;;;

게다가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잖아...T.T)

 



생각보다 걷는건 꽤 재미있었지만,

구호 외치면서 시민들이 여성의 다양한 차별에 대해 인지하길 바란다는 것이 쩝...

찌라시 하나 준비하지 않고 오히려 근사뻑적지근한 도시락을 준비한 준비팀의 의도(?)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고...

 

걷기 대행진을 마치면서 국회앞에서 간단한 집회가 있었는데,

자화자찬일지 몰라도 그날의 하이라이트가 하나 있었다.

여연에서 준비한 호주제 날려버리기 퍼포먼스는 사회자가 "그만!"을 목청 높게 외치기 전까지 모두들 혼연일체되어 정신없이 즐긴 행사가 되었다.

 

이젠 집회도 문화의 시대다~! 기왕할거면 좀 재미있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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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0 00:06 2004/09/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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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4/09/15 13:49

전통가락에 심취(?)한 자들이 만들 수 있는 동요자락에

할 말 많은 자들이 바꿔놓은 가사...

 

언젠가는 랩이나 락으로 된 민가를 꿈꾸며~~!



♪ 문지기 개사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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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5 13:49 2004/09/1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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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4/09/14 21:48

작품은 찍을 수 없다...~~~!

디카에 남는 건 건물 뿐...-_-;;

여긴 서울시립미술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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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21:48 2004/09/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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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9/14 19:38

* 이 글은 님의 [요코와 해프닝]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오노요코 회고전...

벌써 1년도 더 되었나보다.

나도 그 회고전 봤었는데, 보고 난 감상기 비스므리한 글의 날짜로 봐서는 2003년 7월...

사다리 위의 'Yes'... 나도 왠지 삶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



내가 아는 오노 요코는 존레논의 부인이었고, 오래전 TV에서 퍼포먼스했던 장면을 봤던 것 같고, 영국사람들에게 더럽게 욕 많이 먹었겠다라는 것이다.
이번에 회고전을 한다길래 TV에서 봤던 도도해보이던 요코가 떠올랐고, 일생 너무나도 유명했던 남편 그늘 뒤에 있던 그녀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졌다.
언뜻 봐도 겉멋들어 보이는 상류층 여인으로 내머리속에 남은 그녀를 알아보기 위한 전시회 관람, 이번엔 정말 망치로 몇대 맞은 것 만큼이나 머리속이 많이 깨져버렸다.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해있었다던 그녀, 작품 하나하나가 행동만으로 구현해도, 생각만으로 구현해도, 과정만 해도, 결과만 봐도 되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삶이 심심한 당신 옆에 은근슬쩍 재미있어 보이는 지시문을 한장 날리는 그녀, "너도 해봐, 재미있다"라는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미는 당당하고 따뜻한 그녀, 내가 찾은 그녀는 관람자 옆에 서서 함께 하고, 부담스러워하면 그림자가 되는 그런 사람이다.







들어서자마자 "집을 지으시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사람키가 넘는 아크릴(맞나?) 벽집은 미로처럼 통로가 나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가서 서성거리고 싶은 생각이 들거다.
그래도 식상하다. 이런 작품, 이미 누군가 해본거 아닌가?
그런데 작품설명에 적힌 오노요코의 지시문를 읽어보니 "일몰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프리즘 효과만으로 존재하는 벽으로 이루어진 집"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벽은 빛으로 지어진 벽. 해변가 언덕에 일몰의 햇빛을 받아 이런 벽이 지어져있고 반사되어 무지개가 보인다면?
상상만 해도 멋진 장면이다.

본격적으로 통로에 들어가면 한쪽 벽면에 일본어로 쓰여져 있는 지시문들이 잔뜩 붙어있다.
지시문은 말그대로 그녀의 지시가 적혀있는 글들로, 많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방식이 채택되고 있었다.
지시문들을 "Grapefruit"이라고 부르던데 이유는 모른다. 설명이 없다!

지시문 한장에는 제목과 활동내용이 있고, 활동내용은 1. 2. 3. 과 같은 번호를 붙여 해야 할 행동의 순서대로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1. 담배불로 종이에 구멍을 내라", "2. 꽃을 심어라" 등등..
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사람에 치여 결국 한장도 제대로 못봤다.
벽이 끝나갈 쯤에는 지시문대로 행동한 결과물이 사진으로 찍혀져 있고, 두툼한 "Grapefruit"가 묶여져 책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작품이니 복사본이 나올리 없고, 해리포터의 마법책과 같아 보여서 정말 한권 갖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지시문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다리 작품은 "천장회화(예스회화)"라고, 사실은 사다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천장이 더 중요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매달려있는 돋보기로 천장으로 보면 아주 작게 "YES"라고 쓰여져있다. 이 회고전의 정식명칭도 "YES ONO YOKO" 인데, "YES"란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주지하는 그녀의 중요 모티브중 하나다.
이 작품의 제목은 "못박기 회화"로 오노요코가 작성한 지시문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중 하나이다. 여기 박힌 못은 61년도에 진짜 관람자가 함께 작업한 것이다.
그러나 오노요코의 작품은 결코 전시회에 와야지만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시문에는 "매일 아침 못을 거울에, 유리 조각에, 캔버스에, 나무 또는 금속에" 박으라고 되어 있으니...

그녀의 지시문은 그야말로 "지시적"이다. "***하시오"라는 지시와 "*** 끝납니다"라고 끝나는 시점까지 다 정해버린 이 문장들에 "네가 뭔데 이런 걸 시켜?" 라고 버티면 예술의 향유는 끝난다.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따라하면 그녀가 본 세상을 같이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단히 훌륭하게도 굳이 때와 장소를 가리게도 하지 않고, 직접 행동을 옮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속으로 순서대로 상상만해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작품은 "자르기"로, 예전에 내가 TV 에서 본 퍼포먼스가 바로 이거다. 아마 존레논의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자료화면으로 나왔던 것 같다.
그당시 나의 감상은 서구의 자유주의를 향유하고자하는 동양 여자의 만용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40분정도 분량이라는 퍼포먼스 비디오를 10분정도 지켜봤는데, 완전 쇼크였다.
관람자는 돌아가면서 무대에 올라와 가운데 앉아있는 오노요코의 옷을 가위로 잘랐다.
오노요코는 무표정하게 움직임이 거의 없지만, 간혹 취하는 움직임은 사진과 같이 가슴이 보일까봐 손을 올리거나 다리를 꼬아 몸을 움추리는 행동등이었다.
이건 만용이 아니라 두려움이고 공포였다. 어디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가위의 습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울고싶어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오노요코 작품중에 가장 따라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며,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었다.
벽의 설명문에 보니, 페미니즘 퍼포먼스 역사상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고 적혀있었다.
원래 평화주의자였던 오노요코는 존레논과 만나면서 둘이 함께 평화를 위한 각종 예술 행사를 많이 한 모양이다.
이건은 69년도에 암스텔담 힐튼 호텔에서 한 "침대시위" 사진으로 당시 신혼여행중이었고, 기자들을 초대해 비폭력 저항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뉴욕인가에 어느 건물에 "War is Over"라는 반전평화 간판을 제작하기도 했고, 콘서트도 하고 상당히 다양한 평화운동을 행했던 것 같다.
오노요코는 전남편도 일본인 작곡가여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존 레논과의 공동작품에는 카메라 촬영과 음악을 통해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구하거나 평화를 외치는 작품도 몇가지 눈에 띈다.
전시회 끝무렵에 나타난 이 거대한 체스판 작품의 제목은 "신뢰를 갖고 하시오". 작품 설명에 적힌 지시문은 정말 걸작이다.

1) 자리선택 : .....높거나 낮은 자리를 고르시오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2) 게임진행
3) 당신의 생각을 경기자들에게 전달하려 하시오 .......

높거나 낮은 자리라니? 20석인 의자들은 높낮이가 모두 동일하다. 그나마 친절하게도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등등 의 방법을 적어놓았다.
하긴, 어디서 봐도 나와 가장 가까운 의자가 제일 높고, 가장 먼 의자가 제일 낮구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도 플래카드에 적거나 크게 외치거나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된다.
사실 거대한 순백색의 체스판이 10개에 역시 순백색의 의자가 20개나 있으니,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갖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원래 전시회 입구에 똑같이 생긴 체스판 1개와 의자 2개가 있었는데, 한가족이 앉아서 열심히 체스놀이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둘다 흰말이네. 이걸로 어떻게 놀지?"
평화주의자였으니 적군도 아군도 없는 상태에 대한 해석일수도 있고, 생각으로 구현하는 작품의 완성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긍정적인 사고의 발현일수도 있다.
우습게도 나는 그녀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그냥 이 체스판으로 연습하면 머리속으로 앞의 몇십수를 내다본다는 이창호만큼 뛰어난 체스선수가 될수 있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림, 조형, 설치, 영화촬영, 퍼포먼스, 문장등 실로 다양한 영역을 섭렵하며 관람자와 함께 하는 작업을 해온 그녀는 매우 자유로워보였으나 언제나 자유를 꿈꾸는 자였던 것 같다.
그럼 결론은 "자유롭지 못한 자"였던 건가?
작품 대부분이 지시적이지만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건 바로 관람자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옆에 앉아서 또는 뒤에 서서 "이거 해봐라, 저거하면 끝난다"라고 했지만, 내가 뭘 느껴야 하는지 정해주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은 비폭력적이며 자유를 희구하는 자의 것이다. 느낌의 강요를 만드는 거대하고 웅장한 작품들 내지는 그런 미술평론들 에서 다소 자유롭다.

* 전시장에 대한 뒷다마 :
이 전시회는 시청역 삼성생명빌딩안에 있는 R갤러리에서 한다.
삼성생명빌딩의 웅장함과 앞의 넓은 보도블럭에 감동받은 나는 R갤러리에도 환상을 품고 들어갔는데, 상대적으로 과천의 H 미술관이 얼마나 좋은 미술관인지 깨닫고 나왔다.
공간이 너무 좁아서 주말 사람 북적거릴 때 갔던 걸 매우 후회해야 했고,
퍼포먼스와 설치가 많은 오노요코의 작품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몇번이고 머리속에서 외쳐야 했고,
나가는 길에 상품점을 들려야하는 구조에 삼성이라는 회사 이미지가 겹쳐져 버렸고,
구석구석 웅장함을 더하기 위해 설치된 헛된 공간 낭비에 눈쌀 찌푸려야 했다.

비록 소심하지만 평생 S 라는 기업과는 관계 없을테고 내 글 때문에 관람객 수가 떨어질리도 없으니,
혹시나 전시회 관람후 위에 열심히 적은 나의 감상평은 "뻥카"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책임의 반이상은 전시장이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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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19:38 2004/09/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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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4/09/09 21:56

생각보다 보육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9월 부터 근무한 초짜가 9월 9일 끄적거려보는

노동으로 바라보는 '보육'이란

당연히 이론적으로 정리할 능력은 못되고, 간단한 소개 정도 하자면...

 

 

보육은 이런 노동이다.

 

보육은 잘 알려진 돌봄노동의 하나이고 정서 노동이다.

몇몇 보육교사들이 자신의 직업활동시 가장 절망스러울때를 자신이 '아동 앞에서 감정적인 분노를 제어하지 못할 때'로 꼽는다.

 

보육은 노동 1등급에 해당하는 상당한 육체노동이다.

여러분 아시는지 '애보기'(마음에 안드는 단어지만...-_-)는 노동1등급이다.

예를 들어, 5살짜리 아동 20명을 교사 1명이 기본 오전 9시~오후6시, 초과되는 경우 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까지 보육활동을 하다보면

30,40대에도 그 직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鐵人 또는 哲人 또는 변태(헤헤..^^;;)로 보이게 된다.

 



보육노동자란?

 

보육 노동자는 대체로 놀이방, 어린이집, 탁아소 등등으로 불리우는 시설에서 종사하는 교사, 주방, 재정사무, 청소부등을 모두를 가리키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주방을 제외한 재정사무, 청소부등은 따로 두지 않는 편이라 교사의 보육외 잡무가 상당한 편이다.(물론 주방업무담당도 없는 곳도 있고...)

그도 그럴 것이 근무하는 총 보육 노동자수가 5~10명이내의 어린이집이 가장 많다.

그야말로 소규모 사업장. 따라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면 직장별 노조는 말도 안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산업별 노조만이 살 길이다.

 

 

보육노동자의 근무시간

 

보육노동자의 근무시간은 한국사회 장시간 노동 착취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데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보육노동자의 근무시간 = 부모의 근무시간 + 부모의 출퇴근시간 + @

 

어느날 사회운동과는 아무 관계없는 어린이집교사 친구 하나가 '한국의 전반적인 노동풍토의 재편이 있지 않으면 보육계 풍토 역시 변화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어찌나 실감났던지...

 

보육의 공공성

 

또다시 산수~~~

태어난지 3개월~1년사이의 아이(보통 '영아'라고 불러요)는 교사: 아동 비율이 1:3.

그럼 이 3자녀의 부모는 1인의 교사 인건비와 기타 원장,주방장등의 인건비 일부, 시설이용비, 기타 부대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말도 안되지.

어떻게 보육의 책임을 부모에게만 지우라 하나?

국가는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책임져야 한다.

 

 

보육운동의 지나온길

 

보육운동에 대한 간략사가 궁금한 사람은

childcare 님의 '보육운동의 전망에 대한 단상'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한국보육교사회 홈페이지(http://kdta.or.kr)를 방문해봐도 좋고...

 

 

... 그럼 미진한 건 다음 기회에~~~~ 이젠 좀 진지해져야 할터인데...휘리릭~(~----->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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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9 21:56 2004/09/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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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4/09/09 21:11

며칠 휴가 받아 놀다가 사무실 출근해보니,

어느새 이사 문제가 해결..^___^

적어도 내년 1월까지는 이사문제로 걱정할 일은 없을 듯 싶다.

 

나 몰랐는데, 진보넷은 진짜 정보통신단체 맞나보다.

뭔가 간단한 질문/답변사항에서 기획안 초안부터 마무리될때까지의 모든 전과정이 게시판에 고스라니 남는 온라인 논의체 속에 있다가

오프라인으로 논의하니까 적응이 안된다~!

 

자료를 찾을때도 사무국장 컴터에 한글 파일들 뒤지다가, 모르는 건 구두로 물어보다가...

음... 온라인화 하자니까 지금이 훨씬 쉽대...T.T

워낙 사람이 적은 조직이라 돌아서 바로 의논하면 그만이지만...(그래서 쉽다고 하는게야)

그래도 최근 '달군'처럼 '누가 나 좀 말려줘요' 병에 걸린 나로서는...

"아녀요~~! 자료찾기도 논의과정 이해도 어려워요~!"

 

근데 사무국장 컴터를 뒤지다보면 엄청난 폴더들의 갯수와 depth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 마치 사무국장의 뇌를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다...음훼훼...

 

어떻든 뭔가 검색의 용이성을 위해서라도 빨리 온라인화~!

(하지만 강하게 주장했다가 선전편집도 맡길까봐 자제하게 된다. 자제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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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9 21:11 2004/09/0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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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4/09/08 15:09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

13일엔 선포 기자회견...

14일부터 18일까지는 여성/장애인/비정규직/이주노동자/빈곤,실업 철폐와 추방의날...

19일에 마무리 여의도문화광장에 모여...

 

나름대로 요구사항은 깔끔하지만 추상적인 편인데, 주로 널리 알려 사회적 공감대 불러일으킨다가 목표인 듯 싶다.

참여해봐야 알겠지만 재미있을지, 홍보에 효과적일지 의문스러움.

 

차라리 어머어머한 문화 한마당 같이 꾸며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재미를 갖게 해도 좋을 것 같은데,아니면 활동지원금 조성같은 실질적인 거라도...

 

걷기라니..T.T 중간중간에 뭔가 할 수 있는 체력이나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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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8 15:09 2004/09/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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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4/09/08 14:01

얼마전 놀라갔던 곳에 정말 어울리지 않게 세계의 장승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몇컷~!

 

표정 죽여주죠? 그날의 베스트 표정이었음(O_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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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8 14:01 2004/09/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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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9/06 16:22
* 이 글은 jineeya님의 [회화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다행이다. 회화 몇점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어서...

이럴땐 스캐너 생각이 간절..(O_O)/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2,3층에서 그 유명한 [샤갈]전이 개최되는 동안

1층에서 꽤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 구상회화에 대한 재조명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

 

[삶의풍경(Life Landscape)]라는 제목의 이 전시에서는 황지우 시인의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를 주제로 한 유화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첫번째 구역인 '살찐 소파가 있는 풍경'에 가면 '소파'로 형상화되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숲속에 버려진 디룩디룩 살찐 소파, 거실 소파와 혼연일체된 사람의 모습, 나른한 일상의 모습들..

두번째 구역인 '그 풍경속으로'에 가면 그 '소파'들과 사람들의 이그러진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열된 내장의 소파, 여자를 소파처럼 배고 있는 남자, 소파에 버려진 아이, 흡사 늑대와 같은 고독한 개의 모습...

 

확실히 샤갈의 섬세한 선과 엄청난 색감, 두터운 물감의 질감을 본다면

[삶의 풍경]은 약간 시시해보이거나 상상력이 부족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른한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시의 선율을 통해 오히려 현실을 표현했으되 굉장히 낯선 異공간에 서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샤갈]전을 보시는 분들은 1층의 [삶의풍경(Life Landscape)]전도 놓치지 마시라.

황지우 시인의 '살찐 소파의 일기'가 읊조려지는 전시장안에서 살찐 소파와 혼연일체된 인간의 모습과 그 내면의 고독을 만끽해보시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았습니다/아니, 사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식탁에 앉았더니/아내가  먼저  이 닦고 세수하고 와서 앉으라고 해서 나는/이빨 닦고 세수하고 와서 식탁에  앉았습니다..."

 - 황지우 시인의 '살찐 소파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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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6 16:22 2004/09/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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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4/09/06 15:58

* 펌글 : 한겨레21/미디어다음에서 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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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회화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한겨레] ‘삶의 풍경’전에서 만난 형상회화의 특별함… 예술가의 감각 회복시켜주는 근원적인 힘을 찾아


▣ 유경희/ 미술평론가



 
전시장 내부가 화려하게 변신했다. 전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가 되어, 회화작품이 마치 하나의 점처럼 초록색 방과 보라색 방을 배경으로 걸려 있는 광경은 아주 신선하기까지 하다. 일단 시선 집중에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마치 설치작품인 듯 착각을 일으키는 소파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고, 결코 아름답지 않은 평범한 남자(알고 보니 연극배우 박광정)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시가 배경음악 없이 소음처럼 흘러나온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삶의 풍경’(Life Landscape)전의 인상이다. 삶의 풍경전은 말 그대로 일상의 풍경을 담고자 한 전시다. 전시 제목에서 풍기는 자체로도 관객들은 그것이 형상회화전임을 예측할 수 있다.

황지우의 시를 모티브로 삼은 방
근래 10년 넘게 미술계는 설치미술과 비디오아트 등의 범람으로 회화가 설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회화의 죽음’이라든지 ‘노쇠한 왕’이라는 말로 폄하돼온 회화는 이제 다시 그것의 복권이니 부활이니 하는 화려한 말잔치로 회자되고 있다.

회화가 다시 세계적 조류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추상회화가 아닌 형상회화가 부활하고 있다. 우리 미술계 역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몇년 전부터 회화의 전시가 지속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전시들은 그저 ‘회화’라는 장르 안에 안착되어 있다는 공통감 이외에 이렇다 할 콘셉트나 주제로 범주화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럴 만큼 회화 작품이 드물었다는 뜻이 아니라 전 시대와 변별되고 새로운 콘텍스트를 가진 주목할 만한 회화가 부재했다는 의미이다. 역량 있는 형상회화 작가를 만나기도, 그런 작업을 만나기도 더더욱 어려웠음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한꺼번에 다양한 형상미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위안과 안도감을 만족시키며, 그런 면에서 일단 주목할 만한 전시이다.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군이라든지,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미술 평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전시는 두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가 ‘살찐 소파가 있는 풍경’이고 두 번째는 ‘그 풍경 속으로’이다. 기획자는 첫 번째 방에서는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를 모티브로 일상적인 삶의 내러티브를 담아내고자 했고, 두 번째 방에서는 일상적 풍경 아래에 내밀히 공존하는 삶의 권태나 고독 같은 인간 삶의 심리적 궤적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이전에 행해지던 전시와는 몇 가지 점에서 변별되며, 바로 그 지점이 숙고할 만한 핵심적 관건을 제공한다.

우선 전시 주제의 시발점으로 현대 시인의 시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그런데 황지우 시의 선정이 과연 최적의 선택이었느냐는 점은 좀 의아하다. 물론 이 시의 선택은 사적인 화자를 넘어서 “권태로운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흔들리는 현대인의 자아”라는 사회적 자아라는 상징적 의미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나름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가 대다수 예술가와 대중의 사소한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할지라도, 그 시의 선택이 과연 비천하고 비루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시니시즘적으로 폭로(?)하는 것 외에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가에 대해 물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들은 이 시와 시적 주제를 어쩌면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직설적인 차용과 해석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모든 테마전이 가질 수 있는 한계 내지 결함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작가들의 ‘자아상실감’ 내밀히 드러나
두 번째, 이 전시는 일상의 풍경을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환경으로 구분하여 좀더 세부적인 테마로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물리적인 삶의 풍경과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삶의 풍경은 변별되기 어렵다. 그것은 예술가가 일상을 세밀하고 정치하게 그대로 모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그리고 그 선택이 무관심적인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단지 사물의 표면만을 그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시계에 들어온 모든 대상은 예술가와 어떤 식으로든 내밀한 방식의 심리적 관계를 맺게 마련이며, 따라서 무관심한 선택 역시 미학적 쾌를 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이 소파와 의자 같은 물리적 일상 기물의 등장 여부에 따라 변별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 출품된 작가들의 작품 성향은 어떠한가. 작가들의 작업 형식이나 기법은 다양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왠지 냉소적이고 좀 심각하다.

게다가 그로테스크하며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일상은 그저 지리멸렬한 것, 권태로운 것, 아프고 아련한 것, 공허하고 고독한 것,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것 등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작업에서 요즘 작업에서 중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재미’(fun)의 요소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또 17세기 네덜란드 회화가 보여주었던 풍부한 알레고리적 오브제의 선택을 통한 일상 예찬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새롭고 쇼킹한 형상만으로 관객을 자극하고 놀랍게 하는 것만이 예술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것은 매우 일회적이며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기획 의도의 치밀함에 비해 작업의 다양성(그림은 다른데 느낌이 비슷하다는 측면에서)과 회화의 차원만이 견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아우라가 담보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형상회화라는 드물기만 하던 장르를 통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내밀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돋보인다. 어쨌거나 출품작들은 오랜 불경기와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 사정과 무정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저급한 정치 상황 등 질곡의 삶 속에서 예술가들의 자아 상실감을 그대로 드러낸 솔직한 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새삼 이런 전시를 통해서나마, 작금의 시대를 사는 예술가에게 앙가주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도 다행스럽다. 더불어 왜 다시 회화, 그것도 형상회화인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회화가 어떤 장르보다 예술가의 탁월한 감각을 회복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세계와의 소통으로 나아가는 가장 어렵지만 본질적인 길이라는 고전적인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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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6 15:58 2004/09/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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