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누구의 역성을 들랴...^^...

오늘 포스팅한 것을 보니 추석이라 괜찮은 영화를 보거나 해서

뜻 있게 보낸 것 같다.

그런데 사실상 난 잠자느라 볼일 다 봤다.

그렇지만서도 잠만 내처 잤다는 건 아니다.

(이거 앞 문장 하고 상당히 모순적인 관계에 있는 것 같구만^^...)

 

작년 추석 때부터인가보다.

명절 때만 되면 좀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며느리와 딸 사이에서

누구의 역성을 들어야 하는가이다.

 

좀 얘기를 해 보자면 이렇다.

명절 때만 되면 명절 치르는 노동은 현실적으로 거의 모두 여성의 몫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노동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며느리의 노동이다.

결혼을 하신 여성 분들은 시댁에서 명절 노동만 생각하면

온 몸이 아프다는 말씀을 거의 대개가 하신다.

명절 노동과 관련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아는

이중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며느리와 딸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결혼하신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며느리와 딸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딸로서의 사회적 지위는 며느리라는 사회적 지위와 고까운 관계에 있다.

딸은 며느리가 하는 모든 가사노동을 시원찮게 여길 때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공양해야 하고 남편을 잘 내조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는 일종의 지독한 편견이다)이 있는데,

딸들이 이 통념에 잘 길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딸과 며느리 사이의 다툼은 항상

이 통념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딸들이 며느리라는 사회적 지위에 서게 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며느리는 이제 딸들이 참으로 고깝다.

오죽했으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서로 며느리라는 똑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며느리 대 며느리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 대 딸로 만나는 것이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의 역성을 들어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여성 자아의 분열은 자본주의 가부장 사회의 모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나 딸 둘 다에게 이런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못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나의 무능 탓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내 탓이오> 하고 자빠지는 것은 98% 부족한 일이다.

 

며느리의 역성을 들 것인가, 딸의 역성을 들을 것인가.

며느리의 역성을 든다면, 며느리는 딸과 시어머니의 갈굼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며느리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딸의 역성을 든다면, 이는 가부장제의 화신(마초)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이런 것은 현실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 갈등을 현실적으로 당장에 면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기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박쥐처럼 며느리에게 붙었다가, 딸(시어머니)에게 붙었다 해야 한다.

물론 이게 오래가지 못할 뿐더러 결국에 가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다.

그렇다고 명절을 아주 없애자고 할 수도 없고,

또 명절을 없앤다고 해서 여성의 가사노동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좀 나누어 주시오!!!

 

뱀다리.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잘 모르지만,

결혼을 한다면 당장에 큰일이란 생각에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