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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9
    불혹에 대하여...(8)
    곰탱이
  2. 2006/09/07
    선생되기의 필요조건.(3)
    곰탱이
  3. 2006/09/02
    나-모순된 존재(7)
    곰탱이
  4. 2006/08/22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의 영향.
    곰탱이
  5. 2006/08/21
    처음 불질을 하면서...(8)
    곰탱이

누룽지...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코감기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뜨거운 것이 땡깁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바로 누룽지입니다.

겨울엔 누룽지 차만한 차가 없습니다.

뜨거운 물에 누룽지 한 조각 떨어뜨리면 어떤 차보다도 맛있습니다.

구수한 것이, 참^^...

아니면 밤일 많이 하시는 블로거 동지들이 많으실 텐데,

그럴 때 누룽지가 야식으로서 톡톡히 제몫을 합니다.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붇고 누룽지가 조금 퍼질 때까지

약한 불에 데우면, 참으로 훌륭한 야식이 됩니다.

빵, 라면 등등은 택도 없습니다, 누룽지에 비하면...

 

또한 아이들 간식거리로도 훌륭합니다.

누룽지를 기름에 살짝 튀겨서 입맛에 따라 설탕을 조금 뿌려 두면,

참으로 훌륭한 과자가 됩니다. 아이들 손이 마구마구 갈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해장국 역할도 합니다.

어제 술을 많이 드셨는데, 오늘 좀 늦게 일어났다 싶으면,

세수하기 전에 야식하는 것처럼 불에 올려 놓았다가

드시면 속도 풀고, 속도 든든해지고...

 

뭐, 누룽지의 쓰임새는 더 많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하죠, 흠흠...

(사실 이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ㅋ...)

 

누룽지를 만드는 법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에~~... 이것은 우리 어머님의 비법(?)입니다.

 

첫째, 식은 밥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누룽지가 누룽지답습니다.

 

둘째, 식은 밥을 후라이팬에 물을 살짝씩 섞어가며,

후라이팬 전체로 깔아갑니다.

이때 물을 어느 정도 사용하냐 하면 식은 밥이 죽보다 좀더 진하게

될까지 사용하면 됩니다.

 

셋째, 그 정도까지 물을 이용하여 식은 밥을 후라이팬에 잘 깔고 나서,

불에 올립니다.

이때 처음에는 센 불을 이용합니다.

그리하여 밥 뜸 돌리듯이 살짝 끓게 되고,

한 오 분쯤 지나서 끓음 현상이 없어지면,

불을 약한 불에 놓으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35분~40분 정도 내버려 두면,

이 식은 밥이 누룽지가 되어 후라이팬에서

자기 몸을 일으키게 됩니다.

즉 누룽지가 후라이팬에서 떠들고 일어난다는 것입죠.

 

그래서 누룽지가 만들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도 좋고,

아니면 잘 말려서 두었다가, 차를 마셔도 되고, 야식으로 해서 드셔도 좋고,

아이들 과자 만들어 주어도 좋고, 해장용으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참, 누룽지 해 좋으시면,

아침 잠을 좀더 주무실 수 있을 것 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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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을 우리의 나아갈 바의 지표로 삼자!!! (1부)

어제 밤에 첼시와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이 경기의 해설자가 그러더라.

웨인 루니라는 맨유의 선수가 2012년까지 맨유에 남는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1주일에 2억이라더라.

그러니까 하루 일당이 3천만 원쯤 되어라. 3천만 원이면 내 4~5년치 강사료이더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나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처럼 아주 값싼 질 낮은(?) 노동력을 받은 아이들의 미래 노동력 역시 아주 값싸고 질 낮은 노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 값 싸고 질 낮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어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무릇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값 비싸고 질 높은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임금이 계속 상승해야 하며, 그러한 노동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 위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이신 대중이 형님이 말씀하셨다.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고부가 가치의 산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고부가 가치 산업을 육성시키자면 값 비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대중이 형님은 고부가가치 인력으로 하여금 고부가 가치의 벤처 산업을 이끌게 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이 아이엠에프를 넘어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는가.

하여간 고북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값 비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루니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의 실질 소득이 팍팍 올라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모든 방면의 박사가 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질 좋은 노동력은 일단 신체가 건강해야 한다. 무릇 체력이 국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국민의 건강에 또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상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치료제는 최소한의 비용만 내게 해야 한다. 물도 최상급만 마시도록 하며, 최적의 자연환경을 유지하도록 환경보존에 힘쓸 일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하여간 최상의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본 신>의 대리자인 국가가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한다.

<자본 신>은 말씀하신다.

"국가 경쟁력 확보가 곧 나의 제림이니, 나의 제림을 바라지 않는 자는 지옥불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국가 경쟁력 확보가 곧 질 좋고 값비싼 노동력의 생산이니, 이를 어기는 자들은 <국가 보안법>으로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공공교육을 소홀히 하는 자들, 임금을 삭감하려고 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몰고 가려는 자들,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하여 노동자의 건강을 손상시키는 자들, 모든 걸 민영화하려고 획책하는 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니, 이들에게 <국가 보안법>을 적용하여 중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

 

그런데 이런 <자본 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이 가끔씩 있다.

그리하여 <자본 신>께서는 99마리의 양보다는 1마리의 이런 철딱서니 없는, 길 잃은 1마리의 양을 위해 또 다른 복안을 내 주신다.

 

"나의 재림은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너희의 뜻을 받아들임이다. 너희가 이것을 따르겠느냐! 만일 너희가 이것도 따르지 않으려 한다면 세상의 종말을 고하리라!"

 

그리하여 우리의 자비로우신 <자본 신>께서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또 다른 복안을 내시니, 그것이 이름하야 <가격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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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얼마 전에 참으로 좋아하고 보고 싶은 선배를 만났다.

그런데 그 선배와 같이 술자리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선배가 무척이나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운 사람과 같이 있는데도 그립다니...

옛날 유행가 중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유행가가 있었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같이 있어도 사무치게 그립다는 것은 대체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뱀다리> 이 글을 여자친구가 읽는다면 난 죽음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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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나야 하는 이유...

요즘 거의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도 없지만^^)

나의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첫째이자 마지막 이유인 것 같다.

 

아... '이번에는 이걸 소재로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글을 쓰려면 하기가 싫어지고, 이따 써야지 하면서

세월만 죽이고 있는 거다.

 

사실 이런 귀차니즘과 게으름에는 내가 글을 잘 못 쓴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늘 부럽다.

나도 한번 저렇게 글을 써 봤으면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물론 글은 써야 느는 것이고,

그걸 잘 알지만서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글을 쓰면 남들처럼 쌈빡하게 써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글을 있는 그대로 써야 하는데,

표현에 신경 쓰고 논리의 형식에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열 받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글을 쓰는지 한심해지고...

그러면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지금 글 쓰기 전까지 자기 글을 쓸 생각은 않고,

남의 글을 기웃기웃하다가 덧글도 잘 달지 않는다.

갑자기 블로그는 왜 만들었을까 하는 회의도 들고^^...

 

이게 아마도 학교 다닐 때 일기 쓰는 습관을 제대로 기르지 못해서일까...

갑자기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참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잘 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ㅠㅠ...)

 

하여간 어쨌거나 한소리 듣거나 혼이 많이 나야 한다는 느낌이다.

철딱서니가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일까...

<철>이 드는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철이 들지, 원...

그래야 산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원...

 

누가 나를 좀 혼내 줄 사람 없소?!

 

덧글 : 좀 있다 6시 30분에 야자(야간 자율학습)가 곡차 파는

<반달집>에서 있다. 거기 가서 아이들한테도 좀 혼이 나야 할 것 같은...ㅠㅠ...^^...

혼나는 곰탱이를 보시고 싶으신 분은 연락 주시라.

그래서 혼나는 대열에 참가해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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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대한 발칙한 상상^^...

어제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젠 뭐 결혼식에 갈 일이 별로 없고,

초상집에 자주 가는 일이 많다.

결혼식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재미 있어야 할 결혼식이 하나도 재미 없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장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결혼식은 아주 복잡하기 짝이 없다.

뭔가 웅성웅성대지만, 잔치집 같은 왁자지껄한 흥겨움이 없다.

또한 아주 기계적이다.

축의금 내고 결혼식 잠깐 보다가 식 끝나기 전에 밥 먹으러 간다.

밥 먹고는 할 일 없어 집에 그냥 온다.

 

그러나 초상집은 좀 다르다. 

초상집은 일단 가면, 결혼식처럼 번잡스럽지 않다.

일단은 분위기가 조용하다.

그리고나서는 음식을 대접 받는다.

그런데 음식 대접 받는 것이 결혼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결혼식에서는 자리(자리가 곧 돈이다) 때문에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밥을 같이 먹어야 하고 빨리 먹고 나가 주어야 한다.

그러나 초상집은 동무들과 시간 맞춰서 갈 수 있고,

가서는 동무들과 좀 왁자지껄하게 사는 얘기도 하고,

곡차도 한잔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아는 사람과 두런두런,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맘 편히 얘기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결혼식엔 안 가도 초상집은 꼬옥 간다^^...

 

아, 참 할 얘기가 이게 아닌데...

지금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다가 삼천포로 빠져도 할 수 없다^^...

 

결혼식은 일단 잔치집 분위기가 나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결혼식 형식을 과감히 깨야 한다.

먼저 결혼식장 같은 닫혀 있는 공간으로부터 빠져 나와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공간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요거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민중 노동 진영의 각종 집회를 이용하면 딱이겠다.

에~~~ 우선, 집회 신고를 결혼식으로 하면 되겠다.

그러면 집회 불허는 거의 없지 않을까...

그리고 결혼식을 한나절 정도 잡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종 깃발(각 조직 별로 축하 메세지와 사회 문제를 알리는 메세지가 어우러진 깃발; 예) ***.*** 결혼식에 비정규직 웬말이냐! 비정규직 철폐하자!, 이 결혼의 최고 축의금은 정규직 전환! 등등...)들이 입장하고, 여러 동지들의 입장. 그런 다음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 입장, 신랑 신부 입장...

 

그런 다음 주례 선생님을 모시는데...

요기서 문제제기!

왜 주례는 남성이 서야 하는가!

아~ 그리고 사회는 왜 또 남성이어야 하는가!

이참에 확 바꾸어서 모두 여성이 한다면 분위기 쇄신되지 않을까!

*^^*...

그럼 여성 주례 선생님 주례사하시고, 여성 사회자께서 마이크 하객들에게 돌리면,

하객들은 결혼식 축하 인사와 더불어 작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절하게 통일시켜서

한말씀씩 하시고, 어떤 분들은 투쟁가로 대신하고, 어떤 분은 시 낭독을 하시고,

어떤 분들은 짤막한 촌극이나 마당극을 하시고...

여러 형태들의 축하 인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하객들은 삼겹살 굽고,

소주잔 막걸리잔 돌아가고...

 

축하 인사가 곧 문화제이고, 문화제가 곧 흥겨운 잔치가 되고...

일석삼조? 에이 잘 모르겠다...ㅎ...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혼식의 틀을 바꾸면 우리 집회의 틀과 삶의 틀이 바뀌어

결국 세상이 바뀌지 않을래나*^^*...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뱀다리 : 만일 이렇게 결혼식이 이루어진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결혼하고 싶다!

근데 결혼은 너 혼자 하냐!!! 아~~~ 나에겐 해당사항 없음인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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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쪽팔려!!!

azrael님의 [꿈] 에 관련된 글.

고양이 님의 꿈 내용과는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트랙백을 걸어 본다.

 

어제 밤에 꿈을 꿨드랬다.

그런데 너무 쪽 팔리는 꿈이었다, 기분도 좀 거시기하고...

새벽에 깨어나서 너무 창피해서 그 이후로 잠도 못 잤다.

 

지금부터 꿈 얘기...

 

꿈의 핵심적 내용은 내가 공금을 횡령해서 사적인 데에

내 마음대로 썼다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학회의 분과(맑스분과)에서 난 분과장으로 있다.

(명색이 분과장이긴 하지만, 지금은 거의 활동을 쉬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학회에서 분과 지원금으로 한 달에 30만 원씩 지원을 해 주는데,

내가 그걸 사적으로 내 개인을 위해서 썼다는 거다.

(이건 꿈 속에서 그렇다는 얘기고, 사실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내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나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 중 한 사람이

나를 엄청나게 몰아부쳤다.

(오늘 그 선배랑 강의 끝나고 점심 같이 했는데,

꿈 얘기를 할까 하다가 창피해서 관뒀다. 나중에 함 해 봐야겠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나를 잘 아는 형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항변했다.

그리고서 내 통장을 조사해 보면 알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 선배는 막무가내였다.

너 같은 놈은 아예 학회에서 활동을 못 하게 해야 한다면서,

윽박지르면서 주먹을 올려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서는 학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공금을 횡령했다고

공개적인 자리(학회 심포지움 자리였던 것 같다)에서

나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적이 없는데,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는 것 같았다.

 

더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를 잘 아는 선후배들까지 나를 위해 변호를 해 주기는커녕

모두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쌩을 깠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리고 질질 짤면서 사람들에게 말도 못하고...

그 비난의 소리와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러다가 잠이 깼다.

아~~~! 이런 개떡 같은 꿈이 있나!!!

 

그런데 더 개떡 같은 일은 내가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질질 짰다는 것이다.

 

왜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싸움할 생각을 못했는가!!!

뷰웅신...

왜 질질 짤고 난리였냤 말이닷!!!

 

아~~~...

쪽팔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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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지하철에서의 단상...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뚝섬 역쯤 왔을까...

한 어머니와 아이(아들)이 지하철 문이 열지자마자

쫓기듯이 들어와서는 노약자 석에 앉았다.

그 노약자 석에는 나이 지긋하신 중년 부인이 중간에 앉아 계셨는데,

그 아이가 노약자 석에 앉자마자 그 중년부인을 마구 밀쳐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엄마를 옆에 앉히기 위해서...

그런 광경을 보고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 아이의 행동을 말리기 시작하고,

중년 부인께서는 어찌 할 바를 모르시다가 마주 보이는 노약자 석에 앉게 되셨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그 중년 부인께 미안하다는 눈웃음을 보내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아이가 좀 아픈 아이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중년 부인께 하는 행동을 보고

그 아이가 아프고 있겠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자폐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자폐증이 아니라면 다른 병일 수도...

(보통 자폐증 아이들은 엄청나게 소리를 지르던데,

그 아이는 소리는 지르지 않더라...)

 

아마도 그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학교로 등교시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어머니도 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어머니께서는 주위 사람들을 굉장히 의식하고서

끊임없이 미안한 눈웃음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아이가 아픔으로 해서 그 어머니께서도 아프신 것 아닌지 하는 생각에...

오전 내내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 아이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쓸데없이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면서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병을 같이 앓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아마도 모르겠지...

그러다가 자신의 병이 다 나아서 알게 된다면...

그 아이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하는 생각...

그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러다가 만일 알게 된다면...

그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멍이 들고 새까맣게 타들어갈지 하는 생각...

그 두 사람의 상처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날도 추운데, 더더욱 추운 아침이었다...

 

뱀다리 : 물론 두 사람 다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잘못 보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눈빛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내 자신이 너무 무능하다는 것을 절감한 너무도 추운 아침...

 

잘 살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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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같던...

알토란 같던 중간고사 휴가(?)가 다 끝나 버렸구나...

휴가의 마지막을 알차게 보내려 했다가

마지막 뒷풀이 자리에서 미친 개한테 물린 것 같은 기분 더러움이...

얼른 추스려서 새로이 나머지 남은 학기를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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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더이다^^

미류님의 [Red] 에 관련된 글.

You scored as Green.



Green is mostly associated with 'envy' but it best suits the description of freshness, rebirth and renewal. You believe that sometimes it is best to start things fresh just for the energising buzz an adventure gives you. And this is what you are all about; adventure. You love exploring, testing the limits and reaching out to what is out there.

Green

78%

Blue

67%

Purple

56%

Red

56%

Orange

50%

Pink

50%

White

45%

Black

39%

Yellow

34%

내가 나를 모르는데, 이게 정말 내 모습일지는...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고... ^^...

믿으시거나 말거나*^^*...

제가 좋아하는 색 중의 하나가 녹색이긴 한데,

녹색보다는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더 좋아하는데...

다시 함 해볼까나^^...

근데 귀차니즘 때문에 할 수 있을까?

 

뱀다리 : 트랙백을 누르긴 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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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이 글은 <작은 책 06년 11월호>에 실리 글 중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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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11 사태 이후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부시를 비롯한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테러 단체나 테러 국가는 이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이들에게 저항하는 모든 세력들을 의미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국가는 단연 사회주의권 국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 중에서도 좀 만만하다 싶은 제3세계 사회주의권 국가이다. 미 제국주의에게 이들 국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미 제국주의는 자본의 최대한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반면에, 이와는 정반대로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최상의 가치로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3세계의 사회주의권 국가들 중 중심이 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쿠바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권 국가인 쿠바를 이끌어 낸 중심인물들은 바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 하면 모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 받는 사회인 줄로만 안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양의 탈을 쓴 전체주의 사회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산술적인 평균치로 모두 획일화시키며 개인들의 개성을 말살시키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독재 국가, 독재국가=테러국가쯤으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암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위에서 말한 그런 사회가 아니다. 만일 사회주의가 이런 사회라면 맑스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 풀고 통곡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인간이 적대적 경쟁 속에서 ‘기계화되고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의 삶을 끊임없이 지향하는 사회를 말한다. 즉 끊임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 과정 속에 있는 사회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를 지향했던 사람이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였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고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체와 피델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체와 피델은 그 첫 번째 노력으로 경제에서의 생산관계를 문제 삼고 이 생산관계를 바꾸려고 하였다.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며 소비하느냐’ 하는 경제에서의 생산관계는 인간의 모든 삶과 그 양식인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체와 피델은 토지를 비롯한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서 모든 민중에게 민중의 필요에 따라, 즉 공공의 필요에 따라 생산물을 공급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했다. 이러한 생각과 실천은 모든 산업과 기업이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처럼 채산성에 그 목적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이 사회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이러한 것에는 민중 자신이 자본주의형 인간으로부터 사회주의형 인간으로 새로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이 빠져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민중 자신의 생산과정이 빠져 버리게 되면, 여전히 민중들은 자본주의의 문화, 정치 등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삶에 익숙해지게 돼서 이후에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민중 자신이 사회주의의 커다란 장애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체는 “야수 같은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을!”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민중 자신의 생산과정은 동료들에게 나눔의 마음과 공동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그리고 공동의 사회적 과업을 성취함으로써 개인으로서 민중 자신의 자기의식을, 즉 인간으로서의 자기의식(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도 배제되고 소외되지 않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체계, 즉 민주주의적 관계가 유기적이고도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초기부터 문맹 퇴치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이런 쿠바의 노력에 대해 프랑스 주요한 환경운동가 중의 한 사람인 르네 뒤몽은 1965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은 완전한 기쁨 속에서 실현되었다. 그것은 그토록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던 노동자 대중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들이 보여 준 문맹 퇴치 운동에 대한 집념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민중 자신의 자기 생산과정은 코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쿠바에서는 이러한 코뮌 형태가 협동농장과 같은 협동생산 체제, 그리고 이러한 체제에 맞는 교육 체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코뮌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코뮌을 구성할 수 있는 물적 기초가 있긴 하다. 그 물적 기초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그 자체가 코뮌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임노동자’의 연합체이며, 조합원들 자신의 자기 생산이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가족 형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코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이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쿠바의 경우를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으며, 따라 해서도 안 된다. 이는 체와 피델, 그리고 쿠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다. 쿠바와 우리의 삶의 물적 조건은 아주 다르다. 체와 피델은 이러한 생각 위에서 쿠바만의 물적 조건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이는 체가 정통 맑스주의의 주장처럼 사회주의 혁명 2단계에 따른 첫 번째 단계인 민족부르주아지 혁명의 단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코뮌이 가족이건 국가이건 간에 개별적인 하나의 형태에 머물러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코뮌은 그 태생 상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연대의 과정 속에 있어야 한다. 쿠바는 자신들만의 사회주의적 코뮌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사회주의권 국가와 제3세계 국가와의 교류와 연대를 추구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체와 피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물론 체가 쿠바의 소련 핵무기 배치의 문제에 대한 소련의 태도와 관련해서 피델과는 다른 길을 갔지만 말이다).
이러한 쿠바의 끊임없는 연대의 노력이 미 제국주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쿠바라는 국가 코뮌을 유지시키면서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되었다. 체는 체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제3세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세계 연대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피델은 피델대로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묵묵히 밀고나가 최근에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와의 민중무역협정 체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민중무역협정은 자본주의 무역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본주의 무역 방식은 채산성, 즉 얼마만큼 최대한 자본의 이익을 낼 수 있는가에 초점이 있다면, 민중무역협정은 각 국가의 민중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공공재를 필요한 만큼 교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쿠바는 모든 산업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연료인 천연가스와 석유가 필요하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의료와 교육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쿠바는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 교육과 의료 자원인 교육자와 의사, 그리고 쿠바의 교육, 의료 시스템을 제공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쿠바에 천연가스와 석유를 제공한다. 이것이 이들 세 나라가 맺은 민중무역협정의 기본 골격이다.
이러한 민중무역협정이 세 나라의 민중들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바꾸는 기초이며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인간과 삶의 양식, 나아가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의 현실적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여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사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코뮌을 구성하기 위한 틀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어떠한 생산물(우리 자신을 포함해서)도 제공하지 못하고 또한 그들로부터 어떤 생산물도 받을 수 없다. 설령 생산물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삶의 양식과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우리 자신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야수 같은 자본주의 세상을 원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원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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