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살기

from 말을 걸다 2010/08/04 23:42

1.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발생한 한반도 긴장상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으로 한 숨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성명에서 제기한 것처럼 “직접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지,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번 기회에 ‘손을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간 보수 세력들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지는, 장담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와 협상’, ‘평화와 우애’를 더욱 힘주어 이야기해야 함에도. 덮어놓고 ‘빨간색’을 칠해대니 말입니다.

 

2.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밭에 다녀오는 길. 골목길에서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앞, 뒤 가리지 않고 자동차들이 불쑥불쑥 나오는 골목길인지라 그날도 조심조심 속도를 줄였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탓에 ‘어, 어’ 하는 외마디만 지른 채 그대로 차문을 자전거로 받았지요. 다행히 왼손 검지가 까진 것 외에는 다친 데가 없었지만. 자전거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섭게 돌진해대는 차들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요번엔 봐주지 말아야겠다, 마음먹고 있는데. 일단 병원으로 가자, 자전거도 수리하자, 거듭 죄송하다며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머,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실수했다는 걸 인정하니…….’ 그래, 웃으며. ‘괜찮으니 틀어진 자전거나 고쳐봅시다’하고는 말았지요.

 

그리고는 다음 날 저녁. 또 밭에 다녀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어제 사고 낸 사람인데. 괜찮으냐. 죄송한 마음에 전화했다. 내일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 뭐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사고가 난 날도 그랬지만. 전화를 받았던 그날도. 꽤나 기분이 좋았답니다. 비록 그 전화가 있고 난 며칠 후. 사고 때문인지는 정확치는 않지만. 왼쪽 어깨며, 목 부근이 자고나면 뻐근한 게. 그 좋은 기분이 오래가진 못했지만요.      

 

3. 

성격상 웬만한 일은 그냥 ‘허, 허’ 웃고 잘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참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차들을 볼 때, 관공서에 마주친 어깨에 ‘빡’ 힘들어간 공무원을 볼 때, 일당 받고 파업 현장에 들어와 깽판 치는 ‘어깨’들과 마주쳤을 때, 2MB이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찬성하는 이들과 얘기할 때가 그렇습니다. 자칭 ‘평화’를 옹호한다고 블로그 이름도 ‘자연은 평화다’라고 해놓고는. 작정하듯 달려들어 싸울 태세인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이거야 원. 남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입니다.    

 

4.

장마철로 접어들면 온통 밭은 풀천지입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대체 뭘 심은 거냐며 물어오던 호밀이 무섭게 크다 한 풀 꺾여 좀 나아 보이긴 하지만. 오백 평, 천 평 밭농사 짓는 농부님들이 보면 참 우스운 지경이지요. 하지만 농사란 것이 원래 인간이 먹을거리를 기르기 위해 다른 풀들을 강제로 땅에서 몰아내는. 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석유로 만든 비닐이며, 비료며, 기계를 써가며 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풀이 조금 자랐다고 농약까지 친다면야. 남들이 들으면 어디 그래가지고 시골에서 손가락질 안당하며 살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겠습니다.     

 

5. 

역시 한 달 전쯤 이라고 기억합니다. 대낮 남춘천역 앞에서 대판 말싸움을 했지요. 의정부에서 오신 어머님도 계셨고 해서.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아마 고 며칠 전 사고 기억이 겹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뻐근한 목이며, 어깨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졌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득달같이 좌회전해 들어오는 차를 보고는 삿대질에 쌍욕을 했던 겁니다. 젊디젊은 우리야 그렇다 쳐도. 나이 드신 어머님이 채 횡단보도를 건너지도 않았는데 무섭게 질주를 해대니. 순간, 도저히 참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 한바탕 욕을 한 겁니다.

 

헌데 이 운전자. 욕 들어 먹은 게 분했던 가요. 짐작컨대 꽤나 한참이나 길을 돌렸을 터인데도. 차를 돌려 세우더니 왜 욕을 하느냐, 며 말을 거는데. 달려드는 차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 생각은 통 하질 않는 것 같더군요. 해서 속된말로 맞장을 떴습니다. 또 치고받고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봤다면. 정말 재미난 싸움 구경이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게 10여분이 넘게 말다툼을 하다 어찌어찌 겨우 다시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이란 게 얼마나 오래 가던지. 그게 그 운전자에 대한 분노인지, 불같은 성질을 낸 것에 대한 자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6. 

예상했던 대로 지방선거가 끝나고, 유엔에서 성명도 나오고 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안함’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네요. 호들갑스럽게 ‘응징’,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던 보수 언론들도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대화’나 ‘협상’을 얘기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수한 ‘침몰’ 의혹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면서도. 동북아 안보를 핑계로 일본 자위대까지 참관한. 항공모함을 동원한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고구마를 심은 이랑 사이를 기다시피해가며 풀을 뽑으니. 훤하니 보기는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구마가 줄기를 마음껏 뻗을 수 있겠거니, 싶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손에 뽑혀져 나간. 이름 모를 풀들이며 꽃들이 밭 한쪽 귀퉁이에 쌓여 있는 걸 보니. 그리고 또 이 풀, 꽃들을 터전으로 살았던 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니. 영 개운치만은 않은데. 그것도 잠깐. 옥수수 사이로 콩 사이로 삐죽삐죽 올라온 풀들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무지막지하게 낫을 휘둘러대고 있습니다.  

 

요즘은 목이 아파 자주 밭엘 나가지 못합니다. 또 가더라도 자전거보단 버스를 타고 가지요. 그리고 고구마 밭 김매기도 끝난지라 딱히 급하게 할 일도 없었기에. 어제도 느긋이 집을 나섰습니다. 헌데 첫 번째 신호등에서 한 번. 타고 가는 버스가 또 한 번. 신호등에 횡단보도까지 무시하고 달려드는 승용차에, 버스에. 어찌나 열불이 터지던 지요. 이번에도 쌍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이것 참, 이래저래 ‘평화롭게 살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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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23:42 2010/08/0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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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ㅁㅈ 2015/08/05 21:14

    춘천역 싸움, 이게 벌써 5년 전이구나 ㅎㅎ
    이제 이러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