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⑥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4월 27일)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불과 지난주,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 바람이 쌩쌩. 한옥학교 가는 길과 학교가 있는 대관령 꼭대기, 진부엔 눈까지 내리고. 도로 겨울이 오나 싶을 만치 쌀쌀한 날씨가 계속됐었는데. 모처럼 걷기를 한다고 소문이라도 났나. 하늘은 맑고 바람은 솔솔. 이게 무슨 조환가 싶다.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송양초등학교 앞부터 시작된 임도가 죽헌저수지에 이를 때쯤, 막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와 숨이 가쁘고 땀이 몽글몽글 뒷덜미를 타고 내려올 그때쯤. 이미 시내엔 벚꽃과 개나리가 자취를 감췄건만. 그래서 벼르고 별렀던 왕벚꽃도 구경하지 못했었는데. 솔바람을 타고 흐드러지게 맑은 물 위로 떨어지는 하얗고 빨간 꽃망울들. 모처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눈이 호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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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봄철 날씨가 변덕스러운 거야 원래 그랬거니 싶으며 넘기는 경우가 일쑤다. 예컨대 시베리아기단이니 북태평양기단이니 하며 세력싸움 탓으로 돌리거나. 일사량이니 복사냉각이니 하며 일교차가 큰 이유를 설명하는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언제부턴가 봄과 가을은 그 계절을 느끼기도 전에 삼복더위와 동장군에 밀려나고. 최첨단 슈퍼컴퓨터가 있어도 급작스런 폭우와 폭설을 알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지니. 이만하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다 설명이 되질 않겠다. 물론 이런 이상 현상들에 대해 기후가 변화해 그렇다는 말들도 있지만.
 
일주일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차를 끌고 대형 마트로 가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과일이며 생선을 카트에 담고.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났을 뿐인데도 넘쳐나는 푸른 채소들을 골라내고. 크고 선명한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 집 텔레비전도 바꿔야 하는데, 잠시 쉬기도 하다. 삼겹살에 갈비살, 닭가슴살 통조림까지 사고 나면. 요동치는 날씨는 그저 애꿎은 기상청 탓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신사임당길 들머리에서 산만한 덩치를 가진 개 때문에 뒤돌아 갈까도 했었는데. 죽헌저수지를 지나 농로로 접어드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누렁이 한 마리. 삼십분 넘게 개 사라지길 기다리다 겨우 출발. 헌데 외따로이 떨어진 어떤 집 앞에서 다시 들리는 개소리에 또 멈칫.
 
전에는 마을이 얼른 나오길, 사람 흔적이 보이길 했는데. 요즘은 마을이나 집 근처를 지나게 되면 어디서 개가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대부분 묶어 놓고 있기는 하나. 워낙 크기도 하거니와 소리도 무진장 커 움찔움찔. 동네 길을 걷는 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피해를 주는 일이니 조심스레 걷는 게 당연하겠지만. 본의 아니게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 자체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사방 대나무가 있어 그 이름과 걸맞은 죽림사 근처를 지나는데, 푸른 대나무 사이로 검은 오죽이 드문드문 보인다. 근처가 오죽헌이라더니 역시 그 이름값을 하는 가보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 오늘은 저기까지만 이다,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런 둔치는 공사 중인데 길 끝엔 굴삭기가 가로막고까지 있다. 게다가 차들은 어찌나 쌩쌩 달리는지. 막바지에 와서 고생이다.
 
하지만 조금 늦은 봄맞이 길이었던 신사임당길. 시내엔 개나리꽃이 지고 벚꽃도 보이질 않았지만 봄을 느끼기에 안성맞춤. 이어지는 길도 더 늦기 전에 걷고 싶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두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1구간 신사임당길은 위촌로 송양초등학교에서 시작해 허난설헌 생가터까지 이어지는 16.3km 길이인데 이날은 오죽헌까지만 걸었다. 거리로는 9.7km, 시간은 천천히 봄을 만끽하며 걷느라 4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 가고, 오고
강릉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참조.
 
* 잠잘 곳
11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가면 경포해변인데 이곳에 숙박시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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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2:00 2013/09/25 12:00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금까지 역사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걸어온 자취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진보(進步)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가령 석기시대니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호모오일리쿠스로 진화하거나 수렵채취와 정착농경을 거쳐 산업혁명, 정보사회로 변화했다는 그 어떤 설명이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니 하는 현생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이 역사를 대략 46억년 정도라고 알려진 지구의 나이와 비교해본다면. 그렇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티끌만치도 안 되는 시간을 기록한 것이며, 인간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주는 게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출현한 직후뿐만 아니라 그 이전 지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인간 이외 다른 동물과 식물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저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추정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이 지구상엔 문자를 쓰는 종(種)이 인간뿐인지라, 어찌 보면 그런 서술방식밖에 나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클라이브 폰팅은 이런 역사 서술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쓴 <The Green History of the World: 녹색세계사>에는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에선 외면했던 이야기들, 아니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문명을 건설했다고 알려진 이스터 섬 사회가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를 시작으로 진보의 역사 뒤에 숨겨진 파괴의 역사를, 인간이 출현하면서부터 시작된 지구 환경 파괴의 역사를 써낸 것이지요.
 
더불어 폰팅은 역사란 인간이 걸어온 자취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상호 관련된 지구 환경을 함께 기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에야 만이 인류라는 종 앞에 놓인, 아니 지구 앞에 높인 환경 위기에 대해 ‘녹색’ 문명사적 반성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환경 상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책은 많아도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나 환경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결정지었는지에 대해 서술한 책은 거의 없었으며, 기초까지 파고들어 가서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 책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 역사를 ‘녹색’ 시각에서 보는 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p.12

 

글을 쓴 이는 제1세계인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녹색’ 주제가 단순한 자연 세계의 상태에 대한 문제가 자원과 에너지의 사용, 빈부의 격차,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 가의 문제,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임이 틀림없다면. 좀 더 솔직한 반성, 좀 더 솔직한 고백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폰팅이 우려하는 것처럼 제3세계 나라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지 않으려면 제1세계 나라들의 뼈아픈 반성과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굶주리고 있는 제3세계 나라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식량과 부를 넘겨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들이 다른 사람들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걷어차는 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녹색세계사>는 지구 환경 위기에 대한 녹색문명사적 해석과 반성을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지구 환경 파괴의 역사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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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16:43 2013/09/15 16:43
여름 내내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전부터 사람 많은 휴가철엔 어딜 다니지 않았기도 했지만. 작년부턴 한여름을 어찌 보내야 하는 게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 된 후론. 올 여름엔 또 어찌 보내야하나 고민고만하다. 가까운 모루도서관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제쳐놓고. 명색이 국립대학교인 강릉원주대 도서관을 찾아낸 후, 바로 여기다 싶어. 더위 피하러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때마다 해먹어야 하는 밥도 싼 값에 해결하고, 에어컨 설정온도가 27-28도이긴 해도 집보단 훨씬 시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공간에 책 속에 파묻혀 있으니, 이거야 말로 제대로 된 피서가 아닐까요.
 
그날도 아침부터 내리쬐는 해를 피해가며 도서관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도 그렀고 그 전날도 그랬을 게 틀림없는데. 눈에 보이질 않던 송충이가 그날따라 발밑으로, 조금 과장해서 발 옮길 틈도 없이 빽빽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보니 헉, 꽤나 많은 송충이들이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에 짓이겨 죽어 있는 게 아닙니까. 하자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 마음 참 간사한 게, 나무 그늘이라고 벗었던 모자를 얼른 집어 쓴 거 아닙니까. 아무튼 저 만치 버스는 오는데 발을 어디로 떼야 할 지 모르겠고, 가만 보니 바람에 떨어지는 송충이들도 있는데. 혹여 이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연신 모자와 옷을 털어대고.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요.
 
매미나방 애벌레는 등에 노란 줄무늬가 특징인 우리 토종 벌레랍니다. 생긴 게 색깔만 다르지 송충이와 비슷한데. 요놈들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출몰해 사람들이 놀래 신고를 많이 하는데요, 올 해도 여기저기서 나타나긴 했나봅니다. 하지만 유충 때를 지나 성충이 되면 크게 나무에 피해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유충이라도 자연생태계에 특별히 유해하지 않다고 하는데. 일단 출몰만 했다하면 어떻게든 눈에 안 보이게 해달라는 말들이 많아서인지 서둘러 방역에 나서곤 합니다. 단지 징그럽다는 거 말곤 딱히 죽여야 할 이유도 없고. 죽은 시체들 때문에 바위나 의자에 앉지를 못한다는 것 빼곤 치워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날 본 벌레가 송충이인지 매미나방 애벌레들처럼 다른 애벌레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겉모양만 봐선 다르다고 하는 말만 듣는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도로 주변에 소나무 대신 플라타너스가 죽 심어져 있는 걸로 봐선 송충이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송충이도 다른 낙엽송을 먹는다고 하니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어쨌든 방제 덕택인지 요즘엔 보기 힘들었던 송충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니 놀라기도 했는데. 거의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란 게 고작. 여긴 약 치지 않나 보군, 이었으니. 그게 송충이인지 애벌레인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저 징그러운 해충일 뿐인 것이었겠지요.
 
언제부턴가 우린 벌레 한 마리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년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방역차를 불러내고. 집집마다 뿌리는 것도 모자라 빛으로 유인해 태워 죽이는 것까지 설치하지요.  단지 생긴 게 징그럽다는 이유로. 또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대고 불태우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애벌레와 송충이는 어김없이 내년에도 다시 나탈 겁니다. 모기와 파리, 쥐, 바퀴벌레가 결코 박멸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다만 독성은 강해지고, 내성은 커질 뿐입니다. 결국 새들마저 외면하게 될 애벌레와 송충이들은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만들 것이고. 자연생태계는 그 균형을 잃게 될 겁니다. 벌레와 함께 그 많던 새들도 보이질 않잖아요.
 
비가 오고 나면 길에 온통 지렁이가 꿈틀댑니다. 날이 더워진다 싶으면 송충이가 출몰하구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모기가 극성이고 가로등 밑으로 나방들이 몰려듭니다. 하지만 딴 데서는 보기 힘든 참새 떼가 날아드는 모습도 볼 수 있구요.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아침, 저녁으로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도 함께 들을 수도 있답니다. 맞습니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여긴 먹을 게 참 많거든요. 그래서요.
 
내년 여름, 송충이가 우수수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도서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재미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됩니다. 까짓 송충이가 대수겠습니까.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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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14:11 2013/09/06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