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고 있다. 항공·호텔 등 위기업종뿐만이 아니다. 숙박 및 음식점, 교육서비스업 등 대면업종 전반에 걸친 문제다.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은 최대 180일이다. 정부지원이 끊기는 시점, 고용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
정리해고 노동자의 현실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보다 참혹했다. 주인공 성기훈(배우 이정재)의 모델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다. 쌍용차는 2009년 노동자 976명을 정리해고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성기훈은 우승상금 456억에 목숨을 걸었다. 반면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가족들은 11여 년간 복직 과정에서 30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법은 정리해고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법 조항이 없는 건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25조 ‘우선 재고용권’은 정리해고한 사용자가 신규 채용 시 해고자를 우선 재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할 구체적 방안도, 사용자를 강제할 방안도 없는 실정이다.
제25조(우선 재고용 등) ①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 사용자는 해고 날부터 3년 이내에 해고자 담당 업무의 신규 채용을 할 경우 해고자가 원하면 그 해고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유명무실했던 우선 재고용권에 법원이 숨을 불어넣었다. 대법원은 최근 우선 재고용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의 손해배상 책임을 최초로 인정했다. 아울러 실질적인 규제방안까지 제시했다.
국회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법원 판결취지를 살려 우선 재고용권의 실효성을 담보할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해당 안을 대표발의 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단계적 일상 회복, 이른바 ‘위드 코로나’ 시기 필수적인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정리해고’ 회복하려면
누굴 고용할 건지는 사용자 재량 아닌가. 정리해고 사업장은 아니다. 정리해고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경영위기라는 사용자 측 사정으로 직장을 잃은 상황이다. 이에 법은 회사 사정이 나아졌을 때 사용자에게 정리해고자를 우선 재고용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대다수 정리해고자는 우선 재고용되지 못했다. 법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여했지만, 노동자의 손쉬운 권리행사를 위한 조건까지 마련되지 못했다. 정리해고는 한 번에 대규모로 진행되고 재고용은 여러 번에 걸쳐 소규모로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 개별 노동자가 재고용 가능성, 재고용 시점 등을 알 수 없다면 권리행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우선 재고용권이 주목받는 이유는 도입 당시와 비슷한 고용위기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우선 재고용권은 IMF 직후인 1998년 정리해고 규정과 함께 법에 명시됐다. 윤미향 의원은 “그때 당시 맥락과 코로나 시기 우리가 겪는 맥락이 비슷하다”며 “노동자들이 대량 정리해고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며 발의 배경을 말했다.
다만 지난 1일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작된 만큼, 대면 접촉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재고용 수요가 회복될 수 있다. 윤 의원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제자리로 돌아갈 때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우선 재고용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재고용권 길 열어준 법원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우선 재고용권을 위반한 사업주의 손해배상책임을 최초로 인정하고 위반 기간 평균임금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장애인 복지시설 정리해고 사건이었다. 시설법인은 2010년 6월 경영상 이유로 생활재활교사(생활부 업무) 2명을 해고했다. 이후 4개월 뒤부터 정리해고한 지 3년이 되는 날까지 수차례 걸쳐 생활재활교사 10명, 사무국장 1명을 신규 채용했다.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우선 재고용권 입법 취지를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행사할 방안을 적시했다. 개정안은 이런 판결취지를 살리면서도 판결의 한계를 보완할 방안도 담았다. 윤 의원은 “대법원이 입법 근거를 줬다”고 말했다.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우선 재고용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먼저 조항부터 살핀다.
이 조항들은 대부분 대규모로 진행되는 정리해고의 특징을 간과한 법원 판결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3심 모두 시설법인의 고용의무가 발생한 시점을 최초 신규 채용이 이뤄진 때로 보지 않았다. 대신 누적 2명이 신규 채용됐을 때부터 고용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리해고자 2명 모두 재고용우선권을 가진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다시 말해 우선 재고용의무가 발생하는 시점은 해고자 수와 신규 노동자 수가 같아지는 때라는 판결이다. 판례에 따르면 신규 노동자가 해고자보다 적다면 재고용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사건 경우 해고자가 2명이라서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대규모 정리해고 사업장이라면 다르다. 국민입법센터에서 활동하며 개정안 논의에 참여한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100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된 사건에 이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사용자는 99명까지 신규 채용해도 재고용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개정안 논의는 실제 재고용 효과가 발휘될 수 있도록 개별 노동자가 쉽게 권리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데 집중됐다. 사전에 정리해고 기준·일정을 정하는 것처럼 우선 재고용 기준·절차 등도 협의하는 게 첫 번째다. 협의한 내용은 정리해고처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이때 노조 가입·고용형태 등으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도 놓치지 않았다.
다음은 사업주 통지의무다. 대법원은 신규 채용과정에서 사업주 통지의무를 인정했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갈렸던 지점이다. 1심은 “우선 재고용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는 채용절차를 고지하고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봤다. 반면 2심은 사용자 통지의무에 근거가 없다며, 오히려 노동자가 의사를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대법원에서 결국 뒤집혔다.
개정안은 한발 더 나아갔다. 신규 채용뿐 아니라 해고 시점부터 재고용권의 존재를 알리고 노동자가 공석의 업무·채용계획 등을 질의하면 답변하도록 했다. 이런 통지의무를 어긴 사용자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대법원 판결보다 한걸음 나아간 개정안
또 다른 쟁점은 업무의 동일성 판단이다. 해고자가 해고 당시 담당했던 업무와 ‘같은 업무’를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시설법인은 해고자가 담당했던 생활부 업무가 아닌 행정 담당 생활재활교사를 신규 채용했기 때문에 재고용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1·2심은 해고자가 인사이동할 수 있었던 업무까지 사실상 같은 업무라고 봤다. 1심은 “주된 내용에 차이가 있어도 같은 수준의 직업 능력·자격을 요구하는 경우 같은 업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실제 시설법인은 행정교사와 생활교사, 사묵국장을 서로 전환배치 했다. 생활교사가 공석이 되면 기존 행정교사를 배치한 뒤 행정교사 자리에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해고 당시 업무와 똑같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고용의무를 피하려는 사용자의 꼼수를 받아준 셈이다.
이에 개정안은 전환배치를 포함해 해고자가 담당할 수 있었던 업무까지 재고용 대상 업무로 명시했다. 게다가 새로 직업 자격을 취득한 경우 그 자격에 적합한 공석의 업무까지 포괄하도록 했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도 일치한다. ILO 제166호 협약은 ‘유사한(comparable) 직업 자격’을 가진 노동자가 재고용 대상이 된다고 정했다.
윤미향 의원은 “이번 법안을 만들 때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라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을 텐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ILO와 선진국이 정한 선진 사례에 대해 우리도 따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꼭 통과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함께 어려움 겪었다면 혜택도 함께 누려야”
이 외에도 개정안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동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명확히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우선 재고용 대상 노동자가 아닌 다른 노동자를 최초로 채용한 때부터 재고용 의무를 이행할 때까지 ▲해고 전 평균임금에 대해 배상하도록 해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바뀌지 않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은 여느 때보다 통과 가능성에 기대가 모인다. 2012년 쌍용차 정리해고의 문제가 불거지고 제19대 국회부터 관련 개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기준점이 마련되지 않은 점이 이유로 꼽히는데, 최근 대법원 판결이 이 문제를 일정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정안은 환노위 노동소위에 올라가 있다.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도 우선 재고용권을 보장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만큼 원활한 논의가 기대된다.
윤미향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경제가 어려울 때 (노동자들이) 쉽게 해고되고 경제가 나아졌을 때 여전히 희생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어려울 때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면 나아졌을 때도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바로 이 법이 내포하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윤미향 의원이 발의한 정리해고자 우선 재고용권 관련 법안 바로가기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병가제도와 상병수당: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정리해고자 재고용권:‘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야간노동 제한: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⑤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