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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피해의 역사가 '가해의 면허' 될 수 없다

유정길의 생명정치

ecogil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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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학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이스라엘

기억을 팔아 권력을 잡는 ‘홀코코스트 산업’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이스라엘 우익의 정치자산이 된 홀로코스트

할리우드와 서사권력-500편 영화가 만든 세계

홀로코스트 기억의 독점으로 다른 학살 주변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주권적 발언의 정당성

유대인 편들기 아닌 고통받는 이들 편에 서기

4월 16일, 레바논 나바티에에서 이스라엘군이 공습을 한 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4.16. 로이터 연합뉴스

홀로코스트 자행하는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반유대주의인가채

2023년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2026년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7만 2300여 명의 사망자와 17만 20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서안지구에서도 약 1000여 명이 사망하였고, 레바논 역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000여 명 이상이 숨지고 9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2024년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1653회 이상의 공격을 감행하여 하루 평균 5회꼴로 공습을 이어 갔으며, 이란·미국 간 휴전 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레바논을 재차 공격했다.

2026년 2월 28일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 파괴와 정권 교체를 목표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함으로써 본격적인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테헤란과 이스파한 등 이란의 주요 도시를 공습했고, 이란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 본토와 인근 미군 기지, 나아가 쿠웨이트·UAE 등 주변국에까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그 이전인 2020년부터 2025년 사이에도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250여 차례 이상, 서안지구에 900회 이상의 군사 작전을 전개했으며, 예멘에 48회, 걸프 국가 카타르에까지 공격을 가했다.

가자지구 사망자 7만 2000여 명 가운데 80%가 민간인이며, 그 중에는 저널리스트 248명, 학자 120명, 구호 활동가 224명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 사망자의 56.2%가 어린이·여성·노인이었다. 레바논에 대한 공습은 헤즈볼라를 넘어 민간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강타했고, 이란에 대한 직접 군사 타격으로까지 이어지며 중동 전체가 전면전의 위기에 직면했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학교가 무너지고, 유엔 구호 시설이 표적이 되는 장면들이 전 세계 화면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4월 10일 이스라엘의 행태를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분명한 정부 입장에 이스라엘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앞두고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을 규탄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과연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행위인가? 홀로코스트 피해자라는 역사적 사실이 현재 자신들이 벌이는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스라엘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환원하는 논리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함으로써 그 희생자들을 어떻게 모욕하는지를 살피는 글이다.

 

나치 독일군의 유대인 집단학살. 구덩이를 향해 않혀 놓고 뒤에서 총을 쏘아 죽였다. 위키피디아

인류 최대의 비극, 홀로코스트 - 이스라엘의 강력한 정치적 자산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다. 나치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아우슈비츠,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등 절멸 수용소에서 벌어진 살육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잔혹함의 극한을 상징한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이러한 살육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도덕적 의무이다.

문제는 이 비극이 언제부터인가 이스라엘 국가 권력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으로 배타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의 건국 서사를 정당화하는 핵심 논거가 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곧 홀로코스트 부정 내지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는 담론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사실상의 '홀로코스트 면죄부'가 되었다.

이 구조는 매우 교묘하고도 공고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을 비판하면, 즉각 '나치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유대인의 역사적 고통을 강조하는 일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가리는 방패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평화 운동가 아모스 오즈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피해의 역사가 가해의 면허가 될 때, 그 피해의 기억은 치유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그리고 그 무기는 지금 가자의 어린이들을 향해 겨누어져 있다.

기억을 팔아 권력을 잡는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정치적으로 도구화되는 현상을 가장 정면으로, 용감하게 비판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학자였다. 미국의 정치학자 노르만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은 2000년에 출간한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The Holocaust Industry: Reflections on the Exploitation of Jewish Suffering. Verso, 2000. 한국어판: 『홀로코스트 산업—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한겨레출판, 2004)』에서 미국 유대인 기득권 집단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조직적으로 산업화하여 정치적·재정적 이익을 취해왔음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핀켈슈타인의 부모는 모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으며, 그의 친척 대부분은 나치의 손에 살해당했다. 그는 어머니의 실제 경험과 미국 유대인 기관들이 공적으로 재현하는 홀로코스트 서사 사이의 극심한 간극이 있다고 판단하여 연구를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논지는 충격적이다.

홀로코스트는 (1948년 건국부터)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 약 20여 년간 미국 유대인 사회에서 그다지 중심적인 의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거대한 정치적·문화적 산업으로 부상한 것은 1967년 이스라엘의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집트·시리아·요르단 영토를 점령하여 국제적 비판을 받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다시 말해, '홀로코스트 산업'의 본격적인 가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에 대한 국제 여론의 비판을 차단하고, 미국 내 유대인 기관들의 정치적·재정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에서 추동되었다는 것이다. 핀켈슈타인은 이 과정을 '기억의 착취(exploitation of memory)'라고 규정한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 위키피디아

홀로코스트 산업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세가지 층위

첫째, 보상금 산업이다. 핀켈슈타인은 전후 독일 및 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한 홀로코스트 배상 협상 과정에서 미국 유대인 기관들이 실제 생존자들에게 돌아갈 보상금을 조직적으로 착복했다고 고발한다.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 중 실제 생존자들, 특히 노년의 가난한 생존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극히 미미했고, 상당 부분은 각종 유대인 기관과 로비 조직의 운영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이름으로 거둔 돈이 정작 피해자가 아니라 그들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기관들에 의해 소비된 것이다.

둘째, 기억의 독점이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SHMM)은 연방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지만 사실상 미국 유대인 기관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이 기관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역사상 전례 없는 유일한 사건이며 다른 어떤 역사적 참사와도 비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유일성 테제'가 만들어지면서 아르메니아인 학살, 르완다 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나크바 등 다른 집단학살과의 비교를 사실상 금기시하는 담론이 생산되었다. 이는 다른 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주변화하며, 이스라엘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셋째, 이스라엘 국가의 절대성 강화다. 반유대주의의 위협을 과장·확대함으로써 유대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즉각 반유대주의로 규정하는 낙인 찍기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한 정치인·학자·언론인은 '반유대주의자' 낙인과 함께 조직적인 압박을 받았다. 핀켈슈타인 자신도 이 연구로 인해 드폴 대학에서 종신 재직권을 거부당하고 사실상 해고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정당화하고 미국 내 유대인 기관의 정치적·재정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핀켈슈타인이 말하는 '홀로코스트의 이데올로기화'이다.

한편 미국이 중동을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친미 국가를 필요로 했고 그 역할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 이데올로기에 적극 부응하고 동조하는 역할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그리고 이 '홀로코스트 산업'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하는 무대가 바로 미국 할리우드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포스터들. 나무위키

할리우드와 서사 권력 - 500편 홀로코스트 영화가 만든 세계

이스라엘의 정치적 영향력은 군사력과 외교력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할리우드를 통해 형성된 서사 권력은 어떤 군대보다 더 넓은 영토를 지배해왔다. 홀로코스트 산업이 학술·정치 영역에서 작동한다면, 할리우드는 그것을 전 세계 대중의 감성과 무의식에 심어넣는 가장 강력한 전달 기제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는 약 500편에 달한다. 〈쉰들러 리스트〉(1993), 〈피아니스트〉(2002), 〈인생은 아름다워〉(1997), 〈사울의 아들〉(2016)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들은 유대인의 고통과 생존을 전 세계 관객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예술의 역할은 소중하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방대한 서사 생산이 만들어낸 '인식의 불균형'이다. 수백 편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쌓아 올린 세계적 공감의 정서 위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은 언제나 '비참한 역사를 딛고 선 정당한 자기 방어'로 프레이밍된다. 반면 팔레스타인의 삶과 역사, 그 서사는 주류 미디어에서 철저히 주변화된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다룬 영화는 몇 편이나 있는가? 가자의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캄보디아 킬링필드, 벵골 대기근,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다룬 영화는 몇 편인가?

미국 영화산업과 주류 미디어 내 유대계 인사들의 영향력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영향력이 특정 서사를 구조적으로 선호하고 반대 서사를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할리우드 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을 했던 배우·감독·작가 상당수가 에이전시 계약 해지, 캐스팅 배제, 소셜 미디어 압박 등의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이 불균형한 서사 지형 위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동으로 '악당'의 위치에 놓인다. 비판자는 먼저 해명해야 하고, 결국 뒷전으로 밀린다. 이것이 서사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미국 내 많은 대학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비판한 교수들이 반유대주의자로 고발당하고 해고 압력을 받은 사례가 이어졌으며,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과 싸워야 했다. 핀켈슈타인이 예언하고 분석했던 이 메커니즘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비판을 혐오와 동일시하는 이 메커니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정당한 공론장을 봉쇄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 구분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형태의 여론 조작이며, 홀로코스트 산업의 가장 음험한 성과이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촉발된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지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일본군. 나무위키

홀로코스트 기억의 독점과 다른 학살의 주변화

홀로코스트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홀로코스트를 '비교 불가능한 유일한 비극'으로 성화(聖化)시킴으로써 다른 집단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주변화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집단학살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15년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150만 명 추정), 1930~4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과 강제 집단화로 인한 대규모 아사 및 학살(700만 명 추정), 1975~79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200만 명 추정), 1994년 르완다의 100일 학살(80만 명 추정),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잃은 나크바(대재앙)까지. 이 모든 비극들은 홀로코스트 서사의 압도적인 문화적 존재감에 가려져 훨씬 적은 국제적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나크바는 이스라엘 건국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진실임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부정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우리의 비극은 기억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만든 비극은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중 기준이 국가 정책의 수준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기억의 보편적 교훈은 '유대인을 다시는 박해하지 말라'는 특수한 교훈이 아니라 '어떤 민족이나 집단도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교훈이어야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이 보편적 교훈을 특수한 면죄부로 축소시킴으로써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진정한 유산을 배반하고 왜곡한다.

나치의 피해자가 나치가 되는 역설

역사는 때로 끔찍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또 다른 민족에게 자신들을 가해한 나치와 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깊은 슬픔과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의 이동을 통제·차단하는 게토(ghetto)를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으로 만들었다. 수십 년에 걸쳐 식량·의약품·연료 반입을 봉쇄해온 것이다. 나치는 점령지에서 레지스탕스 1명이 독일군을 죽이면 인근 마을 주민 50~10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집단 처벌(collective punishment)을 실시했다. 이스라엘군 역시 하마스 대원 한 명을 잡기 위해 아파트 전체를 폭격하는 동일한 논리를 적용한다.

나치는 유대인을 '해충'에 비유하는 비인간화 언어를 구사했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human animals)'이라 불렀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아말렉(악마)을 멸절하라'는 구약성서의 구절을 가자 작전과 연결지어 인용했다. 비인간화 언어가 학살의 예비 단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나치즘의 역사에서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이 같은 비판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전직 총리 에후드 바라크는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만 유지하려 한다면 아파르트헤이트로 가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은 2021년 공식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과연 이들(비판자들) 모두 반유대주의자인가?

'피해자성의 무기화'는 도덕적 무한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당한 고통이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홀로코스트 산업이 아무리 강력한 서사 권력을 구축했다 해도, 그 서사는 병원에 떨어지는 폭탄 앞에서, 잔해 속에서 아이를 안고 우는 어머니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의 눈빛 앞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스라엘 외무부 측의 반발을 겨냥해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이 대통령 엑스 게시글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 주권적 발언의 정당성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판한 것은 외교적으로는 이례적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지극히 정당한 발언이었다. 그간 한국 정부는 국제 분쟁에 신중한, 사실상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이스라엘과의 방산·외교 협력, 국내 보수진영의 친이스라엘 기조 등 여러 정치적 고려가 작동해 온 것이다.

이 침묵의 구조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의미 있는 균열이다. 국제법상 민간인 보호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주권 국가의 지도자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외세의 폭력과 점령이 무엇인지 체험한 나라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과도 깊이 공명한다.

이스라엘 대사관의 항의는 예상된 반응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비판 봉쇄 메커니즘'의 전형적인 작동이다.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등치시키거나 외교적 불이익을 시사하며 압박하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정당한 비판을 잠재우려 하는 것이다. 이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국제 공론장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미 이스라엘의 행태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했다. 노르웨이·스페인·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했다. 유엔 총회는 압도적 다수결로 가자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이 이 흐름과 함께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국제인도법과 기본적 인권 가치에 대한 지지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나아가 한국이 중견 국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도 읽힌다. 그간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종교계·학계·예술계는 이미 팔레스타인과 가자 전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2026년 3월 19~21일에 진행된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에서도 '생명평화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가자 전쟁' 세션이 마련되었다. 이스라엘의 항의는 오히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더욱 분명한 입장을 갖도록 촉구하는 역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홀로코스트의 교훈 — 유대인 편들기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 편에 서는 것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홀로코스트를 신성시하는 것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유대인의 고통을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자행되는 집단적 폭력에 저항하는 보편적 양심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교훈은 '다시는 어떤 민족도 이렇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기억은 새로운 폭력의 면죄부가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동력이어야 한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녹색불교연구소 소장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며, 동시에 더 많은 이들과 국가들이 이 침묵을 깨길 촉구한다. 진정한 반(反)나치즘의 정신은 유대인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학살당하는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홀로코스트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고통스럽지만 가장 필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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