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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철이 인간 내면에서 정신으로 바뀌는 과정

떼이야르 드 샤르댕 ‘물질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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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페이스리프트

 

우주는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 그 자체이다. 약137억 년 전 ‘빅뱅’은 우주의 시작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인식되는 현상의 시작일 뿐이다. 샤르댕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우상과 같은 -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하고 질기고 오래가는 ‘충만감’을 주는 - 철(鐵)에서, “가장 쉽게 부패되는 것(인간의 몸)이 어떻게 종합의 효력으로 가장 부패 될 수 없는 것(정신)으로 바꿔질 수가 있는가?” 깨닫기까지 60년이 걸렸다고 했다. 필자 또한 이 말을 알아듣는 데 50년이 걸렸다. 누가 이 단단한 철(鐵)이 인간의 내면에서 정신으로 바꾸어지는 현상을 쉽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물질의 의식화 현상 - 이것이 샤르댕의 진화이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은 물질의 소산 - 기능이며 그 의식에 의해 생성된 생명과 정신은 제3의 물질 - 에너지이다. “거기에는 좀먹는 일이 없다.(Quo tinea non corrumpit...)"

 

현상에서 우리는 질량의 크기를 kg로 표현하는 물질과 J(줄) 또는 cal(칼로리)로 표현하는 에너지가 있으며 여기에 생명과 의식과 정신이 인식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에서 물질은 소립자, 원자, 무기 분자 등 무기질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 물질은 ‘공간을 갖는 형체’로서 무기질, 유기질, 생물을 포함하는 언어로서 저울로 측정이 가능하나 에너지, 생명, 의식, 정신은 저울로 측정이 불가능하다. 언제부터 인류는 이와 같은 현상을 인식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약40만 년 ~ 50만 년 전 인류가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 통나무가 타서 뜨거운 열기로 바뀌는 모습에서 - 물질과 에너지를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이 연장선에서 삶과 죽음의 현상이 - 생명과 의식과 정신이 - 인간(물질)의 ‘안’과 ‘밖’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5세기 일련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神과 예수를 해석함에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동자(原動子)’를 ‘부동의 원동자(不動의 原動者)’(자기는 질적, 양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를 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질적, 양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의 근원이 되는 자) 로 바꾸어 - 神으로 인식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혼(식물), 각혼(동물), 영혼(인간)이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오늘날 가톨릭 신학에서 형이상학과 이원론의 근간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이원론으로 알고 있지만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그의 사상은 형상(플라톤의 이데아)과 실제가 결합된 하나로 수렴된 일원론 사상이었다.

 

기원전 6세기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인식하였으며 그를 따르는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철학사상이 오늘날 유물론의 근간이 되었으며 생명, 의식, 정신은 물질이 소멸되면 사라지는 물질의 소산으로 이것의 확장은 ‘물질양의 증가에 의한 질적 변화의 법칙’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나아가 사회의 구조와 질적 변화는 오로지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의 철학자들은 우주와 현상을 전체와 부분으로 인식하였다. 누구든지, 어떤 사상으로 살아가던지 그 길의 종착점은 같은 하나, 소멸이다.........소멸은 끝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샤르댕은 그가 서품을 받고 예수회 사제로서 갓 발을 떼어 놓을 당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위생병으로 징집되었다.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참호 속에서 그는 인간 정신의 광란을 체험한 것이다. 전쟁은 개체가 아닌 인간 집단의 거대한 소용돌이 - 정신의 소용돌이였다. 샤르댕에게, 개체(種)의 변이를 관찰함으로써 터득한 라마르크와 다윈의 진화 사상이,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의 생명, 하나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도 ‘생성’과 ‘소멸’이 물질이라는 인식에 익숙해진 그에게, 하나로 수렴되는 생명, 정신으로 사고의 전환이 쉽지가 않았다. 생명과 정신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하나의 사고 - “1898년 퀴리 부부가 발견한 라듐(Radium)과 폴로늄 (Polonium)은 우라늄 방사성 붕괴의 생성물이다.” 에서 물질의 소멸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일지도 모른다는 - 사고와, 1905년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mc²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가역성, 그리고 전쟁 후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물질과 생명과 정신의 단선적인 연속성이, 시간의 축적성과 공통점으로 수렴되는 전체와 부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의 ‘소멸’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으로 이어지고 에너지의 ‘소멸’은 새로운 물질의 ‘생성’으로 이어지는 물질 - 에너지 순환과정에서, 생명과 정신은 새로운 에너지일지도 모른다는 사고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생성’에서 물질과 에너지 중, 어느 것이 더 우위라는 인식은 없었으며 지금까지 그에게 있어서 생명과 정신은 신앙의 문제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과학의 문제가 되었다. 즉 존재론이 아니라 발생학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 생명과 정신은 물질의 부대현상인가? 아니면 실체인가? - 종교의 문제가 아닌 과학으로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약137억 년 전 -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식한 ‘원동자(原動子)’가, 샤르댕이 말한 ‘모든 것의 재료’가 - ‘빅뱅’에 의해 물질은 ‘공간을 갖는 에너지’로 에너지는 ‘공간이 없는 물질’로 출현하였다. 이 둘 사이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mc²에서 가역성이며, 에너지의 ‘공간형성’과 물질의 ‘공간상실’을 의미한다. 즉 물질의 ‘소멸’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으로 이어지고 에너지의 ‘소멸’은 새로운 물질의 ‘생성’으로 이어지는 물질 - 에너지 순환과정의 시작이며 시간의 시작이다. 시간은 변화의 인식이며 정보로 축적된다. 이 축적된 정보 속에 생명, 의식, 정신이 있다. 
생물은 개체에 따라 일정 영역의 물질로서 한계성이며, 그로인해 독립성(종의 특성)이며, 선택의 폭이 다르다. 생물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살아가기(생존, 성장, 번식)위해 외부로부터 끈임 없는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획득)이 필연인 절대 외부 의존성 존재물이다. 또한 번식을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가며 당대에 획득된 변이는 다음 대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개체의 소멸(죽음)을 통해 개체의 풍요성과 종의 다양성(생물진화)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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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페이스리프트

 

1953년 미국의 생화학자 Stanley MILLER(1930~2007)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이 가득했을 원시지구의 대기상태를 일부 재현하여 생명물질 합성실험을 한 결과 일부 아미노산과 유기산이 생성된 것을 확인하였다. 실제로 오늘날 남아프리카에서 약31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암석 속에서 22종의 아미노산을 검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유기질은 지구가 식어 저온, 저압 하에서 외부 에너지에 의해 C, H, O, N, S 등이 에너지-무기질 공진화에 의해 암모니아(NH₃), 메탄(CH₄), 수증기(H₂O)가 생성되었고, 이들 유기분자가 에너지-유기질 공진화에 의해 단백질이 출현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이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의 직접 물질화 현상은 ‘빅뱅’ 직후 단 한 번만 일어났으리라 추측되며(여기에서 단 한 번만 이라는 의미는 어느 시점의 발생시간개념이 아니라, 더 이상 에너지의 물질화가 불가능한 까지 시간영역이다. 이 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무기질 - 유기질 - 생물로 이어지는 물질화 현상은 새로운 에너지에 의한 ‘물질의 재조합’ 현상이다. 이 에너지는 ‘물질의 재조합’ 전 단계 물질의 소멸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 로서, ‘밀러’의 실험실에서 이용된 전기방전이나 원시지구의 대기상태에서 발생된 번개 에너지, 태양 빛, 화산 열 등은 ‘빅뱅’ 직후 수백억 온도와 기압 하의 에너지가 아니라 무기질이 소멸하면서 생성된 무기질 에너지이다.

 

생물은, 현상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재조합 현상’이 체 내에서 일어남으로서 살아있는 동안 성장을 하며 어느 시점에서 양적성장이 없이 유기질 에너지에 의해 단백질 구조변화만 일어나 씨앗으로 변신한다. 생명체 내에서 유기질 에너지에 의한 양적, 질적 물질화 현상을 우리는 생명 또는 생명현상, 때로는 의식현상이라고도 하며 유기질 에너지를 생명에너지라고 한다. 생명현상은 생물체 밖에서는 불가능하여 복제현상을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가며 이 과정에서 진화가 일어난다. 생물체 내에 일어나는 ‘물질의 재조합 현상’이, 인간에 의해 다시 생물체 밖에서 ‘물질의 재조합 현상’이 일어난다. 문화, 문명의 발생이다. 여기에는 생명에너지가 아닌 정신에너지가 관여함으로서 인간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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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미디어 코머스

 

식물은 씨앗 -싹트기 -자라기 -꽃대 형성기 -개화 -씨앗이라는 순환 일생을 한다. 식물학에서 씨앗이 싹트고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는 기간을 영양생장 또는 생육(growth)이라하며, 꽃대 형성기에서부터 개화와 씨앗까지를 생식생장 또는 발육(development)이라 하여 이 둘을 합하여 식물의 성장단계라 한다.1932년 소련의 생물학자 Lysenko에 의해 처음으로 단계발육설로 제창하였으며 이 후 여러 학자들이 보강하여 오늘날에는 상적발육설로 발전시켰다. 영양생장 기간에는 식물의 질량만이 커지고 생식생장 기간에는 질량의 크기는 정지되고 압축현상이 단계적으로 일어나 거대한 식물의 개체가 작은 씨앗으로 변신한다. 식물에서 영양생장 기간이 ‘양의 질적 변화’ 과정이며, 생식생장 기간이 ‘양의 증가가 없는 질적 변화’의 과정이다. 동물과 인간의 성장단계에서도 상적발육설이 적용되며 특히 인간에게는 의식 성장단계가 함께 나타난다. ‘양의 질적 변화’ 와 ‘양의 증가가 없는 질적 변화’는 ‘물질의 재조합 법칙’이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 지식덕분으로 손톱 넓이의 메모리 칩 속에 신문 2500장을 저장 할 수 있는 압축현상이라는 말을 쉽게 알아듣는다. 우리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계산기가, 1946년 에커트와 모클리가 진공관을 이용하여 만든 계산기의 크기가 교실 두 칸 넓이를 차지했다. 부피는 작아지고, 사용되는 전력은 적어지며, 성능은 월등히 향상되어 정보처리 속도가 마이크로 초에서 피코초(ps. 1조분의 1초) 단위로 진화되었다.

반도체의 구조변화와 정보양식의 변화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달이 곧 컴퓨터의 역사로서 이미 생물의 성장단계마다 질적재조정작용의 현상이지만, 컴퓨터 지식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샤르댕은 이 압축현상에 의한 진화를 ‘똬리틀기’라고 했으며 생전에 출현한 진공관식 컴퓨터에 몹시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류 뇌의 진화에 컴퓨터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며 오늘날의 정보사회를 예견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의식(意識)이란 인간 고유의 정신현상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심적 현상의 총채로 정의하고 있다. 철학과 심리학에서 의식(意識)이란 꽃을 본다. 문제를 생각한다. 기쁨을 느낀다. 등 개체가 현실에서 체험하는 모든 정신작용과 그 내용을 포함하는 일체의 경험 또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 경험, 현상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며 ‘깨어 있는 상태’와 동일시되고 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자신과 환경을 확실히 알고 있는 상태를 의식청명(意識淸明)이라 하며, 그 청명도나 충실도 등이 어느 정도 이상 상실된 경우를 의식장애라 한다.

 

지질학자와 생물학자, 동물학자는 암석과 식물, 동물과 소통을 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학자들의 축적된 지식의 관찰인식이긴 하지만 철이 녹슬거나, 식물은 물이 부족하거나 태양 빛이 강렬하면 시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학자들의 지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물질 자체의 상태 표현이며 정보이다. 이 정보를 물질의식청명(植物意識淸明) 정도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질은 공간을 갖는 응축된 에너지로서 자체가 운동이며 운동의 크기만큼 공명현상을 통해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한다. - 의식현상이다. 원자는 분자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듯이 아메바는 인간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즉 10개의 공간이 있는 물질은 100개의 공간이 있는 물질의 10개 밖에 공명현상이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라마르크와 샤르댕은 생물의 진화에서 “생물의 복잡성은 의식의 증대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물질의 의식화 현상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명, 정신, 의식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공명현상이기 때문이며 무기질에서는 반응이라는 말을 쓴다. 의식은 인식과 동의어로서 단 백질 구조변화 현상이다. 의식(인식)은 개체가 소멸(변화)되면 사라지는 공간물질의 부대현상으로 에너지에 의식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관념은 약137억 년 간 우주의 질서와 변화가 축적되고 압축된 인간 내부 의식의 총합이며 유물론자들이 그렇게 저주하는 상상은 허구가 아니라 개체가 살아있는 한 실체의 영상으로서 단지 현상화가 안 되었을 뿐이다.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은 컴퓨터에서 한글이 실행 될 수 있는가? 유리창 넘어 현상이 바로 인간의 내면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 소나무의 현상인식(감각인식 또는 과학인식) 뿐만 아니라 흙에서부터 소나무의 생성의 전과정을 관념으로 소나무를 객관화하여 인식할 수 있다. 관념인식의 동시성이다.

 

지나간 수많은 성현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과학자들이 깨달은 현상의 진리는 바로 이 관념을 통해서 이다. 신앙의 언어가 동시성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현상인식인 과학과 충돌하여 온 이유이며 오늘날 모든 학문, 특히 물리, 화학, 생물, 수학 등 과학에 역사성을 갖게 된 연유가 과학지식이 축적되고 발달한 이유도 있지만 관념의 동시성이기 때문이다. 관념 또한 개체가 소멸하면 사라지기 때문에 인류는 문화, 문명을 발생시켜 자신의 지문을 남긴다.

 

그렇다면 왜 누구나 저절로 현상을 깨닫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약5억 4천만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로 돌아가 동물의 진화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약30억 년 간 바다에서 벌레 같은 부드러운 몸으로 생활하던 동물들이  캄브리아기에 삼엽충이나 조개 굴 같은 딱딱한 외투를 입고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한 다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鐵(무기물질)과 생명진화가 인간의 정신의식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리라 믿는다. 정신현상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개체의 선택과 자유의 본질을 통해 의식 확장의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관념이 실체라면 왜 샤르댕은 스콜라 철학과 독일의 관념론을 그렇게 경원시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서 대신하고자 한다.

 

“235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식물학’에서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 고 했다. 18세기 근대 과학의 여명이 오기까지 이 말은 식물학에서 절대 진리였다.

19세기 들어서 식물학자들은 “식물은 뿌리에 입이 있어 흙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흙속에 있는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선택 흡수하며 살아간다.”고, 의기양양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틀렸다고 천명하였다.
식물학자들은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비료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비약적인 농업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20세기. 여러 분야의 과학이 발달해지면서 식물학자들은 그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이 바로 지각을 이루는 흙의 한 요소임을 알게 되자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과 오늘날 식물학자들이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말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 의식의 크기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 개개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 문명에도 의식의 증대에 따라 같은 현상이라도 달리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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