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에 해당되는 글 32건

  1. 북한산 넘어 시청까지... (4) 2007/03/26
  2. [산오리] 잃어버린 심장 (9) 2007/03/24
  3. [산오리] 손톱을 깍으며 (5) 2007/03/23
  4. 유기수를 왜 안내보내주는 것이야... (9) 2007/03/20
  5.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 야샤르 케말 / 문학과지성사 (4) 2007/03/20
  6. 300 (5) 2007/03/19
  7. 자전거...북한산... (6) 2007/03/19
  8. 아웃백.... (18) 2007/03/16
  9. 아내 차 바꾸다... 2007/03/16
  10. 승단 (2) 2007/03/16

25일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집회에 가는데,

그냥 오전에 맹숭맹숭하다가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당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북한산 넘어 집회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갈 사람은 연락달라고...



한 명도 같이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거..

 

어쩌랴. 아침 7시에 집을 나와서 구파발에 8시쯤에 도착,

바로 버스 타고 삼천리골로 들어섰다.

 

혼자 등산은 잘 안하는 편이지만,

혼자 산길을 걷는 것이 어쩌면 가장 편하고 좋다.

우선 누구를 신경쓸 일도 없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면 된다.

그기다 아무데서나 샛길로 빠져서  혼자 놀다 가면 된다.

 

덕분에 자주 간 삼천리골이지만,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전날 비가 내린 덕분에 물도 제법 있었다.

 

 

뿌리채 뽑힌 나무는

 

놀며 놀며 문수봉을 올랐고, 대남문을 거쳐서 가보지 않은 보현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성곽을 따라 올라 가다가 성벽을 넘어서 내려 섰는데,

처음에는 약간 길이 보이는 듯 하더니, 금새 바위로 가로 막혔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길도 모르는 바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나만 바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위로 올라가는건 포기하고, 우회 하기로 했는데,

아랫쪽으로 내려와 봐도 역시 길은 없다. 그 바위위로 사람 몇이 내려오는게 보이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배가 고파서 따뜻한 바위에 걸터앉아 김밥과 컵라면을 먹고

경사가 급한 곳을 기어 내려와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정릉이나 북악터널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넓은길...

 

북악터널로 가는 길은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내려오는데,

올라갈때와 달리 낮이 되니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부대껴서

설렁설렁 여유있게 가기가 쉽지 않다.

영불사 아래 내려와서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발 담그려 보니까 개구리알이 엄청 많기도 하더라..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고 있었고, 진달래는 아직 봉우리만 붉게 솓아 오르고 있었다.

 

 

북악터널 입구에서 버스타고 시청앞 광장으로..

두어시간 집회에 앉았다가 종로로 가라해서 종로를 돌아 다니다가,

6시 넘어서 부터 저녁먹고 술먹고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긴 하루였네.

 

시청앞 집회에 있었는데 앞에 앉았던 꼬마는 열심히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애들의 호기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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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12:56 2007/03/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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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심장

 

내게는

느끼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심장이 없다고

당신은 말했지

 

피의 흔들림과

가슴의 따스함도

사랑을 위한 열정도

사라졌다고

당신은 말했어

 

심장을 찾아 

허겁지겁 거리를 헤메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심장이 어딧는지

물어보기도 했어

 

당신이 떠나던 날

난 알았다네

그 동안

당신이 내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200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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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8:34 2007/03/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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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을 깍으며

 

바라지 않아도

손톱 발톱은

세월만큼 빨리 자라

나를 떠난다

 

온갖 타박과 고문 속에서도

수염과 머리털은

억세게도 나를 떠나려 한다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양쪽발의 티눈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픔을 남기고 나를 떠난다

 

때로는

도려내 버리고 싶을 만큼

역겨운 정액도

용두질로 새세상을 찾아간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은

아득한 사랑

부질없는 미련

 

       <2007.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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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10:24 2007/03/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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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수가 감방에 갇힌 지도 반년이 넘었나 보다..

도대체 유기수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그리 오래도 가둬놓는지 모를일이다.

유기수가 밖에 있으면 저네들에게 무슨 위험이라도 되는 것인지

그렇게 가둬둬서 저들에게 무슨 경제적인 효과나

세계화에 도움이 되는지 모를일이다....

 

22일 2심 재판이 있는데,

탄원서를 내기로했다고 해서 몇자 적었다.

 

탄원서 문제가 아니라,

법 없이도 살수있는 유기수는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유기수를 석방하라!!!!!!

수를 석방하라!!!!

석방하라!!!!

하라!!!!

!!!!

 

소리지를 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ㅠㅠ



 

탄  원  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곳곳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 지고, 점심시간에 햇살 아래 나서면 언제 겨울이 있었냐 싶을 만큼 성큼 봄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이 남아 일교차는 크다고 합니다. 환절기에 재판장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관리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곽장영이라고 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2년여 지난 후에 이 직장에 들어와서 내년이면 20년을 근무하게 됩니다. 20년 세월동안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막상 되돌아 보면 해 놓은 것이 없다는 게 보입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언제 얼굴을 뵌 적도 없고, 성함 조차도 모르는 재판장님을 향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재판을 받고 있는 유기수가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재판장님의 관용과 선처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유기수와 처음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웬 시커먼 사람이 투박한 시골아저씨 같았는데, 실제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도 시골아저씨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을 향한 애정이 넘치고,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노동자들의 곁을 항상 지키고 있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가 있으면 먼저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동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유기수는 달랐습니다.

그런 유기수가 아직까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에는 유기수가 가족의 품으로, 노동자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유기수를 더 잘 알게 된 것은 2000년 총선 때 였습니다.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고, 고양시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유기수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유기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이 9명이나 있고, 전국적으로 조직도 있고, 당원도 10만명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유기수는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끊임없이 발로 뛰어다니며 유권자를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의 이런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보고 많은 유권자들이 표를 주었습니다. 유권자들은 다음에 나오면 꼭 당선될 거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맨땅에서 몇 명 안되는 당원들이 2만원, 3만원씩 내서 선거자금을 만들고 저 같은 직장인들이 아침저녁이나 주말에 함께 나서주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현대중기 노동자들이 함께 선거운동을 하면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현대중기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정에서 유기수와 2년여를 동고동락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유기수를 위해 민주노동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50대, 60대 노동자들이 함께 뛰어 주었습니다. 인간 유기수를 보고 그들은 먼 지방에도 달려와서 함께 해 준 것입니다.

이런 유기수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니, 눈물이 나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가 눈물짓고 있는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 올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요즈음 노동자들은 기댈 곳이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귀족노동자다, 폭력적이다 하면서 노동자들을 이방인 처럼 취급해 왔고, 이로 인해 국민들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엄연히 국민이고, 또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산업역군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신다면 유기수에게 1심에서 떨어진 형량은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재판장님들께서 법에 따라 가장 합당한 판결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해 보지만, 다른 사건들과 비교해 봐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야 말로 사회에서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을 것이라고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의 성격과 소신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싸웠다는 것이 큰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죄로 인해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유기수는 갇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죄값을 치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재판장님의 선처를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재판장님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2007년 3월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 2311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관리팀장

                                       곽   장   영    올림








재판장님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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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20:59 2007/03/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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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 고른 터키 소설이다.

야샤르 케말이라는 작가는 터키에서 유명한 작가이고, 노벨상 후보로도 올랐다는 사람이다.

정부를 비판했나든 작품을 써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터키 작가노조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단다.

 

이 소설집에는 딱 두가지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데,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와 '아으르 산의 신화' 이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이슬람 권에서 계속되고 있는 명예살인을,

그리고 '아으르 산의 신화'는 오스만 제국과 쿠르드족의 갈등을 그린 내용을 담고 있다.

 

'독사를...'는 내용이 단순하고 또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 그 주변의 가족들의 심리를 잘 그리고 있고 여러가지 사건의 전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오랜 전통(?)이 죄 없는 어머니를 아들이 죽이도록 만들고 있고, 아직까지도 이런 사건이 가끔은 일어난다고 하니까, 세상에는 참 여러가지 전통이 있고, 세월이 흘러도 잘 계승되고 있다.

여기서도 가부장적 제도와 그로 인한 여성의 피해가 주된 내용이다.

 

'아으르...'는 읽는 동안 쿠르드족의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이게 오스만족과의 갈등이라는 내용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그 동네의 역사와 그 사람들의 가슴에 흐르는 정서를 알 수없는 산오리로서야 그저 우리나라 소설 읽듯이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뒤쪽으로 가면서 아으르 산을 중심으로 쿠르드족 수십만이 모여들고, 이에 굴복하는 오스만제후의 모습에서 투쟁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전율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신화나 설화를 소설로 옮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옮긴이 오은경이 쓴 작품해설에서 조금 퍼오면...

 

- 야사르 케말은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작가이다. 제3세계적 한계 상황에서 야샤르 케말의 글쓰기는 저항이며 고단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3세계 문학을 읽는 것은 어 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난과 기아, 분쟁, 소외, 투쟁..... 치열하고 숨이 막히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권력과 지배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그림자들의 절규를 지켜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늘, 투쟁의 현장에 남이 있기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해설이 더 멋있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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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3:06 2007/03/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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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from 읽고 보고 2007/03/19 19:04

회사의 동호회는 '영화보기 동호회' 가 아니라 '영어듣기 동호회'였다.

영어듣기 동호회가 영어를 잘 듣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튼 요즘 이 모임의 총무(인가?)인 안 낭자가 시간이 좀 나는지,

영화벙개를 잘 때린다.

 

 



영화 보기 벙개를 때렸는데, 본 영화는 300 이었다.

300인지, 3000인지 새로 나온 영화에 관심 없는 산오리로서는

그게 도체 무슨 영화인가 했는데, 스파르타 군사 300명이 수십만인지 수백만인지 하는 페르시아 군사와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거다.

만화가 원작이라는데, 영화도 그저 한편의 만화였다.

첨에는 약간 섬뜩함이나 기발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너무 지루하게 전쟁과 사람을 죽이는 장면만 나오니까 하품이 나오고 몸이 뒤틀렸다.

그걸 두시간이나 보고 있었다니...

 

한결 - 저걸 영화라구... 시끄러워 죽는줄 알았네..(당초부터 영화보는 동안 따로 술마시고 있으면 안될까 하더니..)

안, 배 - 몸짱들은 정말 볼만 했는걸...(여자들은 그럴테지..)

민 - 영화 좋지 않았어요? 그렇게 혹평할줄 몰랐네.(문화체험 동호회 총무이자 영화평론가이니까 그럴만도..)

변 - 그냥 볼만한 영화..(그랬던가? 별 불평이 없었던가...)

산오리 - 영화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그냥 있는대로, 보이는대로 보는 것에 만족할거야.

 

영화보고 나와서는 영화보는데 빠진 친구들까지 불러서 술한잔 마시는데, 꽤나 오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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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19:04 2007/03/1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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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따뜻해지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욜 오후에 자전거 포에 가서 앞뒤 튜브를 갈아 달라고 했다. 튜브 한개 8천원씩이란다.

근데, 바퀴를 보니 바퀴도 갈아야 될  때가 된거 같다.

97년 연말즈음에 사서는 지금까지 타고 있었으니,

앞바퀴는 고무가 갈라지고, 뒷바퀴는 땅바닥에 닿는 면이 거의 평면이 될 정도다.

그러니 아무리 밟아도 힘만들지 싶다.



바퀴 가는건 얼마냐고 했더니 만오천원이란다. 앞뒤 바퀴와 튜브 다 갈아달라고 했다.

자전거포 아저씨 열심히 바퀴, 튜브 갈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는 자전거에 부착하는 물통을 산다.

산오리도 그 물통 하나 달아 달라고 했다. 여름에는 물통하나 필요하겠다.

계산하려고 했더니, 4만5천원 달란다...

' 더 받아야 되는거 아닌가요?' 했더니 바퀴와 튜브를 같이 갈면 2만원이란다.

 

그래도 겨울철 안타고 세워두었다가 다시 탈때는 기름칠도 좀 하고, 관리를 한 덕분인지,

바퀴 새로 갈았더니, 새자전거가 되었다. 밟으면 훨씬 부드럽게 나가기도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동명이 버스타고 가라하고, 자전거로 출근했다.

진짜 몇년만에 출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오니, 기분은 좋은데, 꽤나 힘들었다.

 

 

열심히 놀고 온 이후에 비실거리면서  있었더니 산에 간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2월 태백산이 마지막이었나?

당의 정 부위원장이 일욜 시간 있으면 산에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9시에 구파발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그럼 일요일이 다 깨지니까 좀 일찍 만나잔다.

그러고는 정이 당게시판에 산에 가자고 올렸는데, 호응은 없다.

나중에 게시판에 들어가 봤더니 아침 6시에 구파발역으로 올렸더라...

아이구, 6시에 산에 가겠다고 구파발로 나올 인간이 누가 있겠냐??

 

그래도 이 전 위원장이 느지막히 차를 몰고 나타나서 셋이서 의상봉으로 올랐다.

아침 일찍 갔더니, 너무 호젓하고, 사람들이 없어서 좋더라.

의상봉 코스를 가는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다, 바위도 꽤 타야 해서 아침부터 땀 좀 빼고...

문수봉까지 가서는 펼쳐 놓고 노닥거리고 놀다가, 산성계곡으로 내려왔다.

7시 좀 안되서 출발해서 아래 주차장에 닿은건 1시 20분....

 

집에 오니 겨우 2시.. 한숨 퍼져 자고도 시간이 많이 남긴 했다.

또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고 있어서 혼잡스러웠다.

좀 귀찮더라도 담부터는 아침일찍 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일렀다. 진달래가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유심히 들여다 봐야 했고, 다른 나무와 풀들은 보이지 않게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계곡에는 지난주의 비 때문인지 맑은 물이  많이 흘렀기에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고,

아랫쪽에 다 내려오니까 나무의 파란 잎새가 나오고 있었다.

햇살 따뜻했지만, 하늘 색깔은 그리 파랗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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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12:49 2007/03/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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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

from 단순한 삶!!! 2007/03/16 15:55

이름이야 들어서, 가끔 지나가는 길에 간판을 봐서 알지만 처음 갔다.

 

이 팀원이란 인간들이, 새해가 들어서 석달이 되어 가니까 같이 밥이나 한끼 먹자고 했는데,

밥이라기 보다는 저녁에 소주라도 한잔 마시자 했는데,

도무지 시간 맞추기 어렵다고 오늘 점심을 같이 먹잔다.

그러자고 했는데,

또 한 팀원은 오후 휴가내고 일찍 가버리는 바람에 5명이 점심을 먹었다.



우리 팀의 가장 이쁘고 나이 어린, 그리고 유일한 여성이고 아줌마인 엄지의 몫인데,

잡은 곳이 아웃백이란다..

 

나머지 네명의 아저씨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우거지 상을 한다.

'이럴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아웃백을 가보겠어?' 산오리가 한마디 보태서 겨우 갔다.

 

점심특선인가 뭔가 해서 야채랑 커피랑 다 주는걸 각자 하나씩 시켰는데

그것도 2만원씩은 된다.

 

아웃백이나 빕스나 이런데는 음식 만드는 주방장이 없는 햄버거집이나 다를바 없다,

이런 걸 왜 이렇게 비싸게 돈주고 먹는지 모르겠다,

30대 이상의 남자가 이런 데 가는 사람 있겠느냐?

20대라도 여자가 가자니까 할수 없이 끌려 가는거 아니겠냐?

 

온갖 불평과 불만을 다 쏟아내서 음식점을 정한 엄지를 무안하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엄지는 꿋꿋하게,

'비싼 거 사주면, 그리고 그게 내돈 내는 거 아니면 사람이 싫어도 따라간다'고 한마디...

 

야채 샐러드가 나와서 다들 들고 있는 포크와 칼은 산오리에겐 왜 안주냐고 했더니,

그 손수건 같은데 싸여 있었다는 것....

 

어쨌든, 공짜로 준다는 빵만 몇개를 더 시켜 먹고는,

막상 시킨 음식 나온거 는 다 먹지도 못하고(배부른건 둘째 치고 느끼해서 다 먹기 힘들더라)

나오는데, 팀 카드 갖고 왔냐고 물었더니 엄지가 안가져 왔단다.

팀 회식으로 업무추진비로 쓰려고 했더니, 카드 안가지고 왔으니,

산오리가 그 비싼 밥값 냈다.....

 

맛도 없는데다 비싸기 까지 한데, 그거 생돈까지 내고 나니,

뱃속에서 소화는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아직까지... 

 

다음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지,, 이런 음식점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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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15:55 2007/03/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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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부터 아내가 차에 관해 해 왔던 얘기를 대충 정리해 보면...

 

- 사장 사모님이 차를 바꿨는데, 사장과 사모님이 아내의 차를 그차로 바꾸라고 한다.

- 아내가 타고 다니는 중고 차값을 물어봤는데, 얼마를 주겠다고 하더란다.

- 차에서 자꾸 무슨 소리가 나고, 고장이 난다.

 



아내는 차 소리도 엄청 심하고, 출발하거나 정지할때 울컥울컥 하는데다가 이제는 히터까지 안된다 고 불안해 했다. 그래서 산오리가 카센터에 가서 손봐 올테니까 내차를 가지고 출근하라고 했다.

 

평소 차 수리를 맡기는 카센터로 차를 몰고 가다가 중간에 신호를 기다리느라 섰는데, 엔진회전수가 엄청 높아진다. 그참 이상하다, 중립에 놓고 서 있으면 엔진회전이 떨어져야지 왜 더 올라가지? 그러면서 엔진온도는 올라가지 않고...

 

카센터에 갔더니, 카부레타가 고장나서 냉각액이 다 새고 없단다, 그러니 엔진 회전수 높아지고, 히터도 가동이 안되고 전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카부레타 바꾸고 오일 갈고해서 손을 봤다.  그런 상태로 조금 더 운전했으면 엔진이 눌러 붙어서 돈꽤나 들었을 거라고 한다. (가끔 손 좀 봐 가면서 타고 다니지...으이그..) 운전중 소리 나는 것은 또 어느게 좀 문제가 있는데, 부품을 구해오면 수리하자고 했다.

 

그러고 한 일주일이나 지났나 모르겠다.

갑자기 아내가  전화하더니 "당신이 얘기했던 그 사람한테 차 견적 좀 보내 달라고 해라"고 했다.

('당신이 얘기했던 그사람'이란 당의 지역위 전위원장을 이** 위원장을 지칭한다. 그동안 차 얘기가 나올때면 내 차 살때도 당신 맘대로 사는 바람에 현대차 영업을 하고 있는 이 위원장한테 미안하니까, 당신 차를 바꿀때면 이번에는 그쪽을 통해서 차를 바꾸라고 수도 없이 얘기해 두었더랬다.) 

 

그러마고 연락해서는 견적 보내줬다는데, 그리고 그견적을 보고 아내는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제법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견적을 받는 순간부터는 산오리나 아내의 의도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 위원장은 토요일 그 바쁜 일정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차를 보러 오라'고 했고, 아내는 귀찮음을 드러내 놓고 얘기했지만, 남편이 아는 사람이라 그런지 따라 나섰고, 영업소에 가서 차를 둘러 보았고, 그리고는 사겠다고 결정을 했다.

 

그 이후의 진행은 일사천리란 말이 딱 들어 맞겠다. 그리고는 어제 저녁에 차를 받았단다.

 

그나마 이번에 차 사는 과정에서는 아내가 이런저런 사전징후들을 많이 보여준 것이

그동안의 일처리에 비해서는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일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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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14:12 2007/03/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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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

from 단순한 삶!!! 2007/03/16 13:53

어제(3월 15일) 승단식이 있었는데, 산오리는 대전갔다가, 상갓집 가느라고 승단식엔 못갔다.

새벽에 수련하러 갔더니, 시작하기 전에 사범님이 띠를 바꿔 매주시고 단증을 읽어주셨다.

옆에는 같이 수련하는 직장동료 한사람이 '증인이 되겠다'고 서있었고..ㅎㅎ

 



제 0372 - ****호

 

단증(段證)

 

주소 : 경기 고양시 일산구 ***************

성명 : 산오리

주번 : ****** - *******

입회일 : 1999년 8월 1일

   위 사람은 국선도 협회에 입회하여 제 3단 원기단법중편 과정으로 승단하였기에 단증을 수여함.

       2007년 3월 15일

소속 : 일산지원

지원장 연사 조**

국선도협회

덕당정사 김성환

 

다시 국선도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나서 빨간띠에 파란줄을 넣게 되었다.

첨에 국선도 시작할때는 승급하거나 승단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서 어떤 단계에서 며칠을 하면 어떤 단계가 되고, 어떤 단계에 가면 몇초 호흡을 하고, 이런것을 알려고 하고, 알기도 좀 알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도 관심이 거의 없다. 때가 되서 승급이나 승단시켜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이게 어차피 단이 높아져서 될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날들을 빠지지 않고, 잘 개기고 있을 것인가,

또 얼마나 생활의 일부로, 밥먹듯이  할수 있을지가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도 단증 받고 생각해 보니까 좀 심하다는 생각이든다.

99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8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빨간띠 주변에서 머물고 있다.

그 중간에 과기노조 전임 끼어서 3년을 빼 먹었으니까 실제로는 5년쯤 되었나 본데,

밥 먹는 것처럼, 생활의 일부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토요일까지 수련을 하니까 한달에 잘하면 24~25일도 할 수 있는데, 그건 꿈도 꾸지 않지만, 그래도 20일 정도는 해야 할 거 같은데, 막상 20개 도장찍기도 쉽지 않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서 보면 15개 정도의 도장이 찍힌다. 그러니 아직도 게으르고,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고 그래서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거다.

 

날도 따뜻해 졌으니까 이제는 좀 열심히 해 볼거나...

 

승단된다해서 생각했던건...... 도복 색깔이 흰색으로 바뀔때까지 이 파란도복이 남아 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는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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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13:53 2007/03/1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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