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19

2007/08/19 04:13

서로  바빠서 거의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나면 나름 진솔한 대화를 하는 친구한명과 학교에서

 

마주쳐서 오랜 얘기를 했다.

 

그녀도 아마 많은 사람들처럼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거다. 원래 아주  여린

 

성품인데다가 몇개월전에 아주 인간을 아작(;;) 나게하기 직전의 연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리나이의 미래에 대한 그 터질듯한 불안감까지 겹쳐져서.

 

나는 그녀의 아작나게 만들었던 그 연애의 후유증은 좀 어떠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럭저럭 괜찮아

 

졌고, 다시 새로운 사람과 시작한지 좀 됬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꽤많이 힘들었는지, 아작 나게 만든 그 사람과 관계가 끝나고나서 공부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책을 폈는데 정말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병원에

 

가보았더니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도 나름 나처럼 연애에서 오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터지게 고민도하고 여러가지 치유의

 

방법을 시도해본것 같았다.  원래 그런 일 한번 겪으면, 정말 생각과 보는 눈이 한단

 

계 업그레이드;; 되는 사이비 철학자(--;)가 되듯이, 그녀역시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고, 관계란 어떤

 

것인지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열심히 썰을 풀었다.

 

 

 

그 썰을 들으며 경험이

 

늘어갈수록 자기 할말이 많아지는 '나이듦' 에 대해서.

 

또 생존을 위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절제하고 살면서 결국 자신을 확인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연애가 되어가는,

 

다른 대안을 찾아볼 여력도 가능성도 기회도 시간도 없이 차단된,

 

 젊은 인간군상들의 단조로운 삶이.

 

조금은 답답하고 씁쓸하다고 느끼다가 그녀와 헤어졌다.

 

 

 

뭐, 공황장애까지 받았다는 그녀에게 댈것은 아니지만, 나도 몇개월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

 

었다. (뭐 원래 그다지 정상은 아니지만--;)  이제서야  사람답게 살아가나 싶기도 하지만,

 

그 생명의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계속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그런 심리적 상태에 놓여있다.

 

그나마 이 정도 상태에 온 것도,  극복을 하기위하여 손을 뻗어 여러 처방요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했으며 또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 친구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사실 관계로 인한 아픔이라는 게 어느정도 이상을 넘어서면

 

그게 이제 타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문제인 듯 하다. 원래 관계가, 특히 연애

 

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얼마만큼 있는지 분명하게 말할수도 없는 문

 

제이기 때문에,

 

' 이 결과는 어디에서 초래된 것인가?'

 

' 나는 (또는 상대방은) 그 결과에 얼마만큼 공헌했는가?'

 

' 상대방은 결국 어떤 사람인가?'

 

' 상대방에 대해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 상대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마음 편한가?'

 

'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

 

 

라는 마음속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하여 답이 시시각각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뒤죽박죽 혼란스럽게 된다.

 

( 이따위 질문들 안하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이겠지만, 사실 처음으로 큰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러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

 

즉, 상대방이 정말  명백하게 잘못을 했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관계라는 것이

 

상호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된다.

 

 

 

흠, 나같은 경우는 (나의  지지부진한 생각의 흐름의 과정들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생략하고) 그냥 요즘은 요런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란, 내가 나와 잠시 인연을 맺었던 그 사람을 내가 지금 현재 어떻게 떠올리고

 

평가하든 그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생각과 평가는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경험하며

 

내 자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느냐에 따라서 무한히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약간 한 걸음 떨어져서 감정을 '조금' 배제한 상태가 되니 납득하게 되는 게 있다.

 

 

첫번째는, 사실 그가 나에게 취한행동들이  그만의 특이한 스타일이 아니라 일정한 유형의

 

남자들이 취하는 어떤 전형적인 패턴의 하나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란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라는 사람을 도식화

 

된 틀로 해석하는 것도 매우 폭력적이지만, 사실 그렇다고 그가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 도식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놀라울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예전에는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고 그게 그렇게 마음에 불편했던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동안에도 그를 이상화 했던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사람을 대하는태도, 그의 여성에 대한 가치관, 그가 애인을 대하는 태도..... 그

 

것들이 그의  다른 인격의 면모나  내가 처음에 가진 이미지와  매치가 잘되지 않았다. 

 

(친구중 한명이 자신의 헤어진 애인에 대해서 ' 옛날에 열심히 운동했던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했는데 그런것과 어느정도 비슷한 종류의 혼란이라고 

 

해야할까. )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서 오는 혼란에서는 거의 완전히 해결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서 ' 그래, 넌 원래 그런 인간이었어.'  이렇게 비관하는 것도 아니고, 글쎄, 그냥.... '사람을

 

 다각도로 봐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 내가 너무 남자를 모르는 군!'  하는 결론이다.

 

 

두번째는,  그가 나를 좀더 잘 알았다면 절대 나와 사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몰랐으니까 사귈 수 있었고, 나역시 그랬다.

 

또한 관계가 잘 이어지기도 힘들정도로 그와 나는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 남자를 좋아해도 그 사람이 정말 나와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사람이

 

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때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나의 처지와  함께

 

그에게 모자란, 그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못된 다는 것이 나의 열등감을 마구마구 자극했었지만,

 

지금은 ' 그래, 그는 이래저래 그런사람이고, 나는 나대로

 

이런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그에게서 정서적 분리가 되기시작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것들이 무겁거나 무섭거나 대단치 않게 느껴진다.

 

 

물론 아직 나는 그 사람에게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을 여지가 있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면 그냥 도망쳐버릴정도로 원망이나 불편함이 마음속에 고여있기도 하다. 

 

 정답게 얘기하는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리워하는가하면, 그를 생각하면 피 토할 정도로 갑갑하고

 

괴로운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로 인하여 더이상 내가 괴로울 일만 없다면

 

그가 세상속의 많은 사람들속에서 범인 (凡人) 으로 비춰진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범인이

 

기도 하고, 때로는 훌륭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그렇기도 하고 그런 입체적인 인간. 나에게

 

특별하지 않은.  나에게 특별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좋다.

 

 

 

 한 관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감있는 관계들을 맺으며 다른 것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나를 채우고 싶었다.   매몰되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기

 

쁨과 슬픔에 나를 전부 내주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좀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관계에 대한 차단이나 두려움이나 요령또는 책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되는.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지나간 설익은 연애때문에  비온뒤의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는 한심한 모습이다. 근데 파탄난 관계에서도 의외로 많은 것이 깨달아지는가 하면,

 

반면에 그 깨달음들에 마치 득도라도 한 마냥 침착해진 내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것이  내 모습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오히려 자신의 어떤 모습이든 받아

 

들일수 있게 되어서 더 좋기도 하고 그렇다.

 

 

 

뭐든지 억지로 되는 것은 없으니 서서히 변해야겠다고 생각은 한다. 뭐라고 거창하게 다짐하기도

 

 싫고, 그냥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기나 해야지.  잘 버텨내기나 해야지.  심히 정체되어

 

있기는하지만, 그러는 한편 보이지 않게 뭔가를 쌓는 기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크게 놀라는 것도 싫고, 충격적이거나 감당하기 힘든 것보다는 요즘은 차라리 어느정도는 단조롭고

 

지루한것이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편하게 먹고쉬고, 아프거나 피곤하지나 말고, 생각은 단순해져

 

서 귀찮게 신경긁는것이나 없었으면 한다.  모험이란 필요없고, 그저 평탄한 하루하루가

 

지속되었으면 한다.

 

(이걸 마지막 포스팅으로, 여건상 당분간 진보넷에 글은 안쓰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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