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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23
    글을 쓴다는 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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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5/31
    다섯곡 엄선하느라 힘들었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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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5/16
    비정규직 노동자들 드라마로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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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5/03
    느무 느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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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4/01
    민중의 소리로 이직 결정(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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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3/23
    역사의 경작자 이기보다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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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3/14
    오늘도 역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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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3/12
    행복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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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3/08
    인터뷰, 그리고 영화보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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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3/08
    '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사라진 누나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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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써야할 글들이 거의 목구멍까지 차 있다. 사실 글 쓰는걸 그리 힘들어 하지 않고, 즐기기 까지 하는 스타일인지라(그러니까 이런 일 하고 있지) 한 이 삼일 바짝 땡기면 글들의 교통체증이 그나마 좀 해소가 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주간지도 아니고 월간지도 아니고 일간지 개념(어떤 사람은 인터넷 신문은 초(秒)간지라 하더라만)의 매체에서 일하는 지라 웬만한 글들은 빨리 빨리 못 써내면 밸류가 확 떨어져 버린다. 취재 해놓은 거 글로 풀어야 되는게 보자 하나아, 두울, 세 엣 정도?

 

기획물 중에 바로 걸려 있는게 하나아 두울 정도..그리고 기획 해놓은거 계획대로 나간다고 감안할 때 해야 하는게 하나아 두울 세엣 네엣...흑 모르겠다 이건 ㅠㅠ

 

엇그제 서로 잘 아는 후배랑 간만에 오붓하게 만나서 푸념도 늘어놓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남한테 못할 이야기들도 하고 그랬다. 그 넘이 내 블로그에 대해 말하길 '용두사미의 극치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라 ㅋㅋ 그러면서 참세상에 대한 주문은 어찌 또 그리 많은지...

 

그렇게 말하는 지야 사는게 헐렁하니까(누구의 삶인들 헐렁할 수 있으랴만 직접적 노동강도가 약하단 이야기) 지 블로그에 온갖 정성을 쏟는게지..

 

근데 나도 블로그에 쓸 말 참 많은데 웃기게도 '시간과 여유가 없다'(난 사실 시간 없어서 책 못 읽는다 글 못 쓴다라는 사람을 제일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중학교 때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국어 교과서에 김태길이라는 늙은 주류 철학자의 '글을 쓴다는 것' 이라는 수필이 실렸던 것 같다. 미셀러니로 분류하기도 좀 그렇고 에세이로 분류하기도 좀 그랬는데 국어 선생님이 뭐로 분류했던진 기억에 없다.

 

이 양반 학술원 회장 까지 해먹고 박종홍 처럼 국민교육헌장을 만들 정도로 권력에 영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 한 인생을 잘 산 주류 철학자인데(웃기지 한국에선 김형석, 박종홍, 김태길 이런 사람이 철학자의 표상이었었더랬다. 하긴 박종홍은 학술적 업적은 좀 있긴 있는 것 같긴 했다만)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글도 사실 묘한 유교 이데올로기와 자아 성찰강박이 결합된 구닥다리식의 재미 없는 글이 었는데 (구양수의 삼다, 다독 다작 다상량 론의 업그레이드 버젼 정도?) 그런데 요즘 그 글이 자꾸 생각의 이빨에 씹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본시 저속한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풍류가들의 예술' 운운하는 씨알도 안먹히는 구절이 대종이지만 글 빚의 무서움을 지적하며 '이제 글을 씀으로써 자아가 안으로 정돈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밖으로 흐트러짐을 깨닫는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열에 못 이겨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괴지 않은 생각을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눌려 짜낸다. 자연히 글의 질이 떨어진다' 라는 구절은 꽤 생각 꺼리를 많이 던져 준다.

 

특히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흐를 때, 그 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같은 구절은 아주 좋다.

 

물론 나는 글 쓴느 것이 직업이자 활동인 사람이다. 또한 이 세상에 터져나오는 일들이 아주 많아서 취재, 보도 행위라는 암탉의 알은 넘쳐날 지경이다--;; 감당 못할 정도로...

 

칼럼니스트가 아닐 진데 기사 글에 관련되어선 김태길 할배의 지적이 해당안된다는 이야기지, 그래도 그래도....

 

게다가 내가 좀 꾸러기 기질이 (욕심 꾸러기) 기질이 있는 터라 다루고 싶은 건 넘쳐나고ㅠㅠ

 

에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겐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하는 말을 하고 싶었던겐가 보다. 블로그에 글을 자주 못쓰는 이유를 말하고 싶은 정열에 못 이겨 이렇게 기록하게 되었으니 김태길 할배의 말이 맞는건지도 모르겠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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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곡 엄선하느라 힘들었음.

* 님의 [음악 이어받기 - 뻐꾸기로부터] 에 관련된 글.

진인사 대천명이라...사람의 일을 다하셨으면 머 굳이 천명이나 기다릴 필요 있겠습니까? 한 열댓명만 기다리면 되지 싶네요.

 

홍실이님께서 본능적 혹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셨듯이 제가 양반 집안 자식인건 맞습니다.(누가 그러던데 스타일이 나쁜 사람 보다 스타일이 없는 사람이 더 안 좋은거다라던데-시오노 나나미가 그랬었나?- 제 스타일에서 그게 드러나는가 보군요) 그치만 저는 봉건적 유제인 제 신분적 기반, 양반이 드러나는 것을 별로 바라지는 않아요^^(저는 이상하게 어떤 사건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연관된 소설의 한구절, 영화의 한장면, 만화 한장이 뜬금없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봉산탈춤인지 아니면 봉산탈춤의 한 장면을 변주한 백성민의 만화 한 장면인지 모르겠는데 "양반? 그래 개값 두냥반 할때 양반이냐?"라는 대사가 뇌리를 스치는군요)

 

먼저 홍실이님의 음악 이어받기 대상 5인 가운데 당당히 4위에 랭크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만 아주 잠깐이나마 무슨 이유로 제가 네번째 일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가나다 순이면 감비님에 이어 이등이 되어야 하건만--;; 역시 봉건적 유제인 세상 짬밥 순서로 따지면 5인 가운데 3등이고 ㅋㅋ

 

일단 제시한 포맷에 따른 답변을 먼저 해보도록 하죠.

 

1. 컴퓨터에 있는 음악 파일의 크기 :

  0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OS  를 새로 깐 이후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서는 소리가 안납니다. 산 직후 새로  OS를 깔았는데 소리 안들리는데 별 어려움을 못 느껴 손 안보고 있고 당연히 음악도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쓰는 컴퓨터는 개비한지 약 한달이 채 안되는데 아직 음악 다운 받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2. 최근에 산 음악CD :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누가 훔쳐갔는지 모르겠는데 미선이 1집으로 기억합니다. 

 

3.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  

제 방안에서 티비와 책상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즉 컴퓨터를 사용하면 등 뒤에 티비 화면이 있는게지요. 그냥 티비 틀어놓았는데 케이블 영화채널 에서 I am Sam. (한국 사람 중에는 Sam과 비슷한 지적수준을 보이는 사람으로 Young 샘이 있습니다. 70을 훌쩍 넘긴 전직 대통령을 Young  Sam이라 부르는건 좀 미안하지만)이 나오고 있군요. 주옥같은 비틀즈 넘버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Rufus Wainright가 부르는 Across the Universe가 들리네요. 어 좋다.

 

4.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있는 노래 5곡

앞선 1번 항목에서 밝힌 이유도 있지만 저는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한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2004년 9월 제 블로그 철학을 '나의 블로그 철학(부제:나는 여우가 아니다!)'라는 포스트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 http://blog.jinbo.net/Profintern/?cid=1&pid=59) 여러분에게 편리를 제공하기 싫다거나 혹은 귀찮다거나 아니면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과 스스로 찾는 수고로움을 전파하기 위해, 진보넷 블로그계의 쌍소나 니어링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링크를 걸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상기한 사항에 대해 이해하셨거나 아니면 같잖게 느끼셨다고 생각하고 즐겨듣는, 사연이 있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해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있는 노래 딱 5곡을 뇌리 속에 심어두고 있진 않습니다.

 

사연이 부른 노래는 몇 곡 알고 있습니다 예컨데 그녀의 데뷔곡인 '님그림자' '우리에겐' 그 밖에 불멸의 히트곡'만남'등이지요.  그럼 잠시 날아오는 돌을 피한 후 계속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쪽 동네(그렇다고 북가좌1동은 아닙니다) 노래로 따진다면 홍실이님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민족해방 계열의 노래들을 즐겨 듣습니다.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 산하, 구국의 횃불 서총련 산하, 반미구국의 단심 서부총련 산하, 통일 XX산하 선봉 문과대 출신임을 숨기진 못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구입한지 며칠만에 엠피3플레이어를 잃어버린 어떤 사람에게 제 걸 빌려준지 3달이 가까워 옵니다만 그 속에는 열댓 곡의 노래가 들어있었는데 거의 교체하지 않고 반복해서 듣곤 했습니다. 기운 빠질때 들으면 힘이 나곤 하는 노래들이었죠.

 

a.  장산곶매

먼저 '조국과 청춘'의 '장산곶매'가 들어 있었어요. 장산곶매 노래에 얽힌 사연이라면...장산곶매 마임하는거 흉내내곤 했는데 팔이 길지 않아서 그다지 뽀다구가 나지 않았던것, 그리고 최근 미디어참세상이 참세상으로 개편 창간하면서 뉴저네트워크가 참새네트워크로 개편될 당시 그 방의 이름을

장산곶참새로 정하자고 제가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 등이 있네요.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사 거부됐지만 저는 아직도 장산곶참새라는 이름이 아깝습니다.

 

구월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쭉 뻗다가 끊어진 장산곶에 참새가 산다.
그 참새는 땅의 정기가 쎄서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숲에 둥지를 틀고
일년에 딱 두 번 사냥을 간다.
참새는 사냥을 떠나기 전에는 밤새 부리질을 하며 자신의 둥지를 부순다


내 가슴에 사는 참새가 이젠 오랜 잠을 깬다
잊었던 나의 참새가 날개를 퍼덕인다
안락과 일상의 둥지를 부수고
눈빛은 천리를 꿰뚫고
이 세상을 누른다

날아라 장산곶 참새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훨 넘어
싸워라 장산곶 참새
널믿고 기다리는 민중을 위하여

 

이 얼마나 벅찹니까? 저는 한마리 장산곶참새이길 지금도 원하고 있습니다.

 

b. 통일선봉대가

대학에 온지 얼마 안되서 몇몇 영상자료들을 봤습니다. 광주항쟁 영상은 대학 들어오기 전에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봤는데 대학와서 본 노뉴단의 투쟁속보들(8말 9초의 노동자 투쟁 영상들이 얼마나 벅찹니까)이나 통일선봉대 투쟁 영상들도 가열찬 싸움 그림들도 제 가슴을 때렸었습니다. 특히 비오는 날 연신내 지하철역인지 구파발 역인지(판문점 쪽으로 가려면 그 쪽으로 가야되지요) 앞에서 수천며의 통일선봉대가 서로 팔을 끼고 연와(연좌 말고 눕는거) 해 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고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물론 저는 1학년때 부터 전지협 파업 다니고 김일성 주석 죽은거 보고 '할배 오래 살았네'라고 말하다가 "통일선봉대 할래"라는 권유 한 번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만 통일선봉대가는 종종 불렀습니다. 어떤 술자리에서 "니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란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만 못들은척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족의 희망으로 우뚝서라 조국통일의 발파공 통/일/선/봉/대 서군에 한 번쯤 참여해서 조국통일의 지칠줄 모르는 폭주기관차 경험을 했어으면 좋았을건데 싶어 좀 아쉽습니다. 아쉬움을 담아 구호 한 번 외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어이!우리대에! 조국을 통일하자"

 

c. 청년의 기상

예전에 만났던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 산하 투쟁의 불사조 경기동부총련 산하 애국 경원에 다니던 어떤 학우가 이 노래를 비장하게 부르곤 했던 장면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보라 우리 앞에 벼랑끝이 나서도
한걸음 더 나가리라 이게 바로 청년이다.

 

저야 사실 경미한 고소공포증 증상이 있어서 벼랑끝에 잘 못갑니다만...

 

솔직히 조국과 청춘이 부른 청년의 기상, 통일선봉대가 같은 노래들은 좌파 노래패들의 노래가 쉬 갖지 못하는 어떤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d.각성의 노래

위의 세곡 같은 노래들 말고는 전 노래공장이 부른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각성의 노래는 정신 좀 차리고 똑바로 각성 하라믄서 선배한테 배운 노래고 저 또한 후배들보고 같은 이야기 하면서 가르쳐 준 노래라^^ 각별합니다. 일단 가사가 부터가 뭔가 커리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 괜히 이 노래 부르면 나도 똑똑해 지는 듯한 착각(각성이 아니라 착각을 주다니 ㅠㅠ)을 불러일으키 잖아요.

 

전 가사 중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두번이나 나오는 노래는 민중가요, 가요, 가곡, 행사곡을 통틀어 이 노래 밖에 몰라요(음 과학고 교가는 과학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겠군요)

 

동지여 과학속의 철저한 반성과 각성을 딛고
뜨거운 사랑으로 노동 해방 전선으로 일치 단결 하나로

적들은 세월이 갈수록 온 누리에 몰아치는데
우리는 관념의 우물속에 동상이몽 갈라질 순 없다
과학의 당찬 머리를 모아 빈틈없는 전술속에서

 

e. 영원하라 현중노조

 

위의 네곡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남아있는 노래입니다. 작년 민주노총 금속연맹(만주노총 양철연맹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은 현중노조를 제명했습니다. 통일선봉대 비디오를 볼 즈음에 현중노조 투쟁 비디오도 봤었죠. 어린 마음에 장래희망이 현중노조 쟁의국장이라고 말하기도 했었어요. "동지들 삼천명은 정문으로 진격하시오, 오천명은 미포만에 바리케이트를 치시오" 학익진을 펼치는 이순신 장군이 따로 있나 싶었죠.

 

제 블로그 포스트 중에 '김주익, 김주익, 김주익' http://blog.jinbo.net/Profintern/?cid=3&pid=88 이라는게 있어요. 거기 잠깐 영원하라 현중노조 노래 이야기가 나와요. 노동해방도에 나오는 이영현, 조돈희, 이갑용 세명이 오롯이 소속됐던 현중노조. 골리앗이라는 이름이면 대한민국 아니 외국에서도 현중노조로 알아듣던 그 현중노조가 비정규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행한 행위는 어떻게 설명이 될까요?

 

'현장파'소속 활동가였다가 위원장 자리에 앉아선 "박일수씨는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라 뇌까렸던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은 해외 바이어 들한테 감사편지도 보낸다고 신문에 나더라구요. 정몽준 오너랑도 친하다던가...

 

민주노총 소속도 아니고 한국노총 소속도 아닌 현중 노조 조합원들이 아직도 '영원하라 현중노조' 노래를 부르긴 하는지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합니다. 하긴 뭐 청와대에서 386초선 의원들이 당선 파티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불렀다는데 기껏해야 중산층 하층부에 진입할까 말까한 소시민들인 현중 '직원'들이 술한잔 하고 무용담 풀어놓으면서 '영원하라 현중노조'를 못부를껀 또 뭐랍니까?

 

그래도  "자 동지들아 앞장서가자 노동해방에 선봉이 되자 칠천만의 해방을 위해 영원하라 현중노조"라는 부분 부를땐 좀 찔리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의 없어 보이는 선배가 먼저 말하고 나중에 김상경도 반복했던 "우리 사람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말자"라는 명대사를 한 번 되뇌여 봅니다.  

 

 



정전 경우를 대비해 SAS 가이드북을 보셔도 도움이 되겠지만 우라사오 나오키의 만화 파인애플 아미나 마스터 키튼을 보세요. 아시겠지만 키튼은 SAS에서 마스터 칭호를 받은 사람이잖아요. '빈자의 식탁'이라는 만화도 나름 도움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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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 드라마로 뛰어들다!

4월 하순에 일터 원고로 보낸 글이다. 그 이후 드라마 전개를 보면 한가인이 뛰어난 영어실력 등을 보이고 있어 글 쓸떄랑 약간 차이가 있는데 뭐 큰 주제에 어긋남이 없어 그냥 여기도 올리련다.  

 

 

발자크라는 프랑스 소설가가 있다. 못말리는 왕당파에다가 사생활도 문란하기 그지 없었던 사람인데, 일찍이 맑스는 "서점의 잡다한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는것보다 발자크 소설을 읽는것이 경제학 공부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상찬한 바 있다. 말인즉슨, 뛰어난 리얼리스트 발자크의 소설은 발자크 자신의 사고와 별개로 19세기 프랑스 자본주의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인게다.


지금이야 발자크는 대문호로 평가받고 ‘고리오 영감’을 비롯한 그의 ‘인간희극’시리즈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당시 그는 대중소설가였고 그의 소설들은 대중소설이었다. 오늘날로 따지면 글쎄 방송작가 김수현과 비견할 수 있을라나? 우리가 발딛고 있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이, 훌륭한 소설이나 영화 혹은 티비드라마들은 그것의 제작의도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별개로 현실의 핍진성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아니 현실의 핍진성을 드러낼때 만 그 개별 작품들은 생명력을 얻고 대중의 호응을 받게 된다.


한류열풍이란 말도 지겨울 정도로 한국 TV드라마들이 동아시아를 호령한지 몇 해가 지났지만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불치병(근골격계 환자들은 절대 티비에 안나온다. 재벌회장이든, 시장에서 생선장수 하는 주인공 엄마든 거의 90% 암에 걸린다!) 같은 클리쉐들이 판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티비 드라마 만드는 자기들도 지겨운지, 아주 가끔 독특한 소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면 계급상승 욕구의 불타는 화신 하지원이 역시 마찬가지 캐릭터인 소지섭한테 책을 빌려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 책이 무엇이었던고 하니 글쎄나...그람시의 옥중수고 였던게다. 소지섭은 하지원에게 헤게모니가 어쩌고 설레발을 풀지만 결국 소지섭은 재벌 조인성과 나란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발리에서 생긴 일’은 사랑도 결코 이길 수 없는 부르주아 헤게모니를 비극적으로 그렸다는 측면(?)에서 볼때 옥중수고를 적절하게 삽입시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내 눈에는 옥중수고와 헤게모니에 대한 소지섭의 그럴싸한 설명이 극의 리얼리티를 더했다기 보다는 주인공의 ‘쿨함’을 장식하는 도구로 느껴져 눈살이 찌푸려지더라.


‘발리에서 생긴 일’이야 인기라도 좋았지 ‘현실’을 소도구로 잘못 써먹으면 큰 코 다친다.이효리가 “저를 섹시가수로 보지말고 연기자로 보아 주세요”라는 야심찬 발언과 함께 데뷔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세잎 클로버’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인가 어딘가의 후원을 받아 제작했다는 이 드라마에서 이효리는 용접공 역할을 맡았었다. 이효리 눈웃음 치는걸 안 보여줄수 없어 용접마스크도 제대로 안씌우고 일시키며 뻔한 신데렐라 드라마에다가 “본 드라마는 뜨거운 노동의 현장인 한 산업체를 배경으로 블루칼라로 대변되는 가진 것 없는 소박한 사람들의 고된 일상, 그 속에서 피어나는 밝고 소중한 가치들을 운운”하는 기획의도를 가져다 붙인 SBS는 가히 재앙에 직면했다.  나름대로 네임밸류를 자랑하던 장용우 PD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도중하차 했고 황금시간대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수요예술무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그냥 하던 대로 해라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 했다.


이런 판국인지라 그나마 왜적을 무찌르시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이나 심드렁히 보고 있던 차에 얼마전에 세 연속극이 시작됐으니, 그 제목은 바로 ‘신입사원’이다. 일단, 이 드라마 재밌다. 백수 혹은 청년실업자가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의 주변인물로 등장한 적은 심심찮게 있었지만 일단 이 드라마 주인공은 백수다. 건강한 백수 답게 가족의 핍박에도 꾿꾿한 우리 주인공 ‘강호’는 그야말로 로또 복권 맞기보다 더 힘든 우여곡절을 거쳐 대 LK그룹에 입사했는데 그 행운의 가능성 여부야 드라마니까 일단 넘어가자. LK그룹의 로고나 풍경이 SK그룹이랑 비슷한 점도 눈 감아주자. 취업에 흥분한 우리의 주인공 강호가(문정혁 분) “너 내가 세계적 회사 대 LK그룹 신입사원만 아니어도 안 참았어”하면서 애사심에 불타는 멘트를 연방 날리는 것도 뭐 좀 그렇지만 참아주자--;;


어쩌다 보니 참아줄 것만 먼저 말했지만 이 드라마의 대사나 장면들 우습지만 그냥 우습지 않은 것들 꽤 많다. 역시 백수인 친구 자취방에서 연이은 취업실패에 분루를 흘리며 깡소주 뺐어 마시던 주인공에게 방주인은 세계경제체제와 신자유주의란 거시적 분석틀을 동원해 실업의 구조적 문제를 알기쉽게 설명한다. ‘세계적 기업 LK그룹’내에서 벌어지는 하청업체 접대 관행, 줄타기, 밀실인사, 정실인사는 어색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특기할 만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우회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당당한 정규직인 우리의 주인공 강호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정규직 직원들이 계약직 직원들을 보는 눈초리가 심히 거시기하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닌 것이 계약직 직원들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백수’들을 보는 눈초리 또한 만만찮다.


고졸 계약직 직원인 여주인공 이미옥(한가인 분)이 ‘부당계약해지 철회하고 정규직화 하라’며 회사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방송된 날에 이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이 비정규직 시청자들의 지지글로 메워진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상고 나와 LK에 입사해 5년동안 업무 외에 커피심부름, 청소까지 도맡았던 이미옥의 일인시위는 시청자들과 우리의 주인공 강호의 열화와 같은 지원을 받지만 이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위 한 번 하려면 50만원 내야 되는 현실도 뭐 일단은 잊자. 이 드라마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참 좋다. 이 드라마 보고 ‘공부 안하면 백수 된다’는 엉뚱한 교훈을 얻은 학생들 탓에 도서관이 붐비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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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무 느무

힘들었었고 힘들고 힘들듯 하다. 피곤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 무게를 나눌수 있을까 싶다는 것.

아마 이 무게는 '우리의 무게'가 아니라 생각들을 한다면. 아마 판단의 지점이 필요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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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로 이직 결정

미디어참세상을 관두고 민중의 소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참 힘든 결정이었다. 나에게 어떤 돌팔매가 날아들지 잘 알고 있지만 힘든 결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모든 비판은 내가 짊어질 몫이니 다 지고 가겠다.

 



만우절이라 거짓말 한 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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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경작자 이기보다는

* 이 글은 새민중언론님의 [[참여] 새 민중언론의 주인이 됩시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그대가 바로 새 민중언론의 주체다! 진보네를 한 번 따라해봤다^^

 

하여, 오늘 우리 새 매체는 감히 전국적 정치신문을 참칭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새 민중언론으로  이 땅 민중운동을 선도하겠다고 나설만큼 주제넘지도 않다.

 

파시스트 정부에 의해 감옥에 갖힌후 지식인의 노동이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완벽하게 증명해 낸 그람시는 말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역사의 경작자가 되고 싶어했다. 아무도 역사의 '거름'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먼저 땅에 거름을 주지 않고 경작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므로 경작자와 거름은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새 인터넷신문은 변혁의 밭을 갈고, 씨뿌리고, 물꼬를 트는 민중언론을 감히 자임한다. 파종하고 거름을 주고 물꼬를 트면 작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면 민중들은 다시 파종할 종자를 남겨두고서는 그 작물을 배불리 먹으리라. 과감히 함께 씨뿌리고 거름을 주러 나서자고 제안하고 싶다. 약간의 거름 냄새 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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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

오늘 , 아니지 어제구나 어떤 회의를 했는데 대략 잘 됐다고 볼 순 있지만 따져 보면 내 일이 엄청 늘었다ㅠㅠㅠ

 

 

그러나 그 이후는, 역시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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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하루

하하하. 어제는 참 행복한(행복한 이라는 형용사가 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잘 안 쓰는 편인데 즐거운 이라고 쓰려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하루였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참 청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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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리고 영화보기

* 이 글은 <엄마...>게시판 가기님의 [상영기간이 1주일이었고나...] 에 관련된 글입니다.

지난 주에 알엠님이랑 인터뷰를 했더랬지요.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먼저 풀어놓을가 싶었지만 직업 의식 탓인지(?) 먼저 기사 업로드를 했습니다. ("나는 행복하다,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인터뷰]다큐멘터리 '엄마'로 일반 관객 만나게 된 류미례 감독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1931 )

 

알엠님은 감사하게도 직접 사무실까지 나오셨고 게다가 비타 500이라는 엄청난 것 까지 손에 들고 오셨겠지 않겠어요. 한동안 사무실에서 알엠님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었습니다.

 

기사를 쓸 때 마다, 특히 인터뷰 기사를 쓸 때 마다 느끼는 건데 '내가 과연 들은 만큼 글로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시간 남짓, 알엠님과 재밌게 나눈 이야기들을 제가 1/10 이라도 풀어냈는지 참 걱정이 앞서는군요. 써놓고 보니 빼 먹은 부분도 많은 것 같은데 또 분량은 만만찮고..나 참.

 

나눈 이야기들은 하여튼 기사에 있으니 그걸 참조하시고...

 

일요일 저녁에는 하이퍼텍 나다 에 가서 '엄마'를 보았지요. 사람이 많이 들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영화 시작할때랑 끝날 때는 관객 세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본 느낌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정말 잘 왔다'라는 것 하나하고 이 영화를 같은 상영시간에 본 남성 두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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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사라진 누나들

월간 사회진보연대 1,2월 합본호 기고글. 사실 내 이전 글을 확대 재생산 한 것임 ㅠㅠ

 

‘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사라진 누나들


신세대 소설가로 불리는 일군의 사람들 중에, 특히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 중에 김종광이라는 작가가 있다. 김종광은 70년대 산으로 1998년 단편 '경찰서여, 안녕'으로 등단했는데 이문구 틱한 의뭉스러움이나 이 시대를 나름대로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려는 모습이 참 좋더라. 게다가 이른바 메이저 캠 운동 이야기들이 주름 잡는 한국 문학에서 그간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제2캠퍼스를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참 맘에 든다. 뭐 김종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많겠지만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여받기도 한, 나름대로 유명하다면 유명한 작가 축에 끼는 사람이다.


김종광이라는 작가의 장점을 몇 개 늘어놓았지만 맘에 안드는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상 운동 혼자 다 한듯 비장하게 후일담을 풀어놓던 소위 386들이랑은 다르지만 역시 후일담 스런 냄새를 팍팍 풍기는 거랑,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지났다며 힘 빼는 소리 반복하는 건 눈꼴 사납기 짝이 없다. (가만 보면 다들 지가 운동 그만 둔 때를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선언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419세대들부터 김종광 같은 90년대 초반 학번 세대까지 멈추지 않는 전통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언은 주구장창 계속되겠지?)

여하튼 김종광의 소설 중에 2002년 월드컵이 한참일때 발표된 '71년생 다인이' 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제목 그대로 71년생이고 90학번인 양다인이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다. 주인공 양다인이는 고딩때는 전교조의 세례를 받고 대학와서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을 건너는 바로 그 시기에 어느 수도권 대학에서 운동의 끝자락을 부여잡고(아마도 엔엘) 빡시게 활동하다가 빵살이도 한 번 하고 나와 이런저런 청년단체에서 일하다가도 일하다가 정신차렸답시고 벤처 창업하겠다고 설레발을 떨다 또 말아먹고 하여튼 삶을 팍팍해 하는 그런 여성이다.


이 소설은 6명의 관찰자를 통해 양다인을 조명하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양다인은 남달리 저항의식이 강력한 그야 말로 싹수가 정말 빨간 타고난 운동권이었댄다. 대략 양다인의 성장과정을 훑어보자면 부모는 70년대 운동권이었는 데다가 전교조 세대로서 고등학교 때부터 독서회를 조직해 학교와 충돌을 일으키고 전교조 지지시위를 주동했고 대학 입학해서는 ‘술자리 최후의 용사’로서 이름을 날렸단다. 게다가 말빨은 또 얼마나 센지 작가의 표현을 잠깐 빌려 오자면 “다인이는 청산유수라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난 애 같았다”니 원 참.


이 것 뿐이 아니다. 말로 안 되니까 권위, 나이, 감정을 앞세우며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선배(물론 남자 선배지)는 태권도 공인 3단인 다인이에 의해 즉시 술집 바닥에 뭉개지곤 했으니 작중 다인이의 별명은 ‘원더우먼’이란다.

각설하고 이런 타고난 운동권이자 원더우먼인 양다인이는 학생운동 접고, 사회운동 하다가, 벤처창업했다가 망하고 나선 “나는 신념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어”라고 찌질하게 털어놓는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원더우먼의 몰락사치고는 너무 싱겁고 희화화된 느낌이 든다.


소설 소개는 이 쯤에서 그치고, 내가 이 소설을 참 재밌게 읽은 이유는 또 따로 있는듯 싶다. 나 역시 70년대 전반부에 이 땅에 태어난데다가 90학번 또래의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라 그렇지 싶다. 게다가 양다인을 보면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선배, 그 중에서도 특히 누나들이 떠올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2남 중에 장남이고 친가 쪽 사촌형제들은 열셋인데 전부다 남자다--;; 십삼남 무녀란 말이다. 그리고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전차로 어릴 때부터 누나 있는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웠더랬다. 어찌하다 평균 많이 다른 성비를 지난 단과대, 학과로 진학을 했는데 동기들 중에 여자애들 많은 것 보다 때 늦은 누나 풍년이 든 게 더 좋더라.


그 때만 해도 해도 과방 한구석에서 통기타 줄을 튕기면서 노래 부르는 고운 누나들이 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기타 연주 실력이야 초보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고 레퍼토리야 서정적 멜로디를 지닌 민중가요가 대종이었지만 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무구한 자태 바로 그것이었다. 노래 한 곡조 뽑고 담배 연기 코로 내 뿜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안 시켜도 자진 해서 커피 뽑아다 바칠 정도였다.

그 뿐인가? 강경대 열사가 죽은 지 삼년이 되는 그날 내 손목을 붙잡고 맛있는 것 사준다며 명지대로 데려간 누나도 있었고(생각해보면 그 때 따라간 후배가 나 하나였다. 그 누나는 속으로 참 열불 났었겠지) 최루탄 향이 알싸하게 날릴 때면 손으로 눈 비비지 마라며 내 눈에 자기 담배 연기를 불어넣어 주던,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던 누나도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목소리는 쇳소리인데다가 재미도 없는 커리로 세미나 시키던, 그러나 욕하는 모습은 묘하게 섹시했던 누나도 있었고 학생회 선거 지고 나서 구슬피 통곡하던 누나들도 있었다.


일단 ‘71년생, 다인이’라는 소설 자체가 재밌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완독하고 딱 책 뚜껑을 덮고 나니, 그 누나들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 다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면 선전 업무에 치여 뼛골 빠지다가 결국 운동 접고 뒤늦게 향학열에 불타 잘 나가는 동시통역사가 됐다더라는 둥, 운동판에서 눈 맞아 결혼 했다가 남편 뒷바라지에 허덕인다는 둥, 평등가정의 대장정을 열어젖히겟노라는 야심찬 선언과 함께 결혼했는데 그 이후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던 둥 여튼 둥둥둥이다.


게다가 뭔 이유 탓인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형들이랑은 가끔 생사확인도 하고 울적할 때면 전화해서 맛난거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누나들은 연락처도 거의 모른다. 아 물론 너무 씩씩해서 탈일 정도인 누나 한 분도 낙락장송처럼(낙락장송이란 표현이 좀 어색한가? 그렇다고 한송이 국화꽃 처럼 운운은 더 말이 안되지) 떡하니 버티고 계시긴 하다.


에구 글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분량이 좀 모자란 듯 싶다. 저자의 말을 약간 인용하며 횡설수설을 마치련다.


“전태일 열사가 분실했을 즈음에, 유신헌법이 등장했을 즈음에, 그때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초등학교 때 박정희가 죽었고, 광주가 있었고, 전두환이 새로이 대통령이 되었다.- 중략-대학교 1학년 때 최소한 한 번은 데모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91년에는 괴로웠을 것이다. 4월과 5월, 많은 친구들을 잃었을 때 말이다. 졸업 무렵에 혹은 복학해서 전대협이 한총련으로 변모한 것을 보았고 좀더 뒤에는 연세대에 갇힌 후배들을 보았고, 서른 살이 내일 모레일 때 아이엠에프를 겪었고, 80년대 학생운동권이 제도적 정치무대에 폼나는 모습으로 입성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중략- 71년생이며 90학번이었던 다인이는 그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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