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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1
    중정(10월3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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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3/03
    메이데이-전평(10월2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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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3/02
    발견(10월1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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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2/28
    가족이데올로기(9월3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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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02/27
    마음(2004년 9월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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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10월3일-일)

사랑하는 당신에게

 

동양의 내향형 중정주택의 생명력.

  ' 동양의 도시주택은 그 뿌리를 고대 문명에 두고있다. 그것은 근동지역과 인도아대륙, 북 아프리카 및 극동지역에서 200세대 이상 도시 거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어온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진 주거 형태이다. 이 내향형 주거형태의 본질적인 성격과 속성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앙에 있는 사적인 성격의 열린 공간이 중'정'이다. 마당은 동양 도시 주책의 심장부이며 이것을 표현하는 가장 시적인 말로는 하늘의 우물이라고 번역되는 중국 이름을 들수 있다. 이 우물은 주택에 빛과 공기와 빛물을 제공한다.' (집 - p242)

 

중정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주거 형태는 , 빈부와 계급간의 구분이 뚜렸했고, '교외에 잘 난체하는 외딴 별장들이나 도시의 고층타워 꼭대기에서 과시하는 펜트하우스 주거들이 생겨'난 서양관습과 대비된다. '신분을 의식적으로 반영하려'한 서양과는 달리, 단층과 2-3층을 넘지않는 '단순하고 절제된 가로입면'의 주거도시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모두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갔던 것이다.

 

'외부와 격리된 마당'에 식물이나 분수를 설치하여 기온과 습도등을 쉽게 조절하기도 하여, '쾌적한  미기후(?- 환경)를 거주자에게 제공'한 중정개념의 주거는 그리스 로마를 비롯하여 무어인을 통해 스페인으로, 스페인 폴투갈 인들을 통해 멕시코, 남미에 까지 전파되었다.

 

' 그 내향성으로 인해 가로및 이웃으로 부터 시각적, 청각적 프라이 버시'를 보호받고 가정의 안전을 확인 받았던, 또한 주택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융통성있게 구분한 것은 동양중정 주택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

 

금은 지루하다 싶기도한 이책을 부여잡았던 보람이 한꺼번에 몰려 온 이유는 바로 '중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찿아보기 어려운'ㄴ' 'ㄷ' 'ㅁ'으로 지어진 한옥들은 모두 이러한 '중정개념'때문인데 우리의 풍습과 가옥들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겠다.

 

대 가족제도를 기본으로 하였던 과거에는 '중정'으로 방향을 모으고 중정에서 공적인 행위(종교, 대소사등)를 하였고, 사면의 바깥은 자연스럽게 외부를 관찰(?)하고 접 할수 있는 구조였다.

허나, 사적 공간이 보호되는 만큼, 동양의 사회는 그 만큼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사회환경'이었음을 알수 있다. 가정의 보호와 사적 공간의 보호는 '길를 지나도 가로수 안이나 담장안의 상황을 전혀 알수없는'바깥사회와의 철저한 차단을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하여간, 초고층 아파트와 서구형 빌딩들이 압도하는 주거와 도시의 개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 세계의 주거 형태를 '중정개념'으로 20세기 까지 이끌어왔던 전통(동양)에 대해서는 충분히 발전적으로 되살려 봐야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말하듯'토지이용의 효율성과 에너지 보존'의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쾌적한 공동체로써의 주거(순전히 내 개념임)'를 위해서 말이다. 이제 '서양'으로 넘어 갈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한정된 정신력의 축적 만을 마음대로 쓸수 있으며, 어느 한 영역에서 소비되는 심적 에너지의 양은 다른 영역에서 쓸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감소시킨다는 것도 프'로'이'드' 의 기본관념의 하나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

네가 많이 피곤하고 일이 잘 안 풀릴때, 혹은 보상이 안 나온다고 생각할 때, 위의 문구를 생각하면서 위안 받기 바란다. 허나, 우리가 함께라면 모'든'영'역' 에서 힘을 쓸수 있을 것이리라!

 

2004년 10월 3일 일요일 오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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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전평(10월2일-토)

사랑하는 당신에게

 

전평의 조직활동과 관련해서는 추후에 다시 살펴 볼 것이다. 이는 당시 내외부적으로 급격한 정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수준으로' 단순화 하기가 쉽지않다(p200 전평의 조직활동)

한편, 전평의 문화활동은 참으로 놀랍게 다가온다. '기관지는 집중적 선전선동자인 동시에 집중적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조하게, 투쟁의 전달과 수렴, 확대, 배포와 통신원 확대등 기본적인 활동에 충실하면서, 당시로써는 유일한 전평및 노동자 내부의 소통매체로 위치 했었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또 다른 문화 교양면이다. 언뜻, 45년의 시대만을 (시간적 과거) 생각한다면, 서적, 음악, 연극, 영화, 무용등 연예활동이 일천했을 것으로 선입견을 갖을수 있지 않겠는가? 허나, '전평 집행위원장 허성택이 1946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강조하듯이 조합원 대중등을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의 하나'로 '교양문제(문예활동)'는 중요하게 집중실천 되었다.

 

예를들어 '1945년 4월 조선 출판 노조에서는 다가오는 5월 1일 노동절에 대한 계몽선전과 준비를 위하여 강좌반을 조직하여 박봉연, 이선운, 김원식이 각분회와 직장의 순회 강좌를 개최했다'는 기록등 일반교양, 정세, 심지어 '한글'교양까지강습회와 교육, 시국강연회의 이름으로 다양한 교양활동이 전개된것이다.

 

또 하나는 연예활동이 아주 보편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 전평, 서울지평은 46년 제 20주년 '610만세 기념연예대회'를 ------ 출연 종목은 악대, 합창, 독창 , 무용, 춤, 유회, 시뮤레이션, 촌극, 시낭독 등 이었다. 지도요청으로 하면 각 문화 단체에서 사람을 파견해 준다.---- ' 거나 '서울지평는 46년 3월 1일 ---- 31절기념 노동자 위안회를 연다.'는 등의 자료에서 (전노신) 보이듯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노동자들의 문예활동' 모습이 목격된다. 그리하여, 46년 5월 1일 메이데이는 약20만명, 47년 51대회는 약50만명이 운집하여 - 그 야말로 새세상과 노동해방을 염원하는 당시 노동자들의 모습- 10에서 20가지의 요구를 담은 행사를 성사할 수 있었다.

 

이와 비교해 대한노총은 46년 700명 47년 2만 5천명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이 마져 당시의 격렬한 좌우대립을 실감케 한다. 46년 대한 노총대회에서 '민재홍'은( 안재홍? - 3월3일)축사를 했다는 데 그내용이 반동적인 극치다. " 8시간 은 그만두고 10시간 20시간이라도 노동하라, 노자는 친선하자" 는 따위 였다고 --

 

**** 메이데이노래 - 한번 불러볼까?

 

1. 들어라 만국의 노동자들아/ 우렁차게 들려오는 메이데이의

시위대가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 미래를 고하는 고함소리를 !

2. 오래인 압박과 착취밑에서 / 신음하던 조선의 노동자들아

오늘은 만국의 노동자의 날 / 세계의 동무들과 발을 맞추자 !

3. 압제없는 세상을 신설키위해/ 착취없는 사회건설키위해

강철같이 단결한 우리 노동자 / 불은 깃발 선두에 나부낀다 !

4. 완전해방과 자주독립도 /인민의 새나라 세우는 데도

정의로 싸우라 우리 노동자/ 정의로 싸우리라 삼천리 강산 !

5. 인민의 적 물리치고 나가는 곳/ 자유의 새세상 동터온다.

지키자 메이데이 노동자들아/ 지키자 메이데이 노동자들아 !

 

참으로 감동적이고 벅찬 노래이지 않나?

 

허나 48년 메이데이는 불허로 개최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

이 장면에서, 현재와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본다. 어찌 단순비교가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조직과 투쟁, 의식과 연대성등에서 상당히 수준높았던 , 즉 혁명적 시대에 걸맞는 노동자등의 활동, 그것이 존재 했었고, 이는 현재로 살려야 할 자산임에 틀림없다.

 

전평의 그것과 '1987- 1992'의 시대에서 보이는 노동자 정치활동은 두고두고 보아도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조공과 전평의 관계, 정치단체(정당침 기타)와 전노협의 관계는 , 현재에도 여전히 연구되고 고민되(노조와 정치조직의 관계) 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 91년경 '한노당' 으로 집결한 선진 활동가가 5000명 이라니!

87년 에서 92년경까지의 '상호연대형' 노동자 정치의 활동은 , 허나 한마디로 실패했다고 보여진다. 필자는 '전노협 사수 투쟁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이념적 조직적 분화'를 의미있게 살펴보고 있지만, 쏘권의 몰락만큼이나 그 충격이 가해진 것처럼, 그 왕성했던 운동은 쇠락을 면치 못했음을 확인한다. 그런 측면에서 실패라는 것이지!

 

날씨가 10도씨 떨어져 10도라고 하네.

방금전 그리고, 서울의 상도동에 강제철거가 시행되었다는 티브화면이 나온다. 아나운서와 기자조차 '추워지는 날씨에 어찌 살라고?' 하는 항의성 보도가 나오는데, 당사자들의 울분과 한은 얼마나 크겠는가 !

어찌 빈민 뿐이겠는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가슴이 검게 타들어가는 가을시대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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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10월1일-금)

사랑하는 당신에게

 

요즈음은 발견을 많이 한다.

예를 들자면, 네팔이라는 나라를 알게되는 것인데, 안나푸르나 영봉이 있는 포카라의 전경, 마오주의 자들이 반군으로써 농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등을 발견한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의 산과 포구 등도 발견 하는데, 이는 최근의 일이다. 월악산 근처의 도락산과 황정산, 또는 동강과 백운산, 흑산도, 삼천포와 어청도 등 산, 강, 포구를 알게 되었다. 이미, 실크로드와 동방견문록으로 친근하게 된 유라시아와 중국에 대한 발견도 같은 기쁨인데, 이제 다시 천문이나 우주의 발견을 모색하고 있다.

 

네팔 같은 경우는 남들도 그렇듯이 내가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 가끔씩 불어오는 신문의 란을 통해서, 또는 산이나 여행 등의 정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심코 넘길 필요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뇌에는 충분히 네팔의 마오주의자들의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있고, 나는 이를 발견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신이 만든 예술품 이라는 네팔에 여행을 한다면 좋은 정보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군과 정부군 모두 외국인들에게는 호의적이라는 틈에서 긴장하면서, 여행말고 다른 무엇을 할수도 있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

 

산과강, 포구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 이겠다.

숱하게 넘나 들었던 산과령, 또는 천과 강들이 다시 새로운 발견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속에 녹아있는 민중들의 숨결과 애환 때문이다. 그 자체의 멋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모든 산과 강과 포구에는 고유의 이름이 정해져있고, 특별한 사연이 대부분이어서 또 다른 이름이 붙어있곤 한다.

 

우리가 인간사회를 잉태한 자연- 즉 산과 강과 들판, 포구와 해변-을 외면하거나 격리 당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자연으로부터 민중들은 소외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 하면서, 산과강, 바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대명사에 만족하지 않고, 구체적인 고유 명사까지 발견하고자 한다. 그것과 농업, 주거, 지리, 문화 등 인간이 개입한 역사적 유물들을 오늘에 되 살려 보고 싶은 것이지 !

허나, 많은 것은 욕심일 뿐이다. 평생을 걸쳐서 발견하고 음미하고, 활용하고, 연구하는 인간 본연의 탐구자세가 필요 하겠다. 대체로 업적을 남긴 유능한 학자나 저자들은 그 계통의 연구를 수십년 동안 전념 했음이 보인다.

 

한해에 3만권 정도나 발간되는 책에서 보이 듯이 넘쳐나는 정보량에도 불국하고, 인간은 세상에 대해 알고있는 인식이 너무 일천하다. 그렇다.

세상에 널린 모든 만물을 알고자 부산떠는 행위는 실제로는 달성못할 꿈인 것도 사실이지 !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하나를 알면 열을 헤아리는 지혜는 꼭 다량의 지식을 습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만물의 운동속에 녹아있는 진실을 음미하고 해석할 줄 알면 세상의 이치를 어느정도 깨우쳤다 할 것이다.

 

당신에게 발견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허나, 인간은 항상 새로움에 하루를 반기는 것이지 않는냐?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도록 노력하지!

그럼 안녕.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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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데올로기(9월30일-목)

사랑하는 당신에게

 

" 굳이 건축을 다른 학문의 분류에 넣으려 한다면 인문학에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속에 작업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도구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 어떻게 생각하면 건축은 집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은 하부구조이며 그 집속에 담기는 우리들의 삶이 그집과 더불어 건축이 된다. 우리의 삶을 짓는다는 것이, 건축의 보다 분명한 뜻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건축의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우리 인간의 삶의 가치에 대한 확인이다. 우리들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건축이 참 좋은 건축임에 틀림이 없다." (승효상 - 건축 사유의 기초 머리말 중)

 

합목적성, 시대성, 공간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그런 세기의 건축 대가들을 소개한 ' 건축 사유의 기초' 라는 책을 덮는다. 한번 쯤 은 저 성당과 도로, 도서관과 국회 의사당, 호텔 등 거대한 건물들이 무슨 의미를 간직했는지 궁금해 하겠지!  이 책은 일단 그런 궁금증을 덜어준다. 그리고, 주거를 포함한 건축의 목표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이것으로 일반적인 도시와 주거에 대한 의문점이 풀린것은 아니다. 결코 그럴 수도 없는 것 또한 이 책의 한계이다. 단지, 거장과 상징적 건축들을 소개하는 수준으로 건축의 맛과 대중화를 알려 주지만, 까딱 잘못듣는다면 가진자들의 또 다른 취미거리로 다분히 전락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런측면에서 동양주거를 보고있는 '집'이라는 책은 보다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다. 도시와 건축은 확실히 사회 경제적 산물이고 자체로 삶의 기본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즉, 합목적성, 시대성, 공간성에 부응하는 건축양식은 과연 무엇인가? 

 

다음으로 ' 현대가족이야기'는 많은 느낌과 반성을 던져주며 지나갔다.

지은이 조주은님은 ' 가족을 신성한 사적 공간의 왕좌에서 끌어내어, 인간을 기계의 일부로 합체하게 만드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어 벨트시스템, 이윤추구를 위해 기꺼이 가족을 거대기업의 경영정책, 공해와 교통사고의 위험이 가득한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조합의 협상전략과 지역 공동체의 평준화된 삶 옆에 나란히 놓고자 했다. 또한 실제로는 전쟁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평화와 친밀함의 이미지로 만 덧칠되어있는 가족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고자 했다'는 필요성으로 글을 썻다고 한다.

 

그리하여, " 가정 중심성은 남성적 권위와 성별성을 만들어 내는 공장 즉, 가부장제의 보루로 기능하는 " 것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하고있다.

교대제의 폐지, 가족 임금제의 문제와 극복을 과제로 등장 시키지만, 보다 총체적인 대안 마련이 부족한 것도 , 머리말에서도 밝히듯이 문제제기 적 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현대 자동차 노동자와 그들의 부인으로 표현되고 있는 여성들의 생활 상태와 고통 및 요구들을 밀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생생하게 전달 했다는 점이 이책을 돋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 " 남성도 이제까지 여성들만 일방적으로 부담해왔던 가정내의 보살핌에 기반한 가족 노동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써, 즉, 돌보는 자로써 인정되어야" 함을 나에게 느끼고 반성케 한다.

 

그리고 " --- 사회전체의 보살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 동안 여성들에게 더 적당 하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무 가치한 것으로 인식 되었던 보살핌에 기반한 가족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 인식해야 만 한다.  따라서 가족 노동으로 부터 면죄 받았던 남성들만의 경험과 생애주기(life-cicle) 에 입각하여 설계된 노동시장, 그 속에서 타협 하였던 남성 노동자들, 돌보는 노동을 가족내 여성에게 전가하였던 사회에 관한 복합적인 성찰과 비반" 이 필요 하다는데 동의하며 확장을 고민한다.

 

 특히, " 2002년 현재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4%이다. 이는 생계 부양자와 가사 전담자(여성)로 구성된 핵가족 개념으로 현실의 가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 하면서, " 핵 가족이 ---- 이데올로기적인 구성물일 뿐이고, 여성들의 가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긴장을 보이지 않게 하고 낭만화 시켜 남녀간의 권력관계를 은폐한다" 는 점을 깨닫는다.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지(1999년 50%)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7.9%분담한다는 통계는 자신을 두고 하는 진단같구나. 생각과 현실사에 차이가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책을 덮는다.

 

추석연휴가 끝났다. 잘 보내고 왔는지?

수확철이라 분주 할 때다. 당신도 다시 바빠 지겠군. 연휴동안 무리를 했다면 좀 쉬어야 할 텐데!

오늘은 이만 줄인다. 그럼 !

 

2004년 9월 30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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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2004년 9월 28-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추석날이야 ! 고요한 정막을 깨고 누군가 반복적으로 울부(?)짖고 있네(!)

독서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야 !

새벽에 깨어보니 창밖에 달이 걸려 있더구나. 그 야말로 보름 달이지! 허나, 어릴적 뒷 동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달' 이 아니듯, 선명하게 빛나고 만 있는 그런 달님이다.

그리 오래도 안봤어 !

달의 정기를 받을 생각이 없이, 이제 자연스런 운기행공을 하기 때문이지 !  ㅎㅎㅎ

잠자기전과 깨어난 아침에 반가부좌를 틀고 단전호흡을 해서 그런가 요즈음은 새벽잠이 없어졌어.

 새벽 두시면 눈이 떠져 어쩔 수 없이 독서에 들어갈 밖에.

 

또다시 잠을 청해도 보지만, 잠은 안오고 공연한 생각만 가득차니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거지!믈런. 헤기 떨어지고 얼마후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기 때문이야! 잠을 늦추면 기상시간이 늦어지겠지만, 몸이 하는대로 맡길 뿐이다.몸은 자연에 가장 자연스럽게 적응할 테니까.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면 마음과 몸을 움직이면 될 듯하다.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말과 노래와 그림을 그리거나 등등 마음과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인데, 우선은 아음을 움직여야 하겠다. 처음에는 어렵고 낮설겠지만, 그 필요성과 연관관계를 활용하고 집중하면 '어느더것이든 못할것을 없다' 그리고 마음만 있어서는 안되고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데,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일수록 마음과 실행이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인은 이렇듯 마음과 실행을 얼마만큼 자신의 것으로 해서 제대로 운용할 것인가로 자기 존재의 이유에 답이 내려질 것인데------. 다음은 사람과의 관계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이 엮시 핵심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일의 성패는 당사자의 실행에 전적으로 달려있을 터이지만,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일 때 뿐이다.' 그러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동하여 실천에 다다르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올바른 지식과 좋은 꾀도 운용하지 못한다면 별무소용이다.

지식과 정당성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백날 떠들고 압박한다고 해서 될일도 아니다. 그러니,우선은 마음을 열게하고 동하게 하기위한 여러기본작업이, 그런 대화가 절대로 필요하다.

강한 욕구와 마음이 동한 상태에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제로는 별 어려움도 없는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우선은 대명제하에 마음을 동하게 하는것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하겠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자양분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다양하고 개별화 되어있는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대중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마음을 동하게 할것인가?

대중은 아니더라도 인간사회의 모순에 고통스러워하고 투쟁하려는 선진 대중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실천으로 나서게 할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현재 하고있는 마음 열기와 통하기 혹은 집단의 행위는 얼마나 적절할 것인가?

최대한 활용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모자라는 지점과 극대화 해야 할 것들을 포함해 고민해 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고민이다. 좀더, 근본적인 고민으로, 조건과 상태, 주체와 정세, 그리고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심도깊게 고민해야 겠다. 이것이 정확하다면, 대중들의 마음은 열릴 것이고, 그 숫자가 소수일지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문화공간으로 연극, 영화, 노래공연, 문학공연, 건축,미술등등의 전시공연등 여러가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느낀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소통의 공간이자 대항문화의 향유를 통한 정서와 교양의 함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성만을 느낄 뿐이다.

경기지역에 그런것이 필요하기도 하겠다. 대중들이 참여하는 '직접행동'을 할 수 있어야 겠다고 느낀다. 다수의 민중들은 대리로 하거나(의회정치에)- 익숙해질 우려 - 가 상당히 강하다. 그럴려면 걸맞게 실행할 단체는 무엇인가? 정치조직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또 다른 시민단체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세상의 민심이 변하듯이, 장기적으로는 대중들의 표현과 행동은 많이 변할 것이라고 느낀다.

 

다시 나로 돌아와 , 현재의 무엇에 대해 과제를 던져본다. 역사와 사회의 주체가 된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과제를 올바로 설정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하여 ------

오늘은 여기까지만.

 

2004년 9월 28일 (화) 

추석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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