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웰빙하라

친구가 쓴 글 *^^*

 

<미안하다, 웰빙하라 (기획글 초안)>

어떻게 사냐건 "웰빙이라며 웃지요"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김씨의 하루는 새벽 5시 집 근처 국선도장에서 시작된다. 요가를 배워볼까 생각했지만, 자신의 개성을 살리고 싶어 요가 대신 국선도를 선택했다. 힘찬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을 하고 단전호흡으로 기운을 돌리다 보면 시계는 어느덧 6시15분을 가리킨다. 아침 식사는 8가지 곡물로 만든 생식에다 껍질째 먹는 과일로 가볍게 한다. 



그래서 그는 근무환경이라도 웰빙형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사무실 곳곳에 큰 화분 3개와 작은 화분 5개를 올려놓았다. 뭔가 음이온이 나와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음 과식은 웰빙의 최대 적이다. 그는 부서회식이나 소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앞장서 예약을 도맡는다. 소주보다는 와인을 권유하는 음식점을 찾아 주인과 입을 맞춰 놓는다. 그 날은 꼭 와인에 삼겹살을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한다. 김씨는 오는 11월 중순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끔 주말에는 예비신부와 함께 온천이 있는 지역으로 차를 몰고 가 3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고 온천물에 몸을 푼다. 요즘 김씨의 고민은 지은 지 2년이 채 안되는 신혼 살림을 차릴 아파트에서 어떻게 새집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을까이다.”

“케이블 방송 프로듀서인 이씨는 새로 찾아낸 삶의 방식에 푹 빠져있다. 웰빙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유기농 채식 뷔페를 즐기고 커피 한 잔을 해도 유기농 커피 전문점을 찾는다. 얼마 전까지는 요가원을 다녔고 최근에는 필라티스라는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스파 센터를 찾아 족욕과 아로마 테라피를 즐기며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바쁜 방송 제작 일정 속의 생활은 전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녀는 새로 알게 된 삶의 방식인 이른바 웰빙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웰빙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웰빙이라는 단어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삶에 대한 추구’의 이미지를 지니고서 신문지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여름이다. 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요가에 흥미를 갖는 등 동양적․자연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오르가닉’(organic)과 ‘웰빙’(well-being)은 2004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마케팅 기호가 되었고, 어느새 슈퍼와 편의점은 녹차를 함유한 초록색 슈렉 과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유기농 건강식품, 천연섬유 및 기능성 의류, 아로마 제품 등이 새삼 ‘웰빙형’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관련 업체의 매출이 크게 오르고 있다.
물론 웰빙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와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추구되기 시작한 시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웰빙이라는 단어 자체는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던 두 다큐멘터리, 서구식 식문화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꼼꼼히 얘기하며 채식의 중요성을 역설한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아토피 ‘환경의 역습’ 등이 성공적으로 방영되던 무렵, 채식과 요가, 자연주의적 삶이 유행의 열꽃을 설명하기 위해서 들여온 말이다.
어쨌든 이 웰빙 담론이야말로 비타500을 통해 부도 직전에 몰렸던 광동제약을 구해냈고, 풀무원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이제는 웰빙이 아니고서는 이 장기적 불황을 탈출할 어떤 키워드도 찾지 못하는 있는 판국이라고 하니, 웰빙이 이렇게 ‘웰빙’하고 있는 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궁금한 것은 여전히 따로 있다. 어쩐 일로 이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삶 각각에까지 이다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웰빙이 어떠한 장애물과 반발도 없이 21세기를 대표할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IMF 이후 민중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비정규직화되고 있는 상황들과 뗄 수 있을까. 이제는 몸 밖에 믿을 게 없는 세상이니, 몸만은 잘 챙겨야겠다! 개인의 불건강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지움으로써, 신자유주의가 붕괴시켜 가고 있는 사회 복지시스템에 대한 필요를 줄이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이런 건강 담론이 2000년대에 들어서서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활용되고 있는 현상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 구제에서 개인 구제로

“2003년 11월, 인터넷에 뜬 단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39세 두 아이의 엄마인 정다연씨가 5년간의 운동으로 달라진 자신의 몸을 공개하면서 불기 시작한 몸짱 열풍. 헬스클럽마다 신규회원이 늘어나고 신문과 방송은 몸짱 열풍을 재생산해내기에 바쁜 모습이다. 급기야 평범한 주부였던 정다연 씨는 CF 모델, TV 출연 등으로 또 하나의 스타가 되었고, ‘몸짱’이란 단어는 2004년 벽두 최고의 화두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마케터와 창조적인 소비자가 있다. 이들과 함께 웰빙이라는 신산업을 키워나간다면 국내 불황을 이길 수 있고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도 있다. 모름지기 시장에서 게임의 승부사란 누가 먼저 내다보고 실행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상품들이 유행하고, 요가교실과 헬스클럽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은 육식과 패스트푸드 위주의 생활이나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질환(아토피)이 실제로 심각해진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들의 기성화(내지 보수화)와도 맞물려 있다. 여기서 보수화 된다는 것은 체제 내지 구조의 문제를 살피는 데서 눈을 돌려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해소하거나 해결하려는 성향인데, 미국에서 요가와 웰빙이 유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사회운동이 쇠퇴한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구제에서 개인구제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들이 ‘정치에서 관심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는 데 몰두하게’ 되면서 이것이 전쟁과 원폭, 환경 오염 등으로 확산된 ‘건강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켜 다이어트 산업과 마라톤 유행 등이 번지게 되었다. (다음은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장준영)”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165-170)“미국 중산층의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현상....배경으로는 196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사회개혁운동의 쇠퇴를 들 수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라쉬는 그 결과로 1970년대에 사회 구제에서 개인 구제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즉 사람들은 정치에서 관심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는 데 몰두하게 되었으며 이처럼 거의 집착적인 자기중심성에서 ‘육체의 완성’에 대한 요구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널리 확산된 건강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어 건강에 대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다이어트 산업과 같이 전문적인 몸매 유지와 관리 산업까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전반적인 배경에 대한 이런 방식의 설명이 마라톤과 중산층의 결합이라는 특수한 현상을 모두 해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미국인의 마라톤에 대한 몰두는 그들이(보드리야르에게 마라톤은 반드시 중산층의 스포츠는 아니며 미국적인 현상으로 파악된다) 느꼈던 “근거없는 위협감”과 연결되어 있다. 즉 마치 신경성 거식증 환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이 섭취한 에너지를 게워내는 달리기 주자들은 너무 풍요로운 사회에서 너무 많이 먹은 신성(神性)의 복수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훈육하는 데 복종하는 예속자들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내가 너무 많이 먹은 것을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달리기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페더스톤은 조깅의 인기를 1920년대 이후 자리잡은 소비문화 속에서 파악한다. 외모가 자아의 반영으로 여겨지는 소비문화 속에서 조깅은 신체관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육체의 소유자가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작용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비문화는 쾌락주의에 의한 금욕주의의 완전한 대체를 수반하지는 않으며”,“각 개인에게 상당한 ‘계산적 쾌락주의’를 요구”한다.
이들이 논의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육체에 대한 통제가 광범위하게 강조되는 배경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의 계급이 이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음으로써 원인과 효과를 뒤집어 보고 있다......앞에서 우리는 사회 계급의 특정한 소비 양식과 그 계급의 사회적 위치가 대상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말하자면 육체에 대한 통제는 날씬한 육체가 이상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강조된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육체에 대한 통제를 강조했기 때문에 날씬한 육체가 이상적인 것으로 되어갔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마라톤의 결합 과정에서 우리는 세 가지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첫 번째는 1960년대의 사회 변화와 베트남 전쟁의 패배,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상처 입은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다. 나이키의 성공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캐시모어의 말을 빌어보자.
미국은 이제까지 전혀 의심해본 적인 없던 군사적 경제적 우월성이 결국 의문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는 추락에 앞서 긍지가 사라진다는 쓰라린 신호였다. 미국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흐느적거리는 국가,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운동하며, 편안함을 신성한 권리처럼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1960년대가 단순히 가치관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새로운 윤리를 요구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로운 확장의 시대는 종결...중하위계층의 실질임금은 하락....노동시간도 다시 늘어나기 시작. 이런상황에서 마라톤이 함양하는 인고의 자세는 단순한 장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요구되는 가치이기도 했다.
세 번째로 새로운 도덕적 분위기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중산층이 자신의 지도적 지위를 정당화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소극적인 차원에서 노동 계급과 자신들을 구분...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그러나 외적으로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과시는 도덕성을 강조하는 중산층의 이미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마라톤은 이러한 모순을 성공적으로 해소한다. ...마라톤은 과시라는 것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간편한 옷차림과 운동화만을 갖추고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는 그의 지위를 드러내줄 아무런 외적 표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인 공포가 시작되었다.

영화 ‘21그램’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심장 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숀 펜이 집에서 몰래 담배를 피다가 아내에게 들킨다. 아내는 “담배 피는 거 들켜서 대기자 명단에서 제외되면 어쩌냐”며 담배를 뺏으려고 한다. 개인의 불건강에 대하여 어느 선까지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물릴 것인가. 골초인 사람이 폐암에 걸렸을 때, 그에게 의료 보험은 얼마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혹은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의료보험료를 많이 부담해야 하는가, 아닌가. 역시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금연/절주 열풍이 이렇게 드센 것이겠지.
‘비타민’ 등 건강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을 것인다. 매주 TV에서는 엄청난 공포 정치가 벌어지고 있다. 무얼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고, 이들의 토대에는 ‘각자가 자신의 건강을 책임시지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인천 송도 의료시장의 개방과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형/병렬형 민간의료보험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 개인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위험의 분산이고, 건강보험 등의 공적의료보험의 위험 분산 방식은 횡적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이 좀 많이 내고 수입이 적은 사람이 좀 적게 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득의 재분배를 꾀하면서 위험을 횡적으로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의 위험 분산 방식은 종적이다. 가입자의 일생에 대하여 내가 앞으로 걸릴지도 모를 질병과 장애에 대한 위험을 분산시켜 놓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은 보험료를 많이 내고 보장을 많이 받고, 돈이 없는 사람은 보험료를 낼 수 없으니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민간의료보험의 기본적인 컨셉이다. 즉, 자신의 걵강에 관한 한, 그/녀의 사회경제적/계급적 지위가 어떻든지 간에 온전한 자신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오염과 질병이 몰린다!

웰빙 제품들이 일종의 고급 브랜드화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저소득층에 오염과 질병이 몰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발표한 흥미로운 조사를 보자. 각 지점별 의류판매 현황을 분석해 보니 강북쪽에 위치한 점포들에 비해 강남점 여성고객의 평균 허리 사이즈가 1인치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문화센터의 건강 관련 강좌도 강남점이 다른 지역에 비해 2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업들이 웰빙 브랜드를 별도로 출시하면서 제품을 이원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는 좀 더 충격적이다. 풀무원의 찬마루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풀무원은 제품에서 수입콩에서만 검출이 가능한 유전자 변형성분이 발견되면서 한창 논란을 빚은 이후 국산콩으로 만든 제품에는 풀무원 브랜드를, 외국산콩으로 만든 것들은 찬마루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풀무원과 찬마루의 가격 차이는 1.5배에서 2배 가까이 된다. 물론 찬마루조차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이런 예들은 어떻게 이 웰빙 시대에 저소득층이 유해물질이 많은 포함된 제품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새로운 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다.

“일산몸짱아줌마”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단지 그녀가 날씬한 여성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이 시대의 기준에 부합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그리고 그녀의 몸이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야말로 신자유주의가 웰빙 담론을 통해서 새로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새로운 주체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헬스장에서 단련된 몸. 겉보기에 도덕적 우월성을 손상할 정도로 사치스럽지는 않으나 분명 운동할 시간과 공간이 있는 중산층 이상임을 과시하고 구별짓는 몸. 고질적인 불황이 요구하는 인고의 자세와 강인함(그냥 굶어서 뺀 몸이 감히 비교되지 않는)를 암시하는 동시에 (아마도 카드빚 신용불량자는 될 일 없을 듯한) 절제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몸!
그렇다. ‘웰빙’ 산업이란 생명 파괴의 위협과 건강, 여유로운 삶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의 위협에 호소하는 것인 동시에 저런 몸 자체 혹은 저런 몸에 대한 가능성을 사고 파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실상 이것은 개개인 각자, 그 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해나 죽음의 공포에만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직접 접하지 못한 어딘가에 혹은 도처에 이미 존재하는 몸이미지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웰빙은 바로 이러한 몸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그 담론을 향유하고 체화할 주체들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담론상에서 이미 주류로 자리잡은 생태운동은 어쨌든 좋은 것이라고 여기진다. 더불어 웰빙하자는 것도 ‘누구나가 웰빙할 수 있으면 더욱 좋지’라는 말로 간단히, 즉 웰빙이라는 지상목표를 최대로 실현하는 것만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도 웰빙 자체에 대해서 문제삼지 않는다. 단지 웰빙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조건에 대해서만 문제삼을 뿐!
우리는 물론 이 웰빙이 판치는 시대에 웰빙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웰빙할 수 없는 조건들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해야 한다. 유기농을 생산하되 자신은 비싼 유기농 상품들을 먹을 수 없는 농민들,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 노동 시간들 속에서 이제는 운동할 것까지 종용받는 노동자들, 건강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착취되는 여성들!
그러나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웰빙 담론이 생산하는 몸의 이미지, 건강의 이미지부터가 사실은 대단히 정치적인 영역의 문제인 것이다. 웰빙을 틈타 유전자 검사 홈쇼핑이 등장하고 민간의료보험이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요즘, 단지 생명과 건강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일인지.

<더 쓸 지점들>

- 웰빙과 급부상하는 생명 사상, 생태주의 : 세계생명문화포럼, 생명여성주의 등
- 웰빙과 여성 노동의 문제 : 가사노동의 증가, 웰빙 상품 제조 과정에서의 여성 노동에 대한 착취의 문제 등
- 웰빙과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 : 건강가족기본법, 여성가족부 등
- 웰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 로하스(미국), 다운쉬프터(영국) 등

중얼중얼~

* 웰빙 담론이 개인의 건강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강력한 담론이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사회변화와 연결시키는 부분은 좀더 정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 웰빙 담론이 시작되기 전에도 개인의 건강이 사회적 문제로 여겨졌던 적은 없는 듯하거든.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오히려 웰빙은 '건강'이라는 이슈 자체를 사회화한 계기가 됐다고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그전까지 '건강'은 좋은 거지만 살다보면 우연히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쨌든 인간이니 언젠가는 죽는 것이라는 수준에서 이야기됐잖아. 건강상식이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생활관리에 대한 이야기거나 암예방을 위해 어떤 음식들이 좋더라 류였지. 자연적인 과정이지 사회적 이슈가 될 꺼리는 아니었던 거지.

그런데 지금은 '건강'이 미덕이 된 거지. 동시에 '불건강'은 악덕이 된 거구. 마치 비만이 그랬던 것처럼. 예전에는 당신이 아픈 것이 사회의 책임은 아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니 우리가 도와줄께, 이런 것이었다면 지금의 담론은 당신이 아픈 것은 당신의 책임이니 알아서 하시오, 이런 거.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아픈 것은 당신 가족의 '어머니' 때문이오. (그니까 이 말은 건강/불건강의 결정요소에 사회구조가 큰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의료서비스 접근권뿐만 아니라.)

 

* 인간적으로 발췌 너무 길어.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듯한데 ㅡ.ㅡ;;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의 위험분산방식을 횡적/종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다소 적절하지 않은 듯. 이전에 그렇게 정리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 보니 일반적인 사회적 재분배에서의 횡적/종적 구분과 혼란이 일 듯.

 

*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 386 이야기도 좀더 전개해보면 재밌겠다. 지금 글로는 많이 부족한 듯. 김지하로 시작해서 네가 말했던 우리아기 밥상으로 가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고. 동시에- 중요한 지적인- 사회보장을 약화하려는 의도와 맞물리면서 중요한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해볼만 할 듯. 저소득층에 오염과 질병이 몰린다는 부분에서 현상의 본질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듯.

 

* 참, 주류의 생태운동, 이런 표현은 너무 애매하다. 오해의 소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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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0 17:34 2005/01/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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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Scrum 2005/01/20 23: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웰빙이라는 단어 볼 때마다 '건빵 도시락' 생각나요. 우리는 '레프티 빙'이라던가.. 뭐.. 그런걸로 대체할만한 거 없을까요?

  2. 미류 2005/01/21 09:4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레프티? lefty? ^^

  3. NeoScrum 2005/01/21 12: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Lefty Being... 자기 몸만 챙기는 거 말고, 자기 희생적인 거 말고, 뭔가 '즐거운 연대'를 바탕에 둔 삶의 방식 같은 거..

  4. 미류 2005/01/21 19: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뭔가 대체할만한 좋은 말이 있으면 좋겠네요. 말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누고 권할 수 있는 삶의 양식들에 대한 상상력을 열어제낄 수 있는 공간이 여기저기 만들어지면... 참 좋겠어요.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네오, 보여주세욧! L-being ㅎㅎ

  5. dalgun 2005/01/22 01: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음 순간 엘-빔!으로 보였음.-_-;

  6. 미류 2005/01/24 13:5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엘-빔? 엘-빙 아니구요? 음, 그냥 그렇다는 건가? ^^;;

  7. NeoScrum 2005/01/25 02: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 엘빙 그 용어 괜찮은데요!
    최근 광화문에 근처에 계속 갈 일이 있어서 교보문고 근처를 지나다가 지난주 금, 토에 그곳에서 진행중인 도롱룡 접기 행사를 봤어요. 그곳에서 '풀꽃'에 있는 선후배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생각나서 혹시 '미류'님을 아냐고 했더니, 당시 고가에 같이 올라갔던 분을 인사시켜 주더라구요. 혹시 지난주 금, 토에 행사에 가었어요? 아마도 계셨더라면 아주 아슬아슬하게 못 뵈었을 듯..

  8. 미류 2005/01/25 17: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럼 앞으로 엘빙을 널리 전파시켜볼까요? ^^
    최근 광화문에는 한번도 못 가봤어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