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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동자, 어느 여름날의 기억

8년가까운 보육교사로서의 생활동안

난 주로 36개월미만의 영아를 담당하였다.

 

기저귀를 떼고 난 24개월이 넘는 아이들은 그래도 두 세단어를 써가며 의사소통도 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만들기며, 율동이며 게임 등 여러가지 놀이활동도 가능해서

무더운 여름 날 나름 아이디어만 있으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편이다.

 

근데 기저귀 차고 젖병 물고 있는 24개월미만의 꼬맹이들은 

더운 여름이 아이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여간 곤욕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땀띠가 큰일이다.

에어컨 바람은 아이들에게 너무 자극적이라는 판단에

영아반은 선풍기로만 살아가는 형편이었기에

(이건 같이 근무하는 영아반교사들의 결의였다. 에구.)

 

여린 살결 진무를까 하루에 두번씩은 샤워 시키고

보송보송하게 닦아주는 일이 여름내 진행된다.

 

 



오늘은 얼마나 더울 것인가? 걱정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만원 전철에 시달려 후줄근해진 모습을 추스리고

등원하는 아이들 기분이며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더위에 짜증부리지 않도록, 그러나 감기엔 걸리지 않게 

선풍기를 틀었다 껐다, 바람세기를 이리저리 조절하면서 오전을 보낸다.

 

더울까봐

가능한 적게 옷을 입도록 하니 간식시간이 지나면 온통 벗은 몸 구석구석에

잔해가 붙어있다.

1차 샤워. 대개는 간단하게 젖은 수건으로 닦거나 물로 살살 씻어내는 수준이지만

 

떠먹는 요구르트(으~ 정말 괴롭다)같이 아이들이 먹다 많이 흘리는,

그리고 끈적거려서 반드시 물로 씻어줘야 하는 간식이라도 나오면 정말 괴롭다.

 

3명의 교사가 15명의 아이들을 보는 상황이라

한명은 간식먹은 뒷정리하고 한명은 씻기고 한명은 씻은 아이 몸 닦아주고..

손발은 맞으나 끝나고 나면 교사들은 온통 땀범벅이 된다.

 

그래도 점심후의 전쟁통에 비하면 양호하다.

아이들을 모두 벗겨서 샤워 시키고 닦기고 옷을 입히고

점심먹은 자리 치우고 낮잠준비하고

아이들을 눕히고 나면

 

아, 온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는게

그저 나도 아무생각없이 샤워하고 눕고 싶은 마음뿐.

 

그러나 이부자리에 눕혔다고 다 끝나는 일이 아니다.

땀띠가 심하거나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낮잠을 자다가도 몸을 심하게 긁어대거나 울면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낮잠시간 내내 아이들 상태를 관찰하고

심한 경우에는 한 시간 내내 옆에 붙어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아이들 이불이나 베개도 땀에 너무 젖기때문에 커버를 수시로 벗겨 빨아줘야 하고

샤워하느라 수건도 많이 쓰니 빨래감도 장난이 아니다.

낮잠시간동안 세탁기 돌리고 옥상에 빨래 널어놓고...

여름은 이래저래 할일이 많은 계절이다.

 

너무 더위가 심할 경우에는 에어컨이 있는 큰 아이들 교실에 잠깐 마실을 가지만

워낙 어린아이들이라 금방 재채기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제 제법 형아티가 나는 아이들이 '아가다' 하면서

만지고 쓰다듬는 통에 오래있지를 못한다.

 

그래도 샤워후 보송보송한 피부를 해가지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잠든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아주~ 좋은 보육교사가 된 것 같아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 그 뿌듯한 기분이 문제였어.

8년 근무 동안 제대로 된 여름 휴가는 딱 한번밖에 못 가보고

여름 내내 땀에 절어 살면서

결국 손목과 손가락이 퉁퉁 붓고

여름만 오면 주부습진에 손가락이 짓물러 와도 병원한번 맘 놓고 다니지 못하면서

그래서 너무 힘들어 현장을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저 이게 보육교사의 숙명이거니 하면서 지냈던 세월.

 

7월,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인데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이 여름을 또 어떻게 보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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