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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4
    건너가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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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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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8/15
    모질라.(7)
    일어나

건너가기

얼마전 알엠의 [화](http://blog.jinbo.net/rmlist/?pid=783)라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려서

얼른 인터넷 창을 닫아버리고 그날은 아예 인터넷에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다 읽어 버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그날 내가 하던 일을 하나도 못하고,

아마도 며칠을 그 후유증에 시달릴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내 안의 저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것들이 확 끓어넘쳐서 데일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다음날까지 대본을 보내주기로 약속했었다.),

다음날 다시 그 글을 보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이 떠오르면서,

그녀의 고단함에 마음이 아파왔다.

나보다 더 많은 증상들을 더 강하게 겪고 있는 것 같은 그녀에게 위로나 격려도 건네지 못했다.

그게 푸념이나 넋두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중에,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다시 곰곰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근데 오늘 그 나중이 한참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작업 기일은 연장되고 할일은 더 늘어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정리를 해놓자 싶다.

그러면 끓어올라서 넘쳐버릴 것 같은 마음들이 좀 가라앉을 것도 같다.

 

한동안 상태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나한테 자주, 많이 화가 난다는 것 때문이었다.

분명히 언제까지 일을 얼마나 해야 하고, 가능할 것도 같았는데

내가 정해놓은 그 언제까지에 가보면 해놓았어야 할 일은 턱도 없이 모자르기 일쑤였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지쳐갔다.

내 안의 화들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서,

그게 어떤 방식으로 폭발할 지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내일 아침이면 남편이 출근해야 하는데,

밤에 일을 하다가 문득 외롭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었다.

아침이 오면 또 나는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고 그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외롭고 슬퍼졌다.

이게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싶다.

 

어쨋든 어찌어찌 이 시간들을 건너갈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건너간 후 안도하며 웃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렇게 건너야 하는 시간들이 이번 한 번 뿐이 아닐 것이며,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그 시간들은  점점 더 길어지고 힘들어질 것 같아서 두렵다.

 

많은 여성들이 이 시간들을 건너면서

점점 나쁜 엄마 혹은 아내(주변으로부터 그렇게 인식되거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가 되거나,

일을 포기하며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주변에 이렇게 먼저 그 시간들을 겪어내고, 그걸 나누는 여성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사이 연서는 이가 났다.

가끔 젖을 먹다가 물기도 해서 아플때도 있다.

그리고 혼자 앉아서 놀 수 있는 시간도 꽤 늘었다.

고작해야 십분 남짓이지만, 그렇게 앉아있다가 피곤하면 혼자 눕질 못해서 픽 쓰러지거나 눕혀달라고 운다.

그리고 눕히면 기어다니거나 발랑 누워서 논다.

이제는 꽤 오래 혼자 놀게되어서 아이를 혼자 놀게 두고 가끔 잠들때도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리고 아이한테 해주려고 마음 먹은 것들도 많았는데,

어떻게 되려나.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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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이것덜...

오늘 남편이 이랜드 집회에 갔다가 옷을 찢어먹고 왔다.

 

킴스클럽 강남점앞에서 싸우가다

경찰에 끌려갈 뻔 한 것을 다른 동지들이 구출(?)해주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그렇게 되었다고..

그렇게 빡센 투쟁이었나?

 

암튼 저녁에 전화가 왔었는데,

옷이 찢어져서 티를 하나 사입었다고 하길래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연애시절 그의 생일에 내가 선물한 셔츠였다.

처음 선물한 거였지 아마.

그래서 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가 찢어진 옷을 싸들고 왔더라.

 

그냥 찢어진 정도가 아니라 너덜너덜 해졌더구만.

소매의 반은 없어지고,

목덜미도 찢어지고,

도저히 수선 불가능.(모 첨부터 수선할 생각도 별로 없었지만)

 

근데 옷을 살펴보면서 보니 상표가

who.a.u

이랜드 계열사 거였다.

갑자기 울분이 업! 분기탱천!!

 

이랜드, 이것덜...

 

꼭 승리하는 투쟁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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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오늘 문득 생각하게 된 것들...

 

이랜드 동지들 임금관련해서...

언제더라, 2000년이던가 2001년 초던가, 그때도 비정규직 관련해서 이랜드가 투쟁하고 있었다.

투쟁하던 동지들 인터뷰하다가 한달 임금이 70만원 정도인걸 알고 깜딱!! 놀랐었다.

내 주변사람들도 안믿었다. 그런 대우 받으며 그거 받는게 말이 되냐고!!

오늘 일하다가 딴짓하면서 이런 저런 기사를 읽다가 봤네.

한달에 90만원정도 받고 일했다고 하는 이랜드 재벌의 비정규직 동지들.

그나마 일자리라도 보장되었으면 했다고...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니...

 

그러고 보니 2002년 금속비정규직 작업하면서 현장들을 쭈욱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현장의 비정규직 동지들(주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이었다)을 보면서,

내가 부끄러워졌었더랬다.

현장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져서...

그러면서 정말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일을 할려면, 적어도 어디가서 운동한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지금 이 사람들에게(활동가들이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지금처럼 미안한 느낌이 들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런 마음들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그냥 그런저런 관성으로 살아진다.

 

 그리고 2006년 공무원노조집회에서 본 것...

연대단위가 거의 없었는데 학교비정규직노조에서 왔더라.

웅. 작년에 학비에서 뭔 일이 있었더라? 생각해봤는데

학교비정규직은 방학이면 늘 뭔일이 있었고(방학이 되면 학교비정규직 동지들을 해고한다),

그 단위는 전교조에서 받아야 하는데(내 생각이다) 전교조에서 그럴 생각이 없으니,

그래도 개중 가까운 전공노에 연대를 온 것이리라(이 또한 내 생각이다.)

 

 

 

....

글쎄... 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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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라.

모질라, 모질라, 시간이 모질라.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한 생각이었다.

작업규모나 내용, 중요성(안 중요한 작업이 어디 있겠냐마는)을 고려해보면,

작업기간이 너무 짧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처음 시작이나 대본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고,

(이건 순전히 내 탓만은 아니니 조금 위안이 될려나? 쳇, 결국 마찬가지지 뭐가 위안이냣!!)

이제 색인 작업도 다 하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캡쳐를 시작했다.

아직 필요한 영상자료들도 다 구하지 못했으니. 헐~

 

근데 어쨋든 캡쳐를 시작하니,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원장 누구, 임원 누구, 활동가 누구, 가 아니라 조합원들 말이지...

초기,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전에 그들의 표정은 정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저, 반짝반짝 하는 표정을 가지고 집회에서 즐거워 하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 조합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누굴까,

아직도 노동조합에 대한 희망을 그때만큼 가지고 있을까,

그동안의 투쟁에서 짤리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작업은 일단 시작하면(시작하기 전에는 별로 땡기지 않던 것들이라고 해도)

애정이 생기고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작품을 뽀다구 나게,  완성도 높게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니구

어쨋든 필요에 의해서 만드는 거니까 그 필요가 잘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거다.

 

이 작업은,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조급함도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고 싶어서 한 거였다.

 

시작하고 나니,  지금 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까지 생겨서,

더 잘하고 싶다.

이걸 보고 사람들이 지난 투쟁들을 떠올리고,

다시 힘을 받았으면 한다.

 

정말 잘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아무리 따지고 따져도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쥐.

아,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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