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건너가기

얼마전 알엠의 [화](http://blog.jinbo.net/rmlist/?pid=783)라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려서

얼른 인터넷 창을 닫아버리고 그날은 아예 인터넷에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다 읽어 버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그날 내가 하던 일을 하나도 못하고,

아마도 며칠을 그 후유증에 시달릴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내 안의 저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것들이 확 끓어넘쳐서 데일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다음날까지 대본을 보내주기로 약속했었다.),

다음날 다시 그 글을 보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이 떠오르면서,

그녀의 고단함에 마음이 아파왔다.

나보다 더 많은 증상들을 더 강하게 겪고 있는 것 같은 그녀에게 위로나 격려도 건네지 못했다.

그게 푸념이나 넋두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중에,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다시 곰곰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근데 오늘 그 나중이 한참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작업 기일은 연장되고 할일은 더 늘어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정리를 해놓자 싶다.

그러면 끓어올라서 넘쳐버릴 것 같은 마음들이 좀 가라앉을 것도 같다.

 

한동안 상태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나한테 자주, 많이 화가 난다는 것 때문이었다.

분명히 언제까지 일을 얼마나 해야 하고, 가능할 것도 같았는데

내가 정해놓은 그 언제까지에 가보면 해놓았어야 할 일은 턱도 없이 모자르기 일쑤였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지쳐갔다.

내 안의 화들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서,

그게 어떤 방식으로 폭발할 지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내일 아침이면 남편이 출근해야 하는데,

밤에 일을 하다가 문득 외롭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었다.

아침이 오면 또 나는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고 그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외롭고 슬퍼졌다.

이게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싶다.

 

어쨋든 어찌어찌 이 시간들을 건너갈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건너간 후 안도하며 웃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렇게 건너야 하는 시간들이 이번 한 번 뿐이 아닐 것이며,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그 시간들은  점점 더 길어지고 힘들어질 것 같아서 두렵다.

 

많은 여성들이 이 시간들을 건너면서

점점 나쁜 엄마 혹은 아내(주변으로부터 그렇게 인식되거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가 되거나,

일을 포기하며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주변에 이렇게 먼저 그 시간들을 겪어내고, 그걸 나누는 여성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사이 연서는 이가 났다.

가끔 젖을 먹다가 물기도 해서 아플때도 있다.

그리고 혼자 앉아서 놀 수 있는 시간도 꽤 늘었다.

고작해야 십분 남짓이지만, 그렇게 앉아있다가 피곤하면 혼자 눕질 못해서 픽 쓰러지거나 눕혀달라고 운다.

그리고 눕히면 기어다니거나 발랑 누워서 논다.

이제는 꽤 오래 혼자 놀게되어서 아이를 혼자 놀게 두고 가끔 잠들때도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리고 아이한테 해주려고 마음 먹은 것들도 많았는데,

어떻게 되려나. 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