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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대한 글쓰기의 부러움

우연찮게 오래 전에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맥주와 시장의 정치적 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쓴 논문 초고를 보게 되었다. 단일유럽시장 프로젝트와 독일 맥주시장의 재편이 그 내용인데, 시장의 정치적 구성과 관련한 논의 자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삶과 긴밀한(했던) 주제에 대해 이러한 고민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 아뭏든 요즘 발견하기 쉽지 않은 글이었다.

 

초록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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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들 및 사회세력의 갈등과 투쟁이 국가에 의해 매개되면서 정치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독일의 맥주시장은 수 세기 동안 독일 청정법이라는 제도적 조절을 통해 독특하게 구조화되었다. 맛의 수월성과 다양성은 물론, 거대자본의 참여가 자제되고 압도적으로 중소자본의 참여가 활발한 맥주시장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단일유럽시장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독일 청정법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1987년 유럽법원의 판결은 독일 청정법이 역내 교역의 자유를 명시한 유럽공동체조약에 위배됨을 확인하였다. 단일시장과 함께 독일 맥주시장의 제도적 조절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일 맥주시장에 마치 지각변동처럼 작용했다. 거대 초국적 맥주 기업들에 의해 일련의 독일 맥주회사들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의 큰 맥주기업들도 대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 또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역설이라면 독일의 맥주소비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윤의 논리를 축으로 맥주시장이 재편되면서 맛의 다양성이 훼손될 위험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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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읽고 "기어이 이 양반이 일을 냈구나" 싶어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그 내용 일부를 공개하자면 ... "언제 만나 맥주 한 잔 하면 좋겠다마는, 내가 살아오면서 맥주를 워낙 많이 마셔 맥주로 인한 병이 생겼다. 그 논문이 맥주에 대한 나의 작별의 글이 된 셈이다. 물론 소주는 마실 수 있다. 언제 소주 한 잔 하자." ... 정치학 공부하는 분인데, 이 사람 참 재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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