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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협 청산과 한국 노동운동

 

 

 

김창우. 2007, <전노협 청산과 한국 노동운동>, 후마니타스.

 

 

<전노협 청산과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운동 위기론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러한 위기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전노협이라는 변혁지향적 조직의 실천과 그 청산과정에 중심을 맞추어 검토한다. 나아가 현재의 시점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분석의 담론분석적 성격 또한 돋보인다. 당사자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각종 선언문, 성명서를 통해 전노협 강화론/한계론/대세론 등의 담론을 추적 및 분석하고 있다.

 

핵심적인 논의를 나름대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한편으로 노태우정권을 지나 문민정부로 이어지며 합법정치공간을 확장하였다. 여기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외적 조건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대투쟁은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이어져 전노협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 업종회의 등은 전노협으로 통합되지 않았다.

합법정치공간 확장과 현실사회주의 붕괴라는 조건 하에서 등장한 전노협 한계론은 전노대라는 조직으로 이어졌으며, 전노협 내 전노협 강화론 세력이 이에 맞섰다. 그러나 전노대가 민주노총 준비위의 주도권을 장악한 가운데 전노협 강화론 세력은 전노협 한계론 세력 견제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이에 따라 기층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오도된 위기의식을 조장하며 대세론으로 변질되었다.

대세론과 전노협 한계론이 주류를 이루게 된 가운데 정권과 자본의 합법개량세력 비호와 계급적 노동운동 탄압(전국노운협 사건 등)으로 인해 전노협은 결국 청산되었다. 이렇게 전노협 정신이 상실되고 상층 중심의 졸속적인 민주노총 건설이 이루어진 결과 연대의식과 민주성이 실종되며 현재의 노동운동의 위기로 귀착되었다.

......

 

굵직하고 무게 있는 주장들과 꼼꼼한 근거제시에 감탄하게 되면서도 몇 가지 의문이 밀려든다. 이 책에서의 ‘전노협’이라는 표현은 전노협 산하 단위노조 소속의 ‘노동자 대중들’로 대체될 수 있는가? 활동가들과 각 분파 지도부들의 타협적 태도와 비교할 때, 노동자 대중들은 언제나 급진적이고 변혁지향적이었나?

 

여기에는 조직 중심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의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 제대로 되었다면 변혁적 지향의 노동운동이 성과를 거두고 전진하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자본주의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대한 검토 내지는 평가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변화가 일상적 수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전노협 출범 이후 노동운동의 전진에 대해서도 자본의 방해전략이 노동운동의 조직와해 공작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기층노동자들의 지향이 전노협 정신이었다는 것인지, 전노협이라는 조직이 초기에 지향했던 바가 전노협 정신이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전노협 정신을 둘러싼 갈등 또한 조직 및 활동가들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예컨대 ㅇㅇ노조의 투쟁 철회가 당시 노동운동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식의 서술만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합법개량주의와 전노협 정신 침해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당의 관료주의에 의해 크론슈타트 봉기가 짓밟혔다는 사실만으로 러시아 혁명과정을 비판한다면 불충분할 것이다. 크론슈타트의 수병과 노동자들이 어떠한 실천들을 하였으며, 그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ㅇㅇ노조에 대해서도 노동조합 관료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당시의 조합원 노동자들이 어떤 조건에 있었으며, 어떠한 실천을 하였는지, 그것이 억압당하였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검토는 부분적으로나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전반적으로 상층 중심의 활동양태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지만, 그에 대비되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양태에 대한 분석 및 방향제시는 부족하다. 이처럼 노동운동 위기의 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조직’의 문제에서 찾는 것은 결국 현재의 위기를 일시적인 문제로 보는 계급주의적 시각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또한 사업장-지역-전국-세계라는 연대성의 확장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로설정 역시 단일한 노동계급 정체성을 전제한 것이라 생각된다.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정체성들 간의 소통이 고려될 여지는 협소하다. 한편, 지역이라는 공간의 강조는 분명 전노협을 통해 재발견되고 복원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지역일반노조라는 해법으로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뭐, 아무래도 좋다. 근자에 이처럼 굵직하고 진지한 문제제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가 제시한 출발점으로부터 하나둘씩 고민을 진전시켜 가 봐야겠다.

 

 

 

<참고>

 

김준. 2007, "비주류적 노동운동사 서술의 가능성과 한계", 산업노동연구 13권 2호,

         한국산업노동학회. 中 비판적 평가 부분

 

서평: 김창우. 2007,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 전노협은 왜 청산되었는가?, 후마니타스.

 

이 책에서 저자는 전노협 청산과정의 책임을 전적으로 소수의 상층간부에게 돌리고 있으며, 그 소수의 상층간부들이 전노협을 청산하고 민주노총건설로 조직을 몰아간 것을 마치 개인적인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소집단(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렇게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만큼 저자는 기층 노동자들이나 조직들에 대해서는 한없는 신뢰를 보이고 있다. 노동운동 위기론이 횡행하던 90년대 중반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의와 변혁적 잠재력은 아직도 높았고 따라서 마치 상층간부들만 올바른 노선을 취했다면-즉 전노협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 강화하고, 지노협 등 지역연대조직을 강화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산별조직을 먼저 건설한 뒤 민주노조 총단결의 길로 나아갔다면-노동운동의 위기나 변혁적 노동운동의 후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은 극히 도그마틱할 정도로 한국노동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는 보론에서도 읽힌다.
그러나 과연 9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민주노조 진영의 상층간부들이 '사회개혁적' 노선을 채택하게 된 것을 과연 그들만의 '투항'으로 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시점까지도 계속되었던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를 '변혁적 잠재력'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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