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긴 여행을 마치고

군 전역 후에 쓴 일기

 

2003년 10월 06일
 
정확히 2년 하고도 2개월 전에 긴 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이제 그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소감이라면, 카프카의 단편 <유형지에서>를 주욱 읽어내린 듯한 기분이랄까. 나 자신으로부터 좀 떨어져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환상은 뼈대만 남았고, 이제 그 뼈대에 핏줄과 신경과 살점을 붙여나가는 고된 작업만이 남은 듯 하다.

 

돌이켜 보건대, 나를 진정으로 봐 준 이들은 '미덥지 못하다'라는 말을 해 주곤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정말 그러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전히 좌충우돌에 일단 질러놓고 보는 방식은 나의 '탐색에의 강한 욕구'를 얼마나 채워 주었고, 어느 정도의 길찾기에 성공한 건지!

 

한편으로는 객(客)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는 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일종의 통행료에 대한 부과에 대해 아쉬움도 있었다. 사람이란 같은 길을 걸어도 저마다 다른 풍경을 보기 마련 아닌가? 다리품 파는 데 지쳐, "한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나는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 듯 하다. 해는 중천에 떠올라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