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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이방인의 리듬과 선율

2003년 10월 29일
 

Sonny Rollins. 1956, 

 

내가 아직 중학생이었을 때, 친척이라는 까탈스러운 이유라기보다는 비슷한 취향, 그것도 음반을 구입해 듣는다는 아주 간편하면서도 골치아픈 일에 있어서의 공감대 때문에 같은 또래의 무엇 이상의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촌 형은 당시 내가 즐겨듣던 음반이 겟츠 앤 질베르또(Stan Getz/Joao Gilberto)라는 사실에 이런 말을 덧붙였었다. "팝pop에서 락, 그리고 재즈로 가는 게 음악감상의 단계라더라" 그 시절 나는 그리 수준이 높았었나보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스탄 겟츠(Stan Getz)의 CD들이 먼지에 뒤덮여갈 때쯤 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몇 장의 재즈 음반들을 더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문화 상품의 홍수와 그로 인한 역설적이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탈감을 달래주는 색소폰 연주자가 바로 웨인 쇼터(Wayne Shorter)와 소니 롤린즈(Sonny Rollins)였다. 재즈 씩이나 즐겨듣는 나는 안타깝게도 재즈 메신저스(Jazz Messangers) 시절 웨인 쇼터와 함께 연주한 아트 블레키(Art Blakey), 그리고 소니 롤린스와 호흡을 맞춘 맥스 로치(Max Roach)의 리듬감의 차이라던지 이런 것도 잘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재즈 음악의 역사라든지 이런 것은 흔히 장르로 분류되는 그 어떤 음악에 있어서도 쉼게 정의내려지기 어려울 것이다(그런 관심과는 별도로 에릭 홉스봄Eric J. Hobsbawm의 저작 은 관심을 끈다). 블루스가 남부 농장의 흑인 노예들의 애환을 그들의 아프리카로부터의 5음 음계(pentatonic)에 담아낸 노동요로부터 출발한다면, 재즈는 백인들의 교향악단 연주를 보고 악단 음악을 하기 원하면서 타악기들을 현재의 드럼 세트와 같이 구성하고 밴드를 만들면서 그 모양새를 갗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여타의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습으로 각각의 선두 주자들을 내세워가며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그 중 버드(Bird)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찰리 파커(Charlie Parker)는 흔히들 밥(Bop)의 개척자로 부르는 연주자이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초기 재즈 이후로 내려오던 빅 밴드(Big Band) 경향이 베니 굿맨(Benny Goodman)으로 대표되는 스윙(Swing)을 주류로 위치시키며 백인들 사교클럽에서 꽝꽝 울려나오던 댄스 음악이었던 것에 반발하여 이른바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 바로 밥(Bop) 재즈다. 내가 밥 재즈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소니 롤린스와 웨인 쇼터가 유럽/영미권의 68혁명과 히피 무브먼트를 관통하는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비밥(Bee-bop)의 복권(復權)을 선언한 하드밥(Hard Bop)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재즈, 내가 즐겨 듣는 재즈라는 음악은 혹자들은 뭐 하나의 학문이 되었는니 뭐니 해도 어렵고 따분한 음악이 아니다. 흔히 재즈 하면 떠올리는 스타일이 바로 밥 재즈인데, 하드밥의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바로 소니 롤린스와 아트 블레키의 재즈 메신저스다. 이 밥 재즈는 초기 재즈로부터 스윙 재즈의 빅 밴드 스타일과도 다르며, 델타 농장에서 흑인들이 부러워했던 교향악단의 음악과도 다르다. 이들 음악이 화성(和聲)을 중시한 반면 밥 재즈는 원초적인 리듬과 풍부한 선율(旋律), 그리고 그것의 자유로운 전개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클래식 음악의 화성(和聲)에 훈련되지 않은, 팝(pop)과 락(rock)의 리듬에 익숙한 대중문화 소비자에게 분명 재즈의 리듬과 선율은 접근하기 쉽고도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이런 재즈가 클래식 만큼이나 음악성을 추구한다지만, 대중적이기보단 '고급스러운 어떤 것'으로 취급받는 상황에서 가까운 일본의 몇몇 밴드와 같은 퓨젼재즈 밴드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소니 롤린즈의 를 오랜만에 꺼내 든 것은 정창화 감독의 <에라이샹>이라는 신성일 주연의 1960년대 영화를 보고 나서다. 여주인공 에라이샹이 일하던 그 술집의 밴드(1960년대 미8군 클럽의 이미지로 그려진)에서 10여명 가까운 트럼펫 주자들이 하모니 없이 같은 멜로디를 울려대다가 한 걸음 앞에 나와있는 솔로 주자가 혼자서 열정적으로 불어제끼는데, 그 곡은 바로 소니 롤린즈도 연주한 바 있던 "Moritat"였던 것이다. 무엇이 1960년대 전후(戰後) 한국의 젊은 트럼펫 연주자를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라는 음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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