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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시간은 계속된다

2003년 10월 31일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rica). 1989, <집시의 시간>

 

우선 집시를 둘러싼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불과 몇 년 전인 1990년대 말, 체코 북부 국경지대의 집시 마을 부근에 체코인들이 분리벽을 쌓았다. 이에 분노한 집시들은 독일 등지에서까지 몰려와 시위를 했고, 이것이 먹혀들지 않자 캐나다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캐나다 주재 체코 대사가 입국거부를 요청하여 수많은 집시들이 캐나다의 공항에 억류되었고 이에 캐나다 인권운동단체들이 강력하게 비난하여 캐나다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허가하였고 체코 정부는 망신을 당했다.

 

'집시(gypsy)'는 유럽인들이 그들이 이집트인(Egiptian)들과 닮았다 하여 부르기 시작한, 지극히 인종주의적인 개념이다. 나치스의 히틀러는 수백만의 유태인 뿐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집시들 또한 학살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1990년대 말의 위와 같은 우화를 빚어내고, 지금까지도 차별받고 인권마저도 무시당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그들만의 영토 혹은 국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 아니 가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년 전, 인도 북부지방으로부터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전세계를 떠돌고 있는 집시들이 최근에 이르러서는 국제 집시 연맹을 결성하고 유엔에도 자신들의 대표를 보내고 있지만 이미 그들이 나찌 정권에게 학살당했을 때부터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던 '뿌리 내릴' 영토는 국경의 거미줄과 영토의 팻말로 포화되어버렸던 것이다.

 

유고 변방에 머물고 있는 집시 공동체 마을의 한 비극적인, 하지만 집시들이 현재까지 변함 없이 처해 있는 상황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한 가족사를 몽환적인 영상으로 일궈낸 영화 <집시의 시간>의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는 아니나다를까 보스니아 내전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간 지난 1995년 <언더그라운드>로 '세르비아 선전물'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클래식 음악을 통해 '헝가리 풍'으로 알려진 집시 음악을 배경으로, 주인공 페르카니의 아코디언 연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유랑민의 정서를 듬뿍 담아낸다. 수백년이 지나 21세기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시들은 도대체 어떻게 영토도 국가도 없이 그들의 정서를 간직할 수 있었을까? 그토록 쫒겨다니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면서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틀림없이 현명한 사람들일 것이다. 국가라는 것 역시 자신들의 '무엇'을 보장해 준다거나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경이롭게도 그들은 민족의 혈통조차 그다지 흐려지지 않은 채 세대를 이어간다. 그들의 떠돌고 또 떠도는 생활 속에서 정착민인 타 민족과의 통혼을 금기시하는 일종의 신앙적인 풍습은 자연스레 생겨났을 것이다. 영화 중에서 페르카니가 결혼할 여자를 구해 오라는 아메드의 요구에 자신의 아내만 데리고(자신을 위한 집 따윈 없다는 것 또한 알아채고) 이탈리아로 돌아와서는 "내가 왜 마을에 갔겠냐"고 반문하는 것 역시 그들의 그러한 풍습을 배경으로 한다.

 

한 순수한 마음을 지닌 청년 페르카니가 아즈라와의 결혼을 허락받지 못한 뒤 동생의 다리를 고치고 집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떠났다가 타락해 가며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자신고 같은 페르카니라는 이름을 가진 네 살바기 아들만 남겨둔 채 목숨마저 잃고 마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에밀 쿠스트리차는 집시들의 운명, 그들에게는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숙명을 그려내고 있다. 페르카니와 같이 집시는 세계의 '사생아'이지만, 그가 가진 초능력처럼 그들에겐 자유로운 영혼이 있으며, 사기를 당하고 아내와 자신의 목숨마저 잃는 그처럼 역경과 비극을 겪어왔지만 페르카니라는 이름마저 똑같은 아이를 남기고 떠났 듯, 집시들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 온 것이다.
 

집시들은 우리가 흥겨운 춤과 노래로 그들을 떠올리곤 하듯, 낭만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풍부한 감수성과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한민족에게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는 말은 우스울 정도로 박해받고 천시당하며 살아왔다. '할 줄 아는 것은 딴따라와 범죄밖에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 온 그들과 자기의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자기의 집을 짓고 문이란 문은 죄다 꼭곡 걸어잠그고 살아가는 우리들과 소유의 개념부터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어린 아이를 유괴해 인육을 먹고 산다'는 둥의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도 한 것은 바로 영토와 국가의 틀 안에서의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폭력일지도 모른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은 이토록 고통스럽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들의 시간을 잘 담아내고 있다. 나찌 히틀러에게 불성스런 이민족 '노동기피집단'으로 낙인찍혀 수십만, 혹자에 따르면 수백만이 학살당하기도 했던, 현재에 이르러서는 세계적으로 수천만에 이른다는 집시들은 어쩌면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마지막 유목민이 아닐까?

 

P.S. 집시들은 스스로를 로만(Roman)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람'이란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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