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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사러 나갔다 오는 길에

2003년 11월 14일

 
저녁 여덟 시쯤 되었을까. 아버지는 급히 전화를 받고 일을 나가셨다. 모처럼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대충 짐작은 하고 안방에 들어갔다. 내년 겨울까진 어디서 대출 받기도 어렵다. 그때까진 좀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뭐 이런 얘기였다.

 

다만 날씨가 조금 추워져 걱정이긴 하지만 당분간 학교에서 생활해야겠다는 계획을 그대로 추진해야 할 듯 싶다. 인천에 이모가 혼자 지내셔서 자주 들르곤 해야겠다. 나이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 술 담배로 사는 이모도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 어디에 떨궈놔도 잘 살아갈 자신이야 있는 나이지만, 언젠가 그랬듯이 가장 두려운 건 외로움이다. 세상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불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또 혼자서 극복해 나가야만 할 그것.

 

간만에 M과 맥주 한 잔 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캔맥주 하나면 30분 사이에 뻗어버리겠지만 그냥 생각이 났다. 담배 한 대 물고 대문을 나서는데 두통과 함께 손에 땀이 마구 난다. 동네에 딱 세 개 있는 구멍가게 중 '만물슈퍼'란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의 스테인리스 미닫이문을 열어젖힌다.

 

수척한 얼굴의 아저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한뼘은 키가 큰, 시원한 외모의 사내가 전화를 끊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녀석은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2-3주 전까지 새벽 버스에 몸을 같이 실었던 나의 친구. 맥주 한 병을 부탁하고 동전을 헤아리고 있자니, 녀석은 검은 비닐봉지에 새우깡 한 봉지를 더 슬그머니 쑤셔넣는다. 나의 사양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고맙다는 말을 수줍은 목소리로 건넬 뿐이다. 우리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와 있다. 어, 왔니? 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중학교 땐 통통하던 아이의 얼굴이 주먹만해 보인다.

 

근황을 묻는다. 다시 발전소 알아봤는데 사람 필요 없대. 뭐 빨리 어디든 알아 봐야지. 1년 전 쯤, 휴가 중에 동네에서 녀석을 만나 초등학교 꼬마애들을 데리고 같이 농구를 하던 기억이 났다. 한 달쯤 전, 다시 이곳에 돌아오고 버스에서 우연히 녀셕을 만났을 때, 그는 도회지로 일하러 떠난 여동생과, 아내를 잃고 두문불출하는 아버지를 두고 출근하고 있었다.

 

"어, 근처 발전소에 나가. 계약직이여, 발전기 점검허고 정비해. 거긴 민영화 안됐어? 아, 발전기 몇 개씩 해갖고 나뉘었어. 난 중부발전이여. 그려도 나는 괜찮은 편이여, 계약이 두어 달 밖에 안되지만. 야, 하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일도 배는 위험허고, 돈두 몇 푼 못받더라 야. 나는 양반이쟤."

 

"야, 너같이 계약직이나 하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냐?"

 

"걸 말이라구 혀. 말할것두 읎어."

 

"그나저나 동네에 애들이 뵈덜 않드만? 다 도회지 나갔지 뭘. 아, 저그 아래 밤골 사는 경이는 요 아래 초등학교에 서기 보러 나간댜. 계약직이라던디."

 

까만 비닐봉다리를 부스럭대며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어머니와 한 잔 달라 안된다 실랑이를 벌이다 병마개를 땄다. 혈압있다는 양반이 참내. 시워언 한데도 촉촉하진 않다. 레너드 코헨의 목소리처럼 드라이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갑자기 잠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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