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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뽑고 나서

2004년 06월 20일

 

끙끙 앓다가 사랑니 하나를 뽑았다. 입을 벌리기조차 힘들었던 부기가 빠지고 통증이 잦아드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앓던니 빠진다'는 표현이 이래서 쓰이는구나 감탄할만한 이 후련함이란. 근데, 하룻밤 자고 나니 그 시원한 기분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시원섭섭'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 내가 뭔가에 '집착하는 것'이었다면, 후련했을 것이다. 아니, 그 무엇이 '집착'이고 그래서 확 뽑아버린 뒤 후련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왔던 것 같다. 약지 손톱만한 생니를 뽑고 난 자리에 식후마다 끼어 드는 밥풀이나 음식찌꺼기 따위가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단지 '나의 그 무엇'이 집착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다.

 

감내해야 할 무엇? 그따위 것도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결벽스럽게 계속 물고 늘어지는 내가 이상한 거다. 누구는 이렇고, 무엇은 어떻고, 이 따위 문제들은 역시나 흘러 가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고. 시끄럽다. 비틀거리면서 한 걸음 나아가는 건 뒷걸음질만 못하다. 주저앉아 잠시 뻗어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젠장,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찝찝한 것들은 왜이리 많은 건지. 아아, **천 다리밑에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친구놈들과 잔득 취해 술병 깨면서 노래나 불러제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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