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

from 책에 대해 2003/12/31 15:44
2003년이 끝나는 날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의미들이
뭐 그렇게 나쁘지 않게 느껴지는 끝이라 다행인가.
오늘은 새벽 0시쯤에 흰쌀밥에 물말아 김치랑 대구포를 저녁으로 먹으면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마저 읽었다.
밥을 먹으면서 보기에는 힘든 책인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한 손에 밥숟가락을 들고 한 손으로 코를 훔치면서
12월 31일의 시작을 맞았다.

나는 천국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옳았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버지, 덕분에 천국에 살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될 줄 몰랐던 어둠 속, 불안의 시절,
내가 가진 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 뿐이었는데
따듯하고 깨끗한 집과 편리한 차를 가진 요즈음
분노와 증오가 있던 자리에는 차가운 빛, 욕망이 들어섰다.
매끈한 욕망 덩어리, 제 몸을 삼키고 뭉게뭉게 증식해 간다.

나는 죄를 짓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지옥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변명이다.

나는 정말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난장이들을 외면하면서
나는 절름거린다.

뜨거웠던 추위도 이 겨울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얼마나 더 가지면 지옥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천국에 사는 자는 지옥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옥에 사는 자는 매일 천국을 꿈꾼다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읽었다.

내 천국은 구름대신 난장이들이 바닥으로 사용되는 곳.

새해에는 혁명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3/12/31 15:44 2003/12/31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