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from 책에 대해 2003/08/25 13:24
하루키는 참 남자다.
읽다보면, 정말 무사태평하구나 싶다.
나는, 경험의 뿌리 깊은 단절면에 부딪히면서 그를 보게 된다.

저 너머의 세계에서,
'고속버스 안에서 15살 소년이 20대 여인을 만난다.
그녀를 누나라고 생각한다. 갈 곳 없는 그는 그녀의 집에 가서 잔다.
그녀가 손으로 사정하게 해 준다. 마음 편히 잔다.'

고속버스를 탄 15살 소녀라면 어떨까?
속편하게 오빠라고 생각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의 집에 가서 잔다거나
그의 손마사지를 받고 오르가즘에 도달한다거나 그 후에 맘 편히 자는 것은
가능성 0%의 영역이다.

하루키 소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성적인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그의 소설 속의 여성들에 대해서
이제 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의 1인칭 시점 서술 방식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굳이 상대 역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사는가는 볼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그의 주된 관심사, 그녀가 얼마나 특별한 성적 매력을 가졌는가를
부각시켜줄 환상적인 그녀의 외모와 아주 간단한 이력 정도면 충분하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하루키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일반적인 외디푸스 컴플렉스 이론을 보강하기 위해 '누나'라는 대상을 추가했지만,
엄마로부터 시작해서 어쨌든 모든 여성은 성적인 대상이며
아버지는 극복해야할 대상인 외디푸스 컴플렉스는 여성주의에 가장 반동적인 사상이다 싶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성적서비스를 받으면서 성장해서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 새 세계를 창조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하루키가 자신의 극악한 면을 총정리한 대작이다.
사실, 안스럽게도 하루키는 이 대작에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를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할 모든 고통에 대해 무지하다.
무사태평이다.

그가 주인공을 30대 중반의 중산층 남성으로 다룰 때는, 그러려니 하고
그의 환상적 이야기를 즐기기도 했지만,

15세 소년을 30대 중반 중산층 남자와 똑같이 다루면서
마치 세대를 넘나드는 대작을 쓴 듯 자만심에 빠진 하루키는 보기 싫다.
100%의 사랑과 그를 못 잊어 병약한 여자도 이제는 지겹다.

그는 주인공 카프카가 자기자신이고 '여러분' 모두란다.
그가 자신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해변의 카프카'는 그의 지난 작품 총정리 였고, 총정리 해 놓은 것을 보니 실망이다.
그의 단편들은 재미있는 것도 많았는데. 그는 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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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5 13:24 2003/08/25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