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컴퓨터

from 책에 대해 2001/07/11 17:31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4시간에 한갑정도의 담배를 피우게 된다.

어제는,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으면서
낮동안은 일을 위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빵굽는 타자기]를 계속 읽었다.
보통은 멀미때문에 버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어제는, 책을 읽지 않으면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책에서 눈을 떼면 어지럽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빵굽는 타자기]를 마저 읽고 잠이 들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책도 다 읽지 못한 채였다.
머리안에 메스를 든 난장이가 있어서 내키는 대로 쿡쿡 찌르고 다니는 것만 같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많이 피운 날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 괴롭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기가 있었다.
가끔씩 엄청나게 큰 소리로 빗방울이 지붕을 때렸고 공기는 습하고 뜨듯했다.

불을 끄고 누워 해가 뜰 무렵까지, 모기와 메스를 든 난장이와 공기, 빗방울 그리고 폴 오스터의 인생이 내 몸을 온통 헤집고 다니면서 잠을 괴롭혀댔던 것 같다.
그들은 충분히 즐긴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는 잠을 끌어안고 쓰러졌다가 방금 일어났다.
지금은 오후 3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역시 나의 인생에 대해 커다란 불만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내가 원하고 내가 선택한 삶인 것이다.
주어진 세상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원하는 것들을 선택해 왔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선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째서 예술이 정치적인가 하면 그들이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이미 자유인 것 같아.]

화두는 돈이다.
그것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거나 혹은 싸우거나.
물론 그렇게 싸운다고 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덜 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시간이 너무 없다.
나는 오늘도 일하러 가야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을 때 글을 쓰는 것은 그만 두어야 겠다.

아,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 했다.
폴 오스터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스퀴즈 플레이]를 읽은 뒤 [빵굽는 타자기]를 읽어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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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7:31 2001/07/11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