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

from 불만 2004/08/07 17:00
누구나 아는 것처럼,
여름에 가장 더운 곳은 서울이다.
같은 태양아래서도 서울은 유달리 숨쉬기 힘들게 덥다.
에어컨만 다 사라져도 지금보다 훨씬 시원할텐데
실내 온도를 가져다가 거리로 내보내는 실외기의 열기가
찜통안의 수증기처럼 거리를 뒤덮는다.
왠지 더러워진듯 끈적하기조차 한 그 열기들은 젤리처럼 뭉쳐서
내 콧구멍, 목구멍, 핏줄 속까지까지 구역구역 들어찬다.

물이 더러워져서 정수기를 팔고 물공장을 차리게 된걸까?
아니면 정수기와 물공장때문에 물이 더러워진걸까?

공기가 더러워져서 공기청정기가 만들어지고 있는걸까
공기청정기 공장과 그 홍보에 사용되는 더러운 돈 때문에 공기가 더러워지는 걸까?

문을 꼭 닫아 걸고,
에어컨을 쐬면서 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마시고 여과된 공기를 마신다.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람들에게 사정하고 싶다.
제발 이 모든 기계들을 더이상 사지 마세요. 더이상 쓰지 마세요.

자본주의는 슬그머니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밀어 놓는다.
너의 자유의지로 구입하고 사용한거잖아.
네가 사지 않았다면 나도 만들지 않았을거야.

우리는 줏대없이 휩쓸려다니는 소비자들일 뿐이다.
웰빙하기 위해 공기청정기를 사다니
스스로가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예측하고 경고하면서도
거리낌없이 한 발을 내딛는다.

오늘도 이 뜨거운 공중에 희미하게 움직이는 있지도 않은 것 같은 차갑고 건강한 바람을 향해
절박하게 외쳐보지만
"이제 그만해요!"
공중은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삼켜버린다.

나는 전쟁만큼 공기청정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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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7 17:00 2004/08/07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