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from 우울 2004/12/29 10:57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내 '생각'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같은 곳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돈이 없을 때는 워낙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이 있을때는 생각이 나를 막아선다.

돈이야 없으면 불가항력이지만
내 '생각'과의 타협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하도 괴로워 그냥 정리나 해보련다.

나이가 들면서 돈을 좀 벌게 되니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자가용을 사는 것부터였다.

대체 장애인으로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돈이 없을 때는 그냥 그럭저럭 참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대중교통을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한?? 보태는게
내 꿈의 수준이었다.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하게 해야 한다고
내 '생각'은 주장했다.
돈이 좀 생기자 내 '생각'에 내 '몸'의 '욕망'이 반기를 들었다.
1년여 만에 '몸'과 '욕망'의 투쟁은 성공을 거두어
나는 일신의 안락을 위해 대의를 저버렸다...^^;;
어찌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던 내가 마치 새로운 발이 생긴 것 처럼
어렸을 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하게 되었고
실제로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남태평양의 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초특급'이라는 리조트에 머물면서
한 두번 사용한 시트와 수건을 갈게 하고
물이 부족하다는 데도 매일 두세번씩 샤워를 하고 지냈다.
크리스마스에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원주민이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했는데
그가 한달 동안 버는 돈은 우리가 하루동안 쓰는 돈에도 못미쳤다.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해보자.
개토는 다리가 아파서 물 밖에서는 운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기타 등등 몸이 약해서 차가운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여름에도 수영장에 못들어가는 내가
그곳에서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습도가 높으니 기침도 안나고 몸을 움직이니 절로 기운이 났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천국이었다.
대체 이 사회에서 모든 일신의 안락은 대의를 저버린다.

나는 멍하니 그림을 그릴때가 가장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는 멍하니 그림이나 그리고 살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는 상태는 '무아지경'의 상태.
그 때가 젤 편하다.
그러니 또 그놈의 편한게 문제다.
'무아'의 상태야 말로 사회적 최악의 상태가 아닌가.
자기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죄악이 아닌가
먹고 살만해져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먹고 살만해져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아직 이 사회에서 죄악이다.

30대가 되면 사회와 타협하고 자신과 타협해서
반동이 된다고들 했을 때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대체 어떻게 해야 반동이 되지 않을 수 있나?
나는 남태평양에 수영도 하러 가고 싶고
자동차도 없으면 못살겠고
그림이나 그리고 살면 좋겠구만.

그림에 가끔 반자본적 반가부장적 메시지나 얹으면서
그냥 적당히 살 수 있으면 좋겠구만.

그림도 그렇다.
기형도가 쓴 것처럼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형도와 달리
그 믿음을 따라갈 준비가 안 되어있다.
마치 자동차를 살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 믿음을 너무나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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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0:57 2004/12/29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