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rom 우울 2006/03/02 18:22
흰둥공주.jpg
일어난지 얼마안되었는데 벌써 해가 진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아주 조용한 방안에서
매일 흰둥공주와 이시간을 맞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쳐왔지만
운명은 가족이라는 근원으로부터 나를 떼어놔주지 않는다.
나의 고민과 발버둥은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어두워진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편이었다.
아침 10시경에 눈을 떴고 11시경에 이불에서 나왔다.

한참동안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 쇼핑몰을 돌다가
옷을 한벌 구입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었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뭘했지?

멍하게 있다보면 이 시간이 온다.
이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어두워지니까.
불을 켜야한다.
불을 켜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수록, 아주 작은 움직임도 거대하게 느껴진다.
불을 켜는 것이 정말 귀찮아.

흰둥공주는 조그마한 얼굴로 잠을 잔다.
흰둥공주의 얼굴은 잠을 자면 작아진다.
몸은 길어진다.
무언가 불편해보이는 자세로 편하게 잔다.

흰둥공주는 가볍다.
특히 앞발이 가볍다.
앞발을 들어보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작고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새로 산 모니터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너무 크고 밝다.
왠지 어깨가 더 무거워 지는 것 같다.

우리집 창문 맞은편, 커다란 간판 뒤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까치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같은 까치들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3년전부터 나는 그들을 보아왔다.
흰둥공주는 까치보기를 즐긴다.
가끔은 까치들이 바깥쪽으로 나와 돌아다닐때까지
하여없이 간판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좋아하는 쥐낚시를 물어와 내 곁에 내려놓는다.
흰둥공주는 하루에 대략 20시간정도 잔다.
나머지 시간에 밥을 먹고 까치를 보고 나의 폭탄뽀뽀에 시달리고
쥐낚시랑 논다.

흰둥공주는 엉덩이를 때려주면 달리다가도 멈추고
물다가도 멈추고 먹다가도 멈추고 귀를 뒤쪽으로 눕힌채 좋아한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엉덩이를 최대한 납작하게 낮춘다.
엉덩이 맞기를 좋아하는 변태 공주.

불이나 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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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2 18:22 2006/03/02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