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저항

from 책에 대해 2006/12/26 17:53

개토님의 [구별짓기] 에 관련된 글.

 

이 책의 연구에서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음을 의미한다.

즉 의도적 건망증이라고도 말해지는 것에 의하여 문화에 관한 온갖 교양화된 담론 전체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고, 그것에 의해서, 단순히 (기성질서에의) 승인이라는

과시적 기호에 의해 확보되는 이익을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양에 따른 즐거움이라는 보다 내밀한 이익의 포기도 함축한다.

 

부르디외, 구별짓기 중에서

 

 

 

참으로 무서운 문장이다.

[구별짓기]를 읽으면, 문화적 저항의 한계를 보게 된다.

문화적 저항은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슬픈 이야기.

 

경제자본은 없지만 문화자본을 풍족하게 맛보고 자라난 '문화귀족'으로서

그러한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문화귀족'으로서,

 

페미니즘이 '문화귀족'들 사이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자본주의에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모습,

저항의 음악이 가장 잘 팔리는 음반이 되어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

'~이즘'들이 그저 멋지구리한 아이콘들로 자리잡은 것을 볼때

몇몇 지식인들만이 전유하는 생활양식으로서의 저항을 볼때

 

나 스스로의 저항이 아주 개인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욕망의 발현에 불과했다는 것을

마주보게 될때

'본질적인 예술인'인 양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30년동안 읽어오고 보아온 문화들에 의해 만들어진 에토스를 내 것인양 표현할 때

 

나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생각한다.

 

 

뼈속까지 절어버렸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해독하기 어려운 사회학저서이고

나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 '구별된' 나를 바라보고

그저 슬퍼할 뿐이다.

 

저항은, 어떤 문화로 존재해야 하나요?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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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6 17:53 2006/12/26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