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

from 우울 2006/12/29 14:02

나는 매달 1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김상의 회사에서 "책이나 DVD만 살 수 있는(!)" 5만원짜리 쿠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달내에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쿠폰이라 무조건 사야한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한 달 내내 머리를 굴린다.

이번에 무슨 책을 사고 무슨 책을 다음에 살건지...

 

5만원은 많은 돈이기도 하지만, 적은 돈이기도 해서

나는 항상 목이 마른 기분으로 다음달 1일을 기다린다.

참으로 겁도 없이 기다린다.

나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저 숫자에 불과해서

나는 한달동안에 내가 늙는다거나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다.

 

대략 일주일정도 새로 받은 책들을 실컷 즐기고 나면

나머지 삼주일 동안에 나는 아주 늦게까지 자고 잠에서 깨도 안일어나고

와우를 12시간씩 하거나 읽었던 책을 또 읽으면서 시간을 없애버리려고 애쓴다.

 

나는 시간이 아주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들 정말 애써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혹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갔지?'하고 내게 동의를 요구할때마다

나는 왜 시간에 대해서 아깝다는 느낌이 안들까

나는 왜 그 시간들이 어디로 갔다는 느낌이 안들까

혹시, 나중에 갑작스럽게 그 시간들을 느끼게 되어서

남들이 차근차근 느끼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거대하게 한번에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겁이 난다.

 

'벌써 한 해가 갔구나!'하고 누군가가 말한다.

흠....그런가 싶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해였더라?

 

나는 그냥 1월 1일을 기다린다.

쿠폰이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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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14:02 2006/12/29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