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님의 ["숨겨진" 의도 (마지막)] 에 관련된 글.

아직도,

근본주의라던가, 환원주의(계급모순으로의)와 같은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EM님의 글을 읽고 그런 단어를 떠올린다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EM님이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된 글을 쓰셨기에,

나는 연대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만 하나 쓰고 싶다.

 

나는 EM님이 말씀하신 '보편타당성'이 '연대와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편타당성'이 없는 '연대와 소통'은 불가능하고,

'연대와 소통'이야말로 운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부분,

그 부분이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제와 자본과 환경파괴와 기타 모든 억압으로부터(이상 가나다 순) 생명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해서' 채식을 한다면,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가부장제와 자본과 환경파괴와 기타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

두가지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은,

연대를 만들어내고, 소통을 만들어 내고, 세계를 변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식을 운동으로 하게 되면,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는 연대가 불가능하게 된다.

채식을 개인적 (운동의) 실천으로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사회를 꿈꾼다'는 것으로 들린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억압과 착취가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선전 선동으로써의 채식만을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정치적의도'를 가진 '개인적 (운동의) 실천'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것조차도 사실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힘든데(문자 그대로 힘들다)

이러한 방식의 실천이 오히려 그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획일화'를 만들어내는 도덕교과서적 실천의 전형으로 비춰지거나,

종교적 실천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삶의 방식'이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말하는 이가 설사, 상대를 설득하고자하는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듣는 이에게는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옳아.'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옳다고 말할 때는, 상대가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식이 '옳은' 개인적 실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채식을 하지 않기때문에 당신은 옳지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대체 누가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운동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윤리나 종교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일반인(?)'들에게 진보블로그를 추천하면,

주로 들었던 소리가

'참 대단하신 분들이네...나는 아무래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거기는 못가겠어.'였다.

 

'삶의 방식'을 운동으로 강조하게 되면, 윤리나 종교적 운동이 되어서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한 줌의 사람들끼리는 연대하고 소통하기 쉬워지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라디오 듣기가 운동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나는 '고양이 키우기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각자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

그것은 당연히 '취향의 자유'를 위한 권리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취향의 자유, 삶의 방식'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공간이다.

'탈근대군주론'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거대한 연대체'가, 나는 그러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운동은 '보편타당성'을 근거로 소통해서 '거대한 연대체'를 만들어내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육식거부'를 당신 삶의 방식(취향보다 혹시 덜 거부감을 일으킬까?)으로 존중해주길 원하는 거라면, 나는 당연히 존중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더 존중받기를 바란다.

 

그런데,

당신이 '채식'을 '취향'이 아닌 '운동'으로 존중받고 싶다면,

나는 그 운동을 존중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모두가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먹거리'를 원한다면,

당신이 '채식주의자'인 것을 강조하기 보다,

나와 당신이 모든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와 연대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거야 뻔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소심해서(^^;), 당신이 나때문에 불편한 것은 아닌지,

내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당신과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어쨌거나 당신이 '채식'을 '취향'이 아닌 '운동'으로 존중받고 싶어한다면,

나는 당신을 존중하기 위해 그정도의 걱정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신이 정말로,

더 많은 사람이 채식(육식거부)을 해야만, '억압과 착취'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억압과 착취'를 몰아내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육식거부'를 해야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그정도의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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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2 21:50 2007/02/22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