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게, 보편타당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
1) 인간이 인간을 죽여서는 안된다(죽고 싶은 경우를 제외하고)
2) 사회적 보편성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
3)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기타 등등.
보편타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만큼 위험한 결론은 없다는 생각이다.
운동이 사회적 권력을 가지려면,
보편타당의 최전방에 서서 사회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편타당의 최전방에서 변화하는 사회의 새로운 보편성을 담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어떤 보편성을 미래에 가지게 될 것인가의 싸움이다.
최근에, 의도하지 않게, 한 회사의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유저 익스피어리언스(UX) 디자인을 하는 회사였다.
2년 후에 탑재될 유저 익스피어리언스를 이미 디자인한 상태였다.
2년 후에, 핸드폰을 보는 방식을 디자인 하는 것,
사회 곳곳의 영역에서 치밀하고도 미묘하게 계산된 미래의 보편성을 디자인하고 있는데,
솔직히,
운동권은 정말 한 줌도 안되는데다가
내부적 보편성조차 합의되지 않는다면, 하........ 안습입니다.
조낸,
효과적으로 선전, 선동하고 조직화하란 말이다.
생각해보니, 흠........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구나....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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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있긴 있는 거 같은디...
Tracked from 2007/02/27 08:42 delete개토님의 [보편타당] 에 관련된 글. 보편타당은 있다는 말씀 완전 동의!! 게다가 효과적으로 선전선동조직화하라(?)(라기보다는 하셔야 될 듯... ㅎㅎ)는 주문에도 일정 동의! ---전번에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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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살색'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Tracked from 2007/02/27 11:10 delete개토님의 [보편타당] 에 관련된 글. 리우스님의 [있긴 있는 거 같은디...] 에 관련된 글. 어렸을 때부터, 지방에서 한 가지의 색만을 살색으로 알고 살아왔던 나였는데, 대학에 들어온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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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편성을 미래에 가지게 될 것인가의 싸움"이라는 말에 공감 한표~^^
저는 운동권의 내부적 보편성은 계속 합의되지 않아 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면, 제가 운동권이 아니던가요.ㅋ
그리고 제가 보편타당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보편타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보편타당함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의미에 가까웠어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보편타당성이 합의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무작정 보편타당하다고, 혹은 보편타당하지 않다고 밀고 갈 수는 없다는 거죠.^^ 제가 의도한 것도 제가 글을 통해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죄송하군요.
흠.......운동권의 내부적 보편성에 대한 거부감은 오랜 전통이죠. 하지만, 저는 넓은 의미에서의 보편성에 대한 합의가 연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편성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운동권간에 서로 더 소통이 안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고 생각하구요.
흠....보편타당함을 증명할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불은 뜨겁다는 보편타당성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에 손을 넣어보라고 해야한다고. ㅋㅋ
스캔님의 의도는 대략(^^;;) 이해하는 것 같은데, 저랑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만나면 다른 생각이 또 나고 또 나서 자꾸자꾸 생각이 나죠...^^
ㅎㅎ 그래요. 불에 손을 넣어봐야 뜨겁다고 말할 수 있죠.ㅋㅋ 그러나, 만약에 어떤 한 사람이 불에 손을 넣었는데, 뜨겁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도 불이 뜨겁다는 것이 보편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죠. 이런 때에도 불이 뜨겁다는 것이 보편타당하다면, 뜨겁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는 교수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자리에서 따졌을 거에요. 보편타당성을 믿는 사람들도 그 믿음을 확고하게 하려면, 불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고 싶군요. 믿지 않는 사람들만 손을 넣어보라고 하면, 그건 불공평해요.
저는 보편성에 대한 거부감이 소통이 안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말에는 또 민감해지는데요. 그렇다면, 일단 보편성을 합의부터 하고 소통하자는 걸까요? 역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소통의 대상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서요. 저는 보편성의 합의가 소통의 전제조건이 되는 게 아니라, 소통의 과정에서 보편성을 합의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가치가 보편타당함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보편타당한 게 아닐 겁니다. (말장난 같지만, 보편타당함은 적어도 인간의 이성 또는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에 비추어볼 때 누구든지 참이라고 인정하는 상태겠죠)
저는 보편타당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소통과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개토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보편타당한 건 아주 적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건 각각의 운동이 추구하는 목표 또는 궁극의 가치 정도에 한정됩니다. 이걸 서로 인정하면, 방법 상의 차이에 대한 존중을 전재로 소통과 연대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채식 논란의 연장선상에 본다면, 채식은 보편타당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채식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어떤 보편타당한 가치를 구현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 한가지 방법입니다. 단적으로 채식이 불가능한 생존조건(예컨대 지금도 몽골 등에 존재하는 유목민 비슷한 환경이나 북극의 원주민들 환경)이 분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분명해집니다.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지만, 서구 상당수의 나라들에서 채식은 육식에 비해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지역 하층민들에게도 채식은 보편타당은커녕 비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의미로, 약 30년전 이 땅에서 채식은 운동의 방법일 수 없었습니다. 그냥 삶의 불가피한 조건이었죠.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문제라는 겁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보편타당한 가치는 분명 있으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상황과 환경, 맥락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걸 서로 인정하자, 이것이야말로 소통과 연대의 전제조건이다”
이런 것이 되겠습니다.
휴우...하루 안들어왔는데, 꽤 오래 비운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좀 생각해보고(사실은 좀 제대로 읽어보기부터 하고) 덧글이나 포스팅을 할게요. 이런 긴 덧글을 받고 가만히 있으면 예의가 아닌거 가터서..ㅋㅋ 일단 바쁘다는 변명으로..ㅎㅎ
ㅎㅎ 안습은 '안구에 습기가 낀다'는 뜻이람서여??? ㅋㅋ
저는... 내부적으로 합의가 안되는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왜 합의가 안될까에 꽂혀 있심다~~
리우스 // 저도 왜 합의가 안될까에 꽂혀 있는데, 그 이유를 보편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ㅋ 이제부터 돌고도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더 긴 이야기는 저도 포스팅으로 하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