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조각

from 2007/05/07 03:46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찬찬히 맡아본다.

사실, 내 콧속으로 강하게 와닿는 고소한 캬라멜 향은 그녀의 냄새가 아니다.

 

그녀의 진짜 냄새는 뭘까?

 

거울조각이 핏줄 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유리가 깨어지면 겁이 났다.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땀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이 몸안으로 들어가서는

핏줄을 타고 다니다가 심장에 박혀 죽어버리는 것.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걸까?

 

아침에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은 큰 조각들로 부숴져서 플라스틱 프레임안에 담겨있었지만,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혹시라도 바닥으로 튀었을까 걱정이 되어

키친타월을 여러겹모아 물에 적신 다음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커다란 컴파스처럼, 허리를 꺾고 거울 주변에 최대한 손과 발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랬는데도,

어딘가의 핏줄이 근질근질하다. 관자놀이 주변이 따끔거리는 것도 같다.

 

새벽 5시, 그녀는 조금 괴로운 듯 자고 있다.

오늘 잠든 그녀는 그닥 평화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꿈속에서 다음날 해야할 일을 이래저래 시뮬레이션해보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녀의 냄새를 크게 들이마셔 본다.

하루에 두번 씻는 그녀에게서는, 사실 옅은 샴푸 냄새와 로션냄새 뿐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종이인형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종이인형같다.

 

숱이 적은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펼쳐져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너무 가늘다.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내일은 S 전자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었다.

 

팔꿈치께가 간지럽다. 왼손인가? 작은 유리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의 땀구멍으로 튀어들어온다.

 

S전자 사람들과 만나면 그녀는 반짝 반짝 빛이 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일에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

 

천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 X맨에 대한 두려움.

 

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있어 천재적 재능을 가지 고 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매번, 사실은 결코 원치않는, 사람만나는 일을 하러 가기 직전까지

심각하게 표현하는 각종 히스테리컬한 반응들을 모두 받아주고

다녀와서는 으쓱해져서 재잘재잘 늘어놓는 어린애같은 자랑도 모두 들어주면서

나는 너무나 뿌듯해지곤 한다.

 

혹시,

그녀가 유리조각을 밟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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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03:46 2007/05/07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