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from 우울 2007/09/12 21:47

더러운 8차선 도로와 도로보다 더 더러운 공중과,

극단적으로 화려한 백화점, 극단적으로 꾀죄죄한 골목길을 마주하고 서서,

막을 길 없는 미지근한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버스를 40분동안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가방끈이 어깨를 죄어오고, 입고 있는 옷들이 서서히 남의 옷처럼 거북해진다.

막아서지 않으면 그냥 가버릴 버스를 잡기 위해,

40분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머리와 온 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수십대의 버스들 속에서 주홍색 버스들만 가려내고,

가려낸 버스들 사이에서 내가 탈 버스의 번호를 기대하는 것 뿐이다.

시야를 가리는 사람들에게 짧고 무관심한 증오를 던지고,

가끔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아본다.

 

버스안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하다.

버스 앞 문 옆에 달린 철봉안쪽으로 들어가 기대 앉으며

되도록 육체적 고통이나 감정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차들은 노예들의 느릿한 행렬처럼 움직인다.

등 뒤의 철봉 반대쪽에 선 아저씨의 뜨거운 등이 자꾸 내 등에 와 닿는다.

집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2시간 30분 뒤이다.

 

눈을 뜨면서 생각한다.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마. 아무 생각도 하지마. 그냥 움직여.

시계는 8시 5분전을 가리키고 있다.

5분을 더 자기로 맘 먹자마자 이미 나는 잠이 들어있다.

5분은 죽음처럼 아무것도 없었고, 인생에 그런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원래는 7시에 일어나야 했다.

2시간에 걸쳐 앉아서 학교에 갈 것인가, 1시간 반으로 30분을 단축하면서 서서 학교에 갈 것인가.

매일 가야하기 때문에, 학기 초에 가능하면 앉아서 가자고 결정했는데,

결국 30분을 더 자고 서서 가고 만다.

 

삶이 정신없다고 느낄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오늘은 정신없는 가운데 겨우 한 권의 책밖에 읽지 못했다. 그나마 어제 반이나 읽어놓았던 책이었는데.

나는 오늘 정말로 정신이 없었나 보다.

 

어제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읽었고, [애드버스터]를 그냥 한번 흝어봤고,

[눈먼자들의 도시]를 반쯤 읽었다. 뭔가를 더 읽었는데...아, [퍼레이드]라는 일본소설이었다.

오늘 마저 다 읽었다.

 

수업은 미묘하게 지루했다.

선생님에게는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만큼이나 관심이 가지 않았다.

유명미대를 졸업하고 이태리에서 유학한 뒤 석사를 2개인지 3개인지 받고

현재 박사과정을 진행 중인 그 분은

압구정 로데오 황금거리에 회사를 가지고 계시고 이동할때는 택시만 이용하시고

KBS, 삼성, LG, 나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유명 호텔들과 식당들과 기타 등등에 대한

알 수 없는 디자인 일들을 하고 계셔서

뭐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책에 나왔던 그 높은 사람처럼 다른 세계에 사시는 것 같았다.

 

이제 [눈먼자들의 도시]를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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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2 21:47 2007/09/12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