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비판 없는 무한 상상력의 세계 - 디즈니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디즈니야 말로 미국이 위험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나는 상당히 괴로워졌다.
영화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하고 귀여운 외계인 방문객들,
선명한 색채의 자연, 건강한 출연진들...
환상의 세계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허여멀건 푸르스름하게 컴퓨터나 지키기 보다는
푸른 바다에서 노릇노릇하게 갓 구워진 빵처럼
부드럽고 따듯하게 서핑을 하고 싶단 말이다!

영화관에서 무겁게 발을 떼어내어 복도로 나서는 순간
내 입에서는 '스티치를 갖고 싶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소유에 대한 욕망을 자연스럽고도 강렬하게 끌어내고
결국은 그것을 갖도록 만드는 힘.

생명공학에서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새로운 생물체의 탄생이라는 문제는
도덕적인 기준을 필요로 하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무모한 발전에 대한 경고는 아마도 불이 발견된 이후로 지속되어 온 것일테지만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나는, 이제 과학이라는 것이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야할 책임을
사람들이 느껴야한다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생각한다.

그러나 디즈니는 말한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린 뭐든 해도 돼.
'릴로 & 스티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생명공학을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리라.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고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운 믿음이 세상을 파괴하는 선동자라는 것을 믿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귀여운 스티치를 갖고 싶어.
힘센 스티치, 불에 타지 않는 스티치, 말하는 스티치,
초강력 무기 스티치...

디즈니가 주는 꿈과 희망은
자본주의적 장인정신 - 혹은 자본주의의 자체적인 완결성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자, 여기에 꿈과 희망이 있어.
이게 너희들이 꿈꾸어야할 세계, 그리고 욕망.
상상력을 잃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얻게 될꺼야.
꿈과 희망이 꼭 필요하냐구?
그런 질문은 성립하지 않아.
이미 너희들 내부에 자리잡은 강렬한 욕망을 봐.

우와...정말 대단하다...

현실에서 도피해 얻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 틈에
슬쩍 끼워놓은 새로운 세계 - 스티치,
정말 놀랍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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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5 18:04 2002/07/25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