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from 우울 2009/10/12 17:48

나는 추석이나 설을 주로 혼자 집에서 보내는데,

하루쯤은 엄마나 아빠와 동생이 들르기도 한다.

 

이번 추석에는,

좀 따듯하게 전화를 받아주면 안되냐, 남한테도 그렇게는 안하겠다는 아빠에게

'나는 아빠가 싫어. 정이 안가. 싫은 사람한테 어떻게 따듯하게 해?'라고 말했다.

 

연락이 뜸해지겠구나 생각하면 좀 낫다고 생각해봤자

 

그렇게 연락이 뜸하다가 또 무슨 일 생기면 전화오겠지.

어차피 무슨 일 없으면 연락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런 주제에 추석이며 설이며 챙기려는 것도 짜증나.

 

그 사람들, 나한테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잘은 모르겠지만, 속에서부터 거부감이 밀려온다.

 

동생이 대책없이 혼인신고을 하더니만 덜컥 애까지 생겼다고 한다.

도를 넘어서는 틱때문에 취업도 못하는게.

병원을 다니게 해야할텐데 한가지 손대면 우르르르 쌀부터 전기요금 생활비 버스비...다 책임지게 되니까

모르는척 해왔다.

 

'능력있는' 내가 벌어서 '자립기반'이란게 만들어질때까지 도와줘야 하는 거냐?

 

병원에 가지 그랬어?

차비가 없어서 못갔어.

그럼 차비랑 병원비랑 달라고 하지 그랬어.

그냥 밥도 못먹고 어차피...

대화는 그런 식이다.

 

감기는 왜 걸렸는데?

가스요금 밀려서 난방이 안돼.

전기도 3개월 밀려서 이상한거 날아오고.

아르바이트 구하려고 나가면 차비 들고.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전화비 들고

근데 다 안된다 그래.

차라리 그냥 집에 있는게 낫고.

 

전에는 조금씩 보태주고 그랬는데 얼굴안보고 멀리 있으니까

돈 안주는게 쉬워졌었다.

 

결혼이랍시고 해서는 자꾸 얼굴보이고 하니 또 돈문제다...

근본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야되는데, 그렇구나.

그렇다.

그럴 수 있을까?

 

대학졸업하고 취업해서 동생 이를 고쳐주는 데만 천만원이 들었다.

여기저기 안아픈데가 없는 이유가 이때문이라고 해서.

 

한동안은 매달 오십만원씩 생활비도 보냈었다.

 

경찰서 들어갔다고 백만원.

뭐가 어쨌네..해서 또 얼마에 얼마에 얼마. 

 

이번엔 혼인신고 한다는 둥 이래저래해서 백 몇십.

혼인신고한다고 할때는 정말 화가 났다. 

어느날 갑자기 전화해서는 결혼한다고 돈 좀 보태라고 통보다.

 

내가 지갑이냐?

통보만 할거면 알아서 책임지고 혼자 하던가.

근데, 혼인상대가 한국말전혀 안되는 일본여자라서

그만두라고 말을 못했다.

 

다 버리고 한국 와버린 여자한테 돌아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누나들이란 건 다 그정도는 해야하는 건가?

내 생활비도 가까스로 만들어 사는 나같은 무책임한 인간이

그 돈을 다 어서 만들었는지...어디서 만들었더라?

 

인터넷에서 만나 대화도 불가능한 내 동생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일본인 여성.

무슨 생각으로 대책도 없이 한국에 와서

시골구석에 동생이랑 쳐박혀 사는지, 어쩌자고 피임도 제대로 안했는지

지금 그 속이 어떤지...정말 알 수가 없다.

 

'나도 이렇게 살기 싫다'고 아빠가 말했다.

그래서,

'같이 그렇게 살자는 거냐?'

 

어렸을 때부터 내가 똑똑한게 못마땅했으면서

머리에 똥만 차고, 삐뚤어지고, 머리나쁜 그들을 이해못하는 머리 좋은 애로 살아온 내게

왜 자꾸

어리석은 무조건적 애정같은 걸 요구하냐?

 

나는 그딴 거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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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17:48 2009/10/12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