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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GP] 다양성의 맥락에서 본 멕시코의 사회운동과 페미니스트 운동 그리고 원주민 페미니스트로서의 경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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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ía de Lourdes Pérez Enríquez  마리아 데 루르데스 페레스 엔리케스

Juventudes Indígenas y afromexicanas en Conexión (JINACO / 청년 원주민과 아프리카계멕시코인 단체)

Mail: jnichim@live.com.mx

번역 최이슬기

* pdf 파일 다운받기 [10. 줌인 - 히나꼬.pdf (157.92 KB) 다운받기]

 

멕시코는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풍요로움을 지닌 다문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나라이며, 이러한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에 관한 권리가 최근 헌법 제 2조에 의해 보장되었다. 헌법에서 민주주의와 국가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중심적 가치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이런 맥락 속에서도 수 년 동안 노동,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싸워 왔다.
이 글은 그 투쟁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민권 운동: 참정권에서 원주민 민족해방까지


우선,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이 싸워온 중요한 권리들 중 하나는 시민권을 위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투표권이었고, 멕시코에서 이 운동은 “참정권론자들”의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거리로 나가 시민권과 투표권 행사를 요구하며 시위했고,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탄압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투쟁 덕분에,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여성 투표권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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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회 운동 내부에서 싸워 온 여성들 덕분에, 멕시코 여성들은 1952년 처음으로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다양한 사회 운동이 등장했다. 원주민 운동에서 보면, 정부로 하여금 원주민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만든 무수한 활동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EZLN)의 출현이었다. EZLN은 1994년 1월에 치아파스 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와, 정부에 의해 취약한 상황에 놓인 원주민의 실상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일어났다. 그러나 사파티스타가 들고 일어난 것은 남부 지역의 원주민들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국 32개 주의 264개 원주민 부족들을 위해서기도 했다. 지리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많은 원주민 부족들은 멕시코 남동부와 중앙으로부터 이주한 경우가 많고, 고유의 언어, 정체성, 의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EZLN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원주민 권리 운동은 원주민과 비원주민이 함께 권리 실현을 위해 만든 조약과 협약, 협정들이다. 1994년 EZLN이 생기기 전에, 여러 사회운동 분야에서 다양한 시위가 일어났고, 이를 통해 현재 국립 원주민 언어연구원(INALI)과 같은 여러 공공 정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또한 이중언어-이중문화 기초교육(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과 상호문화적인 사범학교, 대학교 설립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이 투쟁은 현재의 교육과 노동의 맥락에서 보면 부족한 점도 있다.


폭력과 억압에 맞서기


한편, 43명의 사범학교 학생들의 실종사건에서 비롯된 아요치나파 국제 운동의 경우처럼, 멕시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의 물결에 대항해 나타난 운동들을 볼 수 있다. 이 비통한 사건은 2014년 9월 26일 일어났다. 오늘까지도 실종 상태에 있는 43명 학생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이 운동은 게레로 주에서 시작되었으나 국가적, 국제적으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멕시코에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운동은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 경보(Alerta de Violencia de Género contra las mujeres, AVGM)’로,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여성살해방지 전략이며, 사회의 선입견과 뿌리 깊은 관행이 만들어내는 성폭력적인 환경과 싸우기 위한 촉매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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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여성 인권을 보장하고 페미사이드(여성살해) 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모든 방지책이 동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극단적인 폭력사건들이 일어나는 공통된 양상, 즉 피해 여성들의 프로파일, 사회적 수행, 가족 환경과 사생활 주변의 맥락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는 단순한 분류를 통한 낙인찍기를 피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며, 나아가 모든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 경보’는 폭력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아직 멕시코 전역에 발령되지는 않았다. 날이 갈수록 페미사이드가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주 정부의 주관 하에 젠더폭력 경보가 발령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이 운동은 시민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여러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의 또 다른 페미니스트 운동은 ‘보라색 물결(Oleada Violeta)’이다. 이 운동은 2016년 4월 24일에 벌어졌던 국가 탄압으로 인해 일어난 시위였다. 마초적인 폭력과 그 표현 하나하나에 진절머리가 난 여성들에 의해 ‘보라색 물결’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정부의 권위주의에 걸맞는 가부장적 공격에서 비롯된 ‘24A’ 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현재는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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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국가의 억압에 대항하는 ‘LGBTTTI 행진’도 있다. 이 운동은 비가시화 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권리, 트랜스섹슈얼 여성에 대한 억압,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은 주들과 입양의 문제가 주된 이슈이다. 치아파스의 경우,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LGBTTTI 인구의 권리 보장보다 교회와 가톨릭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발언권을 주는 문제 때문에 이에 관해 다루는 위원회가 있다. 와하카 주의 ‘Muxes’의 경우에는 이를 문화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보며, 덜 알려진 경우로는 치아파스 산 후안 칸쿤의 초칠족도 있다.
다양성의 시선으로 살펴본 이 사회운동들은 모두 정부의 행동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나타난다.


페미니스트의 역사 = 투쟁의 역사


이 모든 운동들에 페미니스트 그룹은 항상 응답해왔다. 참정권 운동의 깃발을 들고 있었던 것도 여성들이었고, 원주민 운동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여성들 중에도 역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현재 현실화된 조약들을 공유하고, 여러 주에서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 경보를 요청하는 것 또한 바로 페미니스트들이고 여성들이다. 여기에 다양한 조류의 페미니스트들이 합류해 멕시코에서 일어나는 운동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많은 운동들을 주도한 것은 입을 다물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 온 여성들이었다.


멕시코 전역의 많은 페미니스트 시민 단체는 여성의 권리회복에 의해, 그리고 권리회복을 위해 80년대에 만들어졌다. ‘SIPAM’ (Salud Integral PAra las Mujeres), 와하카의 ‘의회토론과 공평함을 위한 협회’, ‘시몬 드 보부아르 리더십 연구소’ 등의 단체들처럼, 많은 페미니즘 단체들은 다양한 운동을 지지한다.


이미 여성, 원주민, 페미니스트로로 활동해 온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최초의 경험은 2005년 보상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원주민 공동체를 찾아 가서 극빈층의 아동들에게 수업을 해야 했다. 그 곳에서 나는 권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육에 대한 나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는 길고 지난한 싸움을 했고 국립교육대학(UPN)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LGBTTTI 집단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에 학내 LGBTTTI 인구의 권리 인정을 위해 대학의 고위 책임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LGBTTTI 인구를 가시화하는 활동들을 했을 때, 한편으로 나의 원주민 동료들은 나의 액티비즘의 시작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학에서 했던 이 운동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인구 분포를 지닌 공립대, 이 경우에는 국립교육대 안에서 다양한 집단의 역량을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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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고민하는 공간에 있었다. 뉴욕에서 개최된 제 13회 원주민 문제를 위한 상임 포럼에 참여했을 때, 각국에서 온 30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좋은 정부와 청년들”이라는 주제로 청년 문제를 이야기할 대변인을 맡았다. 이 주제는 원주민 여성 포럼(Foro de Mujeres Indígenas, FIMI)의 리더십과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국제학교의 틀 안에서 논의되었고, 그 안에서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멕시코인을 위한 성적, 재생산 건강의 주제에 관한 청년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다양한 강단에 섰고 그 곳에서 나의 경험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인상적인 것은 CIESAS-Sureste의 원주민 기금을 받아서, 볼리비아 산타 크루스와 에콰도르 키토 간의 상호문화 공공 관리에 역점을 둔 원주민 여성 리더십 강화 프로그램을 수료했었을 때의 일이다. 이 수료 프로그램은 우리 젊은 여성들이 교육의 도구를 가지길 바라는 여성들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상호문화적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선언과 협정을 다루는 멋진 경험이었다.


또한, 페루 리마에서 열린 원주민 여성들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는 여성의 임파워링을 위한 훌륭한 경험의 장이 되었다. 중심 주제는 원주민 집단, 특히 여성들의 사회운동에서의 비가시성을 넘어서고, 다양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행동 메커니즘에 관한 논의였다.


지금 나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성적-재생산 건강 증진을 위한 원주민 공동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한 경험을 나눌 수 있기에, 현재 원주민 인구와 함께 이를 실천하고 있다.  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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