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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hongsili님의 [안 어울리는 조합의 책들..] 에 관련된 글.

 

그의 책을 꾸준히 내던 이레 출판사에서 신작이 출간되었다.

 

 

친절하게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손글씨 서문으로 설명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이런 것이다.

"... 배나 항구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유조선이나 제지공장, 나아가서 어떤 분야든 노동하는 세계에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근거없는 편견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슬픔의 근원이 되기도 하면서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에 대한 세상의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 경시에 대해 그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달까....

 

언제나 그렇듯이 미묘한 순간, 놓치기 쉬운 의미들을 시의적절하게 포착해내고

이리저리 생각의 타래들을 엮어가는 그의 글솜씨는 실망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 아쉬움의 근원은 어쩌면 이 글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 되는 노동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고,

'노동과 일'이라면 비정규직, 고용불안이라는 단어가 자동연상되는 이 상황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철학적 성찰과 문장의 아름다움은 훨씬 덜하지만현장의 생생함과 애환 (그야말로 슬픔과 기쁨)이 절절이 묻어나는 매일노동뉴스의 [현장을 간다]가 '더 좋은' 책처럼 생각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사람들이 행하는 구체적인 일과 노동, 그로부터 일어난 기쁨과 슬픔을 다룬다기보다

한단계 추상화된 인간 노동의 결과물, 혹은 노동의 구조나 과정에 대한 성찰이라고 봐야할 듯...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풍부하고 좀더 깊은 이면을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상황의 구체성과이 결핍되었다는 것은 단점.....  

 

이미 미학적 성취마저 이뤄버린 송전탑, 궤도를 정확하게 찾아들어가는 인공위성, 복잡하기 그지 없는 항공산업과 회계일...  여기에는 기술 자체 (과학), 인간의 이성적 성취에 대한 '존경'(???)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와이와이 인디언이 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유사 신화적인 방식으로 기계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또 과학기술을 찬미하는 것만도 아니다. ".. 회로판에는 존중심을 느끼고 빙하에는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러스킨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  알랭 드 보통은 막 견학을 마친 과자공장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진지했던)에서 선물로 받은 과자봉지를 뜯으며 생각한다..."이 사회는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를 피하기 어려운 산업, 그 결과 컴퓨터 터미널 앞과 창고 안에서 우리를 의미 상실의 위기로 몰아넣기 십상인 산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전작 [불안]에서처럼, 보통은 직업상담소에서 강조하는 자기효능감과 능력주의에 대해 상당히 괴로워한다.  "... 나는 시먼스의 회사를 나오면서,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일 때문에 피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현실적 처방도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설 때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와인이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콜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예리하다 예리해.... 우리는 매일 가파른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어쩐지...ㅋㅋ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과연 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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