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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 중단편 모음집에 실린 8편은 각기 열 배 분량의 해석과 논쟁이 가능한 텍스트!!! 

 

 

짧은 독후감 혹은 코멘트를 남긴다는 것이 웬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기이한 죄책감을 남기는 이 중단편들에 대해 일단(!) 몇 가지 메모를 우선 남겨둔다.

 

1. 바빌론의 탑

바빌론의 우주관에 충실하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plausible)'  생활의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전날의 섬]과 완전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당대의 세계관이라는 프레임을 가져와 그에 충실하게 전개했다는 점에서는 일견 유사.

 

2. 이해

높디높은 정신세계. 예측을 몇 단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니게 된 자들 사이에 벌어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추격담이기도 하고, 인간정신의 고도화에 따른 인식과 인지의 변화에 대한 연상극이기도 함

 

3. 영으로 나누면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달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신학자가 된 느낌이었어..."

세상의 근간을 이루리라고 믿었던 근본 질서가 통째로 흔들리고, 더구나 자신이 추구해왔던 그것의 바탕이 틀렸음을 스스로 확인해버린 수학자의 이야기. 존재를 뒤흔드는 대사건이지만, 옆사람은 똑같은 방식으로 감정이입할 수 없음.  인식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관계의 문제로 끝난달까???

 

4. 네 인생의 이야기

미지의 세계와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법,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섬세한 소묘!!!

인과론적 세계관과 목적론적 세계관이라....

미래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의 구조는, 어쩌면 공간적 절단면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바빌론의 탑'과 달리 시간적 뫼비우스 띠의 모습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토록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은 오랜만이여!!!

 

5. 일흔 두 글자

너의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게 반드시 시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

짧은 글 안에 무궁무진한 논란거리가 자리해있다.

전성설이라는 당대의 과학관, 우생학과 사회공학,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적 분리 (어쩌면 이 글에서의 '이름'은 오늘날의 '소프트웨어'쯤?)... 어느 하나 시덥잖게 취급할 수 없는 묵직한 주제들

 

6. 인류과학의 진화

이건 좀 슬프다....메타인류가 거둔 과학적 성취를 그저 번역해서 전달할 뿐인 인류 학술잡지의 모습이, 오늘날의 한국 학계 상황에 겹쳐보이는 것은 나의 오바?

 

7. 지옥은 신의 부재

마지막 문장이 정말 인상적이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주인공 닐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ㅎㅎㅎ

 

8.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

와우.... 이토록 깜찍하고 심오한 소설이라니!!!

여러 명의 작중 화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칼리스의 의무 착용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종류는 백만가지는 될 법하다!!!  차별, 인식, 온정주의, 자율성, 아름다움의 정의 등등등...

 

이 작품들이 그동안 받은 상의 종류를 늘어놓으면 두 줄이 넘는데,

뭐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완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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