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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대한 이야기?

#1. 강준만 <강남좌파>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1

 

작년에 출판된 이래, 구립도서관에는 줄곧 대출상태라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읽을 사람은 다 읽었는지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조국 붐'이 한창 뜨겁던 시점에 나온 책인데다, 롤러코스터 같은 한국사회에서 무려 1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지났으니 몇몇 내용들은 시의성이 좀 떨어지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새겨들을 만하다.

강남좌파의 문제가 결국 민주화 이후에 여전하고 어쩌면 점점 더 강해져가고 있는 엘리트주의, 특히 한국사회 학벌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까지 쓸 필요는 있었나 싶다.

엘리트주의의 문제가 심층적으로 논의된다기보다, 진보-보수 양측의 주요 정치적 아이콘들의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인물평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어떤 이야기들은 굳이 이것이 엘리트주의라는 맥락에서 기술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적지 않다. 저자 스스로 한국사회의 인물 중심주의 문화에서는 이상적인 정치적 논의와 토론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으면서도, 기저의 흐름보다 개별 인물들의 특징에 지나치게 집중한게 아닌가 싶다.

강남좌파로 지칭되는 진보적 (?)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라 보기도 뭐하고, 소위 '강남좌파' 담론이 소비되는 한국사회의 지형 분석이라 보기도 뭐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의 장이 입시전쟁이라고 했는데, 앞의 개별 정치인들에 대한 분석과 연결점을 찾기가 힘들다.. ㅡ.ㅡ

지속적으로 새로운 엘리트들을 갈구하는 대중적 정서를 '새것신드롬'으로 명명한 것에는 공감이 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없다는 점도 좀 거시기...

 

저자의 구체적 지적 중에 가장 공감하는 것은,

최장집 교수의 '오래된 인연'에 기반한 손학규 지지와 대학교수/지식인들의 각종 지지서명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적에게 가혹할수록 친구에게 잘하는 법이다. 적에게 관대한 사람은 친구에게도 헌신하지 않는다"는 문장..

 

나보고 엘리트주의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라고 하면, 각종 언론사에 '선배/형' 호칭 써가면서 기고하는 교수들의 해괴한 행태를 꼽았을텐데..... 전화하던가 이메일 보내서 할 이야기를 왜 언론에 공개적으로 쓰는지??? 이렇게 애틋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당신에게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는 레토릭인 건 알겠는데, 소위 지잡대 출신들이 그리 글쓰는 걸 본적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말할 기회를 가진' 엘리트들 사이의 기회 남용이라는 걸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예전에는 '염치'라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점점 잃어가는 듯...

내가 잘나서 명문대학 나왔으니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꼭 우리 동문이래서가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다보니 마침 우리 동문이네... 이런 식?

최근에 참여한 몇몇 모임 - 진보적 성향의 연구 모임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특정대학 동문들로만 구성된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일부러 타대 출신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뭐 그 따위 연구모임 자체야 대단한 권력은 아니지만, 학연, 사회적 자본이란 것이 이렇게 투명하게 은밀하게 모든 사회적 권력위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니 새삼 오싹.....

    

존재가 의식을 규졍한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식이 존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인간으로서 너무 서글픈 삶 아닌가?

그나저나, 나도 다음 주에 사당동으로 이사가면, 한강 이남이니 강남좌파가 되는 겐가???

 

 

#2. 제이슨 델 간디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동녘, 2011

 

책 본문보다 하종강 선생님의 추천글이 더 기억에 남는 책... ㅡ.ㅡ;;

 

저자의 '내공'이 그리 깊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고, 

미디어와 메시지란 분리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약간 불편한 부분이 있었음.

 

레토릭과 관련해서라면,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라 그닥 새겨들을 만한 것이 많지 않았음.

하지만, 그냥 혼자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읽고 워크샵 방식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만들고 연습하는 기회를 만든다면 상당히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성찰적인 책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매뉴얼에 가까운 책....  

그래서 이 책이 나쁘다기보다는 쓰임새가 좀더 적절했으면 좋겠다는 사사로운 의견...

 

저자의 급진주의는 미국의 유구한 (?) 아나키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중심없는 네트워크, 자율주의...  오직 이런 것들만이 저자의 시야에 포착되고 있다는 느낌.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해서도 이후 여러가지 비판적 성찰들이 이어지고 있음에 비해,

그들의 "스타일"과 운동방식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

 

이는 전에 읽었던 <글로벌 슬럼프>에서 무대 이면의 조직화된 노동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

 

사회적/문화적 변혁의 일환으로 이러한 중심없는 운동, 자발적 네트워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듯, 이러한 운동들이 조직노동이나 정당정치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대개 휘발되 버리고, 특히나 계급정당/급진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운동이 어떤 성과로 수렴되지 못하고 영원히 '운동'과 '캠페인'으로만 남아버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별로 드러나지 않음...

활동가들의 헌신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급진주의자의 모습은 히피 같은 차림새에,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난을 즐기며, 하지만 공정한 소비를 하면서, 사회이슈가 터지는 곳마다 달려가는 젊은이?  글쎄 뭐 이렇게 사는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오직 이런 운동만 존재한다면 과연 세상에 변화가 오기는 올까??? 

 

저자는 하워드 진 할배의 스타일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지만, 할배의 고갱이는 잘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물론 책의 초점이 운동의 내용 그 자체보다 수사학에 있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이 치명적인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딴 소리이기는 하지만, 책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좀더 친화적이고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즉, 급진주의의 언어라고 꼭 과격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한국사회에서는  '씨바' '쫄지마'로 상징되는 마초계 언어가 진보 (?)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난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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