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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잡다구니한 나의 이야기

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04
    요즘의 심정
    푸른들판
  2. 2009/02/09
    상처의 흔적
    푸른들판
  3. 2008/12/10
    한 친구의 독백을 들으며 시 한편
    푸른들판
  4. 2008/12/06
    현의 울음과 인권 사이
    푸른들판
  5. 2008/11/28
    새 희망의 정수박이(2)
    푸른들판
  6. 2008/11/17
    마음 깊이
    푸른들판
  7. 2008/11/14
    말하지 못하는 자의 괴로움
    푸른들판
  8. 2008/11/13
    시어머니와의 미묘한 며칠간(2)
    푸른들판
  9. 2008/10/18
    당신은 누구인가? 여성비하 일삼는 그대!
    푸른들판
  10. 2008/10/15
    블로그액션데이(빈곤)
    푸른들판

요즘의 심정

마음이 괴롭다, 혼란스럽다...

누구도 배신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나는 누구에게도 만족감을 줄  수 없는,

씁쓸하게 만드는, 포섭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로 남아있다.

그 속에서 난 웅크리고 밑바닥만 쳐다보며 돌멩이를 바닥에 긁어대고 있다.

멍~~하게...

불같이 개입하기를 두려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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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흔적

상관없는, 그러나 알고보면 연관되는

이야기 한마디로 

예전의 상처는 건드려진다.

중얼거림으로 시작되어 분노의 소리로 이어지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왜 논리의 일관성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는가?

그리고 왜 나를 공격하는가?

라는 벙찐 표정의 화답을 할 뿐...

 

힘든 기억들,

그것을 참고 잊고 산다하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예리한 유리조각같은 말로

순간순간 분풀이를 하나보다, 나란 인간은...

 

머리 속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해결되지 않는

그런 행동을 하는 내 자신이 화가 나는

그런 행동들...

그런 기억들

어느 새 참 많아졌다.

 

내 안의 힘든 기억들, 소화되지 않는 설움이

또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이 쳇바귀를

이제는 끊고 싶은데...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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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의 독백을 들으며 시 한편

쓰린 마음 속에 촛불 하나 켠다
어둡다- 춥다-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
조용히 웅크려본다

 

 

쓰라린 마음 속에 촛불 밝힌 벗
그녀가 보인다
눈물이 난다
그리고...
조용히 웃어본다

 

 

온몸이 데인 채 촛불을 켜고 활짝 웃는 벗
그녀도 보인다
같이 웃기가 힘들다
미안하고 아프다
...


 

그녀들이 나를
나를...
내 촛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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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울음과 인권 사이

현(14개월된 아가^^)의 울음. 아침부터 자지러지게 우는...

그 이유를 차분히 생각할, 현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는 나.

(참고로 현재 남편은 시험공부때문에 집에 안들어오고 있는 상황...

 집에는 나와 현만이 ㅜㅜ)

내 할 일이 우선인 나...

 

나는 그렇게까지 급해야만 했나?

때는 새벽 6시 반

집을 나설 때까지는 1시간 반이 남은 상황.

현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지 않는 나.

(사실 들여다보려 몇 번 어줍잖은 노력을 했지만,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 아이의 마음)

내 위주로 생활질서가 잡힌 나.

그 흐름을 깨뜨리는 누구에게라도 나는 으르릉거린다.

하물며 약한 미물인 아이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렇다면 현은 단순한 희생자, 나는 어른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가해자인가?

 

 

 

 



인권의 지평을 넓힌다 할 때

고정된 '인권'이 아닌 가능성, 저항의 언어로서의 '인권'을 지향한다고 할 때

'보편 인권'이라는 틀을 넘어서고자 할 때

당사자 개개인의 '인권' 목소리를 넘어

개개인의 권리를 잠시 양보할 마음을 가진 자들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만남에선 우선 나의 역구를 내려놓고

기꺼이 타자(주되게는 소수자)의 위치를 최우선으로 놓아야 한달 때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인권이야기 두 마당'에서 나온 이야기들)

 

다 맞는 이야기고, 내 지향이기도 한 이 이야기들이

내 삶의 현실 속, 현과 나의 관계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사색에 빠진다.

 

나는

어제 아침 소리지르며 우는 현을 때린 나는

현에게

그 현장에서는 억압자, 소리를 막는 자였다. 부인할 수 없다.

그 시간, 그 현장에서 나는

울어대는 현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 위해

나 자신의 질서, 편안함, 욕구를 접지 못했다.

현의 공감받고자 하는 감정을 무시했다.

이 공간에선 난 가해자였다.... ㅜㅜㅜ

 

그런데 모두들 알겠지만,

인간사회는

이 둘만 사는 공간으로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어제 아침의 그 순간에는 가해자였지만

나를 가해자인 그 상황으로 몰고간 것을 100% 내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현재 상황...

퇴근하고 와도 여전히 남아있는 빨래, 청소, 현이 목욕시키기, 재우기,

자다 우는 아이 달래서 다시 재우기, 아침에 우유 먹이고, 옷입히기...

밤에 두 세번은 기본으로 뒤척이고 깨서 우는 현이와 살다보면

과연 쉼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떻게 존재하는지 묻게 된다.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감기를 달고 사는 나...

나를 지지해줄 체계는 가족밖에 없는 현실...

그나마 그 가족(남편, 시부모 등등)조차 각자의 이유로 바쁘고...

 

 

인권의 지평을 넓힌다는 이야기...

뭔가 동의는 되는데, 제대로 잡히지가 않는다...

우선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제대로 안돌아간다...

졸린다... 그래도 글을 쓴다... 이게 살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우선 먹고, 자고, 입는 문제만이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해결되었음 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요즘...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후원하는 일도 줄어들고 있다.

나 살기 힘들다고...

지구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속에서

그나마 한국의 삶은 풍요롭지 않았던가?

그 풍요로움을 조금 깎였다고 내 돈 아끼기에 급급한 건 아닐까?

나의 풍요로움 아니 현재의 적당함을 나눠서

내 주변 다른 이들의 배고픔을 함께 하는 일

그 일부터 나는 해야겠다.

 

잠이 부족하다, 지지체계가 없단 말

그 말도 수많은 다른 여성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너무나 풍요로운 수다에 지나지 않을지도...

 

허허허 오늘도 수다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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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희망의 정수박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내가 가끔 찾아가는 조이여울 기자의 블로그에 한용운 님의 시를 보고,

문득 가슴 뭉클하여 글을 쓴다.

 

최근 상담소의 한 회원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사람을 다루는 업을 하다보니 인간에 대한 절망, 좌절, 운동 혹은 변화가능성의 부질없음을

토로하는 회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사람이 느끼는 절망의 수위는 어디까지 일까?

절망이 아닌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는 나는 과연 절망을 알고 있을까?

그 때는 내가 가진 희망들은 과연 어떤 희망일지, 회원의 절망감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그런데, 한용운시인의 '님의 침묵'을 다시 읽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란 구절을 깊이 음미하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버리지 않고, 그 안에 머물지 않고,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붇는다는 말...

 

그것은 또 얼마나 고되고, 고통스럽고, 쓰라린 일일까?

 

있는 표현, 없는 표현 하는데 익숙해버린 나의 운동, 나의 일상적 삶과는 사뭇 다른

시인의 삶이 자꾸만 내 마음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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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이

누군가를 마음 깊이 안아본 적이 많았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달아 팔을 흔드는 아기를 안아주는 경험을

1년 넘게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렇게 오랫동안 안겨있을 기간은

어쩜 짧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안아달라고 무턱대고 요구하다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몸으로 만나기를 꺼려하게 되기까지...

 

나에게 안겨

요염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는 아기를 보면

그리고 그런 안김에 자신을 내맡기는 아기를 보면

 

문득 안기고, 안는 것에

이유를 찾고, 이내 포기하고, 언어로 대신 표현하려는 나 자신의

지금 모습에 아픔이 밀려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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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는 자의 괴로움

아기를 보면(이제 돐이 조금 지난)

말하지 못하는 자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욕구를 남을 통해서 이뤄야하고(대.소변, 밥먹기, 목욕하기, 심지어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자기가 싫은 것을 몸을 통해서(요새는 거부의 표시를 뒤로 움직이는 방식을 통해서 한다.)

울음을 통해서 밖에 표현할 수 없는대서 오는 괴로움, 답답함, 짜증...

 

아파도 어디가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고...

그래서 상대방(엄마, 아빠, 등등)은 더더욱 답답하고

답답해서 화가 나고 짜증나고....

 

악순환의 고리를 풀 방법은

어른들이 언어 외의 다른 공감방법을 더 배워야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그 때를, 그 소통방식을 잊어서 그런걸까?

 

<오늘도 이 생각 저생각에 머리가 아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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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의 미묘한 며칠간

여성운동하면서 고민되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가족들과의 관계.

사실 운동한답시고 본격적으로 나섰던 대학시절 이후 부모님을 비롯한

소위 가족, 친척들과는 일정부분 담을 쌓다시피 살아온 나다.

그런 나였기에 결혼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고, 홀로 사는 게 상책이라 믿었는데...

인생은 자기가 바라는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결국 결혼과 출산이라는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이라 믿으며 사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나.

그러면서도 반성폭력운동과 여성억압적 성문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놓지 않는 나.

그 안에서 갈팡질팡

 



 괴로운 나... ^^;;;;

 

이번 시어머니의 서울상경은 이렇게 모호하게 살고 있는 나의 삶에

미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험험...

아기에게 엄마의 품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신 어머니.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를 존중하면서도

은근 슬쩍 그런 삶을 강요당한단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난 아기에게 아침마다 밥을 먹일 수도 없고(어머니는 아침마다 밥과 국을 떠먹이신다 ㅜㅜ)

저녁에 일하고 들어오면 열심히 놀아줄 수도 없고(어머니는 간식을 챙기고 아기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아기 목욕시키면서 빨래를 동시에 하고 있으며(어머니는 아기가 그 사이 감기들까 걱정하신다)

애가 울고 짜증내면 같이 화내고 소리친다(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아기를 안고 달래시는 어머니 ㅠㅠ)

 

괄호 안의 행동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그 행동들을 보면서 지치는 나는 무엇인가?

시어머니는 결코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행동을 너도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위축되고, 괴로울까?

 

운동에도 올인하지 못하고, 육아에도 정성쏟지 못하는 내 상황...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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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인가? 여성비하 일삼는 그대!

소위 여성의 성적 부위나 여성과 남성간의 섹스를 상징하는 욕들을 사용하여

상대의 글에 리플을 달거나,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 상에서 대화하는 사람들.

나는 솔직히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들의 일상, 그들의 욕망, 그들의 꿈, 그들의 인생관, 그들이 만나는 여성들, 그들의 가족...

뭐 별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지만,

도대체 특정 성을 그렇게 비하하고, 폭력적인 그들은 뭔가 한 군데 빠져나가거나

이상한 사람일 것 같은 맘을 버리기 힘들다.

  

여하튼 어디서 사는 누구길래 그렇게 몰상식한 건지.... 쯧쯧

당신의 인생이 불쌍하오~~~

 

 

자신이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빌미로

상대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그것도 주로 자신의 대상이 여성이다 싶으면 잘 걸렸다 싶게

바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그들!!

당신들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여성비하 욕설들이

바로 당신의 교양없음과 여성에 대한 인지수준이 밑바닥임을 드러내는 것인지

그토록 모르는가?

아니 이런.... 설마 지저분한 욕망을 가진 건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 짧은 몇 마디가 불쾌함을 넘어 치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설마 당신은 일부러 즐기고 있는건가? 정말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인건가?

 

그러나, 당신!!

누구에게도 상대를 불쾌하게 할 권리, 피해를 입힐 권리는 없다.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

이 세상 수많은 선한 네티즌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걸 아직 모르고 있겠지?

 

언제가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는 당신의 손이

수많은 이가 그 손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는 공포 속에서 덜덜 떨릴 날이 오리라. 

 

여성비하를 일삼는 그대! 

부디 몸 조심하시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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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액션데이(빈곤)

http://vimeo.com/1529825(블로그액션데이 홍보 동영상입니당~~)

 

오늘은 빈곤을 주제로 블로거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날이라네요^^

 

빈곤, 인간 삶에서 가장 생존과 연결된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저 또한 여성운동단체에서 일하면서 계급과 빈곤 문제에 계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어요.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빈곤은 추방하면서

 

지구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 무생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의 고민..

 

저도 계속 고민하면서 전략도 짜보고, 실제 현장에서 실천하는 활동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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