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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들 [ laws , 法則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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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과학철학

  • 관련 과학자

    라이프니츠 (Leibniz), 로크 (Locke), 흄 (Hume), 베이컨 (Bacon), 데카르트 (Descartes), 버클리 (Berkeley), 칸트 (Kant), 밀 (J. S. Mill), 마하 (E. Mach), 러셀 (B. Russell), 나겔 (E. Nagel), 헴펠 (C. G. Hempel), 굳맨 (N. Goodman), 맥키 (J. L. Mackie), 훼웰 (Whewell), 하레 (R. Harré), 캄벨 (Campbell), 바스카 (Bhaskar), 라카토스 (Lakatos), 브래들리 (F. H. Bradley), 브랑샬드 (B. Blanshard), 어윙 (A. C. Ewing), 람세이 (F. Ramsey), 쉬릭 (M. Schlick), 뒤카스 (C. J. Ducasse), 헤스 (M. B. Hesse), 닐 (W. Kneale), 포퍼 (K. Popper), 화이트헤드 (A. Whitehead), 아친스타인 (Achinstein)

17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법칙에 관한 근대적인 개념이 나옴으로서 신학적인 뜻(內包, connotation)과 규범적인 뜻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법칙 그 자체는 언명(言明, 明題, statement)과 그 언명이 의미 하는 것을 적용하는 것이 막연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옴의 법칙은 명제(命題, proposition)와 그 명제가 기술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즉 어떤 변수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언명 혹은 현상을 법칙들이라고 부른다. 법칙들에 포함할 수 있는 것은 구조적, 성질적, 진화적, 준목적론적,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성질들, 프로세스와 관계들, 관측된 패턴들과 실험적으로 설정된 불변성들로부터 과학의 전 분야에 걸친 기초이론원리들(혹은 준 분석적인 공리들)까지인 것이다; 법칙-언명들이 나타내는 것은 수치적 상수들 혹은 정성적 속성들, 전개순서, 동일성이나 기능적 관계, 통계적인 상관관계나 사물의 타입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특징 등이다. 비록 이 모든 실체들이 일원적인 분석하에 포함을 시킬 수는 없어도 중심적인 통일의 끈은 존재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핵심적인 결과가 철학적인 토론을 지배해왔다. 만일 차이가 존재한다면 유사법칙과 순수한 우연적(accidental; de facto)결과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특히 필요한 연결(necessary connection)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해석이 되어야 만 하는가? 통상적으로 필요한 연결은 인과관계, 자연적 필연성과 법칙의 개념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숙명론자들이 주장하는바에 의하면 필연적이고 우연적인 결과사이의 본체론적 구분이 뒷받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자연에 필요한 연결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인간이 그들을 알 수가 있는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이에 대한 초기의 해답들에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의 낙관주의, 로크(Locke, 1632-1704)의 비관주의, 흄(Hume, 1711-1776)의 회의주의(scepticism)과 중세스콜라철학의 속성인 독단주의 등이 포함된다; 그 외에 베이컨(Bacon, 1561-1626)의 경험주의와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합리주의가 있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칸트 이후의 어풍으로 다시 고쳐 쓰기기 위해서는, 오늘날 과학적인 실행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필연적/우연적 구분의 본성적 설명에 관련된 철학적 분석에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주관적 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초월적인 것이다. 여기서 옹호하는 타입의 주관적 숙명론자적 분석이란, 과학에 대한 기존의 능력이 비환원적 필연적/우연적 구분의 개념을 지지하는 시도일 것이다.

법칙들에 관련하여 이것과 기타 등에 관련한 중요한 문제들은 과학과 일상생활에 있어서 인과론적 양상에 관해서 흄의 유력한 실증주의적 설명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라이츠니츠의 낙관론적 이성주의에 반대한 로크는 자연에 있어서 필요한 연결(necessary connection)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버클리(Berkeley, 1685-1753)에 의해서 준비된 토대에, 경험주의에 대한 로크적 원리(사실과 존재의 모든 지식은 감각실험에 의해서만 생긴다)에 대한 급진적 해석에 호소를 하여, 흄은 로크주의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자연적 필연성에 대한 그의 가정에 대한 경험적 토대를 만들었다. 흄이 강하게 주장한 바는 필요한 연결에 대한 아이디어는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측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외부세계로 투영함으로서, 우리의 실험이 사건을 반복적으로 동시 발생시킬 때 유도되는 것이다. 그래서 흄이 분석한 필요한 연결이란 개념은 경험적 불변성에 마음의 주관적 습관을 합한 것이 된다.

흄의 설명에서는 두 가지 가정이 결정적이다. 첫째로 모든 비분석적 지식은 감각실험(감각경험, sence-experience), 즉 칸트(Kant, 1724-1804)에 의해서 비판된 인식론적 전제에 의해서 추론되어야하고 정당화되어야한다[칸트의지식론]. 둘째로 감각경험의 목적은 원자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결정 가능한 방법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본체론적인 전제는 현대의 실재론에 의해서 이의가 제기되었다. 이런 가정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따라서 흄 이후의 철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a) 경험주의자, 실증주의자 혹은 흄주의자; (b) 칸트주의자, 친 칸트주의자 혹은 초월적 관념론자; (c) 초월적 실재론자.

(a) 경험론자들로서는 밀(J. S. Mill, 1806-1873), 마하(E. Mach, 1838-1916), 러셀(B. Russell, 1872-1970), 나겔(E. Nagel, 1901-), 헴펠(C. G. Hempel, 1905), 굳맨(N. Goodman, 1906-)그리고 맥키(J. L. Mackie, 1917-)등으로 흄의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의 분석을 단순히 다듬었다.

(b) 두 번째 부류는 흄의 존재론적 전제는 받아드렸지만 인식론적 전제는 부정하여, 감각실험으로 환원이 불가능한, 정신의 합리적 작동에 있어서 필요한 연결의 아이디어로 기초하였다. 그래서 칸트와 훼웰(Whewell, 1794-1866)이 보는 법칙에 달린 필요성이란, 어떤 종합적 선험원리가 생겨나서 감각에 의해 제공되는 내용의 형식이나 골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칸트의지식론]. 법칙들의 메타 이론적 견지에서 나온 가장 흥미 있는 전개는 하레(R. Harré, 1927-)와 같은 철학자의 것을 들 수 있고, 그는 이론 설명[설명]에 있어서 정통적 연역론자에 비판적 이었고, 캄벨(Campbell, 1880-1949)의 정신으로 모형들에서 법칙들의 필요성을 밝혀내고, 이론의 핵심이 그들을 설명하고 생성되는 메카니즘과 구조를 그려내는 것이다. 만일 이런 메카니즘이 처음에 가설적으로 착안이 되었다면, 과학적 발전과정에 있어서 실제로 확립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자연의 필연성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기초가 사건이나 사건들의 일치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사건들을 생성하는 메카니즘으로서 발견되는 것이다.

(c) 초월적 실재론(超越的實在論, transcendental realism). 칸트주의의 설명은 법칙의 ‘이중조건’론을 포함하고 있고, 여기서 나오는 상수연어(常數連語, -論理合, constant conjunction)는 필요하지만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된다. 초월적 실재론자적 체계에 있어서 바스카(Bhaskar, 1944-)가 전개한 이론에 의해서, 필연성(necessity), 기본적 존재론(underlying ontology), 충분함과 함께, 명백한 인식론을 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비판되었다. 이 설명에서 경험적 불변성은 법칙의 의미상 어떠한 부분도 차지하지 못하지만, 때로는(우연히) 유용한 합법성의 권한에 대한 기준의 구성요소가 된다. 칸트주의적 비판(critique)이 법칙(인과관계의 연결의 우연성에 대한 가정에 의해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흄이 실패한 것에 주목을 끈 반면에, 초월적인 실재론자는 정확하게 비판한 것이 흄주의가 보편성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다(인과관계의 연결의 현실성에 대한 가정에 의해서).

칸트주의의 비판의 동기부여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 점으로 나타난다. 무한수의 언명들(statements)은 일반적으로 유한수의 연어명제(논리합, conjunction)와 일치가(모순이 없고) 됨에 따라서 법칙의 확인을 목적으로 경험적 불변성의 기준에서 요구되는 것은 진보된 기준들을 보충하는 것인바, 예를 든다면, 단순성, 연역적상호연계성, 발달적 포텐셜, 설명능력(explanatory power)등과 같은 것이다. 둘째로 흄의 설명에 있어서 임의의 과학적 법칙이 잘 설정이 되어 있을 때 반직관적인 견지에서 의심에 노출이 될 수 있지만, 경험주의자적 골격 내에 있어서 철학적인 난점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귀납법의 문제들, 조건가정법들, 우연적 결과와 원인을 조건적인 것들과 구분할 필요성, 귀납의 새로운 난점, 까마귀역설 등과 같은 것이다. 최종적으로 흄주의의 이론은 과학발전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과학적설명이 계층화되어 나타나는바 확인된 현상과 그들의 구조적 설명사이에 재응용 되는 인식에서 맴돈다는 것이다.

상수연어가 훌륭한 것이고, 일반적으로(몇몇의 자연적으로 닫힌 맥락의 밖에서)인공적으로 만들어져야한다는 것[실험]을 지적하면서, 바스카는 존재론적인 차이가 법칙들과 사건의 패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실험과 응용과학활동사이의 이해력의 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인과적 작인이 실험적인 생산과 조작의 불변성들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이들 불변성과 법칙들을 동일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논리적으로 불합리성에 빠지게 되어, 과학자들은 실험활동에 있어서 자연의 법칙들에 원인과 변화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명백히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생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법칙들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경험적 기반인 것이다. 나아가 만일 법칙들이 상수연어와 동일하다면 열린계(이 같은 연어명제가 유용하지 않은 곳에서)에서 현상을 지배하는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만 한다. 현재 경험주의자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경험론자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 만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자(자유의지론자)가 되는 것이고(약한 현실설), 그래서 과학은 아직까지 아무법칙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강한 현실론자로서의 선택이고, 밀이 받아 들였으며, 최근에는 라카토스(Lakatos, 1922-1974)가 받아들였다. 초월적 현실론자적 체계에서는 법칙이란 메카니즘의 경향으로서 해석이 되고, 이것은 특별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작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물이 변함없는(ceteris paribus, other things being equal)절(節, clause)은 법칙언명의 성공에 대한 전조에 대한 조건으로 간주되는 것이고, 법칙들의 인과적 효율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견해에 관련된 과학적 발전의 도식에서는 자연의 필연성에 대해 다른 개념에 해당하는 지식인 흄주의, 칸트주의, 로크주의 그리고 라이프니츠주의가 점진적으로 획득되었다. 과학이 단순한 경험적 불변성이나 초보적 법칙들의 확인으로부터 가능한 설명의 구축과 테스팅으로 이동함에 따라서, 이상적인 법칙-언명들을 연역해서 새로운 종류의 실체와 과정들의 확인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견해에 있어서 기초이론원리들이나 과학의 실질적 정의는 라이프니츠에 반해서 이행된 바, 문제의 비환원적 경험과정의 부분들과 진일보된 과학 설명을 위해서 원리적 토픽으로 구성이 이루어졌다.

이들 세 가지의 개략적 부류에 추가한다면, 복합적이고 중간적인 위치에 철학자들과 위의 세 가지견해 모두를 부정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그래서 절대적 관념론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브래들리(F. H. Bradley, 1846-1924), 브랑샬드(B. Blanshard, 1892-)그리고 어윙(A. C. Ewing, 1899-1973)은 과학적 법칙들이 경험에 근거했다는 추정을 부정하였다; 반면에 도구주의자들인 람세이(F. Ramsey, 1903-1930), 쉬릭(M. Schlick, 1882-1936), 라일(G. Ryle, 1900-1976)과 툴민(1922-)이 인정한 바는 법칙들이 보편적으로 구성이 되었다면 유한수의 귀납법에 의해서는 만들어 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언명(言明, statement)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였다. 다른 영향력 있는 설명으로는 뒤카스(C. J. Ducasse, 1881-1969)가 주장하길 자연에서의 필요한 연결이란 사실상 관찰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헤스(M. B. Hesse, 1924-)는 베이즈적 확증론의 관점에서 유한한 것으로서 법칙-언명의 분석을 주장하였다; 닐(W. Kneale, 1906-)은 친로크파적인 견해를 옹호하면서 법칙들이란 자연적 필요성을 설명하는 원리들이라 하였다; 포퍼(K. Popper, 1902-)는 법칙의 필요성을 설명하기위한 시도로 초기조건에 대한 집합들의 모든 가능한 변화들로서 경험적 일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반면에 화이트헤드(A. Whitehead, 1861-1947)는 상수연어명제의 분석에서 내재적 시공간의 일반성에 대한 가정을 비평하였다.

반면에 현대의 친 흄주의자들인 나겔(Nagel)과 아친스타인(Achinstein, 1935-)은 흄의 설명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래서 나겔은 하나의 언명이 법칙론적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a) 다른 법칙들과 연역적인 연결이 이루어져야하고, 즉 함의되어지거나 함의를 해야 되는 것이다; (b)술어의 범위는 그것을 확증하는 증거보다 큰 것이다; (c) 반사실적 조건문을 지지하는 것이다. (c)는 명백히 순환적인 것처럼 보인다. 반 사실적인 것에서처럼 ‘만일 이 돼지가 까마귀라면, 그것은 검을 것이다’는 실제로 유사법칙인 것이다. (b)가 의도하는 것은 ‘나의 주머니에 있는 모든 주화는 페니 타입이다’와 같은 일반화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절실한 요구는 법칙들이 무제한적 이여야 함을 말하는 것이고, 즉 닫히거나 유한한 집합을 표시하는 용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가 제기된바 그 근거는 케플러의 비 유사법칙처럼 그것이 실제로 법칙으로 불리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나겔(Nagel)이 약하게 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란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과학에서의 임의의 보통 언명들(nomic statements)은 필연적으로 시공간의 제한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자연주의]. 마지막으로 (a)는 이론에 대한 비환원론자적 분석의 부재와 비경험론자적인 존재론은 어떤 방법으로도 전통적인 흄주의의 설명으로부터 문제를 경감시킬 수 없는 것인바, 이것은 흄의 두 가지 결정적인 가정에 기인한 것이다.

참고문헌

P. Achinstein, Law and Explanation(Oxford, 1971).
R. Bhaskar, A Realist Theory of Science, 2nd edn(Sussex and New Jersey, 1978).
R. Harré, 'Surrogates for Necessity', Mind(1973).
E. Nagel, The Structure of Science(London and New York, 1961), esp. Chap. 4.

참고
참조어 : 과학에서의 신인동형론
출처

과학사사전, 2011.2.1, 이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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